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 회사에서 일하는 K씨(28세, 여)가 병원을 찾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연애 때문에 힘든 적이 없었는
 데 최근 경험한 이별은 견디기 힘들었다. 예전에는 헤어지면 금세 또 다른 사람을 사귀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을 만나도 괴로운 마음이 가시지 않아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힘들게 만든 것은 이별의 아
 픔보다도 남자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였다. 그녀는 연애 때문에 흔들리는 자신이 너무
 창피했다.

 
왜 흔들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가?

아무리 힘들어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흔들리는 모습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자신이 힘들 때 가까운 이들로부터 진심으로 위로를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K씨 역시 어린 시절부터 소리 내어 울어도 위로받지 못한 경험이 많았다. 오히려 위로받기는커녕 떼를 잘 쓰고 욕심 많은 아이라며 크게 혼나기 일쑤였다. 그렇다보니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점점 흔들려서는 안 되고 강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키워야 했다.

그러나 강해야 한다는 그 마음만큼이나 누군가에게 깊이 의지하고픈 마음이 그녀의 마
음 저편에는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며 연애를 즐긴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별의 아픔을 내색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에 불과했을 뿐이다.



나무의 뿌리가 깊어진 이유

용비어천가를 보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는 대목이 있다. 이 말은 마치 흔들리는 나무는 뿌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즉, 흔들리는 것은 나약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물론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는 어떻게 해서 깊어졌을까를 생각해보자. 과연 처음부터 뿌리가 깊은 나무가 있을 수 있을까? 단연코 없다.


오히려 흔들림이 있었기에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린 것이다. 식물은 결코 풍요로운 환경에서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는다. 온실이나 영양분이 풍부한 화분 속의 식물이 깊은 뿌리를 내리겠는가? 식물 역시 사람처럼 시련을 통해 깊어진다. 추위, 바람, 배고픔이 식물의 뿌리를 깊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흔들림은 성장의 징표이지, 흔들림 자체가 병약한 것은 아니다.



흔들림이 없으면 무너진다

고층건물을 지을 때는 강풍과 지진에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럼 고층건물을 무너지지 않게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철근 콘크리트를 많이 써서 건물을 단단하게 짓는 것일까? 아니면 건물을 땅에 깊이 고정시켜 흔들림이 없도록 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처럼 단단함은 무너짐으로 이어지기 쉽다.

오히려 다소 흔들리게 설계하거나, 진동의 반대 방향으로 건물이 흔들리도록 설계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는 건축에만 해당되지 않고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흔히 안정감을‘흔들림이 없는 상태’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뿌리 깊은 나무처럼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삶이 무너지는 것은 너무 쉽게 흔들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으로 너무 흔들리지 않으려하기 때문에 삶은 어느 순간 꺾이고 만다.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 오규원 시인의 시‘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일부 -        


인간은 마네킹이 아니다

K씨와 상담을 하는 기간에 TV에서‘인간 마네킹’으로 소개된 20대 청년을 보았다. 주로 이벤트 행사에 초대되어 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여야 하기에 20여 분 가깝게 눈 한번 깜박거리지 않고 서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지만 20분의 시간이 그에게는 몇 시간 동안 격렬하게 운동을 하는 것보다 체력소모가 크다.

그렇기에 매일처럼 체력훈련을 하지만 스스로도 서른이 넘어서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네킹 연기가 끝나고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K씨가 연상되었다.
늘 사람들 앞에서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쿨 하게 보이려했던 그녀 역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녀 또한 인간마네킹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힘에 부쳐 스스로 탄성을 잃고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그녀와 나누었다. 그녀는 애초 ‘흔들림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 상담실을 찾았지만, 이제는 ‘흔들림과 함께 하는 삶’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진정한 안정감이란 흔들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림 속에 균형을 잡아가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흔들리되 무너지지 말자!

너무 ‘흔들림 예찬론자’가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흔들림이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적절한 흔들림은 성장의 신호이지만 잦은 흔들림은 무너짐의 신호가 될 수도 음을 간과해서도 안 되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유연한 흔들림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릴수록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땅속의 자양분을 빨아들여 힘껏 일어서야 한다. 흔들리되 무너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흔들리는 30대 시절에 나를 지탱시켜 준 말이 있었다. 프랑스 파리시의 문장(가문이나 단체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적인 마크)에 써 있는 ‘Fluctuat nec mergitur(흔들리지만 가라앉지 않는다)’라는 문구였다.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 같았던 그 시절에는 그 말이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무너지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그 흔들림으로 인해 삶이 더 깊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도종환 시인은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흔들리면서 피었다고 노래했다. 나도 그렇다고 믿는다. 만일 당신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말한다. 만일 당신에게 흔들림이 없다면 당신은 인간마네킹이 되었거나 꽃을 피우려는 노력을 포기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요한/ 더 나은 삶 정신과 원장,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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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너 요즘 왜 이리 얼굴이 달덩이야?"


살찌는 것에 별 무감한 사람이라도, 이런말을 연거푸 듣게 되면 신경이 쓰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기를 두드리느라 손가락은 날로 섬섬옥수가 되어가지만, 나도 내 몸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해서,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차를 타고 가던 거리를 걸어다니기로 했다. 역시나 처음 얼마간은 집에 도착하면 쌕쌕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박동탓에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점차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걷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어느 한때 지겹도록 걸었었다는 생각과 함께 오래된 기억도 새롭게 했다. 아직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산허리를 지나 학교까지 무려 한시간 반 정도를 걸어 다녔던 오랜 기억이….

 

초등학교 시절 한 2년 정도를 난 왕복 3시간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산중턱에 자리잡았던 탓에 동행해줄 친구도 없이 혼자 걷는 것이 다소 지루했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힘들거나 아주 못할 것 같단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특히 겨울이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내복을 껴입고 양말을 몇 켤레씩 신어도 이내 발가락이 곱아드는 것 같은 통증은, 이미 얼어버린 볼 사이로 눈물까지 찔끔 흘릴 만큼 고통스러웠다. 발을 동동 구르며 걸어다니곤 했으니 봄이 오는 소리가 남들보다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양말을 여러 켤레 신는 것이 추울 때는 땀때문에 발을 더 얼게 만든다는 사실도 모른채 그렇게 껴 신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산골의 봄은 참으로 더디게 왔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은 아직도 겨울이었고 4월쯤 되어야 비로소 바람이 순해지고 걸어가는 발걸음에도 생기가 돌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더디게 온 산골의 봄은 또 느닷없이 절정으로 치닫곤 했다. 순식간에 파랑 멍울만 들었던 꽃들은 노랗거나 진분홍빛의 꽃으로 금새 치장을 하고, 살벌했던 차가운 겨울바람이 내뿜었던 자리에 풋풋한 여린 풀내음을 풍기곤 했었다. 바로 어제까지 심심했던 길가에 마법처럼 단 하루만에 흐드러지게 피어버린 꽃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다지 새롭거나 경이로울 것 없던 산골소년의 마음까지도 흥분시킬 만큼 장관이었다.

그런 날엔, 눈으로 꽃을 밟다보면 어느 샌가 집에 와있는 또 하나의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 시절 봄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닌, 힘들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훈장처럼 어린 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고, 나를 함 뼘 더 키웠던 듯싶다.

 

그리고 그 시절의 자양분이 결코 녹녹치 않는 지금의 시간들을 그럭저럭 보내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때만큼 운치있고 아름다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느 오늘도 열심히 걷는다.

김태훈/ 경기도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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