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선후배들과 만나 담소를 나누고 늦게 들어왔다. 자정 다 돼서 잠자리에 들었다. 근래들어 가장 늦게 잔 것. 고향 사람들은 언제 만나도 좋다. 다음 모임 날짜도 미리 잡았다. 4월 15일. 약력으로 내 생일날이다. 오늘은 잠시 뒤 고향에 성묘하러 간다. 10번째 에세이집 '새벽찬가' 출간을 신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매번 책을 낼 때마다 부모님께 알린다. 그러면서 같은 바람을 기도한다.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지금껏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다. 9권의 에세이집을 내고, 10번째 책 출간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시골 출신이었기에 이처럼 여러 권의 책을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도 동심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말하자면 내 글의 진원지는 고향인 셈이다. 10권은 나름 의미가 있다. 당초 나의 목표이기도 했다. 까마득해 보였는데 여기까지 왔다. 뿌듯함도 느낀다. 고향에 누워계신 부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다. 나 역시 행복하다.


설날 고향 가는 열차 표 끊는 날이다. 6시부터 예매를 시작한다. 형님이 계신 세종에 차례 지내러 가야 하기 때문에 오송역 표를 끊는다. 오늘 못 끊으면 내일 끊어도 된다. 오송은 경부, 호남선이 모두 선다. 경부선은 오늘, 호남선은 내일 예매한다. 아들은 근무라서 함께 못 내려가고 나와 아내만 내려간다. 따라서 왕복 2장씩 끊으면 된다. 설 전날 오후 내려갔다가 차례를 지낸 뒤 점심까지 먹고 올라온다.


예전에 비해 교통편이 참 좋아졌다. 인터넷으로 예매하면 돼 굳이 역까지 안 가도 된다. 옛날에는 대부분 차를 가지고 내려갔다. 대전까지 가는데 대여섯 시간은 보통. KTX가 개통된 뒤로는 대전까지 1시간, 오송까지 50분이면 오케이. 6시 되자마자 접속해야 원하는 시간대를 끊을 수 있다. 표 끊는 것도 재미다. 스릴이 있다. 더러 허탕칠 때도 있긴 하다.





옛날에는 시골 출신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경야독(晝耕夜讀)도 그런 데서 연유했다. 낮에는 논밭을 갈고, 밤에 등잔불 밑 에서 공부를 해 꿈을 이뤘다. 면 단위마다 그런 인물들이 심심찮게 나왔다. 동네 잔치가 벌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도회지, 그 중에서도 부유한 가정 출신들이 빛을 본다. 시대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70~80년 무렵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촌놈이 더 많았다. 숫적으로 우세하다 보니 서울 출신들은 소수로 전락했다. 단과대 학생회장이나 총학생회장도 거의 촌놈 몫이었다. 그래서 차림새는 비록 남루해도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이제는 농촌과 도회지의 개념이 모호해 졌다. 말투만 조금 다를 뿐이다.


회사에 출근했더니 난이 눈에 띄었다. '축하 합니다. 촌놈 아무개'라고 씌어 있었다. 일전에 인사를 나눈 이가 보낸 것. 성실하고 우직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난향과 함께 중첩됐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줄곧 활동해온 토박이 였다. 특히 촌놈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충청도 촌놈 이기에….





누구와의 만남은 즐거운 일이다. 사람은 부단히 사람을 만난다. 혼자서는 살 수 없어서다. 그런만큼 만남에 공을 많이 들인다. 만남을 통해 모든 것이 이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도 그렇고, 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 점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진지해야 한다. 참만남을 위해서다.


40년만에 시골 초등학교 여자 동창생을 만났다. 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대전에 갔다가 해후했다. 전화번호는 알고있던 터라 연락했다. 반가운 음성이 들렸다. 얼굴은 모르지만 몇 차례 통화하면서 대강의 소식은 알고 있었다. 무조건 약속장소를 정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그렇게 설레일 수가 없었다.


