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건강천사에요! 

오늘은 달콤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는 토요일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

오늘은 바로! 여러분께 SNS 콘텐츠 및 포스터 공모전 수상작을 보여드리는 날이랍니다!


오늘은 네 번째 작품!

옥은주님의 “아빠는 슈퍼맨”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하는데요.


이 작품은 카드뉴스 부문에서 무려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슈퍼맨이라는 상징을 센스 있게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답니다!   


그럼 한 번 감상해 보실까요?


아! 좋은 작품 감상하시고 댓글, 공감 잊지 마시고

공유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6·25전쟁 이후 우리는 대부분 ‘잘사는 것’을 고민해 왔다. 압축 성장을 거치며 한국인의 ‘헝그리 정신’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2만 달러를 넘어섰다. 의학 발달로 평균 수명도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하루 평균 750여명이 세상을 떠난다. 누구도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누구나 한 번은 그 영역에 들어서야 한다. 그때가 다가올 때 삶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자는 웰다잉 개념은 어떻게 죽을 것인지 고민하고 준비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한다. 한때 웰빙 열풍이 불었지만 최근에는 다시 웰다잉이 화두로 떠오르는 추세다.





웰다잉이 관심을 끄는 건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삶에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성공 대신 성찰, 추월 대신 초월을 지향하게 되면서 좋은 죽음을 생각하는 이가 늘어난 셈이다. 의학의 발달로 길어진 수명은 곧 양질의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예된 죽음이 말년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와중에 그 혹독한 죽음의 과정을 누구나 고민해야 하는 셈이다.





좋은 죽음이란 어떤 죽음일까. 우선 남아 있는 사람을 웃게 하는 게 좋은 죽음이다. 조의금 일부를 어려운 이웃에게 내놓거나 생의 마지막 기부를 하고 떠나는 등 남은 자를 배려하는 죽음을 뜻한다. 또 초조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죽음이 좋은 죽음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는 삶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고 할 때,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삶의 내용이다. 즉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인 셈이다. 좋은 삶을 살아야 좋은 죽음도 맞을 수 있듯이 말이다.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죽음이라 할 때, 각자 유서를 미리 써보는 건 어떨까. 내 삶을 돌아보고,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 / 국민일보 기자 박세환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노후엔 한 달 평균 얼마쯤 있으면 살 수 있을까. 모두 궁금할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최소 노후생활비는 부부기준 159만9천100원, 개인기준 98만8천700원으로 나타났다. 적정 노후생활비는 부부기준 224만9천600원, 개인기준 142만1천900원이란다. 부부가 함께 살려면 225만원은 있어야 한다는 얘기.

 

 

 

 

내가 60까지 국민연금을 붓고 62세부터 받는 국민연금은 150만원이 채 못 된다. 80만원 정도 부족한 셈이다. 나머지는 일을 하든, 임대소득이든, 금융소득이든 충당해야 한다. 그러나 임대소득도, 금융소득도 기대할 수 없다. 내가 생활비를 벌 수밖에 없는 처지다. 몇 번 얘기했지만 70까지는 현역으로 뛰고 싶다. 그럼 걱정도 덜 수 있을 터.

 

물론 내가 바란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다. 내가 오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본다. 말하자면 1인기업이랄까. 찾다보면 아주 없지도 않을 게다. 그래서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공무원을 제외하면 노후 수입이 국민연금 뿐이다. 나는 그나마 1988년 처음 가입해 거의 최고액을 받는다. 얼마 전  국민연금 가입내역 안내서를 받았다. 그동안 323개월을 부은 것으로 나와 있다. 향후 받게 될 예상연금월액(현재가치 기준)은 1,453,000원 이었다. 만 60세까지 총 385개월을 부은 뒤 2022년 4월(만 62세)에 신청해 그 다음달부터 받게 된다. 앞으로 5년을 더 부어야 한다.

