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스승이다. 누군가 당신을 배우고, 당신 길을 걷고자 한다. 당신을 닮고, 당신을 따르고자 한다. 


따르는 줄이 길다면 당신이 아주 근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당신은 반면교사다. 누군가는 당신이란 거울로 자신의 허물을 비춰본다. 


당신은 참스승인가, 아니면 당신의 허물로 남의 허물을 비추는 거울인가. 당신의 자녀가 당신을 닮아간다면 반길 일인가, 꺼릴 일인가. 이왕이면 참스승으로 살자. 누군가의 길이 되고, 꿈이 되는 그런 삶을 살자. 



큰 스승은

회초리를 들지 않는다


그윽하면 오래 머물고 고요하면 절로 맑아진다. 높으면 푸르러지고 넓으면 깊어진다. 골짜기의 난초는 두루 향을 풍길 뿐 나를 알아달라고 목을 빼지 않는다. 그윽한 자태로 머물 뿐 나를 봐달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는다. 


군자는 난을 닮았다. 그윽이 덕에 머물고, 고요히 뜻에 머문다. 세상을 향해 요란스레 외치지 않는다. 큰 것은 담담하다. 바다는 고요하고, 태산은 늘 그 자리다. 


큰 부모는 자식에게 윽박질하지 않는다. 회초리를 들지 않고 스스로 모범이 된다. 모범으로 가르친 자식은 세상을 살면서 어긋남이 적다. 무언지교(無言之敎), 노자는 큰 가르침은 말이 없다고 했다.



빈 깡통이 시끄럽고, 빈 수레가 요란하다. 물이 얕으면 자갈조차 소리를 내며 떠내려간다. 속이 비어서 시끄러운 줄 모르고, 아는 게 많기 때문이라고 착각한다. 짐이 가벼워서 덜컹대는 줄 모르고 많이 실은 때문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니 세상이 요지경이다. 행동으로 깨우치는 자가 진정 큰 스승이다. 


몸소 실천하지 않는 가르침은 헛된 교훈일 뿐이다. 작은 가르침은 빈말을 세상에 흔들어대고, 큰 가르침은 행함으로 세상에 모범을 보인다. 


작은 지식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큰 지식은 자신을 스스로를 닦으려 한다. 세상 어디서나 작은 게 시끄러운 이치다. 



군자는

타산지석으로 옥을 간다


다른 산의 거친 돌로 자기의 옥을 간다(他山之石 可以攻玉). 《시경》소아편에 나오는 시의 한 구절이다. 


소인은 군자에게도 배우지 못한다. 군자는 소인에서도 배운다. 세상 만물 모두가 군자의 스승이다. 스승이 많으니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진다. 


타산지석은 소인이고, 옥은 군자다. 군자는 타산의 거친 돌을 숫돌로 삼아 자기의 옥을 간다. 타인의 하찮은 언행이나 허물을 자기를 다스리는 거울로 삼는다. 


덕이 부족한 자를 보면 자신의 인품을 되돌아보고, 앎이 부족한 자를 보면 자신의 학문을 되돌아본다. 그러니 사방이 모두 스승이고, 세상이 큰 배움터다. 성인은 일정한 스승이 없다 했다.      



소인은 남을 탓하고, 군자는 자기를 나무란다. 주자는 “안이 차면 밖에서 구하지 않고, 안이 비면 밖으로 객기를 부린다”고 했다. 


안이 차면 세상 보는 눈이 여유롭고, 안이 비면 세상 보는 눈이 날카롭다. 수시로 치르고, 수시로 찔린다. 소인이 목소리가 큰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소인은 용기와 만용의 구별이 서투르다. 만용을 용기로 착각한다. 진짜 가짜의 구별 또한 어설프다. 가짜를 진짜로 믿고, 사이비로 세상을 어지럽힌다. 소인은 언변에 혹하고, 포장에 혹한다. 한데 사이비는 언변과 포장, 이 둘을 즐겨 쓴다.



당신은

스승이면서 제자다


세상의 인정은 생각보다 가볍다. 굶주리면 아부하고 배부르면 떠난다. 이익 앞에서는 너절한 태도로 굽신거리고, 손해다 싶으면 의로움까지 냉정하게 팽개친다. 


물론 깊은 인정도 있다. 후한 시대 설포(薛包)는 상당한 재산가였다. 어느 날 조카가 재산을 나눠달라고 하자 늙은 노비는 자기가 데리고 있겠다며 말했다. “이 사람들은 나와 일한 지가 오래되어 네가 부리기 어려울 것이다.” 


황폐한 땅과 기울어진 농막은 자신이 갖겠다며 말했다. “이것들은 내가 젊었을 때 관리한 것이어서 정이 깊다.” 



남루한 그릇과 물건은 자신이 취하겠다며 말했다. “이것들은 평소에 쓰던 것이어서 내 몸과 입에 편하다.”  


초록은 동색이고, 가재는 게 편이다. 흰색끼리 모이면 검은색을 흉보고, 검은색끼리 모이면 흰색을 비웃는다. 그게 세상의 인정이다. 


누가 당신을 참스승으로 부른다 해서 당신이 참스승이 되는 건 아니다. 악은 악을 선으로 부른다. 


사특한 자는 당신에게 붙어 사욕을 취하려고 당신을 참스승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중요한 건 누가 당신을 참스승이라고 하느냐다. 


