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한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마을의 모든 사람이 어떤 사람을 선하다고 하면 그 사람을 선하다고 믿으면 됩니까?” 공자가 답했다. “좀 생각해봐야지.” 제자가 또 물었다. “그럼, 마을의 모든 사람이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하면 그는 악할 사람입니까?” 공자가 또 답했다. “그 또한 좀 생각해봐야지.” 그러면서 공자가 덧붙였다. “악한 사람들이 모두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하고 선한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선하다고 하면, 그는 분명 선한 사람이다.”




성숙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성숙을 관용으로 대체해도 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좀 관용스러운 것, 이게 바로 성숙이 아닐까 싶다. 나이 30이 넘어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정신적 미숙아’다. 특히 누군가를 떼를 지어 따돌린다면 ‘집단적 미숙아’에 다름 아니다. 선한 사람, 성숙한 사람은 무리를 짖지 않는다. 더구나 남을 비난하는 무리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말이 곧 자신의 인격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까닭이다.





직장은 인생 일정 구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삶의 공간이다. 일이 좀 버거워도 행복해야하는 직장인의 터전이다. 직장이 무너지면, 행복이 무너지고, 행복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진다. 그러니 직장은 서로 이해하고, 서로 보듬으며, 서로의 행복을 키워줘야 하는 삶의 무대다. 한데 안타깝게도 직장의 모습이 늘 그렇지만은 않다. ‘왕따 바이러스’가 대표적 악균이다. 만물의 영장, 합리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는 묘한 심리가 있다. 누군가를 조직적으로 따돌리면서 그들 스스로 유대감을 형성하려는 심리다. 그러면서 ‘저급의 우리’라는 패거리즘을 짖는다. 그들 스스로는 고상하다고 착각하면서. 그런 점에서 인간은 어쩌면 만물의 영장이 아닌 ‘자잘한 영혼들의 군집체’인지도 모른다.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대신 방공이 조나라에 인질로 가는 태자를 수행하게 되었다. 방공이 떠나면서 왕에게 물었다. “한 사람이 달려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임금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당연히 믿지 않지.” 방공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함께 나타나서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래도 믿지 않지.” 방공이 또 물었다. “그럼 다시 세 사람이 와서 이구동성으로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그래도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답했다. “그렇다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그러자 방공이 말했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 없음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세 사람이 한 목소리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호랑이는 나타난 것입니다.”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가 유래한 고사로, ≪한비자≫에 나오는 얘기다. 방공이 떠나자 왕의 측근들은 한목소리로 방공을 비방했고, 그는 결국 조정에 복귀하지 못했다.





말로 입은 상처는 칼로 입은 상처보다 깊고 오래간다. 말을 흉기로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군자는 두루 어울리되 불의에 의기투합하지 않고, 소인은 패거리를 지으면서도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니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그룹인지를 이 말에 맞춰보면 대충 어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를 악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세상에 적다. 보통은 자신이 중간쯤은 된다고 믿고 산다. 그럼 몇 가지를 물어보자. 당신은 누구를 칭찬하는가, 아니면 험집을 들춰내는가. 공(功)을 공평히 나누는가, 아니면 공은 독차지하고 과(過)는 누군가에게 떠넘기는가. 타인의 잘못에 합당한 꾸지람을 하는가, 아니면 화풀이 차원의 비난으로 상처를 주는가. 이(利)와 의(義)가 엇갈리는 지점에서 고민하는가, 아니면 냉큼 이익만을 거머쥐는가. 당신이 주로 만나는 사람은 어떤가. 누군가를 칭찬하며 모임의 온기를 데우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집단으로 헐뜯으며 ‘악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가. 그러면서 혹여 ‘우리는 한편’이라고 어줍잖은 착각을 하는 건 아닌가.





