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저는 ‘어머니’라는 그 위대한 이름이 가슴 한편을 적십니다.

 

 

 

 

월사금이 없어 초등학교 입학도 못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3년전 4남 3녀의 셋째로 태어나, 어린아이로 전쟁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가난과 배고픔의 시린 상처는 추억의 가락으로 늘 읊어주시는 어머니!

 

딸로서는 첫째인 어머니는 한국전쟁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받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조락(凋落)을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오셨습니다. 밥조차 굶을 때가 많았던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아들에게는 힘들게 마련해주던 ‘월사금(학교에 다달이 내던 수업료)’을 딸인 어머니에게는 허용되지 않았고, 입학금조차 없어서 초등학교 입학도 못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학교를 가는 그 시간에 어머니는 땔감으로 쓸 장작을 구하기 위해 아들들을 대신하여 산에 나무를 하러 가시거나, 밭에 나가 농사를 지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남들이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가는 게 부럽고,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어머니는, 배움의 열정을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녹이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손주들 생일카드에도 몇 글자 적어 주시고, 디지털 중독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과는 다르게 탁월한 계산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나시며, 세 들어 살고 있는 외국인과도 간단한 일상 영어회화는 가능하답니다. 

 

 

 

 

어머니는 가난하여 쌀이나 보리쌀로 된 밥을 먹기는 정말 힘든 시기에 故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 중의 일환인 사방사업에 참여하면서 근로의 대가로 밀가루를 받아 수제비나 칼국수를 만들어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땔감을 해오고, 밭에서 일을 하고 와서도 장녀라는 이유로 식구들 빨래며, 군불을 지펴 밥을 하는 일도 항상 어머니 몫이었으며, 더구나 자식을 7명이나 나으신 할머니 탓에 막내로 태어난 남동생과 여동생을 할머니 대신으로 업어 키우셨다고 합니다.

 

 

 

 

 

 

 

머리에 이고 지고

 

 

   

 

 

이름도 모른 채, 시집가는 날 처음 얼굴을 보고 시집 온 어머니는 가재도구라고는 솥단지와 밥그릇, 국그릇, 남비, 수저가 전부인 살림살이로 시작을 하여,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를 일구고자, 등에는 어린 자식을 업고 봇짐 장사를 하기도 하고, 부두에 나가 어선에서 들여온 생선을 정리해 주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셨습니다.

 

 

 

 

 

머리춤에 이고 지고
등에는 젖먹이 어린 자식

하나만 더 팔자
내 새끼 밥 먹이고
하나만 더 팔자
내 새끼 옷 입히고

연탄불 피워
보글보글 된장찌개
아궁이 지펴
구들장 속 뜨근한 밥

세월이 가고 가도
조왕 앞에 정화수 떠놓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아파도 아프지 못할 날들이 무수히

 

 

 

선원의 직업을 갖게 된 아버지께서 집에 자주 오지 못하시어 당신 혼자서 네 명의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어린 자식을 등에 업고, 손을 잡아 걸리기도 한 채, 또아리를 튼 머리 위에 커다란 짐을 얹어 장사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제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자식이 멀리 달아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허리춤에 긴 끈을 매달아 연결해두고 남의 집 놋그릇을 광택이 나도록 닦아주어 품돈을 버시기도 하셨습니다.

 

난을 이기고자 아끼고 저축하는 것이 일상이 된 어머니는 아버지의 월급 중 절반 이상을 저축하셨고, 저축을 먼저하고 쓸 돈을 쓰는 어머니의 저축방식으로 인해 자식들의 준비물을 준비해줄 돈이 없어서 근처에 사는 외할머니에게 빌리러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었죠. 그래도 자식들이 혹여나 가난한 살림으로 기가 죽을까 염려하여 보리밥 가득한 도시락 밥통 위에 계란 후라이를 덮어주기도 하시고, 아픈 자식이 있으면, 평소 먹어보지 못한 귀한 과일을 사주기도 하셨습니다. 

 

 

모두를 버려도

모두를 잃어도

자식만큼은 품으로 안고

고진 역경 이겨내며

주름진 이마 위에

묻어온 한 많은 세월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며

가슴으로 끌어 안은 당신

 

 

 

아버지께서 한 명의 자식 혼례에만 함께 하신 후 지병으로 일찍 작고하시자 어머니는 짝을 이루지 못한 남은 세 명의 자식들을 혼자서 모두 혼례를 치러 주셨습니다.