 

 

 

 

그런 다음 다른 수입이 없으면 이 돈으로 살아야 한다. 그저 막막하다고 할까. 아내한테는 가끔 큰소리를 친다. 내가 건강하면 70까진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 강의 등을 그때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 대학 교수의 정년은 만 65세 이지만 초빙교수로서 강의는 더 할 수 있다. 물론 대학 측이 나에게 강의 기회를 줄 때만 가능하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신문사 논설위원도 정년은 없다. 촉탁직으로 있기 때문에 그렇다. 마음 같아선 70까지 사설이나 칼럼을 쓰고 싶다. 또 작가는 정년이 없어 글은 계속 쓸 수 있을 터. 나름대로 노후는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 일이 억지로는 안 된다. 운도 따라 주어야 한다. 그 보다는 건강이 우선이다. 건강할 경우 밥벌이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건강해야 할 이유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후문제가 자주 제기된다. 방송과 신문이 조목조목 보도한다. 결론은 별다른 준비없이 노후를 맞고 있다는 것.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바삐 살아왔건만 손에 쥔 것이 별로 없어 걱정 뿐이다. 대부분 같은 처지다. 일부를 빼고는 집 한 채 외에 내 세울 것이 없어 그렇다.

 

1997년 노조 전임을 같이했던 선배가 있다. 그는 서울생활을 접고 전북 완주로 내려갔다. 땅을 사 집도 직접 지었다. 텃밭을 일구며 혼자서 지내다시피 한다. 가족들은 서울에 있다. 주말에 내려와 남편 및 아빠와 함께 한다. 나도 두 차례 다녀왔다. 그 곳에서 구워먹는 삼겹살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상추, 고추도 밭에서 따온다.

 

 

 


“오 위원장, 아무 때나 내려와. 며칠 있다가면 스트레스도 풀릴 걸세.” 그의 배려가 고맙다. 올라오는 승용차에 고구마, 호박, 가지 등 애지중지 키운 작물을 가뜩 실어준다. 그의 얼굴이 그렇게 편해 보일 수 없다. 이제는 마을사람들과도 친해져 토박이처럼 지낸단다. “형님은 정말로 복받은 사람입니다.” 누구나 그리는 노후생활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현직에 있더라도 불안하다. 언제 명퇴 대상이 될지 모른다. 아직 힘과 정열이 넘치는 데도 찬밥 신세다. 경륜은 도외시한 채 젊은 사람만 선호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장이 그러하니 탓할 수만도 없다. 자기 스스로 대책을 세워야 할 판이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어 눈 앞이 캄캄하다. 아무리 머리를 짜 내려고 해도 제자리에서 맴돈다.

 

고교 대선배와 점심을 함께 했다. 저명한 헌법학자로 대학 강단을 떠난 지 오래 됐다. 우리 나이로 80세. 건강관리를 잘 하셔서 60대 후반쯤으로 보인다. 두 해 전까지 현직에 계셨다. “이 나이에 관용차를 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겁니다. 친구들이 밥이나 자주 사라고 합니다. 저는 아주 행복합니다.” 실제로 그렇다. 그 선배는 행정, 사법부를 통틀어 최고령 현역이었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의 정년도 70세다.

 

일 만큼 중요한 게 없다. 더욱이 나이 들어서 할 일이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지만 노인의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다. 정년 연장 등 무슨 대책이 나와야 한다. 국가적 대사인데도 뒷짐을 지고 있는 정부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지금 당장 자신의 엉덩이를 한 번 만져 보자. 탄탄한 근육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라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엉덩이 근육은 상체와 하체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근육이 자리 잡혀 있으면 나이가 들어도 균형감각이 떨어지지 않고, 걷거나 뛸 때 받는 충격 또한 완화해준다고 한다.

