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허준  김광락

단풍나무 그늘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면, 병원 앞 두 그루의 우람한 단풍나무가 그를 반깁니다.
병원의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있는 나무 그늘이 아름답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그 나무 그늘아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한의사 김광락

 

 그는 1961년에 태어나, 1987년 동국대학교 한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한의사였기에, 한의학과의 연결은 자연스러웠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해병대 1사단에서 한의사 군의장교 1호로 근무하면서 영내에 한방진료소를 개설하였습니다. 제대 후 포항에서 한의원을 15년간 운영하면서 틈만 나면 미얀마(Myanmar)와 스리랑카(Sri Lanka) 등지로 단기해외봉사활동에 참가하였습니다.

 

 풍족한 삶을 누리면서, 그는 늘 베푸는 사랑을 떠올렸습니다.
 한의사 김광락은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부파견한의사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의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에서 3년간 근무하였습니다.

 

 

 

  정부파견 한의사로 근무하면서 '글로벌 한의학'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

 

 그는, 처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 병원을 세우게 된 역사를 돌이켜봅니다.

 

1996년 대한한의사협회 산하 KOMSTA(대한한방해외협력병원)는 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 초청으로 타슈켄트 소재 국립 제1병원에 단기 의료봉사단을 파견한 것을 계기로 1997년 6월에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 병원을 개원했습니다.


 당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 내 병원 건물
1개동을 10년간 무상 임대하는 조건으로 병원설립이 정식 성사되어, 정부파견한의사들은 고려인과 우즈베키스탄 현지인 등 80여 명의 환자들을 매일 무료로 돌보았습니다.

 한때 환자들이 1년을 넘게 진료날짜만 기다리기도 했으나, 최근 진료시스템이 보완되었습니다.

 

 예약 환자가 6개월씩 밀려 있을 만큼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데, 이는 한의학이 외국인의 체질에도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향후 FTA(자유무역협정)에 의한 시장개방과 함께 의료분야에 있어 해외시장 진출 시 그 성공가능성을 높여줄 것입니다.


 그는 한국의 KOICA 및 KOMSTA가 자랑스럽고, 그 봉사활동을 처음 시
작한 선배들의 마음과 노력에 다시 한 번 깊은 존경심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KOMSTA와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의 숭고한 사업에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였습니다.

 

 한의사 김광락은 1년 평균 3,200여건의 진료를 실시하였습니다.

 

 또한 150여건의 금연과 금주 및 금마약침 시술을 실시하여 높은 완치율을 보이며 환자들에게 지속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는 타슈켄트 국립 제1의과대학생과 현지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한의학 이론과 실습 강의를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더욱이 척박한 땅에서 혹한의 시련을 극복하고 민족의 뿌리를 이어 온 고려인이 2십만여 명이나 거주하고 있는 이곳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학이 단순히 의술을 펼치는 차원을 넘어 보건 분야 발전과 한국,우즈베키스탄 문화 및 경제협력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처럼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은 동포인 고려인에게는 향수를, 우즈베키스탄에는 국경 없는 무료의술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현지 보건과 의료 환경개선을 위해 힘쓰고,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의학 강의 및 실습을 통한 교육을 실시하는 등 글로벌 한의학을 위해 부단히 활동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노무현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활동하였던 민간단체 ‘사랑의 열매’로부터 긴급환자 수송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앰뷸런스 한 대를 지원받아 의료봉사 관계자들의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는' 봉사에서 '기르는' 봉사로의 전환을 말하다..

 

 한의사들이 수많은 우즈베키스탄 현지인과 고려인 환자를 돌보며 적지 않은 업적을 쌓았지만, 한의학 교육문제는 거의 방치되어 있는 점을 그는 주목하였습니다.

