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미래에는 행복해지리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그러나 지금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변을 맴도는 행복을 끌어안지 않았을 뿐 돌아보면 지금도 충분히 행복할

    이유가 가득하다.

 

 

         

    

 

 

 

 "당신은 왜 살아가죠?"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대부분은 “행복하기 위해서요.”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행복’이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미래에는 행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기에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삶에 어떤 행복도 느끼지 못하고 미래마저도 행복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다지도 행복에 집착하는 걸까?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곧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물을 찾듯이, 새들이 하늘을 날듯이, 사람은 저 깊은 속마음에서부터 행복을 추구한다. 그냥 그렇게 설계되었다. 어쩌면 태초에 조물주가 입력한 가장 중요한 유전자 암호가 곧 ‘행복실현의 욕구’가 아닐까?

 

실제로 행복하면 그만이다. 비록 높은 지위와 화려한 명예, 충분한 재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히려 행복한 사람 앞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행복감은 삶의 완성품! 누구라도 행복한 사람을 가장 부러워한다. 행복이야말로 삶의 참된 의미요, 절대가치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사실 이 질문은 매우 짓궂기 그지없다. 굉장한 실례다. 그저 친한 친구들에게나 할 수 있는 농담이다. 그런 실례를 무릅쓰고 필자가 이 질문을 던져 보니 선뜻 “맞소. 나는 행복하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보다 대답을 주저하거나 “글쎄요.”라는 대답이 훨씬 많았다. 어찌해서 우리는 ‘왜 사느냐?’는 질문에는 ‘행복하기 위함’이라고 쉽게 말하면서도 막상 ‘행복한가?’라는 질문에는 왜 확연히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미안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불행한 일이 적지 않다. 이 지구에는 전 세계 인구 73여억 명이 먹을 수 있는 두 배의 식량이 생산되지만, 아직도 인류의 1/6은 절대빈곤자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각종 질병과 사건, 사고, 전쟁이 늘 끊이지 않는다. 내가 그런 아픔의 당사자일 수 있고, 설령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내 이웃이 이와 같을진대 어떻게 내가 선뜻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나는 곧 철없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누구라도 위 질문에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드는 위 질문은 곧 매우 큰 결례를 범하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푸른 하늘을 보고 “하늘색이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누구라도 행복하고 나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행복을 굳이 말로써 드러낼 필요가 없다. 지극히 당연한 행복을 물어서 무엇하고, 내세울 건 또 무엇이겠는가.

 

그렇지만 내 행복을 꼭꼭 숨기거나 포기할 이유도 없다.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은 나만의 사정이 아니며, 우리 모두의 공통 관심사이며 보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하다는 표현을 삼갈 수 있지만, 행복감만큼은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행복을 끌어안아야 행복하다

 

어느 날엔가 나는 50대의 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몹시 불행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든요.”

“혹시 지금 부인은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떠난 사람에게 미안해서 행복을 멀리하려는 마음이 아닐까요?”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할 수 있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본래 행복하지만, ‘행복을 끌어안느냐, 떨쳐내느냐’의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해서 곧잘 내 행복을 떨쳐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위대한 우리네 삶은 반드시 내 고집을 꺾고 나를 행복의 물결에 동참시킨다.

 

필자 역시 십여 년 전 사랑하는 혈연을 잃었다. 나는 행복할 수 없었다. 아니 행복하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사는 동안 외로움에 몸부림쳤고 아픔만 겪다가 하늘나라로 가 버린 혈육이지 않았던가. 더욱이 그 책임이 내게 있다는 생각에 나는 내 행복을 철저히 배격하고 거부했다. 나는 내 마음 둘레에 두꺼운 옹벽을 쌓고 행복의 요소들을 모두 차단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행복은 불과 수개월도 안 되어 내 마음 옹벽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소리 없이 파고드는 행복의 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토록 불행해지려고 굳게 다짐했지만, 행복의 에너지는 치밀하고 조용했고 거대했다. 나는 행복의 물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내 방어는 무력했고 내 저항은 초토화되었다. 완패! 나는 행복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게 행복이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음을. 내 행복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일련의 사건들 역시 행복 덩어리일 수 있다. 행복하기에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불행하다는 것은 착각일뿐

 

마음병을 앓고 있는 29살의 한 청년이 말했다.

