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허준  김광락

단풍나무 그늘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면, 병원 앞 두 그루의 우람한 단풍나무가 그를 반깁니다.
병원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있는 나무 그늘이 아름답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그 나무 그늘아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한의사 김광락

 

 그는 1961년에 태어나, 1987년 동국대학교 한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의사였기에, 한의학과의 연결은 자연스러웠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해병대 1사단에서 한의사 군의장교 1호로 근무하면서 영내에 한방진료소를 개설하였습니다. 제대 후 포항에서 한의원을 15년간 운영하면서 틈만 나면 미얀마(Myanmar)와 스리랑카(Sri Lanka) 등지로 단기해외봉사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 그는 늘 베푸는 사랑을 떠올렸습니다.
 한의사 김광락은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부파견한의사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의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에서 3년간 근무하였습니다.

 

 

 

  정부파견 한의사로 근무하면서 '글로벌 한의학'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

 

 그는, 처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 병원을 세우게 된 역사를 돌이켜봅니다.

 

1996년 대한한의사협회 산하 KOMSTA(대한한방해외협력병원)는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 초청으로 타슈켄트 소재 국립 제1병원에 단기 의료봉사단을 파견한 것을 계기로 1997년 6월에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 병원을 개원했습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 내 병원 건물
1개동을 10년간 무상 임대하는 조건으로 병원설립이 정식 성사되어, 정부파견한의사들은 고려인과 우즈베키스탄 현지인 등 80여 명의 환자들을 매일 무료로 돌보았습니다.

 한때 환자들이 1년을 넘게 진료날짜만 기다리기도 했으나, 최근 진료시스템이 보완되었습니다.

 

 예약 환자가 6개월씩 밀려 있을 만큼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는 한의학이 외국인의 체질에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향후 FTA(자유무역협정)에 의한 시장개방과 함께 의료분야에 있어 해외시장 진출 시 그 성공가능성을 높여줄 것입니다.


 그는 한국의 KOICA 및 KOMSTA가 자랑스럽고, 그 봉사활동을 처음 시
작한 선배들의 마음과 노력에 다시 한 번 깊은 존경심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KOMSTA와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의 숭고한 사업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였습니다.

 

 한의사 김광락은 1년 평균 3,200여건의 진료를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150여건의 금연과 금주 및 금마약침 시술을 실시하여 높은 완치율을 보이며 환자들에게 지속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는 타슈켄트 국립 제1의과대학생과 현지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한의학 이론과 실습 강의를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더욱이 척박한 땅에서 혹한의 시련을 극복하고 민족의 뿌리를 이어 온 고려인이 2십만여 명이나 거주하고 있는 이곳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학이 단순히 의술을 펼치는 차원을 넘어 보건 분야 발전과 한국,우즈베키스탄 문화 및 경제협력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처럼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은 동포인 고려인에게는 향수를, 우즈베키스탄에는 국경 없는 무료의술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현지 보건과 의료 환경개선을 위해 힘쓰고,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의학 강의 및 실습을 통한 교육을 실시하는 등 글로벌 한의학을 위해 부단히 활동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노무현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활동하였던 민간단체 ‘사랑의 열매’로부터 긴급환자 수송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앰뷸런스 한 대를 지원받아 의료봉사 관계자들의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는' 봉사에서 '기르는' 봉사로의 전환을 말하다..

 

 한의사들이 수많은 우즈베키스탄 현지인과 고려인 환자를 돌보며 적지 않은 업적을 쌓았지만, 한의학 교육문제는 거의 방치되어 있는 점을 그는 주목하였습니다.

