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에서 주저앉지 마라. 정상은 바로 그 너머에 있다.


숨은 8부 능선에서 가장 가쁘다. 닿을 듯 닿지 않고, 되돌리기엔 흘린 땀이 아까운 바로 그 지점이다. 고지를 밟는 자와 포기하는 자는 여기서 갈린다. 아홉 길 산을 만드는 일도 한 삼태기 흙에서 어긋난다. 고지는 고비 몇 보 앞에 있다. 숨이 차다는 건 정상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가까워진다는 신호다.



조금만 더 버텨봐라


맹자는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고자 할 때는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의 근골을 피곤케 하고, 그의 창자를 굶주리게 한다”고 했다. 심신을 지치게 하고 뜻이 어긋나게 함으로써 의지를 단련시키고 능력을 키우려는 하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견디고 피는 꽃이 아름답다. 매화는 추위를 견디고, 난초는 적막함을 견디고, 국화는 뙤약볕을 견디고 꽃을 피운다. 대나무는 사철 비바람을 견디고 꿋꿋이 선다. 인간이 4군자를 좋아하는 건 그들이 견뎌낸 ‘꿋꿋함’을 아는 까닭이다. 그게 쉽지 않음을 아는 연유다.


무릇 일에는 고비가 있다. 큰일일수록 고비는 더 험하다. 난관도 천만 갈래다. 섣달 매화꽃 향기는 뼈를 애는 추위를 견딘 선물이다. 견딘 만큼 더 멀리 향을 뿜어낸다. 그건 “나는 추위를 견뎌냈다”는 ‘자기선언’이다. 



공자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고 했다. 세상사 뒤돌아봐야 아는 게 참으로 많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반전한다(物極則反). 어둠은 빛으로, 추위는 더위로 세상사는 끝없이 유전한다. 삶은 매 순간 달라지고, 무언가로 변해간다. 고비를 넘어야 꿈에 닿고, 허물을 벗어야 새로운 세상을 본다. 


혹여 지금 당신은 고빗길에 서 있는가. 지치고 두렵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가. 그럼 한 번만 더 용기를 내봐라. 조금만 더 견뎌봐라. 당신은 용기로 시작했다. 그러니 끝도 용기로 맺어라. 추위를 견디고 향기를 뿜어내는 섣달 매화를 그려봐라.



두려움에 지지 마라


두려움은 악마들이 즐겨 쓰는 무기다. 사람에게 두려움만 심어놓으면 싸움은 ‘백전백승’이다. 물론 악마가 전승을 챙겨간다. 두려움은 암세포만큼이나 증식이 빠르다. 스스로 퍼져가고, 스스로 강해진다. 두려움이 벽을 치면 인간은 한 발도 못 나간다. 


그러니 높아지기 전에 미리 허물어야 한다. 그게 용기다. 그게 희망이다. 공자는 “산을 만들 때 한 삼태기를 쌓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도 내가 그만두는 것이고, 평탄한 땅에 한 삼태기를 붓고 나아가는 것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세상만사 결국은 ‘나’다. 내가 나아가고, 내가 물러난다.



고빗길에선 잠시 멈춰도 된다. 숨을 골라도 된다. 하지만 너무 뒤를 돌아보지는 마라. 뒤돌아볼수록 걸음걸이가 꼬인다. 인생은 앞으로 가는 여정이다. 숱한 고비를 넘는 산행이다. 정상에 오른 자와 중턱에서 내려온 자가 산에서 본 세상 풍경은 너무 다르다. 


산에 정상은 무수하다. 모든 꼭대기에 오를 필요도, 오를 이유도 없다. 다만 당신이 간절히 이르고 싶은 어딘가가 있다면 그땐 힘을 내봐라. 힘껏 내디디고, 두려움에 맞서라. 고비에서 주저앉지 마라. 잊지 마라. 고비 몇 보 앞에 닿고자 하는 ‘그곳’이 있다는 사실을. 



