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능력은 무한대다. 꿈도 꾸지 못한 일을 해낸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 위대한 동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비롯한 7대 불가사의도 인간이 이뤄냈다. 그 옛날, 맨손으로 일궈낸 것이다.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기적을 만들게 했을까. 끝없는 욕망과 자신감으로 본다.

 

일을 하다보면 난관에 부딪힐 때가 적지 않다. 외적 요인이 많지만 내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안 되는 이유는 100가지를 더 댈 수 있다. 만들어 내기도 쉽다. 이런 저런 상황과 조건을 들며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매번 핑계와 이유를 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선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제자리걸음을 고수하는 이들이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 조직에서도 그런 진취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대접받고, 성공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이다. 성공이 있으면, 실패도 있기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그런데도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도전을 멀리한다. 국가 지도자는 도전 정신을 고취시켜야 한다. 그 자신부터 앞장서야 함은 물론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다. 매사에 자신감을 갖자. 그래야 사고도 긍정적으로 바뀐다. 

 

  

 

 

주변에 노는 젊은이가 너무 많다.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취업준비생이 넘쳐난다. 9급 공무원 시험에만 20만명이 몰려드는 우리나라다. 분명 잘못된 현상이다. 왜곡된 구조랄까. 그럼에도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을 호소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청년들이 힘든 일을 기피하거나 안정만 추구해서 그렇다. 도전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일자리 얻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대기업이나 공무원만 바라봐선 안 된다. 그런 직장이 최고는 아니다. 조금 작은 기업에 들어가도 얼마든지 꿈을 펼칠 수 있다. 자기 의지의 문제라고 본다. 

 

내가 이즌잇에서 기자/PD 스터디 무료강좌를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이즌잇 측의 강의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올 2월부터 지금까지 3기가 끝났는데 정작 들어야 할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모두 10여명의 후기 우수작 당첨자 중 재학생은 2~3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가정 주부, 공무원, 회사대표 등 이었다. 재학생 가운데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 화학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이 여학생이야말로 자신감에 차 있고, 도전정신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진행 중인 무료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다. 국내 젊은이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작은 성공이라고 거두려면 적극성을 띠어야 한다. 거기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 대충, 적당히 해서는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 악착같이 매달려야 한다. 그러려면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하다.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단언컨대 부지런하면 낙제는 면할 수 있다. 내가 새벽마다 나를 되돌아보면서 다짐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는 솔직히 부러운 게 없다. 세 끼 밥 먹고 건강하니 그만이다. 더 이상 바라지도 않는다. 자리에 대한 욕심도 버린지 오래다. 지금 상황에 만족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다.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대신 자신감과 배짱이 있어야 한다. 긍정적이어야 가능하다. 나는 초긍정주의자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부인하지 않는다.

 

 

 


내 입에서 '노'라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예스" 아니면 "한 번 해보자"라고 한다. 기자/PD 스터디에서도 그것을 강조했다. 2기엔 '자신감' 스터디로 문패를 바꿔보기도 했다. 내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누구도 걷지 않은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갈 길이라면 그대로 고다. 지금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70까진 현역으로 뛰고 싶다. 내가 원한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러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대충대충 하면서 되는 일은 없다.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나부터 실천해야 함은 물론이다. 오늘 새벽도 힘차게 출발한다.

 

글 /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오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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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덜 탐한다고 하면 옳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그렇다. 상대방의 돈벌이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대구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적이 있다. "출연료 얼마나 받았어요" 여러 사람에게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결론은 아직 모른다. 얼마든 줄 모양이다. 방송국에 갔더니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내라고 했다. 거기에 금액은 나와 있지 않았다. 입금돼야 얼마인지 알 수 있을 터. 지금까지 방송에 세 번 나갔지만 출연료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주면 받고, 안 줘도 그만이다. 맨 처음 방송 출연은 국군의 방송 라디오.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10여분간 생방송으로 전화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몇 만원인가 받았든 기억이 난다.

 

두 번째 방송 출연은 2011년 한경와우TV 스타북스. 세 번째 에세이집인 '여자의 속마음' 저자로 나갔다.  그런데 1시간 출연하고도 돈을 받지 않았다. 그냥 두라고 했더니 주지 않았다. 인세도 마찬가지. 그동안 8권의 에세이집을 냈지만 특별히 인세로 받은 것은 얼마 안 된다. 출판사에서 챙겨주면 받고, 안 줘도 이상할 게 없다. 돈을 생각하면 순수성이 사라진다. 나의 지향점은 순수 그 자체. 세 끼 밥 먹고 건강하면 되지 않겠는가.

 

 

 

 

돈 만큼 치사한 것도 없다.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돈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하직하는 사람도 있다. 슬픈 일이다.  돈은 욕심을 낸다고 벌 수도 없다. 재테크에 관한 책은 여전히 인기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을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영원한 숙제다.

 

 

 

 

돈은 나이들수록 더 필요하다. 우선 나가는 돈이 많다. 이곳 저곳 애경사를 챙겨야 한다. 품위를 유지하는 데도 없어선 안 된다. 병원비도 만만찮다. 자식들도 경제력 있는 부모를 더 좋아한다. 직접 부양하지 않아도 되거니와 용돈까지 얻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노후 대비를 철저히 할 때만 가능한 얘기다.

 

 

 

 

친한 고향 선배와 점심을 했다. 공직에 계셨던 분이다. 40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파다 퇴직했다.  재테크에 관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작은 평수라도 서울 강남에 집을 장만한 것을 주문했다. “강남은 오를 땐 크게 오르고, 소폭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로 그랬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강남북간 차이가 지금처럼 크진 않았다. 나와 아내는 집에 관심이 없다. 한 사람이라도 관심이 있었으면 강남을 두드렸을 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아내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그럼에도 선배의 충고가 왜 공허하게 들릴까.