 

만약 엉덩이를 만졌는데, 탄력 하나 없이 축 처져 있다면? 나이가 들었을 때 균형 감각이 없어 잘 넘어지는 것은 둘째 치고, 허리 통증이나 요실금 같은 병을 달고 살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지팡이 없이는 외출하는 것도 힘들어질 내일이 그려진다. 하지만 벌써부터 낙심할 필요는 없다. 엉덩이 근육은 생활습관을 조금만 바꾸면 금세 생겨난다. ‘장수(長壽)스위치’, 엉덩이 근육에 대해 알아본다.

 

 

 

 

 

일본의 다케우치 마사노리 의학 박사는 2011년, 엉덩이 근육을 키워야만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을 처음 펴냈다. 이 책은 2012년 우리나라에서 ‘중년 건강, 엉덩이 근육이 좌우한다’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후, 여러 방송을 통해 책과 관련된 내용이 소개되면서 화제를 일으켰다.

 

다케우치 박사뿐 아니라,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 역시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하듯, 엉덩이 근육을 조금씩 키우라”고 말한다. 엉덩이 근육이 노인 건강에 중요한 이유는 우리 몸의 중심에 있으면서, 몸 전체 근육 중 가장 큰 근육이기 때문이다. 앉았다 일어설 때, 걷거나 뛸 때, 넘어지려 할 때 등 중요한 순간에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이 바로 이 엉덩이 근육이다. 런데 나이가 들수록 근육량은 점점 줄어든다. 근력, 콜라겐, 골밀도 등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주는 성장호르몬이 적게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근육 유지에 중요한 단백질 섭취를 잘 하지 않고, 평소 운동량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엉덩이 근육이 줄면 낙상, 골절, 요실금, 허리 통증 등 앞서 말했던 문제들을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엉덩이 근육이 탄탄하게 몸에 남아 있다면 ‘액티브 시니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표적으로 골절, 근육통, 우울증 같은 질병 걱정이 사라질 수 있다. 엉덩이 근육이 있으면 허리, 골반, 허벅지 등의 뼈가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넘어질 위험이 없고, 넘어지더라도 엉덩이 근육이 쿠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노인들이 잘 겪는 골절 위험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더욱이 활동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우울증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일이 줄어든다. 밖에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 큰 근육이 있으면 기초대사량이 높아져 에너지 소비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엉덩이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생활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바닥에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는 엉덩이를 위로 들어 올린다는 느낌으로 일어나는 것이 좋다. 즉 양쪽 무릎을 모두 꿇고 손으로 앞쪽 바닥을 짚은 다음, 엉덩이를 서서히 들어 올리면 된다. 계단을 오를 때는 뒤에 있는 다리를 굽히지 말고 체중을 앞쪽에 실어야 한다. 온 정신을 허벅지 안쪽과 엉덩이에 쏟아야 엉덩이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엉덩이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다. 손잡이를 잡고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 채 엉덩이에 힘을 주고 선다. 버스나 지하철이 오른쪽으로 쏠리면 왼쪽 무릎을 가볍게 굽혀 몸의 중심을 왼쪽으로 옮기고, 반대쪽도 마찬가지로 하면 된다. 이때 엉덩이의 힘을 빼지 않아야 근육이 확실히 단련된다.

 

 

 

글 / 한희준 기자(헬스조선)

출처 / 사보 '건강보험 4월호'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진료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이 불안장애를 가장 많이 앓고 있다고 한다. 청년 시절에는 꿈을 꾸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지 못해서 나온 결과다. 나이 들어 의지할 곳 없이 노년을 스스로 책임져야하기에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리 할아버지들. 어떻게 해야 할아버지들의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상황별로 알아보자.

