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않으면 이윽고 걸을 수 없게 된다'

 

짧은 거리도 걷지 않고 자동차로 이동하고,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에게는 섬뜩하게 들리는 얘기일 것이다. 고작 걷지 않는다고 죽을 수 있다니 말이다. 협박하는 거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귀로 흘려 듣기에는 이 말이 내포한 의미가 만만찮다. 

 

물론 걷지 않는다고 당장 죽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길게 봤을 때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현대인은 현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어느새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졌다. 심지어 집안에서조차 움직이는 일이 드물어졌다. 이를테면, 리모컨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편하게 텔레비전과 DVD, CD플레이어의 전원을 켜거나 끄고 채널을 돌릴 수 있어 꼼짝하지 않는다. 세탁기의 전자동 기능 덕분에 빨래와 헹굼, 탈수, 건조에 이르는 세탁의 모든 과정을 기계에 의존한다. 식기세척기 덕분에 설거지하는 일도 뜸해졌다. 집안청소는 오롯이 로봇청소기에 맡겨놓고 있다시피 한다. 몸을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는 인류의 타고난 몸 구조와 유전자에 반하는 행동이다. 지금으로부터 수백만년전 초기 인류는 걷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리 근육을 길렀다. 이 덕분에 다른 동물보다 먼저 영양이 풍부한 먹을거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수렵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무 열매와 물고기를 채집하려면 먼 거리를 걷는 능력은 필수였다. 걷기는 살기 위한 행위 그 자체였다.

 

인류가 자신이 탄생한 아프리카를 떠나 여러 지역으로 옮겨갈 때도 그랬다. 긴 세월에 걸쳐 걸어서 이동했다. 인류의 역사는 걷기와 함께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로도 차가 개발돼 본격 보급되기 전인 19세까지 인류는 먼 거리를 가려면 걸어서 가야 했다. 지금도 교통 시설이 발달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매일 걸어서 이동하고 있다. 사실 탈것이 보급돼 인류의 보행 거리가 극단적으로 줄어든 것은 고작 최근 200여년간의 일이다. 전체 인류 역사와 견줘보면 극히 짧은 시간이다. 

 

 

 

 

우리 몸은 태어날 때부터 일정 이상의 거리를 걷지 않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 인간만 그런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참치는 시속 20~30킬로미터의 속도로 평생 쉬지 않고 헤엄친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순간, 참치는 죽는다고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숙명적으로 걸어야 하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편리함에 젖어 좀체 걷지 않으려고 하면서 우리 몸은 각종 질병과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 몸을 망치는 것이다. 게다가 몸을 움직이지 않아 생긴 문제를 또다시 건강보조식품이나 약에 기대 해결하려 하고 있다. 엉뚱한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사실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더라도 생활 곳곳에서 걸을 길은 무궁무진하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승강장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걷거나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이에 제자리걸음을 할 수 있다. 대형마트에 가서는 카트를 끌고 빙빙 돌면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집에서는 리모컨을 없애는 등 가전제품의 자동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안의 허드렛일도 '도시 속 원시인의 생활' 이라고 여기고 즐겁게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하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움직이면 손해라고 볼 게 아니라 몇 걸음이라도 더 걸으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하루에 100미터만 걷더라도 열흘이면 1킬로미터다. 100일이면 10킬로미터의 거리다. 이런 식으로 발상을 전환하면 얼마든지 집안일을 건강을 위한 생활로 바꿀 수 있다.

 

 

 

