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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7 수애의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 (5)

 

   배우 수애의 이미지는 단아한 쪽에 가깝다. 결곡한 느낌을 풍기는 얼굴 때문일 것이다. 이병헌과 공연한 영화 ‘그 해 여름’

 은 그 이미지를 잘 살린 대표적 작품이다.
  하지만 그녀는 12년째인 연기 생활 동안 단아함과 거리가 먼 역할도 많이 했다.  특히 지난  해에 개봉한 영화 ‘심야의 FM' 에서는 격정적인 캐릭터를,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는 냉혹한 킬러를  연기했다.   

 

 

 

  기자로서 수애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때 뜻밖에도 그녀가 감정의 진폭이 큰 배우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영화를 잘 봤다는 말에 크게 기뻐하고, 자신의 학력에 대한 언급에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의 말에서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만큼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가 정치인이나 기업인이라면 짧은 시간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속마음을 표정과 대화로 드러낸 것이 아마추어적으로 비쳤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보통 사람의 희로애락을 극중에 담아내는 배우다. 그래서인지 표정 변화가 큰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일의 약속' 그리고 알츠하이머

 

  SBS가 방영 중인 월화 드라마 ‘천일의 약속’은 아직 초반이지만 여주인공 서연 역을 맡은 수애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다감하게 굴면서도 때론 냉정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육감적이고, 또한 감성적이면서도 지성이 번뜩이는 중층의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

 

 

  극중 서연은 어렸을 때 엄마에게 버림받고 남동생 문권(박유환)과 함께 고모집에서 자란 여성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대필 작가로 돈을 벌며 출판사에 다닌다. 

 

  건축가인 지형(김래원)과 사랑을 나눴지만, 돈 많고 가문 좋은 지형의 집안에서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미련 없이 이별을 선택했다.

  서연은 이별 과정에서 겉으로 담담한 듯 하면서도 속으로 피눈물을 흘린다.

 

 수애는 그런  서연의 모습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지형과 사랑을 나눴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기도 하고, 젊은 여성 특유의 사랑스러운 애교를 선사하기도 했다.

 

 

 

 서연이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혼란에 빠진 3,4회 방송에서 수애는 더욱 폭넓은 표현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의사는 서연에게 “한 번 사라진 기억은 다시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최근부터 지워지기 시작해 어느 순간 다 지워져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연은 그 말을 듣고 절망에 빠졌으나 이내 병에 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메모를 시작하고 사물의 이름들을 되뇌며 “괜찮다, 괜찮다” 며 스스로를 격려한다.  

 

 서연이 욕실에서 세수를 한 뒤 주변 물건의 명칭을 외우는 장면은 가슴이 저릿하다. 

 "칫솔, 치약, 물컵, 비누, 스킨, 로션, 립글로스."  양치질을 시작하면서는 "이서연, 서른살 . 도서출판 스페이스 제1팀장. 2005년 문화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 작가"라고 자신의 프로필을 되새긴다.

 

 

 

 서연은 그렇게 되뇌다가 문득 칫솔을 빨리 움직이며 일그러진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
 
  수애의 단아함을 사랑하는 시청자라면 육두문자를 내뱉는 모습에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나이 서른에 알츠하이머라니, 가혹한 운명에게 엿을 쳐드시라고 발길질을 하고픈 마음이 누군들 들지 않겠는가. 

 

  극중 서연의 동생 문권이 누나가 알츠하이머 형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오열하며 내뱉는 말이 너무나 공감이 간다.

  “이게 뭐야? 누나, 이게 뭐야? 우리는 이렇게까지 재수가 없어야 해요? 참 더럽게 재수가 없어요.”

 

   서연을 너무나 아끼는 사촌 오빠 재민(이상우)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치매는 노인 질환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재민의 말처럼 알츠하이머 형 치매는 대개 노인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러나 드물게 젊은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경우가 있으며, 드라마 속의 의사가 언급한 것처럼 희귀하게는 어린아이에게도 나타난다. 