 

무성한 가지들

하나 둘 제 짝을 지어주고

건재한 뿌리 하나로

든든한 버팀목 되어주신 당신

 

지병이 있으신 아버지의 병간호와 더불어 자식들이 맞벌이로 아이를 양육하기 힘들게 되자 손주까지 맡아서 키우시면서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내리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몸이 힘들고 아파도 눈물 머금으며 버텨내면서 힘든 내색 하지 않으셨던 분이 바로 어머니 당신이셨습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내리 사랑

살가운 감성 온 몸으로 뿌리고

아파도 아프지 못할 날들이 무수히

마냥 안간힘으로 눈물 머금어 이겨내는 당신

 

 

칠십을 바라보는 연세에 관절염과 요통으로 두 다리 뻗지 못한 채 깊어만 가는 밤을 지새우며, 아파도 아프지 못할 날들이 많은 이유는  ‘어머니’라는 그 이름 하나로 견뎌내시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바람 없는 이 밤도 두 다리 뻗지 못해

겨운 애환으로 잠 못 이루지만

모정으로 살아온 높이만큼

크신 사랑 하늘에 닿아

엄동 설한에도 꽃을 피울 분

...........

............

 

 

 

 

 

사랑해서 아픈 것이고, 사랑해서 슬픈 것이고, 사랑해서 행복한 것이지만, 어머니 당신께만은 사랑해서 행복한 여생의 삶만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

 

머리춤에 이고 지고
등에는 젖먹이 어린 자식

하나만 더 팔자
내 새끼 밥 먹이고
하나만 더 팔자
내 새끼 옷 입히고

연탄불 피워
보글보글 된장찌개
아궁이 지펴
구들장 속 뜨근한 밥

세월이 가고 가도
조왕 앞에 정화수 떠놓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겨울처럼 시린 손끝
터벅터벅 거친 손바닥
그 손길에 자란 자식 손주들

당신의 그 이름 하나로도
제 가슴엔 등불이고
울컥울컥 목이 메는
불망의 어머니

넉넉하고 속 깊은 당신
내 가슴에 햇살로 머물러
죽어서도 나를 비추는
등불로 간직하고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애인 어머니!

 

 


어머니 당신은

 

모두를 버려도

모두를 잃어도
자식만큼은 품으로 안고
고진 역경 이겨내며

주름진 이마 위에
묻어온 한 많은 세월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며
가슴으로 끌어안은 당신

무성한 가지들
하나 둘 제 짝을 지어주고
건재한 뿌리 하나로
든든한 버팀목 되어주신 당신

목숨보다 소중한 내리 사랑
살가운 감성 온 몸으로 뿌리고
아파도 아프지 못할 날들이 무수히
마냥 안간힘으로 눈물 머금어 이겨내는 당신

어머니 당신은
바람 없는 이 밤도 두 다리 뻗지 못해
겨운 애환으로 잠 못 이루지만
모정으로 살아온 높이만큼
크신 사랑 하늘에 닿아
엄동 설한에도 꽃을 피울 분

그런 나의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주말에 이것저것 꼼꼼히 적은 메모지를 가지고 마트에 가서 장을 봐서 시골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 댁을 갔다.
차를 넓은 마당으로 들이
밀어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문을 열고 나오셨다.
오는 자식 기다리시느라 문밖을 내다보기를 수차례 하신 것이
눈에 선하다.

 

짐을 내려서 일부는 냉장고에, 그리고 냉동냉장이 필요 없는 것들은 그냥 바깥에 정리하였다. 시골에 가면 내가 제일 먼저 돌아보는 코스인 넓은 뒤뜰에 가보니, 수년전에 뒤뜰에 심어놓은 산다래 나무에 생수병과 작은 비닐 주머니들이 과일처럼 달려있다. 벌써 꽃도 피지 않는 다래나무의 열매가 달릴 리도 없고, 또한 열매의 크기, 색깔, 모양을 내가 이미 알고 있고, 또한 다래나무의 열매를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지금 다래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 열매가 아니라는 것은 알수가 있을 정도로 이상한 풍경이었다.