자랑하고 심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정도가 심한 사람이 있는 반면, 전혀 내색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남들보다 나으면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가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이루면 성취감을 맛본다.

 

 

 

 

가장 치사한 것이 돈 자랑이다. 돈이 많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이다. 진짜 돈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배가 고프다고 한다. 골프연습장이나 헬스클럽에서 자랑하는 이들이 많다.  일정한 직업 없이 돈푼이나 만지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재산목록을 줄줄이 왼다. 남이 들어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지극히 짜다는 것. 커피 한 잔 제대로 권할 줄 모른다. 그러니 대접을 받을 리 없다. 그런 사람들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지인들과 점심을 하면서 돈 얘기가 나왔다. 모두 월급쟁이어서 이런 저런 일화를 털어놨다. 월급쟁이에게 월급을 말하는 것은 대단한 결례다. “자네 월급은 얼마나 되나. 그것 받아가지고 살 수 있겠어.” 이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는 이들이 있다.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받을 수 있다. 보태줄 마음이 없다면 묻지 말아야 한다. 돈 자랑은 제 얼굴에 침뱉기다.

 

돈이 좌우하는 세상이다. 서글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결국 인생의 목표도 그것이 돼 버렸다. 그 가치는 점점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돈이 없으면 좋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까지 끊을까. 다시 말해 돈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지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시골 초등학교 친구가 회사 가까운 곳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다. 아주 성실한 친구다. 가끔 만나 점심을 한다. 강남의 3인조 얘기를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강남에서는 친구 3명이 한 조가 돼 움직인다고 했다. 한 명은 부자, 다른 한 명은 제 밥값 내는 사람, 또 다른 한 명은 부자 심부름을 해주는 사람. 이처럼 두 명은 심심하고, 세 명이 몰려다닌다는 것. 즉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밥값을 내주면서 어울린다고 했다. 따라서 셋 다 밥값을 하는 셈이다.


웃지못할 에피소드다. 실제로 돈이 없으면 친구를 만나기도 어렵다. 밥을 얻어먹는 것도 한 두 번이다. 남이 서너 번 사면 나도 한 번은 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도 멀어진다. 이 치사하더라도 악착같이 벌어야 하는 이유랄까.


글 /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오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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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군.. 2015.06.08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은 정말 사람과는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는 골치 아픈 일이라고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내게 예외적이고 놀라운 경험이 있다. 

 

1993년 여름이었다. 느닷없이 금융실명제가 발표됐다. 증권사에 다니고 있던 나는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갖고 있던 주식이 폭락한 것이다. 이때 나도 모르게 글을 끄적였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듯 싶다. ‘당장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힘들지만 나중에는 이 상황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거야.’ 괴로운 마음도 표현했다. 주식 상품에 들라고 강권한 회사에 대고 욕도 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도 썼다. 생각나는 대로, 손가락 가는 대로 자판을 마구 두드렸다.  

 

신기했다. 불안한 마음이 가셨다. 화가 삭여졌다.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뒤로 나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위암 선고를 받은 날도 그랬다. 분노와 원망을 폭풍 같이 써 갈겼다. 다음날에도 썼다. 그럼에도 내가 감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쓸 것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셋째 날에는 저절로 회개하는 글이 나왔다. 참회의 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이렇게 잘못한 게 많은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두 시간여 글을 썼을까. 암 덩어리가 모두 씻겨나간 것처럼 개운했다.

 

돌아보면, 그 이전에도 힘들 때마다 글을 썼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칠판에 시를 썼다. 친구들이 저녁 먹으러 간 시간에 시 같지도 않은 자작시를 한 편씩 써놓았다. 무슨 생뚱맞은 짓이냐고 놀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내게는 암울한 고3 현실에 관한 고발이고 투정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답답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군에 있을 때는 아예 일기를 썼다. 30개월 간 쓴 일기가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또 이렇게 하루를 보냈구나. 위로가 되었다. 나에 대한 힘찬 격려였다. 

 

 

 

 

애써 외면해왔던 것을 마주하게 한다.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직시하는 데 있다. 회피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글쓰기는 문제와 대면하게 한다. 마음의 상처를 직접 들여다보게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는 시작된다.

 

자신과 대화하게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해야 풀린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미움, 시기, 질투, 배신, 욕망의 금기어들이 그것이다. 이들을 꽁꽁 동여매지 않고 글로 풀어헤치자. 그랬을 때 순화되고 정제된다. 내가 그로부터 해방된다. 스스로 성찰하게 된다.  

 

상처를 다독이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게 한다.

상처는 누군가의 따뜻한 말로 아물지 않는다. 그것을 보듬고 치유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괜찮아’ ‘잘했어’ ‘누가 그랬어? 혼내줄게’ ‘잘될거야’ 나는 요즘도 과거에 썼던 내 글을 보며 또 위로를 받는다.

 

걱정, 근심, 슬픔을 떠나보낸다.

치열한 글쓰기는 이런 감정들을 불태워 날려 보낸다. 진짜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하찮은 것들은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힘을 잃는다는 것을. ‘그까짓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나를 발견하게 한다.

글쓰기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나를 받아들이고 존중하게 한다. 이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 희망을 본다. 주변도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한다.  

 

지금 당장 글을 써보라. 몸과 마음과 인생을 치유하는 경험이 거기에 있다. 필요한 것은 종이와 펜, 그리고 솔직한 영혼뿐이다. 

 

글 /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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