 

 매주 현지 의과대학생들과 관심 있는 병원직원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의사 등을 대상으로 침구학개론 수준의 한의학을 강의하고
있으나, 진정으로 내실을 기해야 될 시점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더욱이 자격증에 준하여 피교육생들이 임상허가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타슈켄트에도 무면허 침구사들이 의외로 많이 활동 중인 것을 보고 KOMSTA도 이제는 ‘주는’ 봉사에서 ‘기르는’ 봉사로의 발상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10년간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다시 시작될 10년간의 KOMSTA는 제2의 도약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더없이 중요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식량자급이 어려운 나라에 당장의 식량을 보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급한 문제일 것이지만, 궁극에는 식량을 스스로 재배하고 자원화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가르쳐 주고, 더 나아가서는 식량을 받던 나라가 더 어려운 곳을 보살피거나 처음 식량을 제공해준 나라와 상호 발전의 파트너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식량문제를 한의학으로 바꿔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 환자치료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새로운 10년 계획으로 젊은 우즈베키스탄 의사 혹은 고려인들을 교육하여 스스로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을 치료하고 한의학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시스템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교육을 받은 우즈베키스탄 의사 혹은 고려인 의사들이 언젠가는 선진 한의학을 보유한 한국을 찾을 것이며, 필요에 따라 한국의 한의사들이 우즈베키스탄에 병의원을 개설하거나 교육기관까지 설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친선한방병원은 KOICA와 KOMATA 그리고 대한한의사협회로부터 연간 3,500여만 원을 지원받고 있으나, 담당 관계자들이 무료진료를 실시함에 있어 발생되는 병원운영비와 열악한 현지 병원환경을 개선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특히 1997년에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10년간 무상임대 받은 것이 만
료 돼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폐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는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수가 날이 갈수록 급증할 만큼 호응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장소의 협소함과 낙후된 의료시설로 인해 양질의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무상임대 기간 만료로 병원자체가 폐쇄된다면 예약대기중인 많은 환자는 물론 장기적으로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정부차원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향후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에는 침구학부가 공식적인 커리큘럼으로 승인될 예정이며, 보건복지부에서는 러시아어 한의학 교재 제작을 위해 지원키로 하는 등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학을 통해 병원과 교육이 공존하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국제협력단의 도움을 받아 금요특집으로 마련된 '한국의 슈바이처들' 시리즈가

 이번 회차를 마지막으로 끝맺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금요특집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하고 따뜻한 글로 사랑받는 건강천사 운영진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그인 없이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팔라우의 슈바이처  윤성일

아름다운 팔라우에도 아픈사람은 많았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마이크로네시아 200여개 섬들을 일렁이게 합니다.
태평양 서쪽 끄트머리에 섬의 무리로 이루어진 나라.
바다 한가운데 흩뿌려진 섬들로 이루어진 인구 2만 명 정도의 작은 나라 팔라우(Palau).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과 가까워 1543년 이후 오랫동안 그들의 세력권에 있었고, 한때는 독일의 세력 아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각각 지배하다가 1994년 독립하였습니다.

특히 1914년부터 제 2차 세계대전 말기인 일제강점기시대에는 수많은 한국인이 징용으로 끌려와 공항, 항만 및 도로건설에 강제노동을 당하였으며, 수많은 동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팔라우에 한국의 일반외과 전문의 윤성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1952년에 태어나 1977년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일반외과를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 쌍용건설에 의해 시공된 팔라우국립병원에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의사로 인술을 펼쳤습니다.

 그 병원은 총 병상 수는 80병상으로 내과, 소아과, 외과, 정형외과 및 정신과 병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는 이 팔라우국립병원에서 정부파견의사로1996년부터 2004년까지 9년간 근무하였습니다.

 

 그는 일반외과 전문의로 외과병동에서 근무하였으며, 의사는 원주민의사를 비롯하여 미국, 마셜, 피지, 미얀마, 필리핀, 바누아투인 등으로 구성되었고, 간호사도 원주민, 피지 및 JICA(일본국제협력기구) 소속 2명이 함께 하였고, 약사는 원주민과 호주 그리고 미국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유일한 종합병원인 팔라우국립병원에는 외과전문의가 그를 포함해 2명으로 폭주하는 외과진료 및 수술환자로 인해 평일에는 쉴 틈 없이 집도가 계속되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응급환자로 인해 병원근무가 빈번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전공은 일반외과이나 전공별 외과전문의가 없어 관련 수술 책자를 연구해가며 모든 외과수술을 수행하였습니다.  