 

“집에 있는데 자꾸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받게 해요. 특히 먹을 것 가지고 그러세요. 배가 불러서 더부룩하고 속이 울렁거리는데도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하시거든요. 왜 이토록 사소한 일로 제 삶이 불행해져야 하는 거죠?”

 

그는 불행한 게 아니었다. 불행의 이유를 붙인 것에 불과했다. 울고 싶을 때 누군가 뺨을 때려 주면 고맙지 않은가. 그는 스스로 뺨을 때릴 수 없었고 핑곗거리를 찾아내었다. 누구라도 불행하고 싶을 때, 이런저런 핑계를 댈 만한 일들이 보이면 얼른 그것을 부여잡는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아직 어머님께서 젊으셔서 체력이 좋으시고, 치매도 없으시고 건강하게 살아계시잖아요. 지금의 이런 상황이 곧 행복 아닌가요?”

 

불행감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내가 행복을 멀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그는 단지 불행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혔을 뿐,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의 불행은 결국 행복에 겨운 소리였다. 그는 불행을 가장하여 행복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른 데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는 타인에게 뺨을 맞을 수도 있다.

 

 

  

마음을 비우면 행복이 온다

 

행복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상대가 불행하다고 주장할 때, 그의 말에 속아줄망정 결코 속지 않는다. 만일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사기와 절도, 폭력, 그리고 그 이상의 범죄일 뿐이다. 설사 누군가가 언어폭력을 휘두를지라도 내가 듣지 않거나, 흘려들으면 그만이다. 더욱이 가까운 사람들의 잔소리라면 ‘자장가로 들리는 사랑의 노래’가 아닐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행복의 요소가 없는 게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기대치가 높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마음병이다. 마음병은 마음의 센서를 고치면 된다. 그 방법이 곧 자기수양이다. 성현들의 가르침에 힘입어 자기를 수양하면 바로 해결된다.

 

현실보다 더 많이 바라는 생각이 곧 기대치가 높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에서 ‘마음을 비우면 도와 합한다(虛心合道)’라고 하였다. 자기만족의 기대치를 내리는 게 곧 ‘마음 비우기’다. 분수를 잊은 채 남처럼 되려는 마음,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모습만을 좇는 마음이 문제다. 도(道)란 곧 지극한 행복! 마음을 비우면 본래부터 있었던 지극한 행복감이 즉시 회복된다.

 

 

  

마음껏 행복해도 괜찮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행복을 누리기 위한 투쟁으로도 규정해 볼 수 있다. 선을 추구하는 철학, 사랑과 자비를 실현시킨 종교, 민주화에 대한 열정, 그 모두가 후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선각자들의 치열한 노력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들의 뜻을 따라 행복을 누려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선각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내가 먼저 행복하고 그 행복한 에너지를 발판 삼아 다시금 다음 세대가 행복할 수 있도록 더 아름다운 자연을 남겨 주고, 기부문화에 솔선수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내가 지금의 행복을 거부하고, 또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고, 다시금 그 후대의 누구도 나처럼 따라 한다면 도대체 누가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지금 마땅히 행복해야 하며, 기대치를 내려서 마음껏 행복해도 괜찮다.

 

글 / 황웅근 인의예지 심성계발원 대표

출처 / 사보 '건강보험 2월호'

 

   

 

로그인 없이 가능한 손가락 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상만사가 자신의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 자신의 예측과 계획대로, 생각과

        의도와 바람과 준비한 대로 되지 않고 실패할 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와 반대도

        마찬가지다. 준비와 노력은 예전과 별 다르지 않았는데, 특별한 성공을 거두었을 때에도 이런 질문을 던진다.

 

 

                  

 

 

 

 

성공을 위해 달음박질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을 원한다. 운동선수는 경기에서 승리하기를 원하고, 학생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원한다. 사업가는 큰돈 벌기를 원하고, 직장인은 상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다.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한다. 실력을 갈고 닦는다.

 

이런 준비와 노력 이면에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면 된다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예측과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 원인을 찾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을 논리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순간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일례로 평소 입지 않던 빨간 속옷을 입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면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빨간 속옷과 연관시킨다. 신발이나 넥타이를 비롯 장신구도 가능하다. 머리를 안 감거나 세면이나 면도를 안했거나 손톱을 깎지 않는 것도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를 가리켜 징크스(jinx)라고 한다. 사람들이 징크스를 갖는 이유는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상을 예측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다.