“어머니 다래나무에 달아 놓은 게 뭐예요, 왜 달아 놓으신 거죠?”고 내가 물으니,

“응, 산다래나무의 수액이 몸에 그리 좋단다”하시

자식들에게 나눠서 먹게 하려고 그렇게 나무에 요란한 치장(생수병 큰것, 작은것, 비닐팩 여러개 등)을 하셨단다. 고로쇠 나무의 수액은 몸에 좋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알려졌는데, 산다래나무의 수액을 마신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며칠째 모으셨는지 큰 프라스틱 페트병으로 2병과 작은 페트병 2병이 담겨져 있고, 산다래나무에 달려있는 생수병과 비닐팩에는 링거에서 떨어지는 방울 같은 작은 물방울이 느리게 떨어지고 있었다.

당신이 드실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수액을 받을 시도도 하지 않으셨을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순간 가슴이 먹먹하게 되어 하마터면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일 뻔 했다.

전기밥솥에 밥을 짓고 야채를 깨끗이 씻고 돼지목살을 굽고 하여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내 나이도 40대 후반. 돈 벌기 위하여 일하느라 살기 바쁘고 자식 키우고 하다보면 부모님이 기억날까 하는데...대한민국의 아버지가
되어보면 어머니가 더욱 그리운 심정이 된다는 것을 나는 산 경험으로 안다. 주말을 아내와 아이들과 놀면서 보내는 것도 보람 있고 즐거운 일이지만, 어머니 댁을 방문하여 이야기 하고 식사하고 즐거운시간을 보내다 돌아오면 그 가슴 벅찬 행복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밤중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님 집에 들러 산다래나무수액이 든 병을 전하였다. 부모님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자식에게
사랑을 더 주지 못하여 안타깝고 자식은 끝까지 부모한테서 사랑을 받기만 하는 생각이 든다 .

 어머니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머물러 주세요.

 


권용원 / 경북 안동시 정하동


 

로그인없이 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누이 댁에 가며 이틀동안 제게 휴가를 줄테니, 저 하고싶은 것 마음대로
  하며 이틀을 보내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이게 웬 떡이냐하며 친구랑 영화를 보러갈까, 바람을 쐬러
  갈까 하다가 친정에 혼자 계실 엄마를 뵈러 가기로 했습니다. 냉장고를 뒤져 멸치를 볶고 장조림도
  만들고 몇 가지 마른반찬을 챙겨 친정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막내딸을 보신 우리 엄마, 과연 어떤 표정이실까 생각하니 세 시간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친정집은 텅 비었더군요. 친 자매처럼 지내시는 뒷집 할머니 말씀이 시장에 가셨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께서는 돌아오시질 않습니다.

 

돌아오시면 드리려고 압력솥에 밥을 안쳐놓고 돼지고기 넉넉히 넣어 김치찌개도 맛나게 끓여 놓았지요. 집에 들어오시자 마자 화로에 숯불을 담아 읍내서 사온 꽃등심도 구워드릴 요량이었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새 무료함을 때울 겸 청소를 시작했지요. 우선 방 청소를 끝낸 다음 철 수세미에 비눗물을 풀어 켜켜이 앉은 싱크대의 먼지를 닦아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더군요.

 


그러나 그때까지도 엄마께서는 돌아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대체 뭘 하러 가셨기에 늦도록 오시지 않나, 걱정스런 마음에 막마중을나가려는참, 불이 켜진 걸 보고 깜짝 놀라신 우리 엄마 눈이 동그래져 들어서십니다. 반가운 마음에 철딱서니 없이 와락 안기는데 우리 엄마, 들고 계시던 함지를 슬그머니 한쪽으로 치우시더군요.


 

그걸 놓치지 않고 뭐가 들었나 하여 보니 팔다 남은 나물이 들어 있지 않겠어요?  세상에, 그 시간까지 노인네가 시장에 계셨다는 겁니다. 나물 몇 가지 팔아봤자 얼마나 한다고 청승을 떠는 엄마를 보니 속도 상하고 화도 났습니다.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은 뭐 하시고 남세스럽게 왜 그러시냐고 엄마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막내딸년 핀잔에 속이 상하실 만도 하시련만 엄마는 늙은 몸 그저 놀려 뭐하냐고 하십니다. 힘든 일도 아니고 쉬엄쉬엄 재미삼아 하는 일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러나 어떤 자식인들 칠십 넘은 노인네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나물 장사 하시는 걸 그저 보고만 있을까요.