공자는 인(仁)의 본질을 추기급인(推己及人)으로 봤다. 자기의 마음으로 미뤄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얘기다. ‘네가 원하는 않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마라’는 성경의 말씀과 뜻이 하나다. 누구나 마음이 하나일 수는 없다. 누구는 낙관적이고, 누구는 비관적이다. 누구는 말이 많고, 누구는 말이 적다. 세상에는 무수한 ‘다름’이 있다. 그걸 마음으로 푸근히 받아주는 게 지성이고 품격이다. 때로는 부모를 생각하고, 때로는 자식을 생각하고, 때로는 형제, 때로는 친구를 생각해라. 당신의 행동, 당신의 말을 누군가가 그대로 당신의 부모 자식 형제 친구에게 돌려준다고 생각해봐라. 세상은 돌고돈다. 주는 대로 돌려 받는 게 인생이다. 또 하나. 남의 흠을 들춰내는 것은 당신의 단점으로 남의 단점을 공격하는 일이다. 정신이 무너진 육체만의 건강은 ‘절름발이 건강’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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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차이점이 있다. 바로 청소년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 하는 것이다. 청소년 때 방황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주변(특히 부모)의 이해와 배려를 받았다면

       심리적으로 탄탄한 토대를 가지게 되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불안정한 토대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며, 자녀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10대 자녀를 도울 수 있을까? 네 가지 상황별로 살펴보자.

  

          ① 부모와 대화를 거부하는 아이

          ② 게임(스마트폰, 컴퓨터)에 빠져사는 아이

         ③ 형제와 자주 싸우는 아이

          ④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학교, 뭐하는 곳일까?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야. 인간관계를 배우는 곳이지!”

예전 어른들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이 말이 무색해 질 정도로 학교 내의 따돌림이나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학교에서 인간관계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를 안고 졸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즘엔 유치원에서도 왕따를 시킨다고 하니 부모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왕따 문제가 심각해 이로 인한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

 

사실 어찌 보면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아니 그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수학 문제처럼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인간관계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친구 만드는 방법,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갈등을 잘 푸는 방법 등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말해 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자녀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왕따를 당했다면 부모까지 아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친구랑 잘 지내야 한다고 밀어붙여서도 안 된다. 친구들로부터 배척당해서 괴로운데, 부모로부터도 배척당한다면 아이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다.

 

 

자녀를 돕는 방법

 

자녀가 친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어떤 부모들은 직접 나서서 아이의 친구들을 만나 “우리 아이와 잘 지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오히려 왕따를 가속화시킬 뿐이다. 아무리 답답하고 속상해도 아이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가 전학이나 이사를 요구할 경우 시간을 두고 생각하면서 가급적 아이의 입장을 따라주는 것이 좋겠다. 

 

어떻게든지 부모가 할 일은 아이에게 “나는 네 편이다”라는 사실을 전달하고, 아이가 스스로 어려움을 이기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분명 아이는 다시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친구들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아이를 친구들 속으로 던져 넣으려고 한다면, 그 아이는 세상에서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부모가 자신의 편이라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받아들인 자녀는 어떤 상황에서든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글 / 강현식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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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얼굴이 잘생김), 냉무(내용이 없음), 쌩얼(화장하지 않은 민낯), 생선(생일선물),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눈팅(글을 보기만 하고 댓글이나 추천은 안하는 것)….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이런 줄임글은 어느 정도 눈이나 귀에 익어 대충 뜻을 헤아린다. 하지만 21세기 소통혁명으로 불리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너무 생소해 뜻을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줄임말도 많다. 언어의 최우선 기능이 소통이라는 점에서 인터넷시대의 줄임말은 나름 역할이 있다는 주장과 언어의 줄임현상이 너무 심해지면서 고유언어를 왜곡하고 표준말의 표기조차 서툴러진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선다.

 

 

 

세종대왕이 들으면 당황할 대화들

 

“부장님, 오늘 생파에 생선없으면 저 안습입니다.” 세종대왕이 들으면 당황할 말이지만 요즘엔 직장인사이에서도 흔히 쓰이는 인터넷 줄임말이다. 풀어보면 ‘부장님, 오늘 생일파티(생파)에 생일선물(생선) 없으면 저 눈물납니다(안습)”의 뜻이다. 젊은층에서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줄임말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용 연령층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특히 젊은층에선 온라인 줄임말에 익숙하지 않으면 ‘인터넷 왕따’로 까지 몰릴 지경이다.

 

흠좀무(흠...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겠다), 안습(눈물나게 슬프다), ㅊㅊ(친구 추천), __(황당하거나 어이없다는 뜻), 즐(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비꼴때 쓰는 표현), 즐~(즐겁다는 뜻), 움짤(움직이는 사진), 자삭(자신이 올린 글을 스스로 지우는 것), 배라(배스킨 라빈스)에 이르면 표현이나 말의 국적(?) 자체가 불분명해진다. ‘우리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뜻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이런 말줄임 현상을 어찌 생각할까. 재미난 상상이다.   