우리 몸은 태어날 때부터 일정 이상의 거리를 걷지 않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 인간만 그런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참치는 시속 20~30킬로미터의 속도로 평생 쉬지 않고 헤엄친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순간, 참치는 죽는다고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숙명적으로 걸어야 하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편리함에 젖어 좀체 걷지 않으려고 하면서 우리 몸은 각종 질병과 비만에 시달리고 있다. 스스로 몸을 망치는 것이다. 게다가 몸을 움직이지 않아 생긴 문제를 또다시 건강보조식품이나 약에 기대 해결하려 하고 있다. 엉뚱한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사실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더라도 생활 곳곳에서 걸을 길은 무궁무진하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승강장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걷거나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이에 제자리걸음을 할 수 있다. 대형마트에 가서는 카트를 끌고 빙빙 돌면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집에서는 리모컨을 없애는 등 가전제품의 자동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안의 허드렛일도 '도시 속 원시인의 생활' 이라고 여기고 즐겁게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하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움직이면 손해라고 볼 게 아니라 몇 걸음이라도 더 걸으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하루에 100미터만 걷더라도 열흘이면 1킬로미터다. 100일이면 10킬로미터의 거리다. 이런 식으로 발상을 전환하면 얼마든지 집안일을 건강을 위한 생활로 바꿀 수 있다.

 

글 / 연합뉴스기자 서한기
(참고서적 : '불편해야 건강하다' (아오키 아키라 지금, 바다출판사 刊))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 ‘지맵’ 투약이 시작됐다. 외신에 따르면 라이베리아 보건당국은 에볼라를 앓고 있는 자국 의사 2명과 나이지리아 의사 1명에게 지난 14일부터 지맵을 투약하고 있다.

 

지금까지 10여명에게 투약할 수 있는 분량만 생산된 지맵은 이제 바닥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 약은 임상시험을 마치지 않은 시험단계라 투약에 논란도 많다. 서아프리카 전체 에볼라 감염자는 17일 현재 2,10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최소 1,145명으로 집계됐다. 사망과 감염자 수의 빠른 증가와 ‘약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에볼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에볼라가 다른 병들에 비해 치사율이 유난히 높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국내인까지 모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피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지나친 두려움도 확산 방지에 도움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에볼라의 정확한 실체를 문답으로 정리했다.

 

 

 

왜 이렇게 치사율이 높나

 

에볼라 바이러스는 다른 바이러스에 비해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이유는 아직 잘 모른다. 최근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에 따르면 인체에 들어온 에볼라 바이러스는 위급 신호를 면역체계에 전달하는 경로를 차단시킨다. 면역체계를 마비시켜 바이러스에 무방비 상태로 만든다 얘기다.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자체 증상뿐 아니라 여러 장기의 기능 이상, 패혈성 쇼크 등의 합병증으로 감염 환자의 절반 이상이 6~16일 이내에 사망하는 이유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정한 현재 서아프리카 지역의 에볼라 사망률은 약 55%다. 그 중 기니는 75%로 특히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확산 가능성도 높지 않나

 

치사율이 높다고 무조건 병이 더 잘 전염되는 건 아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 같은 다른 바이러스보다 오히려 사람 간 감염력은 낮다고 평가된다. 공기로 쉽게 전파되는 호흡기 바이러스와 달리 환자의 침이나 땀, 피, 배설물 같은 체액을 직접 접촉해 바이러스가 몸 안으로 들어왔을 경우에만 감염되기 때문이다. 모기와 파리 같은 벌레나 음식물, 공공장소에 묻어 있는 타인의 체액 등이 단순히 묻었다거나 감염된 환자 옆에 앉았다고 해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는 얘기다.

  

 

잠복기나 회복 후에도 전염되나

 

에볼라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왔으나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잠복기 상태인 사람은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키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돼 증상을 보이는 환자와 직접 접촉해 환자의 체액이 인체 내로 유입돼야 사람 간 감염이 이뤄지는 것이다. 단 에볼라에 걸린 뒤 완전히 나았다고 진단을 받은 성인 남성은 회복 후 적어도 7주 동안은 성관계를 피하는 것이 좋다. 그 기간에는 정액을 통해 성관계를 갖는 여성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맵은 얼마나 효과 있나

  

아직 모른다. 이 약을 개발한 미국 회사 맵바이오제약에 따르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원숭이들에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뒤 지맵을 투여한 결과 약 43%가 살아남았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이 약을 투여받은 미국인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 2명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 현상이 지맵의 효과인지 자연적으로 회복 중인 건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스페인의 신부는 지맵을 투여받았지만 사망했다. 사망률에 포함되지 않는 에볼라 환자는 수일 동안 발열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6~11일 정도 지나면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확산은 어떻게 시작됐나

