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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캥거루 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출생 후 20분 만에 사망선고를 받은 신생아(미숙아)가 다시 살아났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현대 의학의 역할도 없었다. 엄마가 가슴에 아기를 꼭 안아준 것이 전부였다. 실제로 2010년 호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엄마의 품이 만든 이런 기적을 캥거루 케어(Kangaroo mother care)라 부른다.





최근 미숙아 자녀와 함께 삶을 마감한 한 30대 의사 가정의 비극이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부모가 미숙아(이른둥이) 자녀를 가슴에 품는 캥거루 케어가 주목 받고 있다. 캥거루 케어는 캥거루가 일찍 태어난 새끼를 육아낭에 넣어 키우듯, 미숙아를 품에 안아 키우는 미숙아 육아법이다. 부모가 편안한 의자에 앉아 옷의 앞섶을 풀고 아이와 살을 맞대고 안아주기만 하면 된다. 엄마의 품이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면서 미숙아의 체온 유지를 돕는 것이다. 부모의 체온을 전달받아 온기를 느낀 아기의 심장박동과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한다. 모유 먹는 양과 깊은 잠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체중감소와 우는 시간도 단축된다.





원래는 1983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인큐베이터 등 의료 설비ㆍ인력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시작됐다. 최근엔 미국ㆍEU 등 선진국에선 미숙아 치료에 널리 사용하고 있다. 2002년 미국 내 신생아 집중 치료실 1133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82%가 캥거루 케어를 실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캥거루 케어가 체중ㆍ키 성장을 돕고 모유 수유 비율ㆍ산모의 만족도를 높이며 산모와 아기 간의 애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져서다. 또 사망률을 줄이고 패혈증ㆍ저체온증 발생위험을 낮추며 병원 재원일수를 단축시킨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숙아에게 모유를 먹이면 모유 내 면역물질로 인해 아이의 감염 위험도 줄어든다.


하지만 국내 병원의 캥거루 케어 실시율은 선진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우리나라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선 제한된 면회만을 허용하고 있으며, 의료진과 부모의 미숙아 감염과 안전에 대한 우려, 공간적인 제한 탓으로 여겨진다. 국내의 대다수 병원에선 미숙아가 엄마와 자연스레 격리됐다. 면역력 없는 아기가 감염될까 걱정해서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모유를 모으거나, 제한된 면회시간에 창문 넘어서 아기 얼굴을 보는 것에 그쳤다.





2011년 국내 대학병원 6곳의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조사한 결과 캥거루 케어를 하는 곳은 31%에 그쳤으며 42%는 캥거루 케어 실시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순민 교수팀이 2012∼2013년 이 병원에 입원해 캥거루 케어를 받은 미숙아 45명과 캥거루 케어를 받지 않은 68명(출생체중 1500g 미만)을 비교한 결과 캥거루 케어가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미숙아 치료법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교수팀은 인공호흡기를 떼어 낸 뒤에도 활력이 있으면서 엄마가 감염성 질환이나 심각한 전신 질환이 없는 미숙아 45명을 대상으로 총 917회의 캥거루 케어를 실시했다. 캥거루 케어를 받은 미숙아의 출생 당시 평균 체중은 1080g이고, 태어난 지 평균 18.3일 뒤부터 케어를 받기 시작했다. 이 교수팀은 부모 중 한 사람이 하루 1시간씩 자녀를 안아 주도록 했다.부모에게 캥거루 케어 방법을 사전 교육하고 케어 내내 의료인이 함께 해 부모의 불안감을 덜어줬다. 부모는 블라우스ㆍ셔츠 등 앞이 트이고 미숙아 자녀의 몸통ㆍ팔을 덮을 수 있는 옷을 입고 아이를 안아 주었다. 담요는 사용하지 않았고 기저귀ㆍ모자만 착용한 상태로 미숙아의 앞가슴과 배 부위가 최대한 부모에게 닿도록 했다.





캥거루 케어를 받다가 중도에 일시 중단한 미숙아는 2명이었다. 복부 팽만으로 인한 모유 수유 곤란과 패혈증 의심이 원인이었다. 이들도 증상이 호전된 뒤 다시 캥거루케어를 받았다. 캥거루 케어를 받은 미숙아의 입원기간은 평균 84.2일로, 캥거루 케어를 받지 않은 미숙아(98.5일)에 14.3일 짧았다. 캥거루 케어를 받은 아이의 퇴원 때 평균 체중도 2310g으로 캥거루 케어를 받지 않은 아이보다 160g 높았다.


미숙아 치료 도중 흔히 나타나는 합병증은 패혈증ㆍ무(無)호흡ㆍ저체온증ㆍ중증 이상의 기관지폐 이형성증 등이다. 캥거루 케어를 받은 미숙아가 숨지거나 패혈증ㆍ저체온증이 나타난 경우는 일절 없었다. 일반 미숙아의 패혈증 발생률은 11%인 반면, 캥거루 케어를 한 미숙아는 0%를 기록했다. 체중에 비해 표면적이 넓고 피하 지방이 적은 미숙아는 저체온증에 걸리기 쉽다. 열을 발산하는 능력이 떨어져 주위 온도가 너무 높으면 체온이 급격히 오를 수 있다. 엄마 가슴은 온도가 자동 조절되므로 미숙아의 저체온증 예방에 효과적이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한 번도 안아보지 못한 미숙아 엄마는 모성 자존감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지거나, 심하면 아기에 대한 두려움까지 갖기도 한다. 캥거루 케어를 통해 아기와 몸으로 접촉 하면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엄마와 아기의 애착관계가 강해지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이 교수팀의 연구를 통해 캥거루 케어가 미숙아 엄마에게도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엄마의 우울감 지수는 캥거루 케어 참여 전 30%에서 참여 뒤 5%로 감소했다. 캥거루 케어를 한 뒤 엄마의 상태 불안 점수(슈필버거 불안측정 도구 사용)는 평균 1.2점(49.7점→48.5점) 낮아졌다. 엄마의 모성 애착 점수(모자간의 친밀한 정서적 유대감을 나타내는 점수, 물러의 모성 애착 자가 평가 도구 사용)는 1.1점(98.4점→99.5점) 높아졌다. 캥거루 케어에 참여하지 않은 미숙아 엄마의 불안 점수와 모성 애착 점수는 각각 55.6점ㆍ93.2점이었다.


캥거루 케어는 미숙아는 물론 저체중아나 신체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만삭아에게도 효과가 있다. 미국 캥거루케어학회는 만삭아는 생후 3개월, 미숙아는 생후 1년까지 캥거루 케어를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32주 미만의 미숙아에겐 권하지 않는다.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고 혈압이 비정상이거나 염증ㆍ감염 증상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



글 /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