 

 매주 현지 의과대학생들과 관심 있는 병원직원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의사 등을 대상으로 침구학개론 수준의 한의학을 강의하고
있으나, 진정으로 내실을 기해야 될 시점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더욱이 자격증에 준하여 피교육생들이 임상허가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타슈켄트에도 무면허 침구사들이 의외로 많이 활동 중인 것을 보고 KOMSTA도 이제는 ‘주는’ 봉사에서 ‘기르는’ 봉사로의 발상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10년간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다시 시작될 10년간의 KOMSTA는 제2의 도약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더없이 중요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식량자급이 어려운 나라에 당장의 식량을 보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급한 문제일 것이지만, 궁극에는 식량을 스스로 재배하고 자원화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가르쳐 주고, 더 나아가서는 식량을 받던 나라가 더 어려운 곳을 보살피거나 처음 식량을 제공해준 나라와 상호 발전의 파트너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식량문제를 한의학으로 바꿔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 환자치료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새로운 10년 계획으로 젊은 우즈베키스탄 의사 혹은 고려인들을 교육하여 스스로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을 치료하고 한의학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시스템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교육을 받은 우즈베키스탄 의사 혹은 고려인 의사들이 언젠가는 선진 한의학을 보유한 한국을 찾을 것이며, 필요에 따라 한국의 한의사들이 우즈베키스탄에 병의원을 개설하거나 교육기관까지 설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친선한방병원은 KOICA와 KOMATA 그리고 대한한의사협회로부터 연간 3,500여만 원을 지원받고 있으나, 담당 관계자들이 무료진료를 실시함에 있어 발생되는 병원운영비와 열악한 현지 병원환경을 개선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습니다.


 특히 1997년에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10년간 무상임대 받은 것이 만
료 돼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폐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는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수가 날이 갈수록 급증할 만큼 호응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장소의 협소함과 낙후된 의료시설로 인해 양질의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무상임대 기간 만료로 병원자체가 폐쇄된다면 예약대기중인 많은 환자는 물론 장기적으로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정부차원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향후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에는 침구학부가 공식적인 커리큘럼으로 승인될 예정이며, 보건복지부에서는 러시아어 한의학 교재 제작을 위해 지원키로 하는 등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학을 통해 병원과 교육이 공존하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국제협력단의 도움을 받아 금요특집으로 마련된 '한국의 슈바이처들' 시리즈가

 이번 회차를 마지막으로 끝맺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금요특집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하고 따뜻한 글로 사랑받는 건강천사 운영진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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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2011.12.02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정말 큰 봉사 하시는 한국의 슈바이처 여러분 자랑스럽습니다!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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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허준  하동주

 어려운 시기의 고결한 열망

 

 

 

 

 

 

 

 

 

 

 

 

 

 

  김라리사 뻬뜨로브나와 신 아가피야입니다.


  한국한방병원집단에게 모든 환자를 위한 주의 깊고 친절한 태도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타슈켄트 시민들을 원조하기 위하여 봉사활동하시는 닥터 하동주와

  김지연님께 특별히 고맙습니다.

  환자 대부분의 의견을 표현하면 놀랍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의 고결한 노동과 우즈벡 국민을 도와주는 열망에 매혹됩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1997년 10월 10일.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의 한 환자가 한의사 하동주에게 쓰는 편지에는 감동과 고마움이 가득합니다.
  하동주는 1965년에 태어나, 1984년 원광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부파견한의사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우즈베키스탄 ‘김병화 농장’ 보건진료소와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 병원에서 5년간 근무하였습니다.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앞에서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중부에 위치하면서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80년의 지배에서 벗어나 1991년 독립하였습니다.

  병원체제는 구소련의 공산주의체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지역별로 선진국 의료체계를갖추었지만, 약품이 부족하고 의사가 없어 각종 질환으로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최초의 한국사람은 고구려 출신인 당나라 장군 고선지입니다.
  1,200여 년 전에 고선지 장군은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석국을 정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 석국이 오늘날의 타슈켄트입니다. 그리고 구소련에 의해서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한인들의 일부가 지금의 타슈켄트 근방에 정착을 했고, 그 후손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이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고려인 김병화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1905년 연해주에서 태어나서, 다른 한인들처럼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습니다. 그리고 강제이주 직후에 황무지에 물길을 열어놓고 수백만 평의 벌판을 논밭으로 개간하고 식량을 지원한 공로로 구소련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서 노력영웅훈장을 받은 인물입니다.

 

  김병화가 일했던 농장은 원래 ‘북극성 농장’이었는데, 1974년 김병화가 죽으면서 ‘김병화 농장’으로 변경됐습니다.

