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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19 외할머니의 즐겁고도 섭섭한 이야기, 오천오백원 (4)

늦은 오후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ㅋ


"아이구 숨차다, 집에 있었냐."
 

  우리 집은 다가구 주택 3층인에 오늘따라 3층까지 올라오시는게 꽤 힘드셨던지 들어오시면서부터 연신
  "아이구 죽겠다"는 말을 하시며 깊은 숨을 내쉬고 계셨다.  외할머니는 올해 연세가 90세이시다. 몇 년
  전에 녹내장 수술을 하셔서 한쪽 눈이 잘 안 보이시는 데 다 혼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엄나는 늘 외할머니
  걱정을 하신다.


 
외할머니 댁은 우리 집에서 좀 떨어진 곳인데, 노인정에 다니시는 길에 가끔씩 들러 그날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려주시곤 하신다. 외할머니는 오실 때마다 했던 얘기를 자꾸 하시는가 하면 별스럽지 않은 얘기도 어찌나 길게 하시는지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드리려면 하고 있던 일은 아예 포기해야만 한다.


"점심때는 뭐 드셨어요?"

엄마가 외할머니께 말을 건네자 대답은 하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하시더니 "어제 노인정에서..."라는 말로 얘기를 시작하셨다.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작은 웃음을 지었다. 지난번에 들었던 얘기가 아니기를 바라며 할머니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제 노인정에서 금목걸이를 주웠는데 목걸이 임자를 찾아줬더니 그이가 고맙다며 당장 호주머니에 오백 원 밖에 없으니 이거라도 받으라면서 오백 원을 주지 뭐냐. 아, 근데 오늘가니까 오천 원을 더 줬어. 그래 어제 오늘 합해서 오천오백 원을 벌었지'하시며 목걸이를 찾아 주고 사례로 받은 돈을 자랑삼아 말씀하셨다.

그런데 외할머니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엄마는 "아니, 같은 노인정 할머니들끼리 서로 잃어버린 물건이 있으면 찾아줄 수도 있는 거지 그렇다고 돈을 받아요? 내일 당장 돌려드리세요"라고 못마땅해 하셨다.


"그럼 내일 가서 다시 돌려줘야겠구먼." 말씀하시는 외할머니의 표정이 어쩐지 좀 섭섭해 하시는 것 같아 보이는 게, 아마도 모처럼 생긴 공돈을 엄마와 내게 자랑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내가 부엌에서 막 설거지를 끝내려는데 집에 가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외할머니, 벌써 가세요?"
"엄마, 왜 벌써 가세요. 저녁 드시고 가세요."
"집에 밥도 많고 반찬도 많아. 걱정 말어, 내 걱정은 말어."

 

외할머니는 엄마와 나를 향해 손을 저으며 여러 번 걱정 말라는 말을 하신 후 집으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가신 뒤, 방 청소를 하며 책상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책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있자니, 조금 전 걱정 말라며 흔드시던 외할머니의 손톱이 길게 자라 있던 게 떠올랐다. 지난 번에 잘라 드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어느새 보기 흉할 정도로 길게 자라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는 난를 무척 예뻐하셨다. 한마디로 내가 뭘 하든 언제나 내편이 되어즈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지금도 외할머니는 계신 것 자체만으로도 내게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외할머니의 큰 손이 내 작은 고사리 손을 감싸 쥘 때도 그랬지만 내 큰 키로 나보다 작은 외할머니를 감싸안을 때도 여전히 외할머니의 따뜻한 정은 예전 그대로시다.


내일쯤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양갱을 사 가지고 할머니께 가 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톱도 깎아드리고 말동무도 해드리면 오늘 섭섭하셨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시겠지. 우리 외할머니 내일은 또 어떤 얘기를 해주시려나...

 

이주연/서울시 구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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