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8.25 차지만 넘치지는 마라
  2. 2014.06.30 당신은 어떤 거울인가요?

  

 

 

 

 

 

‘겸손은 야심가의 위선이거나 노예근성의 비굴함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 그의 눈에 비친 겸손은 다소 비아냥적이다. 하기야 겸손이 인간의 본능은 아닌 듯도 하다. 맹자는 인간의 심성이 본래 선하다는, 이른바 성선설(性善說)의 근거로 사양지심(辭讓之心)을 꼽는다. 인간은 남에게 양보하고, 겸손하고자 하는 성품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겸손은 일종의 ‘가면’이다. 겸손은 뭔가를 얻으려는 속셈으로 스스로를 일부러 낮추는 행위다. 맹자가 옳은지, 스피노자가 옳은지 정답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마찰이 사유의 공간을 넓힌다. 그게 철학이 인류에게 선사한 귀중한 선물이다.

  

 

과욕은 불행을 잉태한 씨앗

 

사실 세상은 겸손한 자보다 야심가들이 주도한다. 전쟁도, 물질도, 혁신도 세상의 역사는 대부분 야심가들이 쓴다. 그러니 어찌보면 세상의 역사는 야심가들의 스토리다. 어떻게 전쟁을 승리해 영토를 넓히고 권력을 키웠는지, 어떻게 기업을 일궈 막대한 돈을 벌었는지, 어떻게 창의적 아이디어로 혁신을 선도했는지에 관한 얘기다. 그러니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는 청춘에게 울림을 주는 메시지다.

 

삶은 구함의 연속이다. 물질을 구하고, 명예·권력을 구하고, 사랑을 구하고, 인기를 구한다. 구함은 희비가 갈리는 교차점이다. 그 교차점에서 누구는 환호하고, 누구는 좌절한다. 욕구는 맥주의 거품 같은 것이다. 거품 빠진 맥주는 고유의 맛을 잃는다. 욕구는 삶에 맛을 내주는 또다른 거품이다. 욕구 없는 삶은 거품 빠진 맥주만큼이나 밋밋하다. 

 

만이불일(滿而不溢). ‘가득 차면서도 넘치지는 말라’는 뜻으로 효경에 나오는 말이다. 차면서도 넘치지 않는 것은 말만큼 쉽지 않다. 욕심은 만족을 꺼린다. 구해서 얻어도 또 구하고 싶어한다. 영혼의 허기는 과한 욕심의 틈새에 끼어든다. 그 허기가 수시로 불행을 끌고 온다. 과욕은 불행을 잉태한 씨앗이다. 만족이 멀어지면 불행은 그만큼 가까워 진다. 세상에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만족 앞에 높고 단단한 장벽을 세워두기 때문이다. 성숙한 삶은 높고 두터운 장벽을 허물고 무언가에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다.

 

 

비워야 보이는 것들

 

명품연기는 차지만 넘치지 않는다. 과함의 억제가 바로 프로연기다. 세상사의 이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겸손이 지나치면 비굴해 보이고, 관심이 과하면 간섭이 되고, 용기도 선을 넘으면 만용이 된다. 그러니 멈춰야 할 선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바로 삶의 품격이다. 높이 오르면 주변을 살피고, 배움이 많으면 교만을 낮추고, 가진 게 많으면 베품을 생각하고, 욕망이 지나치면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 만이불일(滿而不溢)은 공자의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길이 통한다. 춘추좌전은 ‘교만하면서도 망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驕而不亡者, 未之有也)고 꼬집는다. 

 

살다보면 넘치고 싶은 충동이 수시로 마음에 펌프질을 해댄다. 분노를 토해내라고, 맘껏 헐뜯어보라고, 자신을 좀 과장하라고, 더 높이 오르고 더 많이 가지라고…. 하지만 급박한 충동의 펌프질엔 맞대응을 피해야 한다. 그 땐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잠잠함으로 그 충동을 마주해야 한다. 그러면 스스로가 보이고, 길이 밝아진다. 흔히 마음공부는 뺄셈이라고 한다. 세상엔 비워야 보이는 것들이 널려 있다. 지혜도 채움보다는 비움에서 온다. 잠잠함과 비움은 지혜가 자라는 최적의 토양이다.

 

  

넘칠수록 낮아지는 (格)

 

급하고 넘칠수록 사람의 격(格)은 그만큼 낮아진다. 그러니 꾸지람을 해도 견뎌낼 높이를 재봐야 하고, 물질을 탐해도 취한 경로가 선(善)한지 고민해야 하고, 친구를 만나도 과한 인맥이 오히려 영혼을 혼탁하게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삶은 교차로다. 어디로 가고, 언제·어디서 멈출 지를 항상 곱씹어봐야 한다. 원래 뿜어내는 향기보다 우러나는 향기가 더 그윽하고 멀리 가는 법이다. 삶의 향기도 마찬가지다.