 외과 진료뿐만 아니라 팔라우 정부에서 추진하는 청소년들의 알코올 및 마약관련 문제에 관한 예방 및 치료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팔라우 원주민 수련의사 8명에게 1996년부터 2004년까지 기본적인 외과수술 기술을 전수하였습니다. 원주민 수련의사에게 전문외과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외국종합병원으로 환자후송에 소요되는 많은 비용을 절감하였습니다.
 1996년 3/4분기부터 2000년 3/4분기까지 그가 작성한 활동보고서에 의하면, 진료인원은 3,772명이었고 수술환자는 556명이었습니다.

 

 대형선박사고와 교량붕괴사고의 발생이 빈번하여 사망자와 중환자가 속출하였습니다.  신경외과 및 흉부외과 환자 발생 시 진료에 필요한 단층 촬영기, 혈중가스측정기, 인공호흡기 등이 절실하였지만 그는 묵묵히 능숙하게 위급한 병상을 훌륭하게 지켰습니다.

 그의 8년간 근무로 팔라우국립병원 일반외과 및 외과 중환자실의 의료 수준이 현저히 개선되었습니다.

 

 

 

  1997년 3월 26일

 

 그리스 소속 화물상선이 파푸아뉴기니 항구를 출발하여 서태평양을 횡단하여 일본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51세의 그리스인 선장이 갑자기 선혈을 토하며 의식을 잃었습니다. 응급처치를 요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부선장은 이 사실을 괌 병원으로 연락하고, 배를 괌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위장출혈증상이 악화되면서 의식소실증상이 현저하였습니다.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괌으로의 항해를 중지하고, 그가 근무하는 팔라우로 항로를 수정하였습니다.

 

 마침내 환자는 팔라우병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위출혈 지혈을 위한 내과적인 치료에 역점을 두고 또한 수혈을 동시에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과적인 치료에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고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환자혈액형이 AB네거티브로 혈액이 부족하여 괌 적십자사에 응급협조를 요청하는 전문을 보내고 응급수술을 시행하였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선장은 과거병력상 위출혈로 위 부분 절제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위출혈은 과거 위장문합수술 부위의 출혈 때문이었습니다. 지혈수술로 출혈부위를 봉합하고서 혈액이 도착하여 수혈하였습니다. 환자 가슴에서 작동하는 KOICA에서 보내준 모니터장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환자는 재출혈 소견을 보이고 또한 괌에서 받은 AB네거티브의 혈액도 다 떨어졌습니다.


 괌으로부터 다시 혈액이 도착하여 수혈하였으나, 추가의 혈액이 필요 하였습니다. 그러나 괌에서는 더 이상의 혈액을 구할 수 없어 일본적십자사에 긴급 혈액 요청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이러한 신속하고도 정확한 치 료과정 중 출혈증상이 호전되었고, 중환자실에서 활동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선장의 장인은 한국전쟁 그리스 참전용사였습니다.

 

 그는 이 환자를 통하여 세계화시대에서의 국제간 의료협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하였습니다. 혈액을 항공편으로 보내준 일본적십자사, 괌적십자사와 괌병원 의사, 환자 수술을 도와준 필리핀과 팔라우의사, 바누아투 마취과 의사 그리고 원주민 간호사 특히 중환자실 의료장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준 KOICA가 없었다면 화물상선 선장의 생명은 보장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의술에는 국경이 없음을 절실히 깨닫는 미담이었고, 유능한 정부파견의사의 쾌거였습니다.

 

 

 

  의사 윤성일은 헌신적인 의료활동으로 팔라우 정부로 부터 신임을 얻었습니다.