 

국제학술지와 외신 등에 따르면 서아프리카의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사태의 발원지는 기니로 보인다. 기니 남동부의 한 국경 마을에서 지난해 12월 숨진 2살짜리 남자아이가 최초 감염자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 아이가 숨진 뒤 1주일가량 지나 가족들이 차례로 사망하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병이 전파되다 올 초 인접 국가인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에서도 사망자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 원인이 에볼라 바이러스일 거라는 분석이 나오게 됐다. 하지만 그 남자아이가 어떻게 에볼라에 감염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에볼라 바이러스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나 침팬지, 과일박쥐의 피에 노출되거나, 감염된 동물이 오염시킨 과일 등을 먹었을 때 사람에게 옮는다고 알려져 있다.

 


 

 < 발생국 지도 > 

 

 

확산 추세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서아프리카 지역의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상황을 점검한 ‘국경없는 의사회’는 에볼라를 통제하기 위해 앞으로 6개월은 더 지나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보건위생 상태가 좋지 않고, 에볼라 바이러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해지는 사망 직후의 시신과 접촉이 잦은 지역적 특성이 서아프리카에서의 전염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이미 나온 바 있다. 앞서 WHO는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감염자와 사망자 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실제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응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감염자의 체액과 직접 접촉이 없었으면 감염 우려가 매우 적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WHO는 강조했다.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나

 

에볼라 환자의 체액과 접촉 금지는 물론 아프리카 에볼라 발생국인 위험 지역(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나이지리아) 방문을 자제하고, 국외 여행 중 밀림 출입을 가급적 피하며 특히 박쥐나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같은 동물과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에볼라 발생국 여행 후 갑작스런 발열, 오한, 두통, 근육통에 이어 오심, 구토, 복통, 설사 등의 소화기 증상이 나타나면 관할 보건소나 핫라인(043-719-7777)에 신고하고 병원을 찾는다.

 

글 / 한국일보 산업부 임소형기자
(도움말 : 보건복지부, 대한의사협회, 김우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을,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니제르의 슈바이처 김대수, 조규자
멀고 먼 그곳에서


 

 

 

 아프리카.
추위는 없고 햇볕만 내리 쬐는 곳.

이글거리는 해를 머리에 이고, 자연의 문화와 인공의 문명이 공존하고대립하는 곳.
전설을 먹고 자란 거대한 바오밥나무 아래 원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노래를 하는 곳.
한 사람이 조그맣게 선창하면 뒤따라 불려지는 유장하면서도 경쾌한 선율이 검은 땅에 나지막이 깔렸다가는 흩어지고 그쳤는가 하면 다시 귓전을 울리는 곳.
삶과 죽음을 주관하였던 태양이 넓은 대지를 보랏빛으로 감싸면, 명상의 마당으로 바뀌는 곳.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사계절이 분명한 한국에서는 아프리카를 그저 막연히 낭만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지구 육지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광활한 대륙, 세계 인구의 15%인 10억 그리고 53개 독립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역 또는 국가별로 다양한 특성과 복잡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 아프리카입니다.

정부파견의사제도는 1968년에 감비아(Gambia)에 의료단원을 최초로 파견하면서 시작되었고, 그런 눈부신 활약은 2008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임상 경험이 풍부한 한국의 의사들은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가로 파견되었습니다. 미개하였기에, 가난하였기에 아프리카에는 전체 파견 인원의 50%가 넘는 의사가 활동하였습니다.

한국과 니제르(Niger)는 1961년 정식수교를 맺었지만 주재공관을 개설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니제르에 파견된 의사들은 자연히 양국간의 교류나 친선 도모를 위한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1968년부터 1997년까지 19년간 정부파견의사 업무를 수행한 의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의사 김대수와 의사 조규자입니다.