 

 

 

 

평생 가족을 위해,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자신의 삶은 없었고, 가족의 삶과 애국만이 있었을 뿐이다. 새벽 출근과 늦은 밤 퇴근,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 부하직원 눈치, 퇴근 후 이어지는 원치 않는 회식,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드는 직장 상사의 전화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돈 많은 집안 배경 가진 친구들이야 아쉬울 것 없이 직장을 떠나곤 했지만, 그런 입장이 아닌지라 아무 말 않고 열심히 일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다. 그 때는 누구나 그렇게 일했고, 살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고통을 참고 일했다.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면서 하루 이틀, 1년, 10년, 그 이상을 견뎠다. 결국 꿈에도 그리던 그 날이 현실이 됐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처음에는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여유 있게 신문을 읽고 TV를 보고 식사를 했다. 젊은 친구들이 허둥지둥 직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조용해진 동네에 나와 천천히 산책도 했다. 가끔 친구들이나 옛 동료들을 만나기도 한다. 점심을 먹은 후 노곤해진 몸을 달래지고 안락의자에 잠시 기댔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꿈을 꿨다. 꿈속의 자신은 30년 전이었다. 아침부터 허겁지겁 직장으로 달려가 아침부터 회의다 결제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식당에서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점심을 먹으니 너무 졸린데 일이 많아 도저히 잘 수가 없다. 직장 상사의 호출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니 잠이 깼다. 꿈이었다. 다행이다. 꿈은 뒤숭숭했지만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피로가 싹 가신다. 자신의 처지가 신선놀음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 내로 처리해야 할 집안의 잡일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저녁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TV를 틀었다. 드라마와 뉴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예능을 좀 보다보니 어느 덧 잘 시간이다. 그렇게 오늘도 마음 편히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기분마저 좋다. 그렇게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이런 신선놀음이 하루 이틀 지나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왠지 자신이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 마냥 불안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느끼는 것은 더 이상 여유가 아니었다. 무료함이었다. 오후에 졸린 눈을 잠시 붙이고 일어났을 때 느끼는 것은 개운함이 아니었다. 자신이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불안함이었다. 예전에는 은퇴를 한 후 작은 가게라도 하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친구들을 보고 “왜 사서 고생이냐, 사서 고생은 젊어서나 하는 것”이라면서 타박했는데 이제는 그 친구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일하면서 너무 힘들었기에 일을 안 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왜 막상 꿈꾸던 상황이 되자 불안하고 무력한 것일까? 이런 감정이 당연하기는 할까?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본래 성향이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일이 너무 많아도 문제지만, 할 일이 없어도 문제 수 있다는 말이다. 마치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약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진다고 한다. 그 증거가 은퇴자나 실직자가 겪는 불안과 우울, 무기력이다. 이런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하나다. 일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후 자금을 사용해 무리하게 사업을 하는데, 이것은 위험할 수 있다. 꼭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자원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지역 사회를 둘러보면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자원활동이 적지 않다. 지역신문을 살펴보거나 동사무소나 도서관, 사회복지관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아니면 시간제 근로(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떻게든지 살아있는 동안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존재다.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고려하여 적절한 일을 하게 되면, 불안과 우울,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보면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가족을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인 줄 알았다. 일제 강점기 후반이나 한국전쟁 전후에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은 확고해졌다.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일에 매달렸고, 직장에 헌신했다. 가사와 육아는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지 몰랐고,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얼굴 보다 등을 보여주었다. 대화보다는 침묵이 길어졌다. 아내의 반응도 별다르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달랐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나타나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말이 없어졌다. 자신은 그저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했을 뿐인데, 가족의 반응이 너무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자녀들은 모두 출가했다. 손녀손자도 있는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하락한 가장이라는 지위는 올라갈 줄 모른다. 자녀들은 물론 손주들의 소식도 아내를 통해서 듣게 되니 속상하다. 어떻게 해야 가족과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다. 자연스럽게 가족과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동안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어 억울한 마음이 있다고 갑자기 덜컥 다가가서 잔소리나 푸념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상처를 받았을 수 있는데,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태도변화를 보이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관계는 더 안좋아질 수 있다.

