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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글쓰기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는 골치 아픈 일이라고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내게 예외적이고 놀라운 경험이 있다. 

 

1993년 여름이었다. 느닷없이 금융실명제가 발표됐다. 증권사에 다니고 있던 나는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갖고 있던 주식이 폭락한 것이다. 이때 나도 모르게 글을 끄적였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듯 싶다. ‘당장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힘들지만 나중에는 이 상황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거야.’ 괴로운 마음도 표현했다. 주식 상품에 들라고 강권한 회사에 대고 욕도 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도 썼다. 생각나는 대로, 손가락 가는 대로 자판을 마구 두드렸다.  

 

신기했다. 불안한 마음이 가셨다. 화가 삭여졌다.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뒤로 나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위암 선고를 받은 날도 그랬다. 분노와 원망을 폭풍 같이 써 갈겼다. 다음날에도 썼다. 그럼에도 내가 감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쓸 것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셋째 날에는 저절로 회개하는 글이 나왔다. 참회의 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이렇게 잘못한 게 많은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두 시간여 글을 썼을까. 암 덩어리가 모두 씻겨나간 것처럼 개운했다.

 

돌아보면, 그 이전에도 힘들 때마다 글을 썼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칠판에 시를 썼다. 친구들이 저녁 먹으러 간 시간에 시 같지도 않은 자작시를 한 편씩 써놓았다. 무슨 생뚱맞은 짓이냐고 놀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내게는 암울한 고3 현실에 관한 고발이고 투정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답답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군에 있을 때는 아예 일기를 썼다. 30개월 간 쓴 일기가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또 이렇게 하루를 보냈구나. 위로가 되었다. 나에 대한 힘찬 격려였다. 

 

 

 

 

애써 외면해왔던 것을 마주하게 한다.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직시하는 데 있다. 회피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글쓰기는 문제와 대면하게 한다. 마음의 상처를 직접 들여다보게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는 시작된다.

 

자신과 대화하게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해야 풀린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미움, 시기, 질투, 배신, 욕망의 금기어들이 그것이다. 이들을 꽁꽁 동여매지 않고 글로 풀어헤치자. 그랬을 때 순화되고 정제된다. 내가 그로부터 해방된다. 스스로 성찰하게 된다.  

 

상처를 다독이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게 한다.

상처는 누군가의 따뜻한 말로 아물지 않는다. 그것을 보듬고 치유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괜찮아’ ‘잘했어’ ‘누가 그랬어? 혼내줄게’ ‘잘될거야’ 나는 요즘도 과거에 썼던 내 글을 보며 또 위로를 받는다.

 

걱정, 근심, 슬픔을 떠나보낸다.

치열한 글쓰기는 이런 감정들을 불태워 날려 보낸다. 진짜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하찮은 것들은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힘을 잃는다는 것을. ‘그까짓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나를 발견하게 한다.

글쓰기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나를 받아들이고 존중하게 한다. 이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 희망을 본다. 주변도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한다.  

 

지금 당장 글을 써보라. 몸과 마음과 인생을 치유하는 경험이 거기에 있다. 필요한 것은 종이와 펜, 그리고 솔직한 영혼뿐이다. 

 

글 /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