화도 내었다가, 제발 하지 마시라고 애원하는 딸자식은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엄마, 고기를 구워 제 접시에 날라 주시느라 여념이 없으십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자식들 먹이느라 언제 입이 호사 한 번 해봤냐고 하시며…. 다른 엄마들은 집에서 편히 쉬는 겨울철에도 엄마는 냉이와 시래기, 칡뿌리나 약초 등 돈이 될만한 것들을 함지박으로 가득 담아 읍내장으로 향하곤 하셨지요.

 

 

그리고 시장이 파한 후에도 차비 몇 푼을 아끼신다고 시오리도 넘는 길을 걸어 돌아오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고생만 하신 엄마가 이제 편히 쉬셨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시장에 나물을 팔러 다니시니 자식으로서 여간 속상한 게 아닙니다. 그날 밤, 엄마와 굳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지요. 다시는 읍내로 나물 팔러 다니시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터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탄 버스가 멀어지자마자 당신은 호미를 챙겨 들고 양지쪽으로 냉이를 캐러 가실겁니다. 그리곤 안다니시는 척 시치미를 떼시겠지요. 그게 바로 우리 엄마의 사랑 법입니다. 엄마께서 주신 냉이를 살짝 데쳐서 냉동실에 두고 조금씩 아껴 먹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냉잇국 한 사발에 마음은 고향 봄 언덕에 앉은 듯 따뜻해지고 기운이 펄펄나니 보약이 따로 없습니다.

 

 " 엄마, 오래도록 건강하셔서 자식들 곁에 언제나 봄볕처럼 머물러 주시길 빕니다. 사랑합니다! "


이효민/ 인천시 연수구

  

로그인없이 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는 특별한 원인도 없이 백혈구 수치가 저하되는 백혈구 감소증으로 종합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리고 퇴원 후에 조금만 일을 하셔도 피곤해하셨지만, 쉬면 되겠거니 하며 지내셨다. 
  얼마 후에는 얼굴에 반점 비슷한 것이 생겨서 동네 피부과에도가 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모처럼 가족끼리 기분 좋게 여름휴가로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하고 난 후로 며칠 뒤 어머님께서 몸살을 앓고 나시다가
점점 몸이 부으시며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 심지어 복수까지 심하게 차셨다
.
대학병원에서 여러 검사 후 내려진 진단은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


그 당시 나는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지만, 본과 1학년을 바라보는 예과생으로서 막연하기만 하였고 찾아본 바로는
류마티스
관련 질환의 일종으로 자가면역반응으로 생기는 질환이라는 것 밖에 알 수 없었다. 그 루푸스가 신장을 침범하여
루푸스 신염이
발생한 것이다.

일단, 어머님을 모교 병원 류마티스 병동에 입원시키고 스테로이드 치료와 여러 치료를 병행하였다.
어머님께서는 입원해 계시는 동안에도 집안 걱정, 자식들 걱정하시느라 제대로 쉬시지도 못하고 여느 어머님들처럼 밥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어릴 때부터 어머님께서 몸이 편치 않으셔서 내가 의대에 간 것이기도 하지만, 환자들을 볼 때마다 

  “내가 과연 잘 해드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생기기도 하였다.
솔직히 힘들어하시는 어머님을 볼 때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어머님께서는 치료에 반응하셔서 복수도 빠지고 붓기도 빠지고 신장기능도 회복이 되셔서 퇴원을 하시게 되었다.

퇴원하실 때는 계절도 바뀌고 길가에는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침마다 그 병동을 회진하는 의사가 되었다. 아직은 전공의지만 아침마다 회진을 돌 때면

보호자 침대에서 자고 회진을 기다리던 그 당시 생각이 난다. 의료진의 따뜻한 한 마디 한 마디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치료약이며 위안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어머님을 괴롭혔던 루푸스가 나로 하여 금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하라고 주신 선물이 아닐까.

우리 주위에는 질병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어떤 질병인지 모르고 지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
(루이사)’이라는 모임에도 가입하여 후에 전문의가 되면 무언가 도움이 될 일을 찾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회진을 돌 때마다 그때 다짐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 히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다.