 

대화의 목적은 누가 잘못했는지 따져서 사과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이 원망을 하면, 그 원망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녀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내와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아내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서러운 마음도 있겠지만, 아내 역시 혼자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면서 너무 지쳤을 것이다. 또 시댁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받았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신에게 의지를 하고 위로를 받고자 했겠지만, 그 때 당신은 아내의 마음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아내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위로를 받으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냈고, 아이들 역시 엄마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느꼈을 뿐이다.

 

이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인생의 남은 시간 속에서더라도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손주들과의 관계로 들어가고 싶다면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열쇠는 아내나 아이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의 손에 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동료들과 함께 찾았던 포장마차. 그것이 유일한 삶의 낙이고 위로였다. 요즘 젊은 아버지들은 회사의 공식적 회식 자리에서도 아내나 아이의 핑계를 대로 일찍 들어간다고 하지만 그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아내나 아이 이야기를 하면 ‘공처가 아니냐!’면서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술자리에 빠지지 않게 되자, 어느 새 유일한 삶의 낙은 퇴근 후 소주 한 잔이 되어 버렸다. 

 

한 잔 기분 좋게 걸칠 때마다 아이들 생각이 나서 과자를 한 아름 사서 집에 가거나 아이들에게 용돈이라도 쥐어주면 그렇게들 좋아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맨 정신에 집에 들어가면 서로가 서먹해서 어떨 때는 일부러 술 약속을 만든 적도 있을 정도다. 술이라고 한 잔 들어가야 아내나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났었다. 이러다 저러다보니 삶의 유일한 낙은 술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그 시절도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직장인도 아니다. 퇴근 후 한 잔을 기울일 사람이 없게 되자, 집에서 반주(飯酒)로 한두 잔 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술김에라도 마음을 표현할 아내도, 아이들도 없다. 아내는 바깥 일이 많아진 것처럼 보이고, 아이들은 출가했거나 늦게 오니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다.

 

가끔 얼굴을 보는 아내나 자녀들은 그렇게 집에서 혼자 술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술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알코올 중독은 물론 알코올 치매, 그리고 술 때문에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나 건강 악화가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지만 별 즐거움이 없는 세상, 술 한 잔이라도 있으니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술 이외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술과 가까워지게 된 이유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술이 좋았다기보다는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거나,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집 안에서는 술김에 평소 표현 못하던 마음까지 표현할 수 있지 않았는가! 

 

결국 술에서 벗어나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려면 다시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이가 들어 옛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면, 지역의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을 찾아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도 좋다. 인터넷 사용이 크게 어렵지 않다면, 젊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동호회 활동도 좋다. 술이 아닌 다른 삶의 즐거움을 찾으려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이런 의심이 드는 이유는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떠남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이별을 맞이한다는 의미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대가족제였기 때문에, 배우자가 사별해도 자녀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녀들도 자신의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시대다. 명절 때 얼굴이나 볼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내가 아프다면 걱정이 앞선다. 이러다가 먼저 떠나는 것은 아닌지, 혼자 남겨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친구들 가운데 홀로 남은 이들을 보면 남일 같지 않다. 노인들이 고독사했다는 기사만 봐도 가슴이 철렁하다. 어떻게 해야 홀로 살아가야 하는 서러움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최근 노인들의 재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방법 역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해결방법은 아니다. 제대로 된 마음의 준비가 없다면 재혼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력가 노인과 재혼을 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재산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자녀들과의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재혼은 법적 관계가 아닌 경우도 적지 않아, 관계가 쉽게 깨지기도 해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해가 많다.

 

당장의 외로움과 서러움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급급하다보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 쉽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다르지 않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욕구 해결이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충분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자녀나 이웃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모두 무시해서는 안 된다.