  김병화가 1940년부터 35년간 농장장으로 있을 당시에, 이 농장은 뛰어난 생산능력 때문에 구소련으로 부터 수차례 훈장을 받았습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을 방문 기념하여 ‘김병화 농장’ 보건진료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는 KOICA와 우즈베키스탄 진출 기업단체의 도움으로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 안에 한국,우즈베키스탄 한방병원이 10년간의 계약으로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한의사 하동주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처음으로 의료 활동을 펼친 한국인입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방진료 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의 개원에 일조를 담당하였습니다.

  날로 늘어나는 환자로 인하여 진료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며, 또한 제 때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여 만성화되고 고질화된 환자를 치료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의료장비 및 의약품으로 인하여 원만한 의료 활동이 힘들었습니다.

 

  저임금으로 인한 간호사 부족으로 한 명의 간호사로 매일 70여명을 진료하였고, 지원금이 부족하여 통역이 없는 관계로 정확한 의사전달이 안되었습니다.

  진료소 내에 난방시설이 작동되지 않아 항상 추웠습니다.

 

  그는 동포 및 현지 주민 대상의 무료 한방진료를 하였고, 대한한의사협회와 공동으로 우즈베키스탄 의료 봉사활동 실시 등 보건 수준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진정한 인술 실천으로 민간 외교사절로서의 양국 우호증진에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의 열악한 의료수준으로 인해 동포와 현지주민들에게 무료로 질병을 치료해주는 한방진료에 대한 선호가 나날이 높아지는데 기여하였습니다.

 

  ‘김병화 농장’ 보건소에서 하동주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그들은 치료를 받으면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초콜릿을 선물하였는데, 그 초콜릿을 간호사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맛은 달콤하였지만 마음만은 씁쓸했습니다.  백인계 러시아인 그리고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그를 아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감사의 편지를 씁니다.

 

 

 

  존경하는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 귀하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김병화 집단농장의 주민들은 당신께 글을 드리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이 독립한지 4년이 되었는데 이는 매우 짧은 기간 입니다.
  그러나 공화국은 그 동안 국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 공화국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위하여 까리모프 대통령은 여러 나라들과 국민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지원협정을 맺고 있습니다.  특히 까리모프 대통령과 각하 간에 맺은 정부간 국제협력 협정의 일환으로 하동주 한의사가 우리 집단농장에 왔습니다.

 

  진료를 시작한 이래 그는 환자들 사이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과묵하고 겸손하며, 환자를 대할 때는 주의를 기울이는 등 좋은 성품에 따뜻하고 양심적인 의사입니다. 그로 인하여 대한민국과 각하는 이곳에서 무한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하가 1994년 김병화 집단농장을 방문한 이래 각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각하는 우리 모두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각하가 김병화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이 곳 집단농장의 많은 주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각하가 해주신 모든 일들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의사와 많은 약품을 이곳에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작금 공화국의 경제상황과 특히 우리 집단농장 주민들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고려하여 우리는 각하가 우리를 도와주시고 추가로 약품을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동주 한의사가 가져온 약품이 벌써 다 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하동주 한의사가 보건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의료장비들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각하의 건강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합니다.

 

                                                                        김병화 집단농장 주민을 대표하여
                                                                                                의사 대표 황 나탈리

 

                                                                        마을 협회 대표 바바베코프
                                                                                                 집단농장 주민들

 

 

  어려운 상황 아래서 그의 의료 활동은 박애심과 인내심에서 우러난 결과입니다.  그리고 1997년 그는 정부파견의사 계약기간이 만료되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근무연장사유서는 간곡하기까지 합니다.

 

 

 

  본인은 1995년 11월 21일자로 우즈베키스탄에 의료단으로 파견되어 ‘김병화 농장’과 타슈켄트 국립 제1 의과대학 병원에서 한방진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김병화 농장’에 한방진료소를 개설하여 근 2년여 동안 5,0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여

이들에게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다고 사료되며, 또한 최근에는 본인의 의료 활동에 따른 호응에 힘입어 타시미의과대학과 대한한의사협회가 주최가 되어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을

개원하여 한방의료 활동을 통한 국위 선양에 일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위와 같은 점을 토대로 앞으로 2년 동안 근무를 연장시켜 그 동안 배웠던 이 나라의 언어와 풍습을 밑바탕으로 삼아 한방의료 활동을 통한 국위 선양과 아직 미비한 이 나라 의료제도 및 시설에 조금 더 이바지하고싶습니다.

