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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 신선대, 우제봉 그리고 내도

 

 

 

 

 

 

 

 

만물이 꿈틀거리고 생동하는 봄날이다. 가만있어도 입가에 봄바람이 맴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춘삼월 호시절도 저녁놀처럼 붉게 가슴을 물들이고 불꽃처럼 타오르다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과 같이 서서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거제도 바람의 언덕과 우제봉 그리고 내도가 오늘의 트레킹 코스다. 거제대교를 건너니 섬 바다가 오밀조밀 펼쳐진다. 눈이 호강한다. 천인단애, 기암절벽 바위가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파도의 높이만큼 기암바위는 쭉쭉 자라서 해금강의 풍경을 연출한다. 해상 풍경이 장난이 아니다.

 

그림 같은 바다 풍경이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또 다른 풍경을 낳는다. 바람의 언덕길에도 동백꽃이 피었다 사그라지고 신선대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간다. 하늘 한 구석에는 뭉게구름이 시간의 난도질 속에 조각구름이 되어 금방이라도 쪽빛 바다에 뚝뚝 떨어질 듯 신선대 위로 흘러간다. 

 

 

 

 

신선대는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었다. 나무 데크 따라 상춘객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사방에는 파릇파릇한 애기 방초가 앙증맞게 대지를 뒤덮고 있다. 길가 화단에는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있고 벌이 윙윙거리며 꽃가루에 온몸이 노랗게 물든다. 시루떡을 올려놓은 것처럼 층층이 포개어진 갯바위를 반석삼아 신선대는 고고한 신선처럼 큰 바위를 두르고 우뚝 솟아있다. 신선대 상층부에는 기개의 상징인 양 소나무 한 그루가 불뚝 서 있다. 부산 태종대 신선대처럼 날카롭지는 않더라도 두리뭉실 인근 산과 조화를 이루며 따로 또 같이 바다를 뒹군다.

 

신선대 앞 바다에는 고만고만한 섬들이 들쭉날쭉 숨었다 드러나기를 반복한다. 섬은 바다에서 살아 숨쉰다. 신선대 앞 너른 반석 끝에서 섬과 바다를 바라보며 낚시하는 강태공의 낚시 풍경이 게으른 봄처럼 한가롭다. 물고기야 안 잡힌 들 어떠하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파도에 곰삭은 갯바위에서 떨어지는 포말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까르르 쉼 없이 웃는다.

 

 

 

 

지도상으로 보면 거제도 최남단 동쪽으로 갈곶리에서 바다쪽으로 우제봉과 해금강까지 길게 뻗은 모습이 마치 용이 해금강을 집어삼킬 듯한 형국이다. 신선대에서 다시 올라와 지척에 있는 반대편 바닷가로 발길을 돌렸다. 이름 하여 ‘바람의 언덕’ 너머로 풍차가 덩그러니 바다를 지키고 있다. 풍차가 서 있는 주변 풍경은 마치 제주도 성산봉의 애기봉 처럼 닮은 구석이 있다. 오늘따라 바람의 언덕에는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다.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인파의 물결이 흐느적거린다. 등반대장은 바람처럼 사라져 찾기 어렵고 그 자리에는 동백꽃이 떨어져 가는 봄을 아쉬워한다. 머물다 간 자리에는 바람이 있다. 지나고 난 인생처럼 바람의 세기와 고저는 죽는날 까지 요동을 치기도 하고 잠잠하기도 한다.

 

풍차가 서 있는 둔덕배기 아래에서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진 고향 선배를 만났다. 각자 일행 때문에 반가움도 잠시, 두어 마디 안부 주고 받고 아쉬움에 같이 사진 한 장 찍고 헤어졌다. 바람의 언덕에서 고향 선배를 우연히 만나니 바람 불어 좋은 날이 따로 없다. 

 

바람의 언덕에서 다시 신선대 부근 언덕 위 도로로 나와 단체버스로 십 분 거리의 우제봉으로 향했다. 우제봉 입구 표지판에는 마애각 서불과차라는 거창한 안내문이 이목을 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불이라는 사람을 보냈는데 동남동녀 삼천 명을 거느린 서불은 남해 금산, 거제 해금강, 제주 서귀포를 거쳐 일본 후쿠오카현 야메시로 건너갔다. 우제봉 절벽 암벽에 서불이 다녀갔다는 뜻의 '서불과차'라는 글자를 새겨놓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사라호 태풍 때 유실되었다고 전해진다. "진시황의 불로초 사연에는 동방의 나라 풍경에 매료되어서인지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진시황의 사자들은 불로초를 구한다는 핑계로 일부로 경승지 남해 바다를 택한 것은 아닌 지 상상해 본다.