조용한 찻집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고즈넉했다. 친구는 먼저 와 있었다. 50대라곤 둘 밖에 보이지 않아 바로 다가갔다. 어색할 줄 았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금세 동심으로 돌아갔다. 고향, 친구 근황 등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언제 또 다시 만날 줄 모른다. 손을 흔들어 주는 친구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충남 보령. 그곳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녔다. 그리고 6학년 올라가면서 대전으로 전학을 갔다. 지금 고향엔 친인척도 없고, 부모님 산소만 있다. 그래도 고향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1년에 2~3번 내려간다. 언제가도 정겹다. 고향을 사랑하는 이유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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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간다. 그간 숨겨두었던 회귀본능을 마음껏 발산하듯 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고향에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지들이 반가운 얼굴로 맞이한다. 남녀노소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명절 역시 양면이 존재한다. 명절 때문에 즐거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명절이 끝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만나서 반가운 얼굴이 있지만, 만나면 괴로운 얼굴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좋은 사람도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치우느라 힘든 사람도 있다. 명절에 대한 마음은 자신의 역할과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 가운데 남자와 여자의 차이도 존재한다.

 

 

 

 

명절을 전후로 여기저기서 명절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원래 명절증후군이란 명절을 전후로 주부들이 느끼는 심리적, 신체적 증상과 징후를 총칭하는 말이다. 즉 피로와 우울, 무력감, 두통과 어지러움, 소화불량 등을 들 수 있다. 명절 내내 '차리고', '치우고', '쓸고', '닦고', '정리하고'의 다섯 가지 '고(苦)'에 시달리니 당연한 일이지 않는가. 이에 더해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눈치,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중요 원인이다. 
 
명절증후군은 본래 주부들에게만 해당하는 용어였으나, 최근에는 남편들도 겪는다고 한다. 장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와 명절 때 본가와 처가에 지출해야 하는 금전적 부담, 또 고부갈등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다.

 

미혼 남녀에게는 명절증후군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특히 취직이나 결혼을 하지 못했을 경우 극에 달한다. 여기에서도 성차가 나타나는데, 남자는 보통 직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취직을 못한 것도 문제지만, 이에 못지않게 또래의 사촌들보다 변변치 못한 직장을 다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 수 있다. 여자들은 직장보다는 결혼 때문에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어른들이야 덕담이라면서 결혼 이야기를 꺼낼지 모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악담으로 다가온다. 결혼만 하면 달갑지 않은 관심이 끝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남편에 대한 내조,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라는 새로운 악담거리가 생겨나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맞벌이인 경우가 많으며, 집안일도 고르게 나눠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명절만 되면 집안일이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예전에는 남자는 무엇보다 일에서 성공해야 하고, 여자는 자신의 일에서 성공하기보다는 좋은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빠 열풍이 불 정도로 남자들에게도 가정과 자녀 양육이 중요해졌고, 여성들 역시 사회에 진출해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그런데도 명절만 되면 남자는 가정이나 결혼에 신경 쓰기보다는 일에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여자는 적정한 때에 잘 나가는 직장을 때려 치고 결혼을 해야 하는 사람처럼 인식되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명절을 이렇게 경험하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는 명절이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른들과 함께 지내기에, 자연스럽게 어른들의 문화에 맞출 수밖에 없다.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 며느리가 부엌에 들어가 돕는 것이 당연시 된다. 집에서는 남편이 부엌일을 도맡아 할지라도 말이다. 처가라고 다를까? 장모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에도 사위가 아닌 딸이 들어간다. 물론 딸을 생각한 장모여서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시겠지만 그렇다고 사위가 대신 들어가서 부엌일을 하지는 않는다. 부엌일뿐이랴?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한 세기 전의 생활방식이 요구된다.

 

 

 

 

명절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지친다. 명절증후군의 증상이 나타나고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이때도 남녀의 차이가 있다.여자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상대방으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바란다. 만약 시어머니로부터 느꼈던 섭섭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대상으로 남편을 선택한다면, 먼저 자신이 원하는 것은 공감과 지지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남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경향이 있을뿐더러, 아내의 이야기를 '앞으로는 시댁에 가지 않겠다'거나 '시집이 싫어서 당신이랑 못살겠다'는 의미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관계를 끊으려는 생각이 아닌 이상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나 불만을 잘 늘어놓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남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거나 무언가를 하면서(운동, 섹스 등) 풀려고 한다. 이는 여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기 때문에, 남자 역시 여자에게 양해와 이해를 구하는 것이 좋겠다. 여자는 관계를 끊거나 상대를 민망하게 만들려고 할 때에만 상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명절이 정말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하려면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어른일수록 그렇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이해와 배려를 요구하기도 어려우니, 명절 이후에라도 남녀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것이 좋겠다.
 
