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8.20 살아 있음이 가장 행복합니다.
  2. 2012.01.14 사랑은 속아주는 것? (2)
  3. 2011.07.23 아련한 전통혼례의 기억과 추억

 

 

 

 

 

 

 

 

어젠 눈과 입이 호강한 날 이었다. 친구 부부와 함께 본 영화 베테랑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동안 왜 영화를 멀리 했을까 후회하기도 했다. 그만큼 흥미진진했다는 얘기. 이젠 한국 영화도 헐리우드 영화 못지않았다. 아니 더 잘 만든다고 할까. 흠 잡을 데가 없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났다. 주인공 황정민 유아인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조연들도 제몫을 톡톡히 했다. 오달수 유해진의 연기도 리얼했다. 모두 100점을 줄만 했다. 그래서 한 작품이 완성되는 것. 스토리는 권선징악. 뻔한 줄거리지만 재미와 감동을 더했다. 나처럼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도 눈을 떼지 않고 봤으니 꼭 보기 바란다.

 

 

 

 

저녁은 근사한 데서 먹었다. 오랜만의 부부동반이라 장소도 신경 쓴 것. 아내와 친구 부인은 안심 스테이크. 친구는 영계구이, 난 봉골레. 넷 다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다. 식사를 하는 동안 소나기도 세차게 왔다. 따라서 운치도 있었다. 친구와 오후 2시 30분에 만나 9시쯤 헤어졌다. 여의도 IFC에서 주차시간만 5시간 50분. 4시간을 면제받고도 주차비 11000원을 따로 냈다.

 

차는 1대로 움직였다. 친구가 우리 집에 와 나와 아내를 픽업했다. 다시 데려다주고 가면서 복숭아와 자두도 1상자찍 사왔다고 준다. 영화, 음식, 선물 보따리. 휴가 3일째를 알차게 보낸 셈이다. 이처럼 행복은 늘 가까이 있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 지인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다. 행복하다는 데 싫은 사람이 있겠는가. 스스로도 곰곰이 생각해 본다. 과연 행복한가. 솔직히 "그렇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주변 모든 분들이 고맙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을 두고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다. 나에게는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다.

 

 

 

기자생활 30년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다. 그러한 기회는 회사가 나에게 제공했다. 감사할 따름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 그럼에도 자신이 잘 나서 그런 줄 아는 이가 적지 않다. 고마움을 모르면 더 발전할 수 없다. 그 다음은 겸손이다. 승승장구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 잘난 사람이 겸손하면 그만큼 돋보인다.

 

특히 사람을 가려서는 안 된다.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감동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은 없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곤 한다. 성악설보다 성선설을 더 믿는 까닭이다. 세상은 아름답다. 행복도 멀리 있지 않다. 가까운 이부터 챙기면 된다.

 

행복에 대해 여러 정의를 내린다. 그것을 수치한 것이 행복지수다. 어느 시대, 종족을 막론하고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자기 자신의 불행을 더 원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우리가 안고 있는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 거기에 정답은 없다고 본다.

 

물질은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행복을 얘기할 수 없다.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도 한다. 그러나 물질이 넘친다고 행복지수가 높아질까. 그렇지 않을 게다. 인도나 방글라데시 빈민들의 행복지수는 낮지 않다고 한다. 물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까. 나는 정신, 마음을 추구하고자 한다. 우선 마음이 평온해야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상태가 불안정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 마음은 스스로 다잡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는 행복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죽음과 행복이 동시에 찾아올 순 없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택할 것이다. “지금 살아있어 행복합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도 살고자 몸부림친다.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죽어야 할까. 영원히 살 수는 없을까. 우문을 던져본다. 누구도 거기에 속 시원한 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생사의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몇해 전 행복을 전파해온 분이 부부동반 자살을 택했다. 텔레비전에 나와 밝게 웃으며 행복을 퍼트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모든 국민에게 충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 모두 죽어야 하나요.” 여러사람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안타까워 했다. 나도 믿기지 않았다. 처음엔 동명이인인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나의 모토도 행복이다. 여러 가지 비유를 들며 행복을 설파하곤 한다. 함께 여행을 떠난 두 분의 유서를 읽어봤다. 솔직히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부부사랑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부부가 동시에 함께 떠나는 것. 자살이 아닌 한 불가능하다고 본다. 자살은 정말로 비극이다. 게다가 동반자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거듭 말하지만 살아있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글 /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오풍연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얼마 전 중학생 딸 아이가 기침을 줄이지 못해 병원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병원 정문 바로 옆에서 웬 아줌마가 우는 듯 보였고, 나이가 6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는 무심코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너무나 힘겨워 보이기에 걸음을 멈추고 “아줌마, 어디 아파요? 왜 거기서?”라며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지방에서 딸을 데리고 병원에 왔다가 병원에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해 아이 진료 접수조차 못한 채 집으로 그냥 돌아가려고 나오다가 자기의 신세가 너무 한심해서 그냥 쭈그려 앉아 있는 거라 말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우리 아이의 진료비 영수증을 꺼내보았다.  초진 진료비 12,000원, 엑스레이 9,100원 모두 다해봐야 2만 원 정도였다. 그리고 내 교통비 빼고 나면? 총 3만 원이면 다 해결될듯했다. 그러고 보니 남는 돈이 3만 원 정도 됐다.