 

겸손도, 용기도, 욕심도 도를 넘지 않는 게 좋다. 그게 균형이고, 그게 성숙이다. 채우되 넘쳐 흘려버리지 않는 것이 충만한 삶, 격있는 삶이다. 눈물이 지나쳐도, 분노가 지나쳐도, 나무람이 지나쳐도, 걱정이 지나쳐도 지나친 건 넘치지 않고 꽉 채워진 것만 못하다. 공자의 과유불급이 시대를 초월한 명언인 이유다. 과함이 없는 삶이 우아하고 향기를 우려낸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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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가끔 되돌아 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현재의 스스로가 잘 보이고, 미래도 더 밝아진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함이다. 과거는 살아 갈 미래의 지혜를 넌즈시 던져준다. 그러니 역사는 현재학이자 미래학이다. 하지만 과거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누구는 과거에 담긴 참 뜻을 읽지만, 누구는 그 의미를 자신의 입맛대로 각색한다. 과거를,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이 제각각인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에 힘을 좀 빼야한다. 그게 바로 성숙이다. 고집의 유연화는 비굴함, 연약함이 아니라 배려의 공간을 그만큼 넓히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다. 고집에도 일종의 관성이 생기는 탓이다. 경험이란 것이 때로 아이러니하다. 경험은 세상을 넓혀 주는 망원경이지만 경험에만 매몰되면 오히려 시야가 좁아진다. 경험이란 편린들은 간혹 잘못된 믿음이나 신념을 바윗돌처럼 단단하게 만든다.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는 때로 스스로를 한정짓는 올가미다. 몇몇 경험으로만 단정짓기에는 세상의 이치가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성숙은 일종의 나잇값이다. 나이에 걸맞게 생각하고, 나이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이에 걸맞다’함은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너무 자기 잇속만 챙기면 육체는 성숙해도 정신은 미숙한 셈이다. 용기와 배려, 관용, 더불음 등은 대표적 ‘성숙지표’다. 과욕은 정신은 물론 육체 건강도 해친다. 어찌 보면 정신의 균형이 바로 건강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고,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가 깃든다는 얘기다. 성선설(性善說)을 주창한 맹자는 모든 사람의 본성은 착하지만 지나친 욕심이 그 본성을 가린다고 했다. 선한 본성의 인간이 사는 세상에 악이 넘치는 이유를 과욕으로 설명한 것이다. 

 

 

 

거울은 형상을 비춘다. 거울을 마주하면 자신의 얼굴이, 스스로의 스타일이 드러난다. 그러니 겉모습이  궁금하면 누구나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며 애를 태운 ‘질투의 여왕’ 거울만이 진실을 말하는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거울은 진실하다. 그러니 외형에 자신이 없으면 거울 마주하기가 영 불편하다. 우리사회에 성형이 늘어나는 것은 거울 앞에 설 때의 불편함을 덜어보려는 것이다. 

 

거울이란 발명품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물은 인간의 형상을 비춰주던 ‘자연의 거울’이었다. 인간은 물에 비친 얼굴에서 외형의 더러움을 보고 그 물로 그 더러움을 씻어냈다. 인간에게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깨달음의 근원, 더러움을 씻겨주는 정화수인 셈이다. 그러니 물은 늘 인간 마음을 비유한다. 잔잔한 호수로 마음의 평온을 노래하고, 성난 파도로 격노한 심성을 암시한다. 명경지수(明鏡止水)는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일컫는 상징어다. 물은 고요해야 비춰지는 형상이 비툴리지 않는다. 마음 또한 고요해야 내면이 더 깊게, 더 투명하게 비쳐진다. 그러니 도도히 흐르는 물은 세상사의 많은 이치를 담는다.

 

 

 

물(거울)로 외면을 살핀다면 내면은 무엇에 비쳐볼까.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묵자(墨子)는 ‘물을 거울로 삼지말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라’(不鏡於水 而鏡於人)로 깨우친다. 거울에 비춰보면 얼굴 하나쯤은 보이겠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스스로의 길흉화복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세 사람이 걸으면 그 중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고 했다. 장점을 배우고, 단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면 모두가 스승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은 결국 누군가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타인이라는 거울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묵자·공자의 말씀이 아니라도 세상엔 사람만한 거울이 없다. 나는 누군가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누군가는 나를 통해 그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사람이라는 거울도 유리라는 거울만큼 거짓이 없다. 호주머니에 숨겨둔 송곳처럼 언젠가 그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니 ‘나’라는 거울이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 수시로 살펴봐야 한다. 혹여 내가 닮고 싶은 형상이 아닌, 반면교사로 누군가의 삶에 깨달음을 주는 존재라면 그것만큼 슬픈 것도 없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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