 

 

 

징크스가 작동하는 법

  

만약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극심한 무력감(helplessness)을 겪게 된다. 무력감이란 우울과 불안의 원인이 되는 심각한 심리상태다. 이런 면에서 자신에게 벌어진 성공과 실패의 진짜 원인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징크스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 이런 느낌은(비록 착각이긴 하지만) 실제로 자신감과 진취적인 자세로 이어져서 좋은 결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것이 징크스가 좋은 결과를 일으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징크스 자체는 우연일 뿐이다. 빨간 속옷이 어떤 마력을 발휘해서 운동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고, 감지 않은 머리에서 비상한 능력이 나와서 좋은 성적을 거둘 리도 없다. 성공을 원하고 실패를 막고자 한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외면하고 계속 징크스에만 매달리면 그저 빨간 속옷을 입은 패자, 냄새나는 머리와 긴 손톱을 드러나는 낙방생이 될 뿐이다.

 

 

 

정신건강의 척도, 인정하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정신건강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인정하라’고 말한다. 첫 번째로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후회 없을 정도로 도전하고 노력한 후에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한국축구의 레전드가 된 이영표 선수는 은퇴를 앞두고 안내로부터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 이영표의 대답은 ‘결코 아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한 사람만 할 수 있는 대답이다. 비록 스포츠 갑부가 되지도 않았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지만 그는 최선을 노력을 다했기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인정해야 할 것은 세상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즉 세상만사가 인간의 노력과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나라의 유명한 작품인 ≪요재지이(聊齋志異)≫에는 한 선비의 이야기가 나온다. 뛰어난 실력이 있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아 계속 과거에 낙방하자, 참다못한 아내는 아이들과 가출을 했다. 선비는 너무 억울하여 옥황상제에게 따졌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세상은 정의대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운명의 장난이라는 것이 꼭 따르는 법이다. 세상이 7할의 불합리가 지배하고 있긴 하나 3할의 이치가 행해지고 있음도 또한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비록 운(7할)이 노력(3할)보다 크다고는 하지만, 운이 찾아와도 자신의 노력이 없다면 결코 10할을 얻지는 못하게 된다. 징크스만 바라보다가 실패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징크스를 넘어서 자신과 세상의 한계를 인정하고 후회없는 삶을 행복하게 살지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글 / 칼럼니스트 강현식

   

 

로그인 없이 가능한 손가락 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자존감은 양날의 칼과 같다. 자신이 정한 기준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지나, 계속 실패를

      거듭할 경우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실패의 이유를 노력의 부족에서 찾지만, 무조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꼭 성취와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사람들에게 높은 자존감은 그림의 떡과 같다. 방법이 없을까?

 

 

                     

  

 

 

 

자존감, 한계를 만나다

 

어린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이나 사랑과 애정을 표현해 주면 된다. 성인의 경우는 이것으로 부족하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존중받을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걸맞는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해낼 필요가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반복적으로 실패를 하는 사람은 자존감을 높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실패의 경험으로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경우가 많다. 사람의 마음은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번 실패의 악순환에 빠진 사람들은 실패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자신은 실패자라는 생각 때문에 무엇을 해도 자신 있게 하지 못하고, 주어진 과제에 집중해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수록 자존감은 곤두박질친다.

 

 

 

자존감을 뛰어 넘는 자기수용

 

자존감의 이런면 때문에 자기수용을 더 중요하게 보는 심리학자들이 있다. 사실 자존감(self-esteem)의 ‘존중(esteem)’은 사물이나 사람에게 평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추정하다(estimate)’라는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다시 말해 자존감이라는 개념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수반된다.

 

회사에서 승진을 했기 때문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 높아진 자존감은 회사의 합병과정에서 직장을 잃는 순간 낮아진다. 결국 자존감은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조건은 개인마다 시간마다 문화마다 다르다. 여기서는 충족되는 조건도 다른 곳에서는 충족되지 않을 수 있다. 조건은 이렇게 불안정하고 일관되지 못하다. 자존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기수용(self-acceptance)은 다르다. 어떤 조건이나 기준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 외적인 성공이나 성취를 전제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평가를 매길 수 없는 인간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조건에 있든지 자기수용은 일관되고 안정감이 있다.