그들은 사하라 사막 남쪽에 위치한 니제르에서 19년간 인술을 펼쳤습니다.
니제르의 수도는 니아미이며,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6배 정도이며, 프랑스에서 독립하였고, 공용어는 불어이지만 대부분 부족어를 사용합니다. 이슬람권의 영향으로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가뭄이 심하므로, 많은 물을 섭취하여야 탈수를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11월~2월 사이 건기에는 아르마탕이라고 하는 황사가 사막으로부터 불어옵니다. 우기 때는 천지를 가를 듯 몰아치는 모래바람과 억수같은 비가 단 몇 분간에 걸쳐 쏟아 붓습니다. 불어오는 습한 찬바람, 섭씨 45도를 오르내리는 지옥의 계절이 되기도 합니다. 이곳 주민들은 이 같은 흙먼지 바람과 태양열을 방지하기 위해 늘 뚤방이라는 긴 천으로 머리와 얼굴만 내놓고 다닙니다 .

김대수는 1935년 출생하여 1961년 고려대학교 의대에서 내과를 전공하고서 국립경찰병원 건강관리과장으로 재직하다가, 1968년 의료단원으로 파견되었고, 조규자는 1936년 출생하여 1961년 고려대학교 의대에서 이비인후과를 전공하고, 국립의료원 이비인후과 과장으로 재직하다가 1978년의료단원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의대 동기였던 부부는 외교사절단이라는 이름으로 그곳에서 젊음을 보낸 것입니다.

조규자는 그 세월을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리카 개척자로 첫 발을 디딘 남편은 니제르 대통령 디오리의 요청을 받고, 그 당시 국립의료원에 재직하고 있던 나를 그곳으로 불러들였다.  나는 조국의 영예와 체면을 세우고자 1969년 첫발을 디딘 이후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게 된 것이다. 니아미국립병원 결핵과장인 남편 곁으로 가서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그 당시 이름조차생소했던 니제르로 떠난 것이 바로 어제 같건만…….


△ 2000년 니제르 소재 국립종합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종족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백주에 살인과 약탈이 벌어지는 니제르에서 조국의 영예를 위해 일하는 그들 부부, 그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설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혹독하리만치 무더운 날씨와 무섭도록 번지는 전염병의 나라.
말라리아는 모든 지역에서 발생하고 각종 풍토병이 창궐하는 나라.
1991년부터 1994년까지의 의사 김대수의 활동보고서는 한마디로 비상사태였습니다.
분기별로 약 70명의 결핵환자가 입원하면 대략 20명이 죽어나가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현재 병원사정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결핵 입원환자들은 결핵약품에 내성이 생겨 만성화된 상태입니다. 어려운 경제적인 사정으로서 의약품의 부족, 검사실의 시약 부족 등 사망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현재 병원은 오래 전부터 의료장비 부족으로 인해 병원운영이 거의 마비된 상태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면에서 갈수록 악화되다 보니 보건 분야에까지 심한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의약품의 부족상태는 물론 요즘 섭씨 40도 이상의 날씨에 뇌막염, 홍역, 기타 질병이 만연, 이미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보건 분야 종사자까지도 위협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자주 있는 노조파업으로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거기에다 물가는 상승하고 파업으로 인하여 전기가 끊기고 수돗물이 나오지 않고 국민들은 빈곤에 허덕이고 공무원들의 근무태만 등 모두가 무관심 상태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의사 조규자의 보고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병원행정의 모순으로 마취의사가 없어 수술을 못하고, 7백만의 인구에 이비인후과 진료를 혼자서 당해내는데도(한 명의 니제르인이 있으나 출근도 잘 안함), 도와주는 인원이 없고 병원에 약품이나 기구는 완전히퇴폐함.
수개월간에 걸친 봉급지출 요망과 병원은 치료에 필요한 약품기구 등의 결핍으로 의사까지 전면파업에 들어가고 환자들을 포기하여, 이곳에 있는 저로선 환자들을 돌봐주려니 매우 힘들고, 공무원도 부분파업에 돌입했음.