 

 


  1995년. 한의사 하동주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습니다.
  비행기에는 시내버스처럼 지정된 좌석이 없었습니다. 빨리 뛰어가서 앉으면 되었습니다. 승객들은 비행기 안에서 매운 담배를 피웠고, 독한 보드카를 연신 마셔댔습니다. 술이 취해 큰소리로 이야기하다가 끝내 싸움까지 벌어졌습니다.

 

  난생 처음,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하늘 길은 너무 험하였습니다.
  가까스로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으려고 3시간을 기다렸지만 이방인에게 누구도 친절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마중 나와 있던 대사관 직원이 입국심사장까지 들어와서야 우즈베키스탄 땅을 정식으로 밟을 수 있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KOICA 정부파견한의사로 처음 발을 내딛은 한의사 하동주는 그곳에서 무녀리의 역할을 훌륭히 담당하였고, 그 열망은 밀알이 되어 타슈켄트에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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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2011.11.25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훌륭한 분들덕에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2. 꽃보다미선 2011.11.25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시네요.
    그져 감탄할 따름이지요. ^^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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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베키스탄의 허준  이우혁

  산 설고 물 선 우즈베키스탄에서

 

 

 

 

 

 

 

  

  예전부터 봉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실 지금껏 한국에서 쌓아온 한의사로서의 입지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정리하고 나니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

 

 2003년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으로 떠나며 가진 민족의학신문과의 인터뷰입니다.

 

 

  한의사 이우혁은...

 

1966년에 태어나 경산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부터 4년째 운영해 오던 한의원을 과감히 정리하였습니다.

2003년부터 2년간 정부파견한의사로 한국 ·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근무를 지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1997년 포항에 있는 시골의 한 폐교를 임대해 친구와 함께 한의원을 개원하였습니다.  

 3년간 암환자 등 주로 난치병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면서 그곳 사람들의 어려운 환경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어려운 분들에게 자신이 가진 의술로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순수한 바람으로 정성스레 돌보았는데, 진료를 받은 사람들이 감사의 뜻으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손수 음식까지 장만해 올 때는 따스한 정을 느꼈습니다.

 

 특히 네팔(Nepal)에 있는 한 병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치료 한 번 받으려면 하루나 이틀씩 걸어와야 하고, 돈도 없고 의사도 없어 사소한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욱 체계적인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003년 우즈베키스탄 파견의사를 지원했습니다...

 

 2003년 대한한의사협회 홈페이지에서 우즈베키스탄에 파견할 의사의 자리가 몇 달째 비워져있다는 글을 보게 되고, 처음에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을 염려하던 아내와 자녀들을 설득하였습니다.

 

 한의사 동료들이 그동안 쌓아온 것이 아깝지 않으냐며 어리둥절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든 갈 수 있는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그동안 한국에서 자신이 이룩해 놓은 것에 대한 미련과 집착 때문에 결정을 쉽게 못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중부에 위치하면서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1991년 독립하였습니다. 수도는 타슈켄트이며 공화제로서 구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이슬람교도들이 다수였습니다. 지역별로 병원이나 보건소가 있었지만 시설이 허술하고 의사가 없어 각종 질환으로 환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한의사 이우혁은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의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장으로서 진료업무와 현지직원 관리 그리고 병원경영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무료로 진료하는 병원이어서 항상 환자로 넘쳐 났습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치료할 환자를 한 번에 예약을 받았기 때문에 예약하는 날은 수천 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어 병원직원 모두가 나서서 예약을 받느라 진땀을 빼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진료와 원무가 분리되어 의사는 진료만 하면 되었지만,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장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잡다한 업무들이 곤혹스러웠습니다.  예약되지 않은 환자들이 찾아와 막무가내로 생떼를 쓰거나, 고위직의 엉뚱한 진료 청탁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군에서 받은 훈장을 내밀며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진료소에 보낼 약품을 KOMSTA(대한한방의료봉사단)으로부터 어렵게 지원받았는데, 세관에서 이유도 없이 일 년 가까이 통관을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세관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가져다주면 기다리라 하고, 또 다른 서류가 필요하다고 해서 가져다주면 또 다른 핑계를 대며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무능한 공무원인지 부패한 세관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나라 국민을 치료해 주고 무상으로 나누어 줄 약품 통관에 딴죽을 걸었습니다. 결국 법원의 힘을 빌려 약품을 찾아야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적응해야 하는 건 한의사 이우혁만이 아니였습니다...