 

 

 

행복의 지름길

 

현대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평가를 받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으로부터,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평가를 받았다. 단순한 평가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신들이 제시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거부당하고 배척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질책한다. 과거에 받았던 상처, 평가와 비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본래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같지 않다. 각자의 개성이나 특성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비교와 평가가 있을지언정, 적어도 존재 자체가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 때 사람들은 극도의 우울과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심리학자 엘리스(Albert Ellis)는 진정한 행복이 무조건적인 자기수용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목표가 있어야겠고, 나름의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이를 빌미로 자신을 평가하고 질책하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옳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잘못됐고 틀렸다. 사람이 먼저지 목표가 먼저가 아니지 않는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기수용은 꼭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게을러지고 나태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신바람 나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도 있고 이를 위해 더욱 노력할 수 있게 된다. 자 어떤가? 행복의 지름길로 가겠는가?

 

                                                                                                                                    글 / 강현식 심리학 칼럼니스트

 

 

 

 

로그인 없이 가능한 손가락 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도도한 피터팬 2013.07.09 16: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어느 날 퇴근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무겁게 한걸음, 한걸음을 옮겨 집으로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저의 시선은 신호대기 중에 멈추어 있던 한대의 버스로 향했습니다. 이
  버스는 다름 아닌 장애가 있는 학생
들이 타고 있는 스쿨버스였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모두가 중증도의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 외에도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 가득한 미소  " 였습니다. 세상 그어떤 걱정, 근심 없이 해맑게 웃고 있는 그들의 미소에 신호대기의 그 짧은 시간동안 저 역시 가슴 시원한 행복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쿨버스는 지나갔고 그 자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저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무능한 내 자신을 탓하고, 내게 없는 것을 욕심내고 이미 충분히 많은 걸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불평, 불만에 너무나 익숙해졌으며, 일상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지쳐있는 저에게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해맑은 미소는 삶을 다시금 생각하고,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소중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만약 저에게도 장애가 있다면 저들처럼 단 한번이라도 해맑게 웃을 수 있을까? 아마 영원히 웃을 수 있는 미소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어느 날 퇴근길 다시 장애학생들의 버스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라도 말이죠.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 저 또한 일상에 감사하면서 활짝 웃을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얼굴과 마음이 모두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내가 이미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소중한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말입니다.


전정민/ 대구 달서구

 

로그인없이 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신기한별 2011.04.02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국민건강보험공단 2011.04.04 09: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기한 별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긍정적인 마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월요일입니다. 즐거운 한 주의 시작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

  2. 불탄 2011.04.02 2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애, 그리고 희망...
    오늘의 제 자신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다는 걸 느껴봅니다.
    편한 휴일 되시길 바랍니다. ^^

  3. 미스터브랜드 2011.04.03 06: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 모든 일이 본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항상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할 것 같네요.

    • 국민건강보험공단 2011.04.04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든 것을 긍정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마음 한가득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로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미스터브랜드님 즐거운 한 주 되십시오 :)



왜 밀로는 힘이 세졌을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밀로는 세상에서 가장 힘 센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부터 갓 태어난 송아지를 등에 매고 매일 체력훈련을 했다고 한다. 과장이 있겠지만 날마다 송아지를 들어 올리다보니 고대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는 그 송아지가 네 살짜리 황소가 되었는데도 그는 소를 들쳐 매고 경기장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 장사를 누가 대적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그는 여섯 번이나 고대 올림픽 레슬링 챔피언에 올랐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결국 자신에게 조금 부담이 되는 자극에 계속해서 노출하는 것이 실력향상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의 공통점

 

분야가 다르더라도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그 공통점은 타고난 재능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연습에서 관찰된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를 세 가지로 정리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습의 양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 동안 연습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 예로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가들은 20세 이전까지 그 아래 수준의 연주가들보다 2,500시간 많은 10,000시간 이상을 연습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둘째, 연습의 일관성이다. 이들은 매일 4시간 전후를 연습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매일의 훈련이 이들의 실력과 연관된 신경회로망을 보다 강하고 다양하게 연결시켜준 것이다.