글 / 심리학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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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헝가리의 철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인 게오르그루카치(1885~1971)의 '소설의 이론'이란 책의 서문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특히 여전히 빛을 발하는 첫 문장은 여태껏 많은 문학도의 마음을 흔들었다. 온몸을 부르르 떨게 했다. 지금도 이 글의 마법에 이끌려 문학세계로 빠졌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다. 

 

 

 

 

 

 

옆길로 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루카치의 말처럼, 아니 '별 헤는 밤'의 윤동주의 마음으로 가끔 머리를 들어 밤하늘에서 별을 세어보는 게 어떨까? 계절은 상관하지 말자. 아무 때나, 아무곳에서나, 시간 날 때마다 별들의 고향을 찾아가보자. 그래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노래해보자. 뭔 말인가. 딴말이 아니다. 컴퓨터와 TV, 스마트폰의 번쩍이는 스크린에 매일 혹사당하는 눈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다. 온라인에 항상 접속해 있는 현대인은 정말 자신의 눈을 너무 힘들게 하고 있다. 시력이 나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정도다. 

 

 

 

  

 

 

시각의 쇠퇴 속도를 늦추려면 시각을 단련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 있다. 가까운 곳 뿐 아니라 멀리 있는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안구 속에 있는 모양체라는 근육의 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모양체의 힘이 약해지면, 즉 탄력을 잃으면 급격한 노화로 노안이 될 수 있다. 이를 막는데 효과적인 시각 운동의 하나가 산처럼 멀리 있는 곳의 경치를 바라보는 것이다. 특히 아득히 먼 거리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보는 것은 모양체를 단련하는데 더없이 좋다. 게다가 별을 관찰하며 사색에 잠기다 보면, 마음마저 차분해지면서 정신적, 정서적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 일거양득이 따로 없다.

 

 

 

 

'시각 훈련'이란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저 감탄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별을 찾아봐야 하는 까닭이다. 별빛은 아득한 시간을 가로질러 지구에 도달한다. 이를테면 계절에 관계없이 늘 가장 북쪽에 자리해 오랜 옛날부터 여행자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 북극성은 지구에서 약 400광년 떨어져 있다. 400광년은 400년에 걸쳐 빛이 도달하는 거리를 말한다. 즉 우리가 보는 북극성의 빛은 400년 전의 빛이라는 말이다. 만약 100만 광년의 거리에 있는 별이라면 태고적 원시시대의 빛을 보는 셈이다.

 
글 / 연합뉴스기자 서한기 

<참고서적 : '불편해야 건강하다' (아오키 아키라 지음, 이민아 옮김. 바다출판사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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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가니 반가운 안내장이 기다렸다. 고향 마을 고모님댁 조카가 시집을 가는데, 고향에서 전통혼례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릴 적 코흘리개 때나 보았던 전통혼례를 한다니 너무 반갑고 기대가 됐다. 

  주말에 아이들과 아내 온가족이 고향으로 내달렸다.

 

 

 

한낮, 마당에 차일이 쳐지고, 여기저기서 모여든 구경꾼들과 혼주 친인척 들은 잔칫집 마당에서 분주하게 바지런을 떨었다.

옛날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요즘은 보기 드문 일, 즉 신랑 신부가 한 동네에서 자란 동무라고 했다.

그러니 보내는 이도 서운함도 없어보였다. 노인들은 “잘 키워 멀리 안보내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며 기뻐들 했다.

 

사모관대 신랑과 연지곤지 신부가 나서자, 마당을 채우고도 모자라 축하객들은 까맣게 주변에 진을 치고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전통혼례에서 신랑은 턱시도가 아닌 사모관대를 입고, 신부는 드레스가 아닌 황원삼을 입기 때문에 도시의 예식장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순서로 행해졌다.


처음 하는 결혼식, 엉거주춤 서투른 신랑을 두고 신랑 친구들은 “첨엔 다 그래. 다음엔 잘하겠지.”라며 키득거렸다.

 

처음 술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는 것을 의미하며, 표주박 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의 화합을 의미한다.

성스럽고 기쁜 혼례를 하늘에 고하여 이 뜻을 만천하에 전하여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원하는 고천문 낭독, 그리고 양가부모님과 축하객 여러분들께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이윽고 다산을 기원하며 하늘 높이 장닭과 암탉을 날린다.