 

우제봉 가는 길 초입에 들어서자 동백나무 터널길과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다. 서자암 낮은 옥상에는 장독이 가득 모여 있고 장독대 위로 동백꽃이 곱게 피어있다. 동백새가 똥박똥박 지저귀며 휘리릭 날아 갈 듯한 풍경에 매료되면 잠시나마 속세의 번잡함을 잊을 수 있다. 갈수록 세상살이가 치열하고 번잡하며 여유가 없는 세상이다.

 

서러운 동백꽃이 가지마다 뚝뚝 떨어진다. 동백꽃이 떨어진 주변에는 삼나무, 팽나무, 산벚나무가 기지개를 켜며 봄을 만끽한다. 새싹거리는 봄에 꽃과 나무를 보지 않으면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제봉 정상에 올랐다. 으랏차차! 봄날에 남해 최남단 바다를 산정에서 둘러본다. 이름하여 ‘해금강’이 발아래 한 눈에 펼쳐진다. 가히 묘경(妙景), 가경(佳景)이요 절경(絶景)이다. 해금강을 한 눈에 바라보니 호쾌, 장쾌, 유쾌하다. 얽히고 설킨 복잡한 세상사를 쾌도난마처럼 쓸어버린다. 해금강 풍경 앞에서 왕후의 밥과 걸인의 찬이 따로 없다. 나물 몇 점에 딱딱하고 메마른 밥이라도 바다를 배경삼아 해금강을 안주 삼으니 진수성찬이다.

 

해금강을 자세히 보니 세 개의 섬이 모인 것 같기도 하고, 세 개의 봉우리가 모인 듯 하다. 해금강 통로에는 칼날 같은 갯바위가 수문장처럼 해금강을 호위하고 통통배와 유람선이 드나든다. 망망대해(茫茫大海) 잔잔한 바다에 유람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비단결처럼 곱고 고운 하얀 물보라가 일고 억겹의 세월과 바람, 파도에 씻기고 깎인 바위가 사자머리 등 기묘하고 기괴한 형상으로 가히 장관이다.

 

우제봉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낙엽이 깔린 동백나무 숲길을 걸으며 하산했다. ‘사각사각’ 걷는 길은 푹신하고 마음은 한가롭다. 소나무와 동백 사이로 이따금 연분홍빛 창꽃이 고개를 내민다.  해금강유람선 매표소 부근에서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버스에 올라 구조라 포구로 향했다. 버스안이나 밖이나 온통 바다 풍경이 주위를 압도한다. 구조라 포구에서 작은 배를 타니 마도로스 선장이 환한 미소를 짓는다. 배는 성난 사자처럼 지기 몸체보다 더 큰 물보라를 일으키며 전 속력으로 달려 7분 만에 내도에 도착했다. 

 

 

 

 

내도 
 

- 김명규  -

동박새 울음 담아
자연으로 품은 웅지
엄마품속 전복 소라
아침 바위 잠깨우고
흙진주 몽돌소리
멍든 가슴 쓸어내면
아름드리 동백너울
희망 꽃 피운다네
 아! 한려에 영광 
 대한의 내도여!

 


내도는 해안선이 3.2km 정도로 아담하고 작은 섬이다. 거북을 닮았다 해서 거북섬, 모자를 닮았다 해서 모자섬이라고도 불려지며 가구는 15호 정도로 대부분 민박을 치른다고 한다. 명품 내도 트레킹 코스는 선착장에서 좌로 약간의 경사진 산중 길을 따라 세심 전망대-연인길 삼거리-신선 전망대-희망 전망대-선착장으로 이어지며 약  한 시간 반 정도면 풍경을 벗 삼아 걷기에 충분하다.

 

한려해상 국립공원내 자연의 섬 내도는 원시림이 살아 숨 쉬는 숲의 섬답게 동백나무가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트레킹 코스를 걸으며 이외에 섬에서 주로 자라는 나무를 적어본다. 팥배나무, 검노린재, 산가막살나무, 붓순나무, 센달나무, 육박나무, 후박나무, 머귀나무 등 처음 들어보는 생경한 나무들이 자라지만 웬지 그 이름조차 정겹다. 

 

 

 

 

신선 전망대에서는 지금은 남의 땅? 멀리 대마도가 가끔 시야에 잡힌다지만 해무에 아득하고, 그 앞에는 외도가 한 눈에 잡힌다. 외도는 개인이 소유한 섬이라고 한다. 배용준, 최지우 주연의 KBS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회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선착장 부근에서 일행과 멍게와 해삼을 안주삼아 동동주 한 잔 걸쳤다. 가격이 비싼게 흠이지만 잔은 차야 맛나고, 안주는 조금 먹어도 배부르다.  내도 산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산풍이 가슴을 적시고 마음을 적신다. 섬도 흐르고 바다도 흐르며, 마음도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