 

꼭 누군가를 새로 만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차피 누군가를 만난다 해도 또 다시 혼자가 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표현해야 한다. 다른 말로 현재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드러내지 못한 감정이 있다면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살았을지라도 이제는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혼자 남겨진 상황을 잘 이겨낼 수도 있다. 좋아하는 마음과 섭섭한 마음, 속상한 마음과 행복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새로운 관계를 맺더라도 또 다시 외로워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죽음과 질병, 노화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말고 정확히 인식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자를 비롯해 형제나 자녀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을 떠올린다. 이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시작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심리학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인류의 현자들은 한결 같이 마지막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생이라고 다르겠는가? 우리의 삶은 준비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으나, 죽음은 경우에 따라서 준비할 시간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혼자 남겨진 시간이 그 준비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 / 강현식 심리학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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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진료실이 노랫소리로 떠들썩해진다. 미모면
  미모, 실력이면 실력, 다정
다감한 마음 씨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어르신 의료봉사단이 떴기 때문이
  다. 전직 의사, 수간호사 출신 60~70대 어르신들이
모여 14년째 의료 봉사를 펼치고 계신 웃음이 넘
  치는 진료실 현장으로 함께 가보자.
 

 

 

노래하는 진료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지난 12월 21일 화요일 아침 10시, 서울시 은평구 노인종합복지관 진료실에 딸린 온돌방에서 난데없이 흥겨운 합창 소리가 들렸다. 무료 진료일에 맞춰 아침 일찍부터 진료실 앞에 줄을 섰던 환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아침체조를 하시는 것. 손뼉을 치며 대여섯 곡을 이어 부르고 노래가 끝나도 열기는 식지 않는다.

 


1999년 개관한 은평 노인종합복지관의 역사와 함께 촉탁의로 봉사하고 있는 조남인 원장님에 대한 환자 팬들의 찬송(?)이 이어진다.
“ 원장님! 최고야! 원장님! 최고야! ” 조남인 원장님은 진료실의 ‘이효리’. 환자 팬들의 원장님 사랑이 어찌나 지극한지 톱스타 부럽지 않다.


“  병원 운영할 때보다 봉사하는 지금이 더 좋아. 그동안 의사생활 중에 제일 행복해. 환자들이 너무 예뻐. 할머니들도 나만 보면 좋다고 내 얼굴에 뽀뽀하고 난리야. 사실 내가 더 고맙지.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해주니까. 의료 인생의 마무리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내가 복이 많은 것 같아.  ”


가정의학 전문의로 개인병원을 운영하다 의사인 딸에게 병원을 맡기고 97년부터 의료 봉사에 나선 조 원장님. 웃음 가득한 호탕한 목소리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사는 여유와 행복감이 묻어난다.


어르신 의료봉사단 멤버는 총 여섯 분이다. 조 원장님 외 정서옥, 안옥분, 이영자, 이경자, 송재희 어르신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조 원장님이 76세, 정서옥, 안옥분 어르신이 74세, 이영자 어르신이 69세로 모두 60~70대이지만 편안히 노후를 즐기기보다 의료 봉사를 자원했다.


올해로 14년째 활동 중인 어르신 의료봉사단은 다양한 무료 진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은평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봉사하고 있는데 서울시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분들을 대상으로 많게는 하루 100명 이상을 진료한다. 은평 노인종합복지관 외에도 인덕노인복지회관, 돌봄노인요양원, 녹번동, 역촌동 관련 기관 등도 방문한다.


평일 중 목요일만 빼고 오전, 오후가 봉사 스케줄로 빽빽하다. 어르신 봉사단은 평소에는 서로 ‘형님, 동생’ 하다가도 진료 시간에는 처방, 차트 작성, 주사, 조제, 혈압 측정 등 역할을 나누어‘현역’때와 다름없이 프로페셔널하게 일한다.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는 의료 봉사단

 

십 년 이상 매주 만나 온 가족 같은 환자들이다 보니 처방하는 약이나 영양제는 제일 좋은 것으로 쓴다. 예전에는 무료 진료라고 하면 ‘이름 없는 저가 약을 쓰는 게 아닐까’ 의심하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나라의 의료복지사업에 대한 홍보가 잘 되면서 지금은 믿고 먹는다.