 치매는 뇌 기능 장애로 지적 능력을 상실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치명적 질환이다. 
 건망증과 치매 모두에서 기억감퇴 증상이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건망증은 식사를 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만 무엇을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등의 상세한 내용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치매는 식사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드라마 속 서연이 회사의 커피 머신에 물만 부어놓고 커피 넣는 것을 잊어버린 것을 나중에 알고는 “건망증에 불과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그 차이를 알기 때문이다. 요즘엔 진단 기술이 발달해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단순 건망증인지, 치매인지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질환이 알츠하이머병이다. 
 많은 사람들이 치매와 알츠하이머를 동일시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907년 이 병을 처음 발견한 독일 의사의 이름을 딴 알츠하이머는 단백질 덩어리가 뇌에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병이 진행된다. 일단 발병하면 현재 의학수준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무서운 질환이다.  하지만 꾸준히 약물 치료 등을 받으면 진행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손예진과 정우성이 나왔던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이재한 감독 2004년 작)도 알츠하이머를 앓게 된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27세의 수진(손예진)은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다가 부딪친 남자 철수(정우성)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건설현장 소장 일을 하며 건축사 시험 준비를 하는 철수는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있어서 여성과의 사랑을 망설인다. 그러나 수진의 적극적인 구애와 활달한 성격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


 

 

  말 그대로 알콩달콩한 신혼재미를 누리던 그들에게 검은악마의 질투처럼 찾아온 것이 바로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이다.   수진은 평소 건망증이 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자신의 집조차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지자 병원에 가서 상담과 진단을 받은 후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진은 이 기막힌 사실을 철수에게 차마 알리지 못한 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상생활을 한다.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 우는 젊은 아내의 모습이라니….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손예진의 풋풋한 얼굴 때문에 애틋한 느낌이 더욱 강렬했던 기억이 난다.  

 

  정우성이 맡은 철수도 순수한 매력을 풍겼다. 그는 수진의 행동이 다소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 채고 병원으로 찾아가 그녀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철수는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어하면서도 수진의 간호에 정성을 다 쏟는다. 

 수진의 부모가 딸을 데려가겠다고 해도 철수는 자신이 끝까지 돌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진은 상태가 나빠져 철수와의 일을 모두 잊어버린다.  

 

  그녀는 과거의 기억들만 조금 남은 탓에 옛 애인이었던 직장 상사 영민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임으로써 철수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그래도 철수는 수진을 더욱 극진하게 돌본다.  수진은 잠시 기억이 되돌아왔을 때, 철수에게 미안함과 사랑을 절절히 담은 편지를 써 놓고 바닷가의 요양원으로 떠나간다.

 

 

  드라마 ‘천일의 약속’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얼개가 비슷하다.   방송극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김수현 작가는 ‘유사한 이야기’라는 비판이 나올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왜 알츠하이머 소재를 들고 나왔을까.  

 

  그것은 비슷한 소재로도 독창성 있는 극을 꾸며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기억을 뺏어가는 가혹한 운명이야말로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어 줄 요건이어서 일 것이다. 

 

  김 작가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서연으로 하여금 “엿 먹어라, 알츠하이머!"라고 외치게 만들었다.  

  이 질환에 걸린 이들의 마음을 절박하게 표현한 대사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알츠하이머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는 질환이지만, 약물 치료와 운동 요법 등을 통해 악화하는 속도

 를 늦출 수가 있다. 이 질환에 걸리면 무엇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100% 예방법은 없으나, 발병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수칙은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전문가들은 “두뇌, 신체, 사회 활동을 ‘늘리고’ 체중, 혈압, 혈당은 ‘낮추고’, 술, 담배를 ‘멈추는’

 것이 알츠하이머 예방의 지름길”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여느 질병처럼 운동량을 늘리고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악기 연주, 낱말 게임 등을 즐겨서 두뇌를 다양하게 훈련시키는 것도 좋다.  사람을 적극적으로 사귀며 각종 모임 등에 활발

 하게 참여하는 것도 알츠하이머 예방에 도움이 된다.

  

 

장재선 /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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