새내기 부부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신명나는 풍물소리에 맞춰 힘찬 성혼 행진을 하자 축하객들은 초례상 위에 있던 팥과 쌀을 한줌씩 나누어 쥐고 있다가 성혼 행진을 할 때 신랑과 신부를 향해 “행복하게 잘 살아라” 라는 덕담과 함께 던진다.

 

드디어 신부를 태운 가마가 대문을 나서자 대문을 막아서고 있던 축하객들은 약속처럼 비켜서 길을 열었다.

 

2011년에 치루는 전통혼례를 보노라니 그 옛날 코흘리개 시절에 보았던 전통혼례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옛날 혼인식은 이보다 더 왁자지껄하며 소란했고 인정미, 사람 사는 맛이 넘쳤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의 이야기꽃과 신랑신부 친구들의 흥분어린 웅성댐,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의 수선거림이 정겨웠다.

 

잠시 옛 추억을 떠올려 보는 사이 벌써 어디선가 “가마 앞을 막으면 징 맞고 동티 나 오래 못산다”고 외치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이미 몇 십 년 전에도 들었던 말 이었다.
젊은 교꾼들은 “목이 말라 못가겠다”는 너스레로 술을 청하며 잔칫날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이제는 정말 보기 힘든 전통혼례를 뒤로 하고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고향은 지금 그저 순수하게 시끄러웠던 흥분되고 북적거렸던 맛이 없어졌고,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모두 다 도시로 나가서 없기 때문이다.
얼굴 들이밀기도 부담스러운 요즘 결혼식장 보다는 차라리 도떼기시장 같은 옛날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들어서 못내 아쉽고 서운하기만 하다.

고향의 전통 혼례를 이제 언제 또 볼 수나 있으려나?

 

 

윤현숙(서울시 동대문구 전농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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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이것저것 꼼꼼히 적은 메모지를 가지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서 시골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 댁을 갔다.
차를 넓은 마당으로 들이
밀어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문을 열고 나오셨다.
오는 자식 기다리시느라 문밖을 내다보기를 수차례 하신 것이
눈에 선하다.

 

짐을 내려서 일부는 냉장고에, 그리고 냉동냉장이 필요 없는 것들은 그냥 바깥에 정리하였다. 시골에 가면 내가 제일 먼저 돌아보는 코스인 넓은 뒤뜰에 가보니, 수년전에 뒤뜰에 심어놓은 산다래 나무에 생수병과 작은 비닐 주머니들이 과일처럼 달려있다. 벌써 꽃도 피지 않는 다래나무의 열매가 달릴 리도 없고, 또한 열매의 크기, 색깔, 모양을 내가 이미 알고 있고, 또한 다래나무의 열매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지금 다래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 열매가 아니라는 것은 알수가 있을 정도로 이상한 풍경이었다.

“어머니 다래나무에 달아 놓은 게 뭐예요, 왜 달아 놓으신 거죠?”고 내가 물으니,

“응, 산다래나무의 수액이 몸에 그리 좋단다”하시

자식들에게 나눠서 먹게 하려고 그렇게 나무에 요란한 치장(생수병 큰것, 작은것, 비닐팩 여러개 등)을 하셨단다. 고로쇠 나무의 수액은 몸에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알려졌는데, 산다래나무의 수액을 마신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며칠째 모으셨는지 큰 프라스틱 페트병으로 2병과 작은 페트병 2병이 담겨져 있고, 산다래나무에 달려있는 생수병과 비닐팩에는 링거에서 떨어지는 방울 같은 작은 물방울이 느리게 떨어지고 있었다.

당신이 드실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수액을 받을 시도도 하지 않으셨을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순간 가슴이 먹먹하게 되어 하마터면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일 뻔 했다.

전기밥솥에 밥을 짓고 야채를 깨끗이 씻고 돼지목살을 굽고 하여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내 나이도 40대 후반. 돈 벌기 위하여 일하느라 살기 바쁘고 자식 키우고 하다보면 부모님이 기억날까 하는데...대한민국의 아버지가
되어보면 어머니가 더욱 그리운 심정이 된다는 것을 나는 산 경험으로 안다. 주말을 아내와 아이들과 놀면서 보내는 것도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지만, 어머니 댁을 방문하여 이야기 하고 식사하고 즐거운시간을 보내다 돌아오면 그 가슴 벅찬 행복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밤중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님 집에 들러 산다래나무수액이 든 병을 전하였다. 부모님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자식에게
사랑을 더 주지 못하여 안타깝고 자식은 끝까지 부모한테서 사랑을 받기만 하는 생각이 든다 .