강을 건너야 바다에 이른다


“어부들은 바다의 위험과 폭풍우의 괴력을 잘 안다. 그런데도 그게 바다로 나서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된 적은 없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인간이 위대한 건 위험을 무릅쓸 줄 아는 용기라고 강변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불굴의 어부 산티아고의 입을 빌려 “바다에는 이 세상처럼 친구도 적도 있지만, 인간은 결코 쉽게 패배하는 존재가 아니다”고 되뇐다. 그건 자신에게 용기를 심으려는 주문이다.



한 걸음을 내디뎌도 당신 걸음이고, 한 걸음을 물러서도 당신 걸음이다. 당신 걸음은 오롯이 당신 것이다. 고비에서 앞으로 나아갈지, 뒤로 물러설지의 선택 역시 온전히 당신 몫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삶에는 무수한 고비가 있고, 고비마다 물러서면 당신은 결코 개울을 벗어나지 못한다. 개울을 건너야 강에 이르고, 강을 건너야 바다에 닿는다.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상이 말의 성찬이다. 시비를 가리는 말, 으스대는 말, 위로하는 말, 나무라는 말, 큰 말, 자잘한 말이 빼곡하다. 장자는 “도(道)는 조그마한 성취에 숨겨지고, 말은 화려함에 가려진다”라고 했다. 언어의 유희를 겨냥한 일침이다. 


노자는 “말이 많으면 궁해진다(多言數窮)”고 했다. 말로만 사람을 살피면 어긋남이 많고, 말로만 자기를 내세우면 손가락질당하기에 십상이다. 입으로만 재간 부리고 마음에 참됨이 없는 영혼이 가장 허접하다.



말하면 백 냥

다물면 천 냥이다


말하면 백 냥, 다물면 천 냥이라 했다. 정담도 길어지면 잔말이 된다. 흐린 말은 수다스럽다. 포장할 게 많은 탓이다. “사람들의 입을 이길 수는 있어도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게 논쟁가의 한계다.” 장자는 마음으로 따르게 하는 말이 진정한 언변이라 한다. 


장자와 혜자는 벗이다. 둘은 여러 길을 걸었다. 장자는 도의 길을, 혜자는 속세의 길을 갔다. 두 길은 때로는 만나고 때론 멀어졌다. 길은 달라도 마음은 통했다. 혜자가 죽자 장자가 통곡했다. “내가 이제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다”고 애통해했다.



“혜자는 남을 이기는 것으로 이름을 얻고자 했다. 본래 모습에는 약하고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좁고 굽은 길을 걸었다. 재능을 논쟁에 탕진했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혜자의 죽음을 그리 슬퍼한 장자지만 평가는 가혹하다. 장자의 눈에 혜자는 단지 변설가다. 혀를 남을 누르는 데 쓰고, 그 혀로 인해 되레 좁고 굽은 길을 간 자다. 말로만 세상을 시끄럽게 산 허세가다. 몸체는 못 보고, 그림자와 씨름한 자다. 


빈 수레가 시끄럽고, 빈 깡통이 요란한 법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물었다. 귀한 말씀을 달라고 스승을 조른 셈이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네 계절이 돌아가고 만물이 자라지만 무슨 말을 하더냐.” 공자 또한 큰 이치는 말이 없다고 가르친다. 험담을 줄이면 스스로가 맑아지고, 시비를 줄이면 스스로가 고요해지고, 허세를 줄이면 스스로가 단아해진다.

 


말로 죽고

말로 살린다


반면 순자는 언설(말로 설명함)에 뛰어나야 군자라고 했다. 순자는 제나라 경공 얘기를 비유로 든다. 새를 무척 좋아한 경공은 촉추에게 관리를 맡겼다. 어느 날 촉추가 부주의로 새를 날려버렸다. 노한 경공이 죄를 물어 촉추를 죽이려 했다. 


