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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역사 속 건강, 조선 왕의 단명(短命) 원인






조선의 왕이 단명(短命)한 이유 네 가지가 밝혀졌다. 당시 의학의 한계, 비위생적인 생활습관, 과도한 영양 섭취에 따른 혈액성 염증질환, 과색(過色)이다. 이는 백석예술대 외식산업학과 김수진 교수가 조선 왕의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다. “제왕(帝王)의 50세는 보통 사람의 60∼70세에 해당한다”는 말이 있지만 조선 왕의 평균 수명은 50세를 넘지 못했다. 한 원인이란 것이다.





의료 기술이 지금보다 떨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조선 왕은 의외로 비위생적인 생활습관을 보였다. 조선 왕의 질병과 사인(死因) 중 가장 흔했던 것은 지금은 가벼운 질환이라 할 수 있는 종기(腫氣)였다. 소독약ㆍ항생제가 없었던 시절에 종기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문종ㆍ성종ㆍ효종ㆍ정조ㆍ순조 등이 종기에 이은 패혈증으로 숨졌다. 조선 왕은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등 개인위생 상태가 나빴다. 날씨가 쌀쌀할 때 옷을 벗으면 풍기(風氣)가 엄습해 병이 생긴다고 여겨서다. 특히 온천욕 등 온수 목욕을 하면 진액(津液)이 빠져 원기가 손상돼 건강에 해롭다고 생각했다.


조선 왕의 불결한 위생습관은 후궁이 많았던 왕에게 성병ㆍ감염병을 유발한 원인이었다. 조선 왕의 다수가 요즘 성인병이라고 일컬어지는 혈액성 염증질환을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조선 왕은 과다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정원을 산책하는 정도였다. 심한 스트레스, 지나친 음식섭취, 운동 부족도 조선 왕의 건강을 해쳤다. 왕의 운동 부족과 비만은 혈액성 염증질환을 불렀다.


조선 왕의 영정을 보면 모두 배가 나오고 덩치가 큰 것으로 봐 비만에 기인한 성인병을 많이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식과 고지방 음식 섭취로 인한 혈액성 염증질환 탓에 숨진 것으로 여겨지는 왕은 태조(당뇨병)ㆍ세종(당뇨병)ㆍ중종(노환)ㆍ숙종(노인병)ㆍ영조(노인성 질환) 등이다.





조선 왕이 지나치게 여색을 밝힌 것도 수명을 단축시켰다. 여러 후궁을 거느린 조선의 왕은 건강에 해로울 정도로 여색에 빠져 피로가 누적됐을 뿐 아니라 성병 등 건강에 해를 입었다. 조선 왕의 비와 후궁의 수는 태종ㆍ성종 12명, 중종 10명, 정종ㆍ선조 8명이었다. 자식 수도 세종 32명ㆍ태종 29명ㆍ성종 28명ㆍ선조 25명ㆍ정종 23명 순이었다. 조선 시대엔 피임기구ㆍ세정제가 없어 조선 왕은 성병에 취약했다. 임질ㆍ매독이 많았는데 성종ㆍ중종ㆍ숙종ㆍ정조ㆍ순조는 매독 증세를 보인 것으로 ‘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조선의 역대 왕 중엔 육식을 즐긴 이가 많다. 태조 이성계는 짭짜름한 소고기 구이인 너비아비 구이를 선호했다. 소갈증(지금의 당뇨병)으로 고생한 태조는  신하에게‘수정포도(청포도)를 구해오라’고 지시했다. 본래 고기를 유난히 즐겼지만 ‘왕자의 난’으로 인한 상심을 불교의 힘으로 달래면서 고기를 멀리 했다. 세종은 식성이 좋고 몸이 비대해 하루에 네 끼의 정식 식사를 했다. 세종은 육식, 특히 영계백숙을 좋아했다. 세종실록엔 “임금이 평소에 육식이 아니면 수라를 드시지 못하셨다”는 기록도 나온다. 나이가 들면서 식욕이 떨어져 상큼하거나 담백한 음식을 찾았다.


음식을 제한한 왕도 있었다. 임진왜란 등 국난을 겪은 선조는 고기반찬을 두 가지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어명을 내렸다. 영조는 하루 세끼로 제한하고 야식을 철저히 금했다. 식사시간이 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수라상에 앉을 만큼 식사가 규칙적이었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고집한 영조는 세 가지 이상의 반찬을 올리지 못하게 했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반찬수를 서너 가지로 제한했다(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선호하는 음식은 석류인삼물김치였다. 술ㆍ담배를 즐긴 정조는 소화불량ㆍ불면증, 허혈로 인한 오한ㆍ발열 등으로 고생했다.





고종은 공식적으로 처음 커피를 마신 한국인이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기거할 때 커피를 처음 접한 뒤 그 맛에 반해 경운궁(덕수궁)에 정관헌이란 카페를 차려 놓고 커피를 즐겼다. 민비 시해 후엔 지나친 커피 섭취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고종은 맵거나 짠 것을 싫어하고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 여름엔 냉면, 겨울엔 온면과 설렁탕을 별식으로 즐겼지만 고기는 선호하지 않았다. 육수 국물보다 동치미 국물을 좋아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치아가 약하고 소화기능이 떨어져 미음을 많이 들었다. 요리론 차돌조리개나 항복기탕을 즐겨 먹었고, 무를 삶아 담은 숙깍두기로 입맛을 돋우었다. 차돌조리개는 차돌박이를 푹 고아 경단처럼 뭉쳐서 조린 음식이다.


조선 왕조의 유전 탓에 단명했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김수진 교수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봤다. 문종(39세)ㆍ단종(17세)ㆍ예종(20세)ㆍ성종(38세)ㆍ연산군(31세)ㆍ인종(31세)ㆍ명종(34세)ㆍ현종(34세)ㆍ경종(37세)ㆍ헌종(23세)ㆍ철종(33세) 등 단명한 왕은 자신의 부모ㆍ조부ㆍ조모보다 훨씬 빨리 숨졌다. 조선 왕조의 유전 탓에 단명한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조선의 왕자는 왕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했지만 평균 수명은 오히려 짧았다. 왕자의 평균 사망나이는 38.6세인데 이중 살해됐거나 20세 전에 숨진 왕자를 빼면 평균 사망나이는 45.3세다. 독살 등으로 인해 천수를 누리지 못한 왕도 있었다. 독살설이 제기된 조선의 왕은 인종ㆍ선조ㆍ효종ㆍ현종ㆍ경종ㆍ정조ㆍ고종 등이다. 인종을 제외한 6명의 왕은 임진왜란 이후에 숨졌다. 당쟁이 치열해 지면서 반정(反正)과 왕의 독살이 빈번해졌는데 둘 다 신하가 임금을 선택하는 택군(擇君)의 결과였다. 독살은 주로 음식에 독을 타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조선의 왕 중 60세 이상 장수한 왕은 태조ㆍ정종ㆍ광해군ㆍ숙종ㆍ영조ㆍ고종 등이다. 이 중 숙종을 제외한 다섯 명은 유년기엔 세자에 책봉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왕위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릴 때는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했고 적당한 식사와 운동을 할 기회가 있었다. 조선의 왕 가운데 제일 장수한 영조는 어린 시절 대궐 밖의 사가(私家)에서 자란 경험이 있고, 다른 왕과는 다르게 소박한 생활을 즐겼다. 영조는 평소 자기 몸을 보양하기 위해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고 소식(小食)을 했다. 정종은 어렸을 때부터 허약했지만 63세까지 살았다. 정종은 운동을 통해 건강관리를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종은 특히 격구를 즐겼다.



글 /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