감기나 병이 즉각 나았다며 환자들이 고맙다는 뜻으로 기어이 찔러주고 가는 커피 값 천 원, 이천 원은 일일이 모아 연말이면 환자들을 위한 선물도 사고 간식거리도 준비한다. 어르신 봉사단은 복지관 방문이 어려운 노인들의 집으로 약을 드리러 직접 찾아가고 환자들을 위해서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좀에 걸린 환자 발에 직접 약을 발라주고 노인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면 변비에 걸려 고생하는 노인이 쾌변을 보시도록 옆에서 도와드리고 용변 후엔 씻겨 드리기까지 한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목욕시키는 일도 기꺼이 맡아서 한다. 모든 환자들을 내 가족처럼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환자 분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해요. 우리에게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은 연세가 많고 생활이 어려운 분들이 대부분이라 전문용어나 어려운 말을 쓰면 못 알아들으실 때가 많거든요. 가령 소변, 대변 하는 말도 모르는 분들이 계셔서 똥, 오줌이라고 해야 해요. 표준어로 부추를 전라도 지방에서는 솔,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고 하는 식으로 환자 개개인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말로 대화하려고 노력해요.”


서울시 간호직 공무원으로 보건소 등에서 38년 동안 근무하다 98년 퇴직한 정서옥 어르신의 말이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려는 어르신의 마음이 느껴진다.


서독병원(옛 시립 서대문병원) 등에서 수간호사로 근무하다 정서옥 어르신과 같은 해 퇴직한 후 나란히 의료 봉사의 길로 들어선 안옥분 어르신도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의료인이다. 80년대 결핵, 장티푸스 등이유행하던 시절, 모든 간호사가 마스크를 낀 채 근무하는데도 수간호사로서 차마 마스크를 낀 채 환자를 대할수가 없어 당신 자신이 결핵에 걸려 1년 반을 고생한 적도 있다.


옛 내무부장관 표창, 서울시장 표창 등 각종 상도 많이 받으신 두 분은 주변인들에게 의료 봉사의 즐거움과 필요성을 홍보하며 ‘의료 봉사 홍보대사’ 를 자처한다. 두 분은 한목소리로  “ 더 많은 은퇴 의료인들이 의료 봉사에 나섰으면 좋겠다 ” 고 말했다.

 


가장 멋진 노후


어르신 봉사단은 한 사람이 그만두면 다 같이 그만두기로 해서 아무도 그만하겠다는 말을 못 꺼낸다고 한다. 이영자 어르신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몸이 힘들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  처음에는 내가 얼마나 이 일을 하려나 싶었는데 이제는 정이 들어서 내 일이라 생각하며 하고 있지. 우리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일찍 돌아가셔서 아픈 노인 분들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 우리 남편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봉사 활동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면서 집안 일까지도와줘. 남에게 봉사하다 보면 내가 더 행복하고 배우는 것도 많아.  ”


평균 수명 80세의 노령화 시대. 60세 정년이면 은퇴 후에도 20여 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일만큼 멋진 노후가 또 있을까. 의료봉사단 어르신들을 본받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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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의 문화유적에 대해 설명해 드립니다!”

 
  오랫동안 직장, 학교, 가정에서 일해 온 고창석, 최화자, 구자성 어르신은 송파구에서 문화해설사로 활동
  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노후 시간을 어느 누구보다 보람차게 보내는 어르신들을 만나
  보다.

 

학생, 일반인들에게 우리의 문화 유적 설명


푸릇푸릇 올라온 잔디가 있는 송파, 석촌고분 정문에 어르신 세 분이 문화해설을 위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10분이 지났을까. 어르신들께 문화유설을 듣고 싶다고 요청한 방이초등학교 학생들이 석촌고분에 도착했다.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한 어르신들은 고분으로 향했다.