 

의사 윤성일은 성실하고 헌신적인 의료 활동으로 팔라우정부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었으며, 주민들에게도 명성이 널리 알려져 양국간 우호협력관계 증진 및 한국의 이미지를 높였습니다. 팔라우에서는 그를 ‘Dr.Yoon’이라 불렀습니다.

공무원들은 물론 팔라우 시내에서 그를 만나는 주민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의사 윤성일은 임기를 마치면서 KOICA에 보고서를 보냅니다.

  의료수준의 전반적인 향상으로 의료파견의사의 보수교육과 파견근무중의 보수교육이 절실하며, 파견의사는 파견국 의사

  및 외국인 의사와의 선의의 경쟁으로 종래 일반적인 한국의 의료수준을 후진국에서 하향적으로 지원한다는 사고 자체를

  전환하여야 한다.

  파견 전에는KOICA의 지정병원에서 파견의 전공 이외의 출산과 분만, 외상 성 골절 치료와 두개골과 흉부외과 외상환자 등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외상치료의 집중교육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섬에서 살아가는 다정하고 순박한 팔라우 국민들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이른바 대동아전쟁시기에는 수많은 한국인이 이국땅의 고혼이 되어 우리에게는 슬픔의 역사를 묻어야 했던 섬나라 입니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팔라우에서 의사 윤성일의 성실하고도 유능한 의료지원활동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인 한국의 위상을 그들에게 오롯이 전하였고, 그가 받은 존경과 사랑은 징용으로 스러져간 한국인의 원혼을 한껏 달랠 수 있었습니다.

 

팔라우 현지 신문기사 자료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로그인없이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카자흐스탄의 허준  이정열

  시인 한의사

 

 

 

 

 

 

 

 

 

 

 

 

 

 

여태 뭐 했어!
귓전을 때리는 소리에 놀란다.
아내의 지청구에 나는 무너진다.
어디 무너지는 게 공든 탑뿐이겠는가.
추억은 세월의 사리가 되어 쏟아진다.

‘너에게 내가 전부였으면’
오래 전 나에게 온 쪽지 한 장
책갈피에서 떨어진다.
아프지만 단호한 손길로
그 전부를 구겨서 버린다.

이제 겨우
한걸음 나갔을 뿐이다.


 시인이며 한의사인 이정열이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 한의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Kazakhstan)으로 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면서 쓴 시의 일부분입니다.

 환자에게 봉사하는, 환자를 사랑하는 의료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제껏 쌓아 온 공든 탑은 단호한 손길로 구겨 버립니다.
 그는 의료봉사의 발걸음을 재촉하기 위해 아프지만 과감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인 한의사 이정열...

 

 이정열은 1960년에 태어나, 1986년 원광대학교 한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한의대를 다니면서 원광대문학회에서 시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상지대학교에서 임상학 강의도 하였고, 서울에서 한의사로 일하던 그는 부도 쌓았고 명성도 이루었습니다. 한의사이면서 시인이었던 그는 환자를 돈으로만 보아온 지금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봉사를 자원했습니다.


 인술의 근본을 새롭게 배우고 싶었고, 진정으로 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온 정성을 쏟고 싶었습니다.

 그는 파견되기 전에 카자흐스탄 관련 자료를 수집하던 중 알마티에 거주하는 고려인 시인 이 스타니슬라브의 우슈토베에 관한 시를 읽고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중앙아시아 작가회의에 참가하여 《고려문화》에 여러 차례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고려인들은 정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슈베토, 눈물의 유배지로 강제이주 당하였습니다.

 그는 흩어진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원형 격인 그곳을 찾아 잡초처럼 다시 일어난 고려인들과 의료혜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경제성장 본거지로 급속히 떠오른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 10만여 명과 1990년대 초부터 기회를 찾아 몰려든 한인동포 3,000여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정부파견한의사로 카자흐스탄에 파견되다...

 

 드디어 2006년 KOICA의 정부파견한의사로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에 부임하여 3년간 재임하였습니다.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은 2000년 KOICA의 지원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개원 당시 알마티의 여러 시립병원에 흩어져서 진료하고 있던 한방과, 외과, 내과의 한국 해외파견 의사를 중심으로 개원하였습니다.