셋째, 연습의 짜임새와 계획성이 남달랐다. 즉, 이들은 단순반복의 연습이 아니라 내적 목표를 세우고 난이도를 점점 높여가며 집중과 내적 긴장을 유지시키는 가운데 연습을 계속 해 온 것이다. 즉,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단순한 연습이 아니라‘심층연습’을 거듭해 온 것이다.

  

 

실력향상에 필요한 정신적 태도

 

우리는 누구나 실력이 계속 향상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의 분야에서 달인이 되거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러 방해요인이 많기 때문에 실력을 계속해서 쌓아가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실력향상을 위해서는 어떤 마음과 태도가 필요할까?

 

첫째, 실력은 직선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향상된다는 점을 각인하라.

즉, 노력을 하면 하는 만큼 혹은 바로 실력향상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상당수가 ‘내가 노력한 것은 당장 실력향상으로 이어져야해!’ 와 같은 초조하고 경직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눈앞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좌절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에서 실력향상의 과정이란 계단식이라 할 수 있다.

 

노력이 실력향상으로 나타나는 가시적 성과의 시기가 짧게 나타나고, 노력을 해도당장은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잠재적 성과의 긴 시기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둘째, 매일 일정한 시간동안 하라.

 글을 쓰는 것이든, 칼을 쓰는 것이든 매일 일정하게 할 때만이 실력은 가장 잘 늘어난다. 그러므로 하루 중에 가장 소중한 시간대를 자신의 실력향상에 투자하는 것이 관건이다. 또한 매일 하는 사람들은 슬럼프를 가장 잘 넘어설 수 있다.

 

재즈 기타리스트인 존 스코필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떤 날은 연주가 잘 되지만 또 어떤 날은 그렇지 못하다. 인생과 똑같다. 그러나 어느 날 연주에 진전이 없는 날이 있다면 그 이튿날은 분명 영감이 떠오르고 진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므로 매일 연습하라.”

 

셋째, 스위트 스팟(Sweet Spot)을 찾아라.

꼭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실력이 잘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스위트 스팟은 원래 스포츠에서 사용되는 용어인데 배트, 라켓 등의 타면 중에서 가장 타격효과가 좋은 부분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이 부분에 공이 맞으면 가장 임팩트가 강하게 실려서 공이 날아가는 것이다. 테니스의 경우 라켓 중앙에서 약간 하단부위이고, 야구로 하면 배트 끝에서 아래로 12cm 하단이다. 즉, 같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어떤 방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시간대에 하느냐에 따라, 누구랑 하느냐에 따라, 어떤 환경에서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최적조건을 잘 알고 이를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도록 과제와 연습의 난이도를 조절해서 적절한 각성상태가 유지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실력이란 적절한 스트레스를 느낄 때만이 향상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테스트를 하고 분석하고 가르쳐 보라.

실력향상을 위해서는 연습이 아닌 심층연습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연습만이 아니라 실전경험이나 다른 이를 가르치는 경험 또한 중요하다. 건강을 위해서 마라톤을 시작했지만 한번의 실전경험은 준비과정에서 심층 연습을 유도해내고 연습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었던 실력향상을 느끼게 해준다.

 

만일 공부라면 계속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간이시험이나 모의고사를 보면서 공부하는 것이 실력향상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테스트를 거치면 어떤 실수와 오류가 있었는지를 잘 분석해서 다음에 유사한 상황에서는 이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마스터하는 것이 좋다.

 

바둑실력이 늘려면 많은 바둑을 두는 것도 좋지만 대국이 끝나고 이를 복기해서 무엇을 잘 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평가하고 분석해보는 것이 실력향상의 지름길이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도울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테스트 보다 더 실력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놓치지 않도록 한다.

 

다섯째,‘ 어떻게 하면?’ 이라는 질문을 놓치지 말라.

우리 뇌는 계속 물으면 답을 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난 왜 안 될까?’ 라는 부정적인 생각 대신에 ‘어떻게 하면 내 실력이 향상될 수 있을까?’ 와 같은 실천적인 생각을 거듭한다면 우리의 뇌는 그에 맞는 실천적인 답을 끄집어 낼 것이다.

 

 





_글..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정신경영 아카데미 대표)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건강천사'는 국민건강보험이 운영하는 건강한 이야기 블로그 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공지사항

Yesterday1,217
Today162
Total2,095,480

달력

 « |  » 2019.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