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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프랜차이즈 제과업계의 공공연한 비밀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가 있다. 아니 있었다. 한석규와, 결혼 후 이젠 은막에서 자취를 감춘 심은하가 주연했고, 허진호 감독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으며 데뷔한 멜로 영화다. IMF 외환위기의 무겁고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나라 전체를 짓누르던 1998년 1월 말 개봉해 많은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때의 감동이 워낙 컸던지 거의 16년 만인 2013년 11월 초에 국내서 재개봉해 다시 관객을 만났다. 2005년 일본에서는 같은 이름의 영화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젠 여름만 되면 한번쯤 생각나는 익숙한 영화로 자리 잡았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하지만, 영화의 감동은 오직 영화 속 얘기일 뿐이다. 현실은 다르다. 불편한 진실은 언제나 우울하기만 하다. 뭔 말인가?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주로 파는 케이크 이야기다. 제과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소비자 대부분은 모르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제과업계 최대 시즌인 크리스마스 때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파는 대부분 케이크가 그해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제과업계로서는 참말로 8월이 크리스마스인 셈이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산 케이크 상자의 밑바닥을 살펴보면, 아주 작은 글씨로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나 연말로 유통기한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식품위생법상 공장에서 제조한 케이크이기 때문이다. 물론 매장에서 만들어 진열장에 진열해 놓은 케이크에는 유통기한을 표시할 의무가 없다. 식품위생법상 제과점은 '제과점업 및 식품 접객업'으로 등록돼 있어 유통기한이나 제조일자를 적지 않더라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따라서 속지 않으려면 눈을 크게 뜨고 케이크 상자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아니 크리스마스 때 파는 케이크를 몇 달 전에, 그것도 여름에 공장에서 제조하기 시작한다니 어떻게 된 일일까? 과연 먹어도 될까? 제과업계에 따르면, 전국 모든 빵집의 케이크 판매 성수기는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해마다 12월 25일 전후 사흘간 팔리는 케이크 양이 1년 전체 케이크 판매량의 70% 가까이 차지한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양의 케이크를 일일이 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하는 과정을 거쳐 점포별로 만들어내는 것은 상식적으로 봐도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비밀은 냉동보관시설과 식품첨가물에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업계는 수백만 개에 이르는, 그 많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공급하고자 미리 케이크를 반제품 형태로 만들어 냉동한다. 이를 위해 프랜차이즈 제빵 공장은 여름부터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수많은 제빵사들이 일손을 나눠서 철저한 분업 작업을 한다. 누구는 반죽만 하고, 누구는 케이크 시트만 구워내고, 누구는 시트에 시럽만 바르고, 누구는 시트 사이에 생크림을 얹어 포갠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반제품 케이크들은 냉동실에 보관됐다가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각 점포에 배달된다. 무스 케이크나 고구마 케이크는 거의 완제품으로 냉동실에 보관됐다가 때가 되면 유통된다. 프랜차이즈 매장의 제빵실에서는 이런 반제품 케이크를 생크림이나 초콜릿으로 장식하거나 과일만 얹어서 완제품으로 완성해 팔 뿐이다. 

 

 

 

 

여름부터 수개월 동안 냉동된 채로 냉동실에 있었던 케이크의 빵 시트가 금방 구워낸 것처럼 폭신폭신하고 촉촉한 이유는 보존제 등 다양한 식품첨가물 덕분이다. 물론 딸기 무스 케이크에서 딸기 맛이 나는 것도 딸기향 식품첨가제 때문이다. 초콜릿 케이크에는 초콜릿향 식품첨가제가, 고구마 케이크에는 고구마향 식품첨가제가 잔뜩 들어 있다.

 

물론 불법은 아니다. 반듯해 맛있어 보이는 프랜차이즈 케이크의 맛이 천편일률적인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이 한 가지 더 있다. 비록 이렇게 몇 달 전에 만든 프랜차이즈 케이크일지라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가족과 즐겁게 보내고자 사고자 한다면, 가족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냉장실에 있는 케이크를 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상온에서 보관 중인 케이크를 샀다가는 자칫 식중독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모든 케이크는 냉장실을 나오면서 대장균 등 세균이 번식하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 '대한민국 동네빵집의 비밀'(거름刊, 최세호·정진희 지음)>

글 / 연합뉴스 기자 서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