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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빨간 스포츠카를 갖고 싶다고 말하는 내 손자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

"오, 연수구나. 잘 놀았어요? 저녁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

"왜 안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

 

  밥 먹었느냐고 물으면 언제나 안 먹었다고 한다. 올해 네 살이 된 외손자다.
  서울에 있어 자주 보지 못하고 전화로 만난다. 아직 말이 서툴러 엄마가 옆에서 도와준다.
  말을 배워 새로운 말을 하는 것이 대견하다.


"연수야, 무슨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요?"

잠시 생각하더니 "자동차."

"또 무얼 가지고 놀아요?"

"핸드폰." 그러더니 시무룩해져서 "맞았어요."

"맞았어요? 누구한데?"

"아빠."

"저런!"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가 메다쳐서 고장이 나 아빠한테 야단맞았다고 제 엄마가 설명해 주었다.



"아빠 핸드폰은 떨어뜨리면 안 돼요. 응? 어디 아파요? 힘이 없네요."

"다쳤어요."

"어디를 다쳤어요?"

"다리"

"저런!"


방에서 뛰어다니다가 발목을 삐었다고 한다.


"연수야, 엄마 말 잘 들으면 다리 빨리 나아요. 할아버지가 연수 빨리 나으라고 장난감 하나 보내주려고 하는데 무얼 보내줄까?"

잠시 망설인다.

"빨간 스포츠카!" (엄마가 '빨간 스포츠카, 빨간 스포츠카' 하고 속삭여 주었을 것이다.)

"뭐라고?"

"빨간 스포츠카"

"아, 빨간 스포츠카. 알았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몇 번 되물어서 알아들은 것이 빨간 스포츠카였다.


'빨간 스포츠카'를 몇 번이나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걸 몹시 가지고 싶은 모양이다. 자동차를 좋아해서 집에 자동차가 많다고 했다.

먼저 번 우리 집에 왔을 때도 자동차를 가지고 앞으로 뒤로 굴리며 잘 놀았다. 다른 것은 싫증을 내는데 자동차는 계속 가지고 놀았다.


"연수야, 할아버지가 빨간 스포츠카를 사서 보내줄게. 기다려."

"예" 씩씩하게 대답한다.

"그럼 잘 놀아."

"안녕, 할아버지 안녕."

제 엄마가 인사를 시키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그래, 연수도 안녕."


엄마에게 병원에 갈 때 조심하라고 이르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손자와 이야기하면 손자가 겪는 세상을 알 수 있다. 아기가 자라는 모습, 아기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이 힘 드는지 대강 알 수 있다.

이제 새상을 배워가는 아이에게는 한마디 말도 새로운 물건도 모두 소중한 경험이 되기를 바라며 내일은 빨간색 스포츠카를 사러 가게로 가야겠다. 전에 사 둔 하모니카와 망원경, 그리고 내가 만든 만화경도 함께 보내야겠다. 손자의 환한 함박웃음이 보고 싶다.

 

유영춘 / 강원도 춘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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