 

 2002년 알마티시청으로 병원 운영권이 이관된 후에도 의사가 꾸준히 늘어나 치과,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신경과, 척추교정과 등에서 15명의 현지 의사들과 함께 진료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운영권이 시청으로 넘어간 후에는 늘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에게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민족과 국적을 떠나 똑같은 환자였습니다.

 KOICA의 특성상 현지인 위주의 병원이 될 수밖에 없지만, 먼 이역만리에서 기쁨의 씨줄과 슬픔의 날줄을 엮어가고 있는 교민들도 진료하였습니다.

 

 그는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원주민 환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러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고려인들을 위한 정기순회 진료를 정례화 하였습니다.

 

 

 

  우슈토베에서의 무료진료 그리고 고려인...


 고려인들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최초로 정착한 우슈토베.

 알마티에서 420km 떨어진 길을 자동차로 7시간이나 직접 운전하면서 우슈토베로 달렸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가도 가도 황량한 벌판. 길은 멀었고 너무나 거칠었습니다. 어떤 때는 튀는 돌에 자동차의 연료통이 구멍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우슈토베가 마치 푸른 섬처럼 그에게 다가왔으며, 그곳에서 고려인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신고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의 옛 모습을 오롯이 지켰습니다.

 

 조국의 풍속과 습관에 따라 집을 지었고, 논밭을 일구었고, 추석과 설을 보냈습니다. 먼 길을 달려그곳에 도착하면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은 그를 반겼습니다. 긴 여정의 피곤함이 싹 사라졌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국의 과거로 달려간 듯 평온한 느낌에 행복하였습니다.

 

 그곳의 고려인들은 물론 체첸족과 쿠르드족 등 현지인 2,900명에게 침과 부항 그리고 뜸을 사용해서 한방진료를 무료로 실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부파견한의사로서 정해진 일만 하지 괜히 일을 벌이지 말라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마음고생도 하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사회주의 잔재가 남아 있어 의사의 근무시간을 하루 3시간으로 제한하였습니다.
 그런 의료 현실에서 한의학의 인기는 당연히 높았습니다. 그가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 전체 수입의 70%를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비를 들여 우슈토베의 무료진료를 꾸준히 수행하였고, 마침내 한국대사관도 지원에 나섬으로써 정식 프로그램으로 정착시켰습니다. 마침 부산대학교 의대를 나와 해외 협력의사로 합류한 젊은 내과의사 황상현이 흔쾌히 힘을 보태면서 그의 무료 진료는 가장 성공적인 봉사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한방진료에 대한 우슈토베 현지인 반응도 매우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소련시절 노력영웅이었다는 신 리사는, 그의 일행이 무료진료를 시작한 이후 한방의 뛰어난 효과를 체감한 현지인들이 지역병원 찾기를 꺼리게 되는 현상이 생겨났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런 봉사활동을 하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어 고려인이란 것이 자랑스럽다고 하였습니다.

 

 

 

  3년간의 파견활동을 회상하다....


 그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보은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제가 많이 배웁니다.
 우슈토베에는 고려인과 사나운 체첸인 그리고 기구한 처지의 독일 민족까지 수많은 민족이 말이 잘 안 통해도 몇 시간을 공감하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평화롭습니다.

 

 가난하지만 갈등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죠. 탈레반과 9·11테러 같은 건 여기선 싹 틀 수 없어요.

 우슈베토의 고려인 사회는 내게 다시 시인의 꿈을 안겨준 오래된 미래였습니다.

 

 2011년.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였던 카자흐스탄.

 그는 정부파견한의사로서 카자흐스탄에서의 3년간의 세월을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특히 아픔의 과거를 간직한 채 척박한 황무지, 고립된 우슈베토에서의 내 나라 내 겨레 고려인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리고 그는 강조합니다.