 

 이우혁의 정신적인 버팀목으로 사랑의 힘을 실어주었던 아내와 2남 1녀의 자식들도 우즈베키스탄의 어려운 생활에 적응하여야 했습니다.  그가 거주하였던 지역은 비교적 좋은 동네였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와 가스공급이 부족하였습니다.  난방이 끊겨 자다가 일어나 벽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면서 길고 긴 겨울밤을 지새웠고, 예고 없이 정전이 되면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색다른 환경을 감내할 수 있었지만,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전기가 나가면 불평도 없이 촛불에 의지하여 학교 숙제를 즐겁게 하는 아이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국민소득 1,000달러 정도의 그곳에서의 생활은 예측이 없었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은 항상 가득 채우고 다녀야 했는데, 주유소에서는 기름이 떨어지면 영업을 며칠씩 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구하지 못하면 허가 없이 파는 곳에서 몇 배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도처에 슈퍼마켓이 있는 한국과는 양식을 구입하는 것도 달랐습니다. 

 

 처음 한 달 정도 임시로 아파트에 살 때였습니다. 그들은 주식으로 리뾰슈까라는 둥글고 넓적한 빵을 먹는데, 한번에 20~30개가량을 구입했습니다. 가방 가득 빵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마치 빵을 팔러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가 큰 가방에 빵을 가득 들고 가는 것을 보고서 빵을 몇 개 사려고 하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영문을 몰라 웃고, 아무 것도 모르는 그는 생떼를 쓴 꼴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돈을 안받고 빵 세 개를 주었습니다.  나중에 만났을 때 돈을 드리려 하였지만 한사코 받지 않은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였습니다.

 

 

 

  산 설고 물 선 이국땅이었지만 보람도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타슈켄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떨어진 시골 병원에서 한 달 정도 이동 진료를 하였는데, 그 지역은 구소련시절의 협동농장이 많이 있었습니다. 스탈린 독재시절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돈 벌러 도시로 나가고 노인들이 농사짓고 손자들을 키우며 아픈 몸을 이끌고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병원시설은 처참할 정도 여서 입원하면 오히려 없던 병도 생길 정도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의료진이 도착하니 지역 주민들이 너무나 좋아하였습니다.

 타슈켄트에서 1,200km 정도 떨어진 누크스에 한방진료소가 있어 고려인 의사를 교육시켜 진료하고 있었는데, 1년에 한두 번씩 의사교육과 진료를 위해 출장을 갔었습니다. 이 지역은 아랄해가 마르면서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인구가 자꾸 줄어들고 희귀난치병으로 살기 힘든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랄해에서 날아오는 소금이 눈이 온 것처럼 토양을 뒤덮고 있어 농사짓기도 어렵고, 소금이 지하수를 오염시켜 피부병과 눈병 그리고 각종 내과질환을 유발하였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한정되어 있고 의약품도 부족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풍부한 부존자원을 갖추고 있어 한국과의 교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국민복지와 교육문화에는 여력이 없었습니다. 

 

 2004년 12월, 생필품과 먹을 것을 사서 병원직원들과 함께 고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치료받으면서 기부금으로 주고 간 것을 1년 동안 모은 것이었습니다.  고아원에서 기부 받은 물건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터라 아이들에게 직접 전달하기로 사전약속을 하고 갔습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선물을 나누어 주려고 하니, 원장이 나중에 자기들이 전달하겠다고 그냥 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직접 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신발도 신겨주고 모자도 씌워주고 과자도 건넸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고아원을 나설 때, 원장과 직원들의 차가운 눈빛이 마음을 씁쓸하게 하였습니다.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앞에서 (이우혁원장 오른쪽에서 3번째)


 2년간의 정부파견 한의사로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근무를 무사히 마친 한의사 이우혁은 그 시절을 이렇게 돌아봅니다.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아픈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는 대한민국정부의 파견의사를 환영하고 좋아하지만,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바를 모른 체하고 있어서인지 별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금은 그 당시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기억들은 다 잊고 즐겁고 좋은 추억만이 남아있어 가끔 그 때가 그립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좀 더 잘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좋은 일을 더 많이 했더라면 보람이 있었을 것을 하며 아쉽다. 기회가 주어져 다시 파견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2008년부터 정부파견의사제도가 폐지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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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라의 꽃말 2011.10.28 10: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일 많이 하시는 자랑스러운 분이네요~
    즐거운 금요일 보내시구요~ 아자아자~ 파이팅~

  2. animal feed mixer 2011.11.22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컬처랜드에 가입하기는했는데 도모지 영 이해가 않가네요.좀 알려주세요.