 

 

 

온라인 줄임말 오프라인으로

 

말이 갈수록 짧아진다. 모든 것이 빨라지는 시대에 경제성 측면에서 말이 짧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제일 좋아를 ‘젤 좋아’, 내일 보자를 ‘낼 보자’, 자기소개서를 ‘자소서’, 베스트프렌드를 ‘베프’로 줄여 말하는 것 등은 오프라인에서도 일상적 어법이다. 하지만 40, 50대에서는 너무 생소한 말들도 넘쳐난다. 언젠가 한 TV프로에서 ‘지대’라는 단어의 뜻을 50대에게 물었다. ‘얼굴이 땅처럼 넓은 사람’, ‘힘들때 기대라’, ‘계집애들의 대장’ 등 재미난 답변이 많았다. 하지만 이 말의 뜻은 ‘제대로’라는 말의 변형 줄임말이다. 어원과는 달리 엄청난, 좋은, 훌륭한, 무척 등의 의미로 쓰인다. 50대가 엉뚱한 대답을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변형이다.

 

신문·방송 등 언론매체도 줄임말 사용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터넷 기사들의 제목은 아예 줄임말을 쓰기 일쑤고, 제목 글자 수에 제한을 받는 신문도 줄인 제목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강부자’(강남에 사는 부동산 부자),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국조(국정조사) 등은 신문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한 줄임형 제목들이다. 대학·취업문이 좁아지면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언급되는 ‘스펙’(specification)은 줄임말이 일상용어로 쓰이는 대표적 사례다. 고등학교 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줄임말은 넘쳐난다. 시간이 맞는 친구들끼리 밥을 먹으며 공부하는 ‘밥터디(밥+스터디)’, 잔심부름만 하다가 가는 행정인턴의 줄임말 ‘행인’, ‘북붙’(복사해서 붙여넣기) 등은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줄임말이다.

 

 

 

언어로 기상세대와 차별화 심리

 

온라인에서 줄임말이 늘어나는 것은 인터넷, 휴대폰 등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 용량을 줄여 통신비를 아끼고 핵심내용 전달로 소통을 빨리 하려는 목적이 크다. 하지만 ‘빠름’만이 온라인 줄임글의 목적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예를 들어 온라인 문자에서는 너무를 ‘넘후’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획수가 늘어나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온라인 줄임말을 양산하는 것은 청소년 세대다. 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시기라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차별화된 뭔가를 원한다. 즉 청소년은 어른 세대와 차별되는 용어를 쓰고자 하는 심리가 강한데 온라인이 이런 공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끼리끼리 쓰는 언어’에 동질감을 느끼면서 줄임말이 젊은 세대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젊은세대는 ‘동질감’을 중시한다. 무리의 다수와 다른 견해를 섣불리 표출하면 이른바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자기만 모르면 뒤처진다’는 불안감 때문에 SNS를 많이 사용하는 젊은 세대에 줄임말들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TV프로들의 경우 그들이 사는 세상, 우리 결혼했어요, 무한도전은 왠지 촌스럽고 ‘그사세’, ‘우결’, ‘무도’로 불러야 폼(?)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청소년 세대다. 

 

 

 

"소통우선이다" vs "언어훼손이다"

 

온라인 줄임말에 대해선 찬반이 갈린다. 옹호론자들은 언어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줄임말은 효율적인 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언어는 결국 서로의 약속인만큼 그들이 정한 줄임말로 소통을 원활히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반대론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무엇보다 온라인 말줄임은 세대간의 소통을 ‘불통’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지나친 말줄임으로 올바른 언어사용이 훼손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터넷 용어를 남발하면서 표준말 표기가 서투른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온라인 말줄임은 찬반이 갈리지만 익명이 특징인 인터넷에서 비속어, 욕설 등이 넘쳐나는 것은 더 문제다. 교실에서의 언어폭력뿐 아니라 인터넷 악성 댓글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중·고생까지 생겨나는 형국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고운말은 개인의 품격이자, 나아가 국가의 품격이다. 거친 말은 독으로 돌아오고, 고운말은 덕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올바른 언어의 사용은 성공적인 삶, 품격있는 삶으로 이끄는 ‘제1의 습관’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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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동안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진입했다. 산업화의 시작을 일제 강점기가 아닌 박정희 정권기로 보자면 불과 반세기 만에 이 모든 과정을 마친 셈이다. 서구사회가 수백 년 동안 겪었던 것을 한국 고유의 ‘빨리빨리’ 정신으로 해치워 버렸다. 전 세계는 한국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면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너무나 큰 희생이 뒤따랐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계는 노동과 정치, 경제에 그늘을 드리웠고,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화려한 경제성장은 개인의 행복과 즐거움을 제물삼은 결과일 뿐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대기업마다 사내 심리상담소를 만들고 심리학자를 상주시키고 있다.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해 주는 현상인 듯 싶다.


