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2012년 우리나라 자살률이 6년만에 감소했다는 소식이다. 그래도 여전히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에서 압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지는 못했지만 ‘감소’

       라는 말만으로도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감소라는 말에서 희망이 묻어난다. 우리가 좀더 이웃을 바라보고, 배려하고,

       더불어 살면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을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는 따스한 느낌이 다가온다.

 

 

 

 

 

 

 

 

 

자살률, 6년만에 감소하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2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고귀한 목숨을 버린 사람은 1만 4160명이다. 자살 사망자 수는 2011년보다 1746명(-11%) 줄었고,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도 28.1명으로 전년보다 3.6명(-11.8%) 낮아졌다. 자살 사망자와 자살률 모두 줄어든 것은 지난 2006년이후 6년만에 처음이다. 자살 사망률 감소는 모든 연령과 성별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특히 10대와 40대를 제외하면 모든 연령층에서 자살 사망자와 자살률이 두 자릿수 감소했다.

 

물론 자살 사망자와 자살률이 줄었지만 절대적 수치는 여전히 ‘자살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벗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 12.5명에 비하면 28.1명이라는 우리나라 수치는 한참 부끄럽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2위인 일본(20.9명)과도 부끄러운 격차가 너무 크다. 자살률이 가장 낮은 그리스(3.3명)와는 비교자체가 안된다. 2012년에 자살 사망자와 자살률이 줄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부끄러운 수치는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렸다. 10년전인 2002년 자살 사망자는 8612명이었는데 2012년에는 이 숫자가 1만4610명으로 크게 늘었다. 당연히 자살률도 2002년 17.9명에서 지난해에는 28.1명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자살의 사망원인 순위도 8위에서 4위로 올라섰다.

 

 

 

청년에게 꿈을 심어줘라

   

지난해 전체 사망자(26만7000명)의 사망원인은 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자살 순이었다. 전체적으로 자살이 4위라는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연령별 사망원인에선 10대, 20대, 30대 모두 자살이 1위이고, 40~50대도 2위라는 사실은 거의 쇼크로 다가온다. 10~30대의 자살은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때문으로 보인다. 삼성고시, 현대고시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높아진 취업문, 학교 성적으로만 줄을 세우려는 사회 풍토, 치열해진 경쟁, 세대간의 단절된 소통, 동료·부모와의 소통부재 등이 이들을 자살로 내몬다. 청소년의 자살은 외부 환경에 의한 스트레스나 억울함에 대한 반응인 경우도 많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5위, 수출만으론 세계 7위의 경제강국이다. 이런 나라가 청년을 자살로 내모는 건 아이러니하다. ‘청춘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 했다. 그런 청춘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청춘의 특권인 이상과 희망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청춘의 이상과 꿈이 사라지는 책임이 기성세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보듬고 청춘의 가슴에 이상과 희망이 움트고 자라도록 보살펴야 하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막중한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만들어 그들의 불안을 덜어주고, 학교성적이란 잣대만 들이대지 말고 재능과 개성을 함께 보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마주해야 한다.

 

 

 

이젠 그 작은 희망을 키우자

   

미래가 불안하고 좌절스러운 건 청년만이 아니다. 부모도, 직장인도, 은퇴자도, 노년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이 시대는 모두가 불안의 공포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자살을 잉태하는 우울증의  바탕엔 불안이 도사린다. 우울을 치료하는 명약은 웃음과 소통이다. 얼마전엔 우울증에 관한 새로운 연구결과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인의 자살률을 높이는 우울증은 ‘멜랑콜리아형’이라는 것인데 즐거운 감정을 못느끼고, 심하게 식욕이 줄고, 이유없이 체중이 감소하고, 안절부절 못하거나 행동이 느려지고,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찍 깨는 것 등이 대표적 증상이라는 것이다.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사계절의 변동이 큰 나라에서 더 심하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이런 증상이 의심되면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어르신 당신은 소중합니다’ 경기도 양평군노인복지회관 주관으로 지난달 ‘노인자살 예방’을 위한 가두 캠페인을 벌일 때 치켜든 소중한 생명지키기 슬로건이다. 우주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 생명의 고귀함이야 어찌 글로 표현하겠는가. 어르신의 생명도, 청소년의 생명도, 중년층의 생명도 더 없이 고귀하기는 마찬가지다. 6년만에라도 자살자와 자살률이 줄었다는 건 생명의 고귀함이 우리나라에 조금 움을 틔운 것 같아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희망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소중히 가꿀때 새싹처럼 가지를 뻗는 법이다. 나누고, 배려하고, 소통하고, 보살피고…. 자살률 감소라는 작은 희망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모두의 지혜를 모으자.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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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동안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로 진입했다. 산업화의 시작을 일제 강점기가 아닌 박정희 정권기로 보자면 불과 반세기 만에 이 모든 과정을 마친 셈이다. 서구사회가 수백 년 동안 겪었던 것을 한국 고유의 ‘빨리빨리’ 정신으로 해치워 버렸다. 전 세계는 한국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면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너무나 큰 희생이 뒤따랐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계는 노동과 정치, 경제에 그늘을 드리웠고,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화려한 경제성장은 개인의 행복과 즐거움을 제물삼은 결과일 뿐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대기업마다 사내 심리상담소를 만들고 심리학자를 상주시키고 있다. 우리의 암울한 현실을 대변해 주는 현상인 듯 싶다.