 어머니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머물러 주세요.

 


권용원 / 경북 안동시 정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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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면 나는 고향으로 피서를 간다.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 고향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산골마을이다.

 

현대문명의 때가 거의 묻지 않은 자연의 원초적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 소음과 매연,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쳐 있는 도심에서 벗어나 시골, 고향에서 보내는 휴가는 언제나 설레고, 단걸음으로 달려가게 된다.


고향에는 연로하신 부모님이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땅을 일구고 계신다. 도회지로 나간자식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신 부모님은 이른 아침부터 마을 어귀에 나와서 학수고대하며 기대한다. 만나게 되면 이산가족을 상봉한 것 같이 부둥켜안고 감격하신다.


 

“잘 왔다. 많이 보고 싶었다.”


 

“직장생활은 힘들지 않느냐?”시며 따뜻하게 반겨 주시면 진한 부모의 정을 느끼게 된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며 불효의 마음을 전해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효자식의 죄스러움이 자리하고 있다.

 

어머니는 힘들게 농사지으신 것 중 제일 좋은 것을 쪄서 한 소쿠리 가득 담아 내 오신다. 옆에서 자식이 먹기 좋게 감자 껍질을 벗겨 주시는 어머니의 손은 힘든 농사일에 찢어지고 갈라져 상처투성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 손이 많이 거칠어지셨네요. 아프시지요.”

 

“아니다. 신경쓰지 마라. 아무렇지도 않다.”자식이 마음 아파할까 봐서 얼른 등 뒤로 손을 감추신다.

 

깊고도 넓은 모성애다. 자식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려고 몰래몰래 눈물 훔치시던 지난날의 그 깊은 뜻을 어모른다 하리오. 어머니의 모성애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같을 것이다.

 

부모님은 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를 원하지만 자식이 어찌 여름휴가를 맞아 고향에 와서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내고 부모님의 오랜 체취와 수많은 땀방울이 스며있는 삶의 터전 논밭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선걸음에 논밭을 둘러보니 부모님이 많은 노력을 들여 가꾼 작물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논에는 모내기 한 벼들이 제법 성장해서 푸르름을 더하며 풍년 가을을 약속하고 있다. 논두렁에 심어놓은 콩들도 잘 자라잎이 무성하고 논의 벼들과 잘 조화되어 초록의 들판이 더 싱그럽고 넉넉하다.

 

구석구석 잡초를 뽑고 퇴비를 주고 북을 돋우고 나면 한증막에 온 것 같이 땀이 비 오듯 쏟아지지만 집에 와서 우물가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시원한 등목을 하고 나면 피로가 싹 풀리고 그렇게 기분이 상쾌할 수가 없다.

열심히 일하고 나서
부모님이 직접 재배해서
수확한 쌀과 콩을 넣어 지은 밥을 된장찌개와 찐 호박잎으로 쌈을 싸먹으면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꿀맛이다.


 

소란스럽고 한증막 같은 도심을 떠나 휴가기간 며칠이나마 고향을 찾아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일도 거들고, 매미소리, 풀벌레소리, 흙 내음, 풀 내음에 흠뻑 젖어 있노라면 삼복더위는 딴 세상 일로 여겨지고 팍팍한 도시의 일상에서 쌓였던 심신의 피로도 눈 녹듯이 풀린다.

 

휴가를 마치고 도회지 집으로 올 때는 부모님께서 농사지으신 쌀이며 콩, 고추, 옥수수,감자, 오이, 가지, 상추 등을 바리바리 싸주신다. 한없는 부모님의 자식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쯤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명 해수욕장에서의 휴가에 대한 동경은 사라지고 고향에서 농사일을 도우고 자연과 호흡하면서 보내는 것보다 더 좋은 휴가가 어디 있을까 스스로 감탄한다.

 

고향 산골마을의 깊은 맛과 멋을 잊을 수 없기에 고향에서 보내는 휴가는 언제나 생산적이고 낭만적이고 더없이 시원해서 좋다.

 

또 고향에는 조상의 숨결을 느낄수 있고, 넉넉한 인심이 있어 포근하기만 하다. 고향의 자연과 함께 하며 무더위를 식히는 일은 어떤 곳에서 보내는 피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여름 피서의 진미가 아닐까 싶다.

 

                                                                                                                                 송재하 / 대구시 수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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