“풍납토성은 백제의 도성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석촌고분에는 8개의 무덤이 있는데, 그 중 적석총은 제 13대 왕인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근초고왕은 왕권강화와 정복 사업을 통해 고대국가의 기반을 확립한 왕으로, 적석총은 다른 무덤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큽니다. 돌로만 쌓은 것이 특징이죠.”


학생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고창석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듣는다. 미리 준비해 온 수첩에 열심히 적는 학생도 보인다고 어르신은 설명 중에 가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학생들 역
시 궁금한 사항을 여쭤본다.


방이초등학교 이명지 교사는“근처에 석촌고분이 있어도 잘 오지 않았어요.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다녀도 현장에 대해 공부하거나 설명을 들은 적이 없는데, 문화유적 해설 어르신을 통해 전문적인 설명을 듣게 되어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문화재에 대해 오늘 많이 알게 될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정년퇴직 후 찾은 보람된 나의 직업

고창석, 최화자, 구자성 어르신은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기 전 회사원, 주부, 교사로 지내왔다. 고창석 어르신은


“35년 동안 회사를 다니다 퇴직한 후 일 년 정도 여행하고 쉬니 무척 답답하고 지루했어요. 나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을까 찾았는데 단순한 일자리밖에 없더라고요. 마침 인터넷에 문화해설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는데 호기심도 생기고 자신도 있었어요. ”라며 시작하게 된 동기를 이야기했다.


구자성 어르신 역시 38년 동안 교직생활을 정년퇴임한 후 역사에 관심이 많고, 남을 가르치는 봉사를 찾다 시작하게 되었고, 최화자 어르신은 남편이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도전하였다.


“남편이 문화해설사로 저보다 1년 먼저 활동했어요. 집에서 열심히 역사를 공부하고, 문화 답사를 다니는 모습이 굉장히 좋아보이더라고요. 저도 아이들에게 역사 인식을 키워주고 싶어 문화유적 해설을 시작하게 되었죠.”


어르신들은 송파구의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 국사편찬위원회 등 교수진에게 30시간 이론 교육을 받았다. 공주며 부여, 익산 등 문화유산이 많은 지역과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답사하며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갔다.


처음에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공부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역사와 유적에 관해 찾아보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역사 관련 책도 많이 봤다고. 어르신들끼리 서로 역사에 관한 좋은 자료가 있으면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문화유적 해설사로 활동 예정

문화유적 해설을 하다보면 집중하지 않는 학생도 있지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하여 집중적으로 듣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하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함께 호흡하며 문화유적에 대해 설명하면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 들고, 즐거워요. 요즘 어린이나 학생들에게 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역사에 대한 가치관이 잘 이뤄지면 나라를 위한 마음도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


어르신들은 요즘 학생들이 영어와 수학 같은 과목만 공부하지 국사는 등한시하는 것 같다며 학생들에 대한 역사 교육이 강화해야 된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고창석 어르신은 “역사를 공부하다보니 무척 매력 있는 학문이에요. 저 역시 예전에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어요. 국가의 정통성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역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근처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는데 처음에는 고분인 줄도 몰랐어요. 그때 알아서 사진을 찍었으면 ‘요즘 유용하게 쓰였을 텐데…’ 라는생각이 들어요.”라며 웃는다.


어르신들은 문화유적해설사로 활동하면서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이 좋아졌다고 한다. 일부러 집에서 석촌고분이나 유적지까지 걸어가고, 해설을 하면서 몇 시간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건강해졌다고.

최화자, 구자성 어르신은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공부해서 유적에 대해 알고 싶은 시민, 외국인들에게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설을 하고 싶다고 밝혔고, 고창석 어르신은 “역사 관련 학과로 학사편입을 하여 공부를 더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며 다시 문화유적 해설을 위해 정문으로 향했다.

 

글 김지영/ 사진 도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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