 

 따스한 정에서 우러난 인술을 펼치는 것보다 더 높고 숭고한 외교활동은 없습니다.

 

 


카자흐스탄 일간지 베체르니이 알마타에 실린 의료장비 기증식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로그인없이 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허준  이우혁

  산 설고 물 선 우즈베키스탄에서

 

 

 

 

 

 

 

  

  예전부터 봉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실 지금껏 한국에서 쌓아온 한의사로서의 입지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정리하고 나니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

 

 2003년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으로 떠나며 가진 민족의학신문과의 인터뷰입니다.

 

 

  한의사 이우혁은...

 

1966년에 태어나 경산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부터 4년째 운영해 오던 한의원을 과감히 정리하였습니다.

2003년부터 2년간 정부파견한의사로 한국 ·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근무를 지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1997년 포항에 있는 시골의 한 폐교를 임대해 친구와 함께 한의원을 개원하였습니다.  

 3년간 암환자 등 주로 난치병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면서 그곳 사람들의 어려운 환경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어려운 분들에게 자신이 가진 의술로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순수한 바람으로 정성스레 돌보았는데, 진료를 받은 사람들이 감사의 뜻으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손수 음식까지 장만해 올 때는 따스한 정을 느꼈습니다.

 

 특히 네팔(Nepal)에 있는 한 병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치료 한 번 받으려면 하루나 이틀씩 걸어와야 하고, 돈도 없고 의사도 없어 사소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욱 체계적인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003년 우즈베키스탄 파견의사를 지원했습니다...

 

 2003년 대한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서 우즈베키스탄에 파견할 의사의 자리가 몇 달째 비워져있다는 글을 보게 되고,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염려하던 아내와 자녀들을 설득하였습니다.

 

 한의사 동료들이 그동안 쌓아온 것이 아깝지 않으냐며 어리둥절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든 갈 수 있는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그동안 한국에서 자신이 이룩해 놓은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 때문에 결정을 쉽게 못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중부에 위치하면서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1991년 독립하였습니다. 수도는 타슈켄트이며 공화제로서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이슬람교도들이 다수였습니다. 지역별로 병원이나 보건소가 있었지만 시설이 허술하고 의사가 없어 각종 질환으로 환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한의사 이우혁은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의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장으로서 진료업무와 현지직원 관리 그리고 병원경영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무료로 진료하는 병원이어서 항상 환자로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치료할 환자를 한 번에 예약을 받았기 때문에 예약하는 날은 수천 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어 병원직원 모두가 나서서 예약을 받느라 진땀을 빼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진료와 원무가 분리되어 의사는 진료만 하면 되었지만,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장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잡다한 업무들이 곤혹스러웠습니다.  예약되지 않은 환자들이 찾아와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거나, 고위직의 엉뚱한 진료 청탁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군에서 받은 훈장을 내밀며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진료소에 보낼 약품을 KOMSTA(대한한방의료봉사단)으로부터 어렵게 지원받았는데, 세관에서 이유도 없이 일 년 가까이 통관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세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가져다주면 기다리라 하고, 또 다른 서류가 필요하다고 해서 가져다주면 또 다른 핑계를 대며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무능한 공무원인지 부패한 세관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나라 국민을 치료해 주고 무상으로 나누어 줄 약품 통관에 딴죽을 걸었습니다. 결국 법원의 힘을 빌려 약품을 찾아야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적응해야 하는 건 한의사 이우혁만이 아니였습니다...

 

 이우혁의 정신적인 버팀목으로 사랑의 힘을 실어주었던 아내와 2남 1녀의 자식들도 우즈베키스탄의 어려운 생활에 적응하여야 했습니다.  그가 거주하였던 지역은 비교적 좋은 동네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와 가스공급이 부족하였습니다.  난방이 끊겨 자다가 일어나 벽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면서 길고 긴 겨울밤을 지새웠고, 예고 없이 정전이 되면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색다른 환경을 감내할 수 있었지만,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전기가 나가면 불평도 없이 촛불에 의지하여 학교 숙제를 즐겁게 하는 아이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국민소득 1,000달러 정도의 그곳에서의 생활은 예측이 없었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은 항상 가득 채우고 다녀야 했는데, 주유소에서는 기름이 떨어지면 영업을 며칠씩 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구하지 못하면 허가 없이 파는 곳에서 몇 배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도처에 슈퍼마켓이 있는 한국과는 양식을 구입하는 것도 달랐습니다. 

