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없는 사회는 행복할까. 

최근 이런저런 스트레스의 근원들을 생각해보며 삶은 끝없는 경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중에 이제껏 경쟁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태어나서부터 우리는 경쟁을 한다. 그것이 소모적 경쟁이든 선의의 경쟁이든 그 유형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쟁이 대부분이다. 경쟁이 끝나면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린다. 입시를 치러야 하고, 입사 시험을 봐야 하고, 승진해야 하고, 부자여야 하고…. 


물론 사람마다 써 내려가는 인생이 다르고, 행복의 가치도 다르다. 그리고 최근에는 획일화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해하는 일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지난 4월에는 피겨 선수였던 김연아 선수의 라이벌로도 유명했던 아사다 마오 선수가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스케이트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 웃는 얼굴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역 무대에서 물러나 마지막 고별인사를 하는 아사다 마오는 울먹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새로운 꿈을 이야기하는 아사다 마오 선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김연아 선수의 자서전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는 아사다 마오를 두고 “왜 하필 저 아이가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났을까” 한탄을 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해 같은 달(1990년 9월)에 태어난 동갑내기 라이벌과 늘 비교됐고 경쟁해야 했다. 주니어 시절에는 아사다 마오 선수가, 시니어 데뷔 후엔 김연아 선수가 주목받았다. 


피겨 인생으로만 보면 김연아 선수가 우월했다. 늘 김연아 선수와 비교됐다. 은퇴마저도 김연아 선수를 뛰어넘지 못한 실패한 인생으로 설명하는 글들이 많았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하며 다음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은 반짝였다. 우리 사회 기준에서 보면 그의 피겨 인생은 늘 뒤처지고 패배로 얼룩진 ‘불행한 인생’이었겠지만 그는 당당해 보였다. 앞으로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아사다 마오 선수의 인터뷰를 보며 경쟁에서 진다는 것은 불행한 삶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는 비록 김연아 선수보다 월등한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그만의 ‘트리플 악셀’로 피겨 팬들의 마음속에 남았다. 




요즘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고백을 방송에서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방송·연예계에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기는 부담 때문에 병을 얻었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인들은 오죽할까. 매일 매일 치열한 삶의 터전에서 경쟁한다. 물론 경쟁이 인간에게 동기 부여를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인정한다. 하지만 ‘건강한 경쟁’이어야 하지 않을까. 경쟁에서 지더라도 이것이 끝이 아니며, 좌절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글을 쓰는 내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2의 아사다 마오에게, 아니 경쟁에서 완주한 꼴찌에게도 손뼉을 쳐 줄 수 있는 문화일 것이다. 


경쟁에서 지는 것이 인생의 실패로 이어지는 점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모두 애정 어린 격려로 보여주고,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마음으로 여유를 가진다면 늘 ‘지기만 하는 인생’을 사는 삶은 없지 않을까.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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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감성이 마른다. 음악을 들어도, 영화를 봐도 뭉클함이 무뎌진다. '감성체감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감성이 둔해지면 감정은 예민해진다. 마음의 윤활유인 감성이 메마르니 '마음의 회전'이 거칠어지는 탓이다. 나이 들수록 화내는 일이 잦아지는 이유다. 물론 일반적인 얘기다. 나이가 먹으면서 오히려 감성이 풍부해지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기억력도 약해진다. 기억이 흐려지면 잔소리(?)가 많아진다. 한 말 또하고, 또 그말을 반복한다.

 

 

 

젊다고 감성이 다 풍부한 건 아니다. 노년보다 감성이 빈약한 청춘도 많다. 사색에 게으르고, 책과 거리를 두고, 편협한 논리에 찌들고, 자연을 멀리하면 감성이 움틀 토양은 그만큼 척박해진다. 그래도 감성이 넘쳐나면 타고난 천성 덕이다. 유전의 축복이다. 더그 라슨은 "결코 눈덩이를 던져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 않으면 당신은 노화의 손아귀에 꽉 붙잡힌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감성이 척박해지면 20, 30대 청년도 정신적으로는 이미 노인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감성체감의 법칙'이 누구에게나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모든 것은 일단 방향을 잡으면 그쪽으로 쏠림현상이 강해진다. 그러니 게으름도, 거짓말도, 미루는 습관도, 남의 약점을 들추는 버릇도, 남의 공을 가로채는 뻔뻔함도 쏠림이 빨라지기 전에 방향을 틀어야 한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습(習)의 중요성을 잘 일깨운다. 모든 것에 가속도가 붙으면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바로 뒤집힌다. 말라가는 감성에도 관성은 예외없이 적용된다. 그러니 시들해지는 기미가 보이면 감성에도 빨리 물을 줘야 한다.

 

 

 

'수확체감의 법칙'. 경제공부를 안 한 사람이라도 귀에 익도록 들어본 말이다. 노동이나 자본을 투입하면 처음에는 투입단위당 생산량이 늘어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투입단위당 생산량이 갈수록 적어진다는 이론이다. 감성 얘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수확체감이란 경제용어를 꺼낸 것은 정신영역인 감성도 물질영역인 생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감성도 인생 초반에는 '감성체중'의 원리가 적용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감성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다만 그 '어느 순간'은 삶의 길이만큼이나 시점이 제각각이다. 더그 라슨의 비유대로 어떤 사람은 20대 초반에 이미 눈덩이를 던져보고 싶은 충동이 없어지고, 어느 사람은 80대에도 눈덩이를 던지며 아기처럼 즐거워한다. 거울을 보며 '나는 나이에 비해 젋다'고 되뇌면 나이에 비해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실제로 훨씬 젊게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건강에 지나친 자신도 위험하지만 스스로가 '약골'이라고 지나치게 위축되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성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면 감성이 메마른다는 '감성체감의 법칙'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은 중년이나 노년의 지혜가 아니다.

 

 

 

건강은 육체만의 얘기가 아니다. 육체뿐 아니라 마음, 정신, 영혼이 골고루 건강해야 진짜 건강이다. 마음은 삶의 소소한 것들을 보는 시선이다. 이런 잔잔한 시선(마음)이 모아져 정신을 만든다. 정신은 마음의 모둠이다. 영혼은 정신의 모둠이다. 그러니 어떤 이의 영혼이 고결하다 함은 그의 마음이 고결하고 정신이 맑다는 의미다. 순수한 영혼을 마주하면 나의 영혼도 맑아지는 듯 하다. 영혼은 전염병만큼이나 전파력이 강하다. 부러운 마음은 닮고 싶은마음이다.

 

정신의 윤활유인 감성이 말라가는건 삶이 그만큼 건조해진다는 얘기다. 삶이 건조하다 싶으면 '위치'를 바꿔보자. 발의 위치를 바꾸면 만물이 달라보이고, 생각의 위치를 바꾸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익숙한 주변의 것을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보자. 그럼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친구도, 아파트 옆 가로수도 많은 게 달라보인다. 감성을 깨우는 삶은 주름살을 극복하고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 또다른 건강관리법이다.

 

 
글 / 한국경제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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