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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30 [금요특집] 한국의 슈바이처들....제20부 김동선(카자흐스탄) (1)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카자흐스탄의 허준  김동선

  알마티의 하늘 아래

 

 

 

 







 

 

 

 그에게 슬픈 역사가 담긴 어느 고려인 동포의 아픔이 찾아옵니다.

바쁜 일정으로 눈코 뜰 새 없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국대사관의 영사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한 환자를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싹 마른 노인이었습니다. 처음 본 순간, 김동선은 그를 꼭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석도인.
경남 합천군 용주면 버드실마을이 고향이었습니다.


일제강점하, 막 결혼한 그의 형에게 징병통지서가 날아들었고, 집은 한마디로 초상집이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형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머나먼 전장 사할린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사할린에서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카자흐스탄까지 떠돌았습니다.

 

그는 고향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한국에서 온 청년 한의사 김동선의 옷자락에 매달렸습니다.

 

“내 고향에 좀 데려다 달라."

 

여느 동포와 다른 정확한 발음이었습니다. 한시도 고향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동선은 결심하였습니다.

 

바쁜 한국 출장길이었지만, 합천군 용주면 사무소 호적계를 찾았고, 수소문 끝에 마침내 그의 조카를 찾아냈습니다.

부산에서 온 그의 조카는 아버지 대신 사할린으로 떠난 작은아버지를 가물가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온 김동선은 이 사실을 알렸고, 조카들의 사진도 보여주고, 통화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후로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는 매일 김동선을 찾아와 아이처럼 졸랐습니다.

결국 한국의 조카들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카와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 울먹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향에 가고 싶은데, 안되냐…….”

거기에 물러 설 김동선이 아니었습니다.
합천군수에게 간곡한 편지를 썼습니다.

비행기표는 내가 부담할 터이니 고향에서 그가 체류하는 동안 보살펴 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2월에 편지를 썼는데 3월이 가고 4월이 다 지나가도 합천군에서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 날은 5월 5일이었습니다.
우연히 한국대사관에 들렀더니, 어느 직원이 합천군수로부터 온 행정우편을 김동선에게 전하였습니다.

급히 뜯어보았습니다. 언제라도 환영이니, 담당자와 상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1997년 3월 합천군에서 발송된 편지였는데, 외교행낭 속에 묻혀 있다가 그제야 빛을 본 것입니다.

 

김동선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하였습니다.

급히 그의 집으로 달려가 보니 러시아인 부인에게서 낳은 14살 아들이 아버지 주검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김동선은 장례식만이라도 한국식으로 치러 드리고 싶었습니다.

관에 빨간 천을 씌우고 붓이 없으니 굵은 매직으로 명정을 썼습니다.


‘대한민국 석도인지구’


그날은 5월인데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진눈깨비가 하염없이 날렸습니다.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 의사들과 함께(맨 오른쪽 김동선)

 

 

김동선은 1964년에 태어나, 1989년 대구한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광산 김씨 종택인 쌍벽당이 그가 자란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보수적이었지만, 그는 외국을 동경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개방적인 성격이었습니다.

 특히 역사학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년이었습니다.

 

 

대학시절에 대구 비산동에서 주말의료봉사를 했습니다.

봉사라기보다 모순을 개혁하고 싶다는 갈망이었고, 올 곧은 선비정신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여 부도 많이 쌓았습니다.

 

 

1994년 여름. 한국에서는 약사법분쟁이 가열되었습니다.그의 고민은 더 심해졌고, 출구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부파견한의사를 모집한다는 신문 공고를 보는 순간, 운명적으로 ‘내 길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교사로 근무하던 아내에게 그 뜻을 이야기하자 아내는 ‘3일의 시간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3일 후, ‘당신이 원한다면 하자.’고 대답하였습니다.

 

1995년 출국 준비를 분주하게 서두르고 있었는데, 건강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지만, 장례를 마치고 예정대로 카자흐스탄(Kazakhstan) 알마티 국립아카데미학술원병원에 부임하였습니다.  1999년까지 알마티 제5시립병원에서 이전 근무하다가 2000년 귀국하였습니다.

 

유목민의 후손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의 인구는 약 150만 명 정도이며 이중 동포는 2만 명가량입니다.

1993년과 1994년에 한의사들이 알마티를 방문해 무료진료봉사활동을 펼쳤고, 동포 등 현지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카자흐스탄정부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의사를 파견해 주도록 요청했으며, 그동안 인도적인 차원에서 의사들을 해외에 파견해 온 KOICA가 그 요청을 받아들여 한의사 김동선이 파견되었던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하며, 카스피해에서 몽골 접경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입니다. 1991년 구소련의 해체로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약 120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로 종교는 이슬람교와 러시아정교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정국 불안으로 치안이 취약하여 외국인에 대한 신변안전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고, 특히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는 한국인에 대한 테러가 빈번하였습니다. 생계형 범죄로 의사뿐만 아니라 의사가족들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도둑이 들어 비싼 의료기구들을 가져가는 바람에 진료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가족들과 입주한 집은 대학기숙사로 부엌은 밖에 있었습니다. 든 것이 한국과 달랐습니다.