비단 어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사교육 스트레스에 찌들고 있다.

영어 때문에 불이익을 경험한 젊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이 논술교육을 받고 있다.  

이 모두 무한 경쟁 사회에서 시달렸던 부모들의 열등감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행여나 뒤떨어질까 전전긍긍한다.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는 안중에도 없다.

 

 결과는 어떤가? 

 청소년들의 입에서는 욕설이 끊이지 않는다. 욕을 하지 않으면 말이 안될 정도다.  그리고 힘없고 약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친구를 왕따시키면서 화풀이를 하고 있다. 학교 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요즘은 하루를 멀다하고 인생의 꽃도 피우지 못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수 없다.

 

정치인들은 정책을 바꾸면 된다고 하지만 정책이 바뀔수록 혼란은 더 가중된다. 

일례로 교육정책을 보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대입제도를 바꾼다. 개선이라고 하지만 개악이다. 

낯설고 새로운 제도에 불안을 느낀 부모들은 학원으로 달려간다. 

학원은 부모들의 불안감에 편승해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은가? 요즘엔 ‘자기주도적 학습’을 가르쳐주는 학원까지 있다.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하고 국가 정책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긍정심리학자들은 긍정의 대상으로 개인과 집단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조직이나 기관, 사회 시스템도 꼽는다.

이를 위해서는 심리학과 사회학을 비롯해 행정학, 경영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더불어 입법부의 정치인들과 행정부의 관료도 힘을 합쳐야 한다.

당연히 재계의 경영진과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그냥 무작정 높으신 분들이 움직여주기를 기다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 학계나 정계, 경제계 등 사회의 전 분야의 중심은 사람, 즉 개인이다.

개인들의 소망과 열망이 차곡차곡 쌓일 때 학자들도, 정치인들도, 경제인들도 움직일 것이다. 마치 개인의 한 표가 모여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만들어 내고, 개인의 선호와 취향이 모여서 히트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정답은 간단하다.

나부터 긍정의 사람이 되자. 부정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는 긍정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쁜 것을 없애려 하기 보다는 좋은 것을 더 많이 살리는 쪽으로 관점과 생각을 바꿔보자.

사람은 여러 면에서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 더 많아질수록 자연스레 나쁜 것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례로 불평을 안 하려고 애쓰지 말고 감사를 더 많이 하려고 애쓰는 것이 좋다.

누구에게든 하루가 24시간이니 감사를 더 많이 하면 자연스레 불평할 시간은 줄어들지 않겠는가. 이처럼 자신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만약 연인이나 부부 중 한 사람이 긍정의 관점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부모가 긍정의 관점으로 자녀를 바라본다면? 교사가 긍정의 관점으로 학생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과 관심을 원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단점을 지적받기보다는 장점을 인정받기 원한다.

‘계속 그런 식으로 하면 널 사랑하지 않겠어’라는 협박을 들을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만큼 해냈구나’라는 격려를 받으면 더 힘이 나서 잘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하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장점을 격려하는 것보다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 더 빠르다고.

물론 그럴 수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 들이대는 기준과 잣대가 ‘효율’이라는 것이 과연 옳은가?

 

대한민국이 모든 분야에서 현재 직면하고 있는 모든 갈등과 슬픔의 이유가 ‘효율’을 우선시하는 ‘빨리빨리’임을 생각해 볼 때, 이제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좇을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인가, 언제까지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를 할 것인가!

 

 

 

 당신의 새해 소망은 무엇인가?

 

혹시 ‘사람’이 아닌 ‘일’ 중심, ‘사랑’이 아닌 ‘효율’ 중심은 아닌지 점검해 보자.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다면 2012년 새해에는 긍정의 소망을 가져보자.

 

우선 자신부터,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겠다는 소망 어떤가?

사랑과 감사를 표현해서 행복을 느끼겠다는 소망 어떤가? 이러한 개인들의 결단이 모여야만 우리 사회가, 학교가, 직장이, 나라가 보다 긍정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누다심 /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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