인간은 모두 누군가의 스승이며 누군가의 제자다. 당신은 누구의 스승인가. 반면교사의 스승인가, 정면교사의 스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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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말의 성찬이다. 시비를 가리는 말, 으스대는 말, 위로하는 말, 나무라는 말, 큰 말, 자잘한 말이 빼곡하다. 장자는 “도(道)는 조그마한 성취에 숨겨지고, 말은 화려함에 가려진다”라고 했다. 언어의 유희를 겨냥한 일침이다. 


노자는 “말이 많으면 궁해진다(多言數窮)”고 했다. 말로만 사람을 살피면 어긋남이 많고, 말로만 자기를 내세우면 손가락질당하기에 십상이다. 입으로만 재간 부리고 마음에 참됨이 없는 영혼이 가장 허접하다.



말하면 백 냥

다물면 천 냥이다


말하면 백 냥, 다물면 천 냥이라 했다. 정담도 길어지면 잔말이 된다. 흐린 말은 수다스럽다. 포장할 게 많은 탓이다. “사람들의 입을 이길 수는 있어도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게 논쟁가의 한계다.” 장자는 마음으로 따르게 하는 말이 진정한 언변이라 한다. 


장자와 혜자는 벗이다. 둘은 여러 길을 걸었다. 장자는 도의 길을, 혜자는 속세의 길을 갔다. 두 길은 때로는 만나고 때론 멀어졌다. 길은 달라도 마음은 통했다. 혜자가 죽자 장자가 통곡했다. “내가 이제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다”고 애통해했다.



“혜자는 남을 이기는 것으로 이름을 얻고자 했다. 본래 모습에는 약하고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좁고 굽은 길을 걸었다. 재능을 논쟁에 탕진했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혜자의 죽음을 그리 슬퍼한 장자지만 평가는 가혹하다. 장자의 눈에 혜자는 단지 변설가다. 혀를 남을 누르는 데 쓰고, 그 혀로 인해 되레 좁고 굽은 길을 간 자다. 말로만 세상을 시끄럽게 산 허세가다. 몸체는 못 보고, 그림자와 씨름한 자다. 


빈 수레가 시끄럽고,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물었다. 귀한 말씀을 달라고 스승을 조른 셈이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네 계절이 돌아가고 만물이 자라지만 무슨 말을 하더냐.” 공자 또한 큰 이치는 말이 없다고 가르친다. 험담을 줄이면 스스로가 맑아지고, 시비를 줄이면 스스로가 고요해지고, 허세를 줄이면 스스로가 단아해진다.

 


말로 죽고

말로 살린다


반면 순자는 언설(말로 설명함)에 뛰어나야 군자라고 했다. 순자는 제나라 경공 얘기를 비유로 든다. 새를 무척 좋아한 경공은 촉추에게 관리를 맡겼다. 어느 날 촉추가 부주의로 새를 날려버렸다. 노한 경공이 죄를 물어 촉추를 죽이려 했다. 


당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안자(晏子)로 존칭 받는 안영이 서둘러 경공을 찾았다. “촉추는 군주께 세 가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군주 앞에서 그 죄를 물은 뒤 처형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오.” 


안영을 촉추를 쏘아봤다. “너는 지엄한 군주의 새를 잃어버렸다. 그게 첫 번째 죄다. 너는 또 새 몇 마리 때문에 군주가 사람을 죽이게 했다. 그게 두 번째 죄다. 너로 인해 천하의 제후들이 우리 군주는 인재보다 새를 중시한다고 여기게 됐다. 그게 세 번째 죄다.” 


안영이 경공에게 다시 머리를 숙였다. “이제 그를 죽여도 되겠습니까.” “그냥 둬라. 내가 깨달았느니라.”



말이 고우면 그 메아리도 곱다. 말을 줄이면 허물도 줄어든다. 고운 말을 담으면 덕이 두터워진다. 말을 너무 아끼면 사람을 잃는다. 말이 너무 헤프면 나를 잃는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도, 나도 잃지 않는다. 말을 독으로 쓰지 않고 약으로 쓴다. 말 한마디가 만사를 그르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앞에서는 아부하고 뒤에서는 험담하지 마라. 굿 뒤에 날장구 치지 마라. 말에 지나치게 기교를 넣지 마라.   


 

말은 당신을 담는 그릇이다


허세는 그림자가 몸통을 닮지 못한 말이고, 위선은 거짓이 참을 덮은 말이다. 열자는 “말이 아름다우면 그 울림도 아름답고, 말이 악하면 그 울림도 악하다” 했다. 


원천이 맑아야 흐름이 맑다. 마음이 맑으면 말이 곱고, 입이 고우면 발길이 아름답다. 입은 작고 발은 크다. 입은 참 자신이 아니다. 


참 자신은 발걸음이다. 발걸음은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꿈을 좇는지, 가면 벗은 모습이 어떤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입은 자주 속인다.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포장이 알맹이를 감추고, 화려함이 담박함을 밀쳐낸다. 



뱉은 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말이 입을 떠나면 내 것이 아니다. 인간은 비밀을 나누면 한마음(?)이 된다고 착각한다. 나누는 순간 비밀이 아님을 모르고 서로 입조심하자 한다. 그러다 둘만이 안다고 믿은 게 흘러라도 다니면 서로를 의심한다. 


비밀은 온전히 마음에만 담아라. 그래야 진짜 비밀이다. 말로 은밀한 상처를 건드리지 마라. 말은 당신을 담는 그릇이다. 오롯이 담으려면 바닥이 새지 않아야 한다. 금간 옥잔은 온전한 흙잔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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