 

                                                                                                                          이승조/ 서울시 광진구

 

로그인없이 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낫처럼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나를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더 말씀하지 마시오 사람들이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 고려속요 사모곡(思母曲)


매년 추석과 설날에 어머니는 식구들에게 양말을 한 켤레씩 선물하신다. 처음 시집오던 해부터 받았으니 어언 십 년이 넘게 이어져온 선물의 역사다. 몸이 편찮으시거나 아무리 바쁜 일이 있을 때도 어머니는 어김없이 장으로 가셔서 식구들 수만큼의 양말을 사오셨다.


사실 처음엔 어머니의 양말선물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여느 어머니들 또한 명절이 되면 으레 자식들의 명절빔이나 양말 한 켤레 정도 준비하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작년 설 때의 일이다. 당시 어머니는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 해 가을 고추를 수확하던 어머니는 부주의로 손수레와 함께 개울로 곤두박질쳤고 허리와 다리를 많이 다치셨다. 안 그래도 오랜 지병인 관절염 탓에 고생을 하시던 터였다.

명절을 앞두고 시댁에 내려가니 어머니는 그때까지 지팡이 없이는 운신조차 힘든 상태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성치 않은 몸으로 읍내까지 가셔서 양말을 사 오셨다는 것이다. 길도 미끄럽고 지팡이 없이 걷는 것도 여의치 않아 떡이랑 제수거리들은 아버님께 부탁을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그만 자식들에게 줄 양말을 사오라는 걸 깜박하신 모양이었다. 아버님은 까짓 양말 한 켤레가 대수냐고 말리셨지만 어머니는 기어이 읍내에 나가는 차를 빌려 타고 양말을 사 오신 것이다.

차례를 모신 뒤 부모님께 세배를 마치고 나자 아버님은 쌈지를 열어 세뱃돈을 건네시고 어머니는 자식들마다 고루 양말 한 켤레씩을 선물로 주셨다. 자식들은 이구동성으로 편찮으신 와중에 읍내까지 가셔서 양말을 사 오실 게 뭐냐고 지청구를 해댔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지만 늘 하던 걸 안 하려니 서운하고 맘이 허전해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냥 이 어미 마음이려니 하고 신거라.”  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뵈니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릴 때 설날이 되어도 설빔을 얻어 입은 기억이 없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들은 많으니 가래떡이나마 뽑아 조상들께 떡국 한 그릇씩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을 살림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설날이 되면 자식들 몫으로 양말 한 켤레씩은 꼭 잊지 않고 준비하셨다. 별 무늬도 없이 밋밋한 빨간색 양말을 서로 신겠다고 다투던 세 자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명절을 앞둔 대목장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어머니는 양말을 고르셨을 것이다. 자식들이 열한 명에 배우자와 손자들 몫까지 챙기느라 몇번씩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며 숫자를 헤아렸을 당신이다. 한 켤레에 얼마 안 하는 양말이지만 자식들 수가 만만치 않으니 양말 값도 무시 못할 액수였겠다. 또한 손자들 성별이며 연령대까지 배려하느라 양말 한 켤레 고르는 데도 그만큼 품이 들었을 터이다.

분홍색에 귀여운 토끼 캐릭터가 들어간 양말은 유일한 손녀인 딸애 몫, 파랑색에 곰돌이 캐릭터가 들어간 것은 딸애와 나이가 같은 외손자 몫, 길이가 짧고 맵시 있는 건 막 멋을 부리기 시작한 중학생 조카의 몫… 각자의 개성만큼 모양도 빛깔도 다른 양말들이다.

무릇 선물이란 값어치를 떠나 주는 이의 정성이 으뜸이 아니겠는가. 새 양말을 신고 날아갈 듯 집 안팎을 오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봄 햇살만큼이나 자애롭다.

                                                                                                                           (조현미 경기 일산 서구 대화동)

 

로그인없이 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 건강천사 블로그는 네티즌 여러분의 참여로 만들어 집니다 ▶

   독자 여러분들의 소중한 글과 사진을 보내주세요.  채택되신 분께 "월간 건강보험 소식지"
   와  "건강천사 블로그"에 게재해 드리며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보낼곳]
    우편접수 : 121-749 서울 마포구 염리동 168-9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실 간행물 담당자 앞
    이메일 접수 : jemi0945@naver.com
    필자의 성명, 전화번호, 주소,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를 반드시 기재바랍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건강천사'는 국민건강보험이 운영하는 건강한 이야기 블로그 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공지사항

Yesterday1,562
Today1,408
Total2,016,586

달력

 « |  » 2019.8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