 

 처음 한 달 정도 임시로 아파트에 살 때였습니다. 그들은 주식으로 리뾰슈까라는 둥글고 넓적한 빵을 먹는데, 한번에 20~30개가량을 구입했습니다. 가방 가득 빵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마치 빵을 팔러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가 큰 가방에 빵을 가득 들고 가는 것을 보고서 빵을 몇 개 사려고 하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영문을 몰라 웃고, 아무 것도 모르는 그는 생떼를 쓴 꼴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돈을 안받고 빵 세 개를 주었습니다.  나중에 만났을 때 돈을 드리려 하였지만 한사코 받지 않은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였습니다.

 

 

 

  산 설고 물 선 이국땅이었지만 보람도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떨어진 시골 병원에서 한 달 정도 이동 진료를 하였는데, 그 지역은 구소련시절의 협동농장이 많이 있었습니다. 스탈린 독재시절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돈 벌러 도시로 나가고 노인들이 농사짓고 손자들을 키우며 아픈 몸을 이끌고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병원시설은 처참할 정도 여서 입원하면 오히려 없던 병도 생길 정도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의료진이 도착하니 지역 주민들이 너무나 좋아하였습니다.

 타슈켄트에서 1,200km 정도 떨어진 누크스에 한방진료소가 있어 고려인 의사를 교육시켜 진료하고 있었는데, 1년에 한두 번씩 의사교육과 진료를 위해 출장을 갔었습니다. 이 지역은 아랄해가 마르면서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인구가 자꾸 줄어들고 희귀난치병으로 살기 힘든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랄해에서 날아오는 소금이 눈이 온 것처럼 토양을 뒤덮고 있어 농사짓기도 어렵고, 소금이 지하수를 오염시켜 피부병과 눈병 그리고 각종 내과질환을 유발하였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한정되어 있고 의약품도 부족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풍부한 부존자원을 갖추고 있어 한국과의 교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국민복지와 교육문화에는 여력이 없었습니다. 

 

 2004년 12월, 생필품과 먹을 것을 사서 병원직원들과 함께 고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치료받으면서 기부금으로 주고 간 것을 1년 동안 모은 것이었습니다.  고아원에서 기부 받은 물건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터라 아이들에게 직접 전달하기로 사전약속을 하고 갔습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선물을 나누어 주려고 하니, 원장이 나중에 자기들이 전달하겠다고 그냥 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직접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신발도 신겨주고 모자도 씌워주고 과자도 건넸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고아원을 나설 때, 원장과 직원들의 차가운 눈빛이 마음을 씁쓸하게 하였습니다.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앞에서 (이우혁원장 오른쪽에서 3번째)


 2년간의 정부파견 한의사로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근무를 무사히 마친 한의사 이우혁은 그 시절을 이렇게 돌아봅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아픈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는 대한민국정부의 파견의사를 환영하고 좋아하지만,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바를 모른 체하고 있어서인지 별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은 그 당시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기억들은 다 잊고 즐겁고 좋은 추억만이 남아있어 가끔 그 때가 그립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좀 더 잘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좋은 일을 더 많이 했더라면 보람이 있었을 것을 하며 아쉽다. 기회가 주어져 다시 파견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2008년부터 정부파견의사제도가 폐지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로그인없이 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건강천사'는 국민건강보험이 운영하는 건강한 이야기 블로그 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공지사항

Yesterday2,218
Today244
Total1,932,562

달력

 « |  » 2019.6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