  3. wood briquetting machine 2012.04.11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사와 환자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진료여건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허준  김현탁

  사랑의 마음을 전하다.

 

 

 

 

 

 

 

 초등학교 6-2학기 도덕교과서에 어느 한의사의 미담이 실려 있습니다.

 고려인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치료해 준 은인에게 쓴 편지 내용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소녀는 류머티즘성 관절염 환자였습니다.

 그곳에서는 류머티즘이 편도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하였기에, 그 소녀는 엉뚱하게 편도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류머티즘 증상은 개선되지 않고 붓는 증상은 점점 악화되어 학교에도 가지 못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한의사에게 20여 회에 걸친 봉독치료인 벌침주사를 맞은 후 거뜬하게 나아 다시 등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정부파견한의사 김현탁입니다.

 

 


 그는 1962년에 태어나, 1987년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그는 한의원을 하면서 환자와 돈이 연결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약을 먹어야하는 환자에게 약을 권했을 때, 환자는 약을 팔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시골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약을 먹지 않고 병을 나을 수 있는 방법인 침과 뜸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침으로 한의원은 명성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돌연히 한의원을 그만둘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간간히 시간을 내어 차가 다니지 않는 시골로 의료봉사를 하러 다녔고, 여름휴가 때 휴가 대신 에티오피아와 캄보디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등 해외의료봉사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느꼈던, 대가와 연결되지 않는 인술을 베풀고 싶다는 생각을 현실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누구의 평가보다 나 스스로 나를 평가했을 때 떳떳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행복감으로 눈을 감고 싶었습니다. 한 생을 살면서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삶보다 남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일 것 같았습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부파견한의사 모집기사를 읽었을 때, 그는 기쁜 마음으로 참가하였습니다.

 

 KOICA 지원 아래 KOMSTA(대한한방의료봉사단)가 활발히 활동하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겐트 국립 제1의과대학의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 한방병원에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 근무하였습니다


출국을 준비하면서 우즈베키스탄에는 화장지가 귀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는 이삿짐의 절반이 휴지였다고 합니다.

생필품이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처음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몇 달 동안은 식료품 및 생필품을 사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많은 민족이 살았고 그들의 음식문화가 모두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시장, 러시아시장, 고려시장 등 각 민족의 먹을거리가 다르고 파는 품목이 달라 하루는 고려시장에서 두부를, 하루는 러시아시장에서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하루는 독일시장에서 유제품을 사기위해서 다니는 색다른 경험을 하였습니다.

 시장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러시아어이었는데, 그들은 각기 자기 민족어를 시장에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각각 다른 민족들의 생활상을 경험하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 곳의 아픔을 차근차근 보듬었습니다.

 

 사회주의국가인 구소련의 지배를 받으며 세계적인 의료수혜를 받던 백인계 러시아 사람들로 하여금 한방치료는 첨단치료라는 인식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히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독립 이후, 치료를 한 번도 제대로 못 받았다.

 

 그곳에서의 의료체계는 1차 진료기관(보건소)과 2차 진료기관(시립병원) 그리고 3차 진료기관(대형병원)으로 상당히 선진화된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지원받던 것이 단절되고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의료시설은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병이 나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무료로 운영하는 한국,우즈베키스탄 한방병원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갔습니다.

 과다한 항생제복용에 노출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침이나 뜸이 한국 사람들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습니다.

 

 약을 먹지 않고도 병이 호전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한방병원의 신뢰도는 점점 높아갔습니다. 자연히 보건당국 및 의과대학에서 한국한의학에 대한 관심도도 지대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국 의서를 번역하여 전통의학 교재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한의학교재를 만들고, 의과대학에 한의학과를 개설하여 한의사를 양성하여 주민들을 치료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는 타슈겐트 국립 제1의과 대학생에게 매주 두 시간 씩 한의학 강의를 하였고, 대학 부속병원 원장 및 의사들에게 침구학 강의를 하였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한국과 일본을 같은 수준의 나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위상은 옛날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한의사 김현탁은 5년에 걸쳐 연인원 약 6만여 명의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전체 인구의 10%가 러시아인인데, 내원 환자의 80% 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타타르의 환자일 정도로 그들은 한의학치료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지대하였습니다.