 

“아줌마, 이거면 아이 진료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뭘 이런 걸, 아이고 아닙니다. 아녀요”
“괜찮아요. 얘가 빨리 병이 나아야죠”

 

 나는 받지 않는다는 아줌마에게 3만 원을 쥐여 드리고 그분의 요청으로 내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드렸다.  그런데 그 후 3일, 1주일, 보름이 지나도록 아줌마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돈 3만 원을 되돌려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연락이라도 오면 아이의 치료를 잘했는지,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지 안부라도 묻고 싶어서였다.

 

 결국, 그로부터 한 달이 되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해줬다.  그러자 남편은 “마누라, 생각보다 순진하네!”라며 뻔한 속임수에 당했다며 웃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줌마의 그 간절한 표정과 천진난만한 딸 아이의 얼굴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돈 3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아줌마가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사람을 속인 게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다시 1주일이 흘렀을까.  

 금요일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거실 탁자에 예쁜 꽃 편지 봉투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뭘까? 하며 봉투를 뜯어 본 순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편지는 그날 병원에 함께 갔던 중학생 딸 아이가 써 놓고 간 것이었다.

 

“엄마, 그 일로 너무 맘 아파하지 마세요.

 아마도 그 아줌마 딸이 너무 아파서 아줌마가 그 일을 까먹었을 거예요.  아니면 정말 정말, 엄마에게 돈을 부쳐주고 싶었는데 사정이 너무나 어려우셔서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사랑은 원래 속아 주는 거라잖아요. 울 엄마 짱!!”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딸내미를 제대로 키웠구나 하는 마음, 그리고 아줌마를 그냥 이해하면 되는 것을. 정말 내가 속은 거라 해도 우리 딸처럼 생각하면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지금도 우리 딸의 말이 맞고, 정말 그 아주머니 딸의 건강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글 / 김점숙 대구 광역시 동구 방촌동

일러스트 / 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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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집에 돌아가니 반가운 안내장이 기다렸다. 고향 마을 고모님댁 조카가 시집을 가는데, 고향에서 전통혼례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릴 적 코흘리개 때나 보았던 전통혼례를 한다니 너무 반갑고 기대가 됐다. 

  주말에 아이들과 아내 온가족이 고향으로 내달렸다.

 

 

 

한낮, 마당에 차일이 쳐지고, 여기저기서 모여든 구경꾼들과 혼주 친인척 들은 잔칫집 마당에서 분주하게 바지런을 떨었다.

옛날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요즘은 보기 드문 일, 즉 신랑 신부가 한 동네에서 자란 동무라고 했다.

그러니 보내는 이도 서운함도 없어보였다. 노인들은 “잘 키워 멀리 안보내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며 기뻐들 했다.

 

사모관대 신랑과 연지곤지 신부가 나서자, 마당을 채우고도 모자라 축하객들은 까맣게 주변에 진을 치고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전통혼례에서 신랑은 턱시도가 아닌 사모관대를 입고, 신부는 드레스가 아닌 황원삼을 입기 때문에 도시의 예식장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순서로 행해졌다.


처음 하는 결혼식, 엉거주춤 서투른 신랑을 두고 신랑 친구들은 “첨엔 다 그래. 다음엔 잘하겠지.”라며 키득거렸다.

 

처음 술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는 것을 의미하며, 표주박 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의 화합을 의미한다.

성스럽고 기쁜 혼례를 하늘에 고하여 이 뜻을 만천하에 전하여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원하는 고천문 낭독, 그리고 양가부모님과 축하객 여러분들께 감사의 큰절을 올린다.

 

이윽고 다산을 기원하며 하늘 높이 장닭과 암탉을 날린다.


새내기 부부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신명나는 풍물소리에 맞춰 힘찬 성혼 행진을 하자 축하객들은 초례상 위에 있던 팥과 쌀을 한줌씩 나누어 쥐고 있다가 성혼 행진을 할 때 신랑과 신부를 향해 “행복하게 잘 살아라” 라는 덕담과 함께 던진다.

 

드디어 신부를 태운 가마가 대문을 나서자 대문을 막아서고 있던 축하객들은 약속처럼 비켜서 길을 열었다.

 

2011년에 치루는 전통혼례를 보노라니 그 옛날 코흘리개 시절에 보았던 전통혼례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옛날 혼인식은 이보다 더 왁자지껄하며 소란했고 인정미, 사람 사는 맛이 넘쳤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의 이야기꽃과 신랑신부 친구들의 흥분어린 웅성댐,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의 수선거림이 정겨웠다.

 

잠시 옛 추억을 떠올려 보는 사이 벌써 어디선가 “가마 앞을 막으면 징 맞고 동티 나 오래 못산다”고 외치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이미 몇 십 년 전에도 들었던 말 이었다.
젊은 교꾼들은 “목이 말라 못가겠다”는 너스레로 술을 청하며 잔칫날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이제는 정말 보기 힘든 전통혼례를 뒤로 하고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고향은 지금 그저 순수하게 시끄러웠던 흥분되고 북적거렸던 맛이 없어졌고, 코흘리개 어린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모두 다 도시로 나가서 없기 때문이다.
얼굴 들이밀기도 부담스러운 요즘 결혼식장 보다는 차라리 도떼기시장 같은 옛날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들어서 못내 아쉽고 서운하기만 하다.

고향의 전통 혼례를 이제 언제 또 볼 수나 있으려나?

 

 

윤현숙(서울시 동대문구 전농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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