 

아내가 우유를 사러 다녔지만 구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들이 손으로 주물럭주물럭 짜서 널브러진 그릇에다 파는 생우유를 사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뭉텅이 고기를 사다가 뼈를 발라 얼렸다가 썰어서 삼겹살을 구우며 가족의 건강을 챙겼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립다고 하는 현모양처입니다.


그는 진료에 정진하였습니다.

 

임상 경험은 짧지만 의술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아직 젊은 만큼 봉사정신을 발휘하여 한의학을 카자흐스탄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처음으로 파견된 정부파견의사로서 자부심과 성실함을 한시도 잃지 않았습니다.

 

진료실의 난방이 원활하지 못하여 겨울철 환자 치료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 분기 심장질환, 요통질환, 각종 관절계질환, 부인과질환 등 2,2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였습니다.

현지 환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시술했던 금연침에 대한 효과가 입소문을 타게 되어 이에 대한 요청이 급증하여 하루 5~6명 정도의 금연침 시술을 하였습니다. 구스따나이, 끄즐오르다, 우스토페, 아띠라우, 우스찌까메노고로스 등지로 년 3~4회 순회 진료를 하였습니다.

 

 

당시 식량이 부족하여 굶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먹는 네모난 빵을 많이 사 놓고 치료를 받고서 하나씩 가져가도록 하였는데, 빵 때문에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도 많았습니다.

 

카자흐스탄인과 터키인 그리고 강제 이주된 고려인에 이르기까지 100여 민족으로 구성된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인접했기 때문인지 침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으나 말이 잘 안 통해 진료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색을 보고 진맥과 청진기 등을 통해 환자를 진단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았는데, 유능한 고려인 간호사 김옥남의 도움으로 해결했습니다.

 

한약재 등 필요한 약재는 한국에서 왔으며, 기본적인 진료장비와 함께 KOICA에서 소규모 프로젝트 지원비로 연간 만 달러를 지원해주었습니다.그밖에 대구한의대와 대구시한의사회 그리고 대한한의사협회에서도 지원해줘 진료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몰려드는 환자들을 다 돌보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알마티 제5병원에서는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한방을 특강하였고, 보건성 및 정부 관계자들의 환자진료에 관한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한의학》이라는 서적을 영어로 옮기고 러시아어로 편역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그는 1996년 1월 폐결핵을 진단받습니다. 

 

그곳에서 겨울에 할 수 있는 운동은 스키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스키장에 가보지 않았는데, 스키를 배워 겨울철 건강유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스키장에서 심하게 넘어졌는데, 왼쪽 가슴이 아파 며칠 후 엑스레이를 촬영하였습니다. 결과는 반대쪽인 오른쪽 폐에 결핵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루에 120~13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무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으로 후송되어 여러 가지 검사를 실시하였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3개월 정도 휴식하라고 권고 받았지만, 석달치 약을 챙겨가지고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주일 정도 쉬었지만, 밀려드는 환자를 보고 자신의 건강을 챙길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른쪽 가슴에 맺혀있던 망울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주위의 강력한 권유로 결핵요양원으로 가야만 하였습니다.

알프스처럼 풍광 좋은 바라보예 옥제트페스요양원에서 하루 종일 아무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환자들과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들과 정을 나누며 ‘세상은 참 묘한 것이다. 내가 이런 곳에서 이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이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는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인정의 나눔과 생명의 섬김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습니다.  뜨거운 감동이 번졌습니다. 한의사로서의 사명감도 느꼈습니다.

한 달 보름간의 요양이 끝나고 결핵도 완치되었습니다.

 

 

 

그의 성실하면서 정확한 의술은 소문에 소문을 탔습니다.

1997년 8월 12일 어느 중앙 일간지에 실린 그의 기사내용을 간추려 봅니다.

  부와 명예를 버리고 인술 3년째인 카자흐스탄 한의사 김동선씨.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에 사는 미하일로바 지나이다 할머니는 요즘 기분이 아주 좋다. 수년 동안 시달리던 원인모를 두통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온갖 병원을 다 돌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원에선 간단한 진료만 하고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몇 달 전 이웃 사람이 한국에서 온 의사가 용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의사가 있다는 국립과학원 부설병원을 찾았다.

  말도 없이 손목을 잡고 뭔가를 생각하던 의사는 몸 이곳저곳에 가는 바늘을 꽂기만 했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기를 며칠, 이제 두통은 잊고 지낸다


  한국국제협력단의 해외파견 의료단원으로 지난 1995년 1월 이곳에 온 한의사 김동선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처음 진료를 시작할때 그를 찾는 환자는 하루 10여 명 정도에 불과했다.

  고국에서의 정신없던 하루를 생각하면 왜 이역만리 먼 이곳까지 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가 감쪽같이 병을 고쳐내는 명의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갈수록 환자들이 늘어나 올해 초에는 하루 130여 명의 환자를 돌보기도 했다.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최근 들어서야 진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환자수를 하루 30여 명으로 제한해 그런대로 환자를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정부파견한의사 임무가 끝난 지도 어언 10년이 넘어갑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독또르 김’이라 불리던, 그는 언제나 KOICA의 존재에 대하여 뜨거운 갈채를 보냅니다.
만약 정부파견한의사제도가 계속 시행된다면, 그는 언제라도 다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동아일보(1995.2.2일자) 한의사 김동선 관련 기사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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