 

 한의학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 뇌성 마비환자가 내원해 치료해 달라고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경우 그는 희망적인 말로 환자를 따듯하게 위로하였습니다.

 한의사 김현탁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 신통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하루는 병원입구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사색이 된 아이를 안고서 살려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습니다. 아이는 급체로 얼굴은 샛노랬고, 사지는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가 아이의 명치끝에 장침을 놓자, 한 시간 가량 안정을 취한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씩씩하게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엄마가 울면서 그에게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알라신이 선생님을 우리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셨다.’고 하였습니다.

 

 치료할 때는 통역사가 옆에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통역사가 환자에게 통역해 주는 동안 치료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과 말은 안 통했지만, 성실한 의술을 사랑의 마음으로 전하였습니다.

 

 그곳의 전통의학은 물리요법이 위주가 되어 숯치료와 물치료 그리고약초 연기치료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물치료는 물속에서 디스크 환자의 척추를 만지는 것으로, 특이한 물리요법이었습니다.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한국에서 가져간 벌의 독인 봉독으로 치료하였습니다.
 봉독치료를 할 때,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체질이 달라서인지 한국인은 침 맞은 부위가 금방 부어오르는데, 그들은 피부에 별다른 반응이 없어 매일 시술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이라 해산물이 부족하여 요오드 결핍으로 갑상선 질 환자들이 증가했지만 약품이 없었습니다. 구소련 시절에는 식품에 요오드를 첨가하여 섭취해 왔었으나 연방 해체 후 요오드 부족현상이 심각했습니다.
 불쌍한 그들에게 빨간 소독약인 소위 머큐로크롬은 만병통치약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빈민촌의 엄마가 자기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울면서 순서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병원입구에서 난동을 부렸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요오드 성분이 들어있는 옥도정기를 달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자기 동네 아이가 상처가 나서 옥도정기를 발랐는데 나았고, 배가 아플 때도 나았다며 제발 옥도정기를 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맨 윗쪽에 위치한 카라칼팍스탄 누크스 한방 진료소를 찾아 순회 진료 및 이동 진료를 실시하였습니다.

 

그가 거주하던 타슈켄트에서 1,200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는 누크스에서 갈 때나 돌아올 때는 항상 마음이 짠해서 발걸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든 아랄해는 바다의 염도를 적절히 유지하였는데, 소비에트연방시절 댐을 건설하여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는 물길을 목화밭으로 비틀었기에 아랄 해에서는 소금꽃만 날렸고 그들의 짜디 짠 생활은 처참하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인 리뾰시카나밀빵 하나를 물에 풀어 끓여서 다섯 식구가 한 끼니를 때우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여름에는 신도 안 신고 너나 할 것 없이 팬티 한 장 달랑 걸치고 돌아다녔습니다. 순회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아이들이나 청년들이 숙소 문 앞에 모여들어 그에게 제발 타슈켄트로 데려가 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월급으로 한국 돈 2,000~3,000원만 줘도 된다고 하였고, 어떤 아이 엄마는 자기 아들을 그냥 데리고 가서 심부름시키고 밥만 먹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어른조차도 월급은 필요 없으니 문지기라도 하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너무나 불쌍한 그들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5년에 걸쳐 환자들을 보면서 환자의 체격과 말투와 의복을 한번 보고서 어느 민족인지 그리고 민족의 음식습관에 따라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가난한 우즈베키스탄 할머니가 4번 이상 재사용한 꼬질꼬질한 검은 비닐봉지에 버터 대신 양 기름을 사용해 만든 빵을 감사하게 그는 받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떠나 올 때의 우즈베키스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공적인 봉사활동을 마치고 이제는 돌아와 대전의 어느 한의원에서 의술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는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파견의사활동에 대한 여러 번의 텔레비전 출연요청에 대하여 정중히 거절하였고, 당연히 할 일을 하였다고 오히려 그런 시간을 갖게 된 것에 대하여 고마워할 뿐이었습니다.
한의사 김현탁은 그때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합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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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14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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