비단 어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사교육 스트레스에 찌들고 있다.

영어 때문에 불이익을 경험한 젊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이 논술교육을 받고 있다.  

이 모두 무한 경쟁 사회에서 시달렸던 부모들의 열등감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행여나 뒤떨어질까 전전긍긍한다.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안중에도 없다.

 

 결과는 어떤가? 

 청소년들의 입에서는 욕설이 끊이지 않는다. 욕을 하지 않으면 말이 안될 정도다.  그리고 힘없고 약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친구를 왕따시키면서 화풀이를 하고 있다. 학교 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요즘은 하루를 멀다하고 인생의 꽃도 피우지 못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수 없다.

 

정치인들은 정책을 바꾸면 된다고 하지만 정책이 바뀔수록 혼란은 더 가중된다. 

일례로 교육정책을 보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대입제도를 바꾼다. 개선이라고 하지만 개악이다. 

낯설고 새로운 제도에 불안을 느낀 부모들은 학원으로 달려간다. 

학원은 부모들의 불안감에 편승해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은가? 요즘엔 ‘자기주도적 학습’을 가르쳐주는 학원까지 있다.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하고 국가 정책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긍정심리학자들은 긍정의 대상으로 개인과 집단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조직이나 기관, 사회 시스템도 꼽는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학과 사회학을 비롯해 행정학, 경영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더불어 입법부의 정치인들과 행정부의 관료도 힘을 합쳐야 한다.

당연히 재계의 경영진과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그냥 무작정 높으신 분들이 움직여주기를 기다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 학계나 정계, 경제계 등 사회의 전 분야의 중심은 사람, 즉 개인이다.

개인들의 소망과 열망이 차곡차곡 쌓일 때 학자들도, 정치인들도, 경제인들도 움직일 것이다. 마치 개인의 한 표가 모여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만들어 내고, 개인의 선호와 취향이 모여서 히트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정답은 간단하다.

나부터 긍정의 사람이 되자. 부정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는 긍정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쁜 것을 없애려 하기 보다는 좋은 것을 더 많이 살리는 쪽으로 관점과 생각을 바꿔보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 더 많아질수록 자연스레 나쁜 것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례로 불평을 안 하려고 애쓰지 말고 감사를 더 많이 하려고 애쓰는 것이 좋다.

누구에게든 하루가 24시간이니 감사를 더 많이 하면 자연스레 불평할 시간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이처럼 자신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만약 연인이나 부부 중 한 사람이 긍정의 관점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부모가 긍정의 관점으로 자녀를 바라본다면? 교사가 긍정의 관점으로 학생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과 관심을 원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단점을 지적받기보다는 장점을 인정받기 원한다.

‘계속 그런 식으로 하면 널 사랑하지 않겠어’라는 협박을 들을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만큼 해냈구나’라는 격려를 받으면 더 힘이 나서 잘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장점을 격려하는 것보다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물론 그럴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 들이대는 기준과 잣대가 ‘효율’이라는 것이 과연 옳은가?

 

대한민국이 모든 분야에서 현재 직면하고 있는 모든 갈등과 슬픔의 이유가 ‘효율’을 우선시하는 ‘빨리빨리’임을 생각해 볼 때, 이제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좇을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인가, 언제까지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를 할 것인가!

 

 

 

 당신의 새해 소망은 무엇인가?

 

혹시 ‘사람’이 아닌 ‘일’ 중심, ‘사랑’이 아닌 ‘효율’ 중심은 아닌지 점검해 보자.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다면 2012년 새해에는 긍정의 소망을 가져보자.

 

우선 자신부터,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겠다는 소망 어떤가?

사랑과 감사를 표현해서 행복을 느끼겠다는 소망 어떤가? 이러한 개인들의 결단이 모여야만 우리 사회가, 학교가, 직장이, 나라가 보다 긍정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누다심 /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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