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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길을 가는 자, 길을 잃은 자 당신만의 큰 길을 걸어라 수릉에 사는 한 젊은이가 조나라 수도 한단에 가서 대도시 걸음걸이를 배웠답니다. 그런데 그 나라 걸음걸이를 채 배우기도 전에 옛 걸음마저 잊었다네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엉금엉금 기어서 고향으로 돌아 갈 수밖에요.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삶이란 게 그렇습니다. 남의 길이 멋져 보이고,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키가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내 길을 주춤거리고, 남의 떡을 넘보고, 발끝으로 서려고 합니다.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 그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동물들은 늘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발끝으로 걷지 말라’고 합니다. 발끝으로 걸으면 키는 좀 커보이겠죠. 한데 그런 부자연스런 걸음으로 몇 보나 걷겠습니까. 이치에 어긋나는 건 대개 그 끝이 흉합니다. 누군.. 더보기
차지만 넘치지는 마라 ‘겸손은 야심가의 위선이거나 노예근성의 비굴함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 그의 눈에 비친 겸손은 다소 비아냥적이다. 하기야 겸손이 인간의 본능은 아닌 듯도 하다. 맹자는 인간의 심성이 본래 선하다는, 이른바 성선설(性善說)의 근거로 사양지심(辭讓之心)을 꼽는다. 인간은 남에게 양보하고, 겸손하고자 하는 성품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겸손은 일종의 ‘가면’이다. 겸손은 뭔가를 얻으려는 속셈으로 스스로를 일부러 낮추는 행위다. 맹자가 옳은지, 스피노자가 옳은지 정답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마찰이 사유의 공간을 넓힌다. 그게 철학이 인류에게 선사한 귀중한 선물이다. 과욕은 불행을 잉태한 씨앗 사실 세상은.. 더보기
당신은 어떤 거울인가요? 삶은 가끔 되돌아 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현재의 스스로가 잘 보이고, 미래도 더 밝아진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함이다. 과거는 살아 갈 미래의 지혜를 넌즈시 던져준다. 그러니 역사는 현재학이자 미래학이다. 하지만 과거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누구는 과거에 담긴 참 뜻을 읽지만, 누구는 그 의미를 자신의 입맛대로 각색한다. 과거를,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이 제각각인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에 힘을 좀 빼야한다. 그게 바로 성숙이다. 고집의 유연화는 비굴함, 연약함이 아니라 배려의 공간을 그만큼 넓히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다. 고집에도 일종의 관성이 생기는 탓이다. 경험이란 것이 때로 아이러니하다. 경험은 세상을 넓혀 주.. 더보기
불안이 증폭된 불안장애, 현실 왜곡으로 감정 뒤틀린다. 불안장애를 겪은 환자들은 어느 날 불안장애가 갑자기 찾아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안장애가 찾아올 만한 원인이 반드시 존재한다. 현대의학에서는 불안장애를 뇌기능의 이상으로 보는 경향이 많으나 필자는 한의학적 음양관과 전통의 성리학적 시각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워요,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아요” 60대 후반의 한 여성분이 불안장애로 방문했다. 그분은 갑자기 전화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매우 초조해했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다 외웠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겠어요. 기억하려니 더 힘들어요. 어떻게 된 거죠?” 그뿐만이 아니었다. “밤이 오는 것도 무서워요. 곧 추운 겨울이 올 텐데, 더욱 불안해서 못 살겠어요.” 자세히 진찰을 해보니 치매와는 달랐다. 기억력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