입원환자에게 식사를 2개월간 못줄 정도로 병원의 경제적 사정이 매우어려움.
경제적 궁핍이 극단에 처함에 따라 강도 살인사건이 니제르 시내에서도 일어나 저녁에는 외출도 못하고, 응급환자 치료는 물론 약, 수술품 부족으로 환자치료에 막대한 지장이 있으며, 병원의 파업이 잦아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환자보호자 측과 신경전이 대단함.

 


△ 니제르 파견 당시 니아마 병원에서.


의사 김대수는 결핵퇴치에 힘써 환자수를 70% 이상 줄였고, 의사 조규자는 하루에 적어도 15건의 이물적출을 예외 없이 진행하며, 니제르 국민의 이비인후과 위생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니제르 정부의 신임을 받아 대통령가족의 주치의로도 활동하였습니다.
치료나 수술을 해주고 나면 감사하다는 표시를 하는데, 마치 약 구입비나 교통비를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과 같은 그들의 순진한 동작을 보람으로 여기며, 의대생의 임상실습과 졸업생 심사위원 및 간호학교 강의 등 바쁜 일정도 소화하였습니다.

1995년. 의사 조규자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주년 총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총재님.
안녕하십니까?
한해도 다 저물어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새로 다가오는 한 해를 좀 더 보람 있게 맞이하려고 하는 지금, 마음의 착잡함을 가라앉히며 이 글을 올립니다. 의학의 발전도 첨단에 이르러 병의 초기발견으로 완치가 가능한 현대의학에 맞추어, 본인의 혈뇨(현미경적)로 현지에서 검사 못하는,때문에 불란서로 가 수종의 병원검사로 소변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관계로, 이에 따라 정밀검사를 하던 중 불란서의 계속되는 파업으로 검사는 지연되고, 니제르 행 비행기가 1주일에 1회밖에 없고, 1개월간 자리가 없다고(만원)하여 원래 모든 일에 철저한 Dr. Kim(부군)이 허락받았던 병가의 날짜가 완료되어 그대로 니제르로 돌아왔습니다.

본인은 니제르로 돌아와 정상적으로 계속 병원 근무를 무리하게 하고있으나, 부군 Dr. kim은 저의 건강 걱정으로 그동안 5kg의 체중이 감소되어 오히려 제가 보기가 곤란합니다. 좀 더 불란서에 눌러앉아 검사와필요에 따라 이에 치료까지 받았으면 마음도 편안하였겠지만, 체류기간이 짧아 매우 힘이 드는군요.

부인은 소변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지만 인술을 펼치기 위해 그냥 돌아와야 했으며, 다리가 골절이 되어 프랑스로 후송을 가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2년간 치료기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남편도 척추골절이 생겨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의사 부부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냈고,항상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오늘날까지 어렵고 힘든 이곳 니제르에서 25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은총과 사랑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다. 또한 매 주일마다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례할 때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던 니아미성당의 로마노주교님과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 주셨던 조국의 여러 친지 분들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기회를 통해 그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다.

의사 김대수는 1972년 대한민국 국가훈장 수교훈장 숙정장, 1973년,1982년,1988년 니제르 국가훈장, 1993년 제4회 상허대상, 1996년 제4회KBS해외동포상을 수상하였습니다.의사 조규자는 1975년,1983년,1988년 니제르 국가훈장, 1982년 대한민국 국가훈장 수교훈장 숙정장, 1993년 제4회 상허대상, 1998년 KOICA 공로패, 1996년 제4회 KBS해외동포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힘든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 조국을 떠난 그들입니다.
이제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니제르는 아직도 그 때 그 시절을 못 벗어나며 세계 최빈국입니다. 청춘과 꿈과 야망을 모두 바친 김대수,조규자 부부의 어언 20년 세월을 되돌아봅니다.

대한민국의 영예를 떨쳤고, 니제르인의 생명을 지켰으며, 한국과 니제르 두 나라간의 상호협력 및 우의에 기여한 공로로 그들의 일생을 간추린다면 결례가 아닐까요.
멀고도 먼 그곳에서 숭고한 사랑의 인술을 펼친 그들 부부가 있어 오늘의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 사택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니제르 파견 한국의료단 백용환, 김대수 의사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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