당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안자(晏子)로 존칭 받는 안영이 서둘러 경공을 찾았다. “촉추는 군주께 세 가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군주 앞에서 그 죄를 물은 뒤 처형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오.” 


안영을 촉추를 쏘아봤다. “너는 지엄한 군주의 새를 잃어버렸다. 그게 첫 번째 죄다. 너는 또 새 몇 마리 때문에 군주가 사람을 죽이게 했다. 그게 두 번째 죄다. 너로 인해 천하의 제후들이 우리 군주는 인재보다 새를 중시한다고 여기게 됐다. 그게 세 번째 죄다.” 


안영이 경공에게 다시 머리를 숙였다. “이제 그를 죽여도 되겠습니까.” “그냥 둬라. 내가 깨달았느니라.”



말이 고우면 그 메아리도 곱다. 말을 줄이면 허물도 줄어든다. 고운 말을 담으면 덕이 두터워진다. 말을 너무 아끼면 사람을 잃는다. 말이 너무 헤프면 나를 잃는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도, 나도 잃지 않는다. 말을 독으로 쓰지 않고 약으로 쓴다. 말 한마디가 만사를 그르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앞에서는 아부하고 뒤에서는 험담하지 마라. 굿 뒤에 날장구 치지 마라. 말에 지나치게 기교를 넣지 마라.   


 

말은 당신을 담는 그릇이다


허세는 그림자가 몸통을 닮지 못한 말이고, 위선은 거짓이 참을 덮은 말이다. 열자는 “말이 아름다우면 그 울림도 아름답고, 말이 악하면 그 울림도 악하다” 했다. 


원천이 맑아야 흐름이 맑다. 마음이 맑으면 말이 곱고, 입이 고우면 발길이 아름답다. 입은 작고 발은 크다. 입은 참 자신이 아니다. 


참 자신은 발걸음이다. 발걸음은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꿈을 좇는지, 가면 벗은 모습이 어떤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입은 자주 속인다. 거짓이 진실을 가리고, 포장이 알맹이를 감추고, 화려함이 담박함을 밀쳐낸다. 



뱉은 말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말이 입을 떠나면 내 것이 아니다. 인간은 비밀을 나누면 한마음(?)이 된다고 착각한다. 나누는 순간 비밀이 아님을 모르고 서로 입조심하자 한다. 그러다 둘만이 안다고 믿은 게 흘러라도 다니면 서로를 의심한다. 


비밀은 온전히 마음에만 담아라. 그래야 진짜 비밀이다. 말로 은밀한 상처를 건드리지 마라. 말은 당신을 담는 그릇이다. 오롯이 담으려면 바닥이 새지 않아야 한다. 금간 옥잔은 온전한 흙잔만 못하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좀 어처구니없는 질문일지 모르지만 ‘영혼의 무게’ 는 얼마나 될까? 

 

 어느 한 과학자가 무게를 달 수 있는 침대에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뉘어 놓았다.

 환자들의 숨이 떨어질 때 평균 29g 정도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통계를 냈다고 한다.

 인간을 지배한다는 영혼이 기껏해야 깃털 하나 무게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날숨의 무게이지 영혼의 무게는 아닐 것이다.

 ‘영혼은 그 빛깔과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한다.

 굳이 영혼을 재려면 무게가 아니라 그 빛깔과 깊이로 따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말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남아일언 중천금’이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으니 천금의 가치와 무게를 지녔을 것이다.

 

 ‘일언기출 사마난추(一言旣出駟馬難追)’라는 옛말도 있다. 

 사마(駟馬)란 말 네 필이 끄는 마차로 옛날에는 가장 빠른 것의 비유로 썼다.

 한번 뱉은 말은 사두마차도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니 입 조심을 하라는 뜻이다.

 

 직장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며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말을 예쁘게 잘하는 사람이 있고, 같은 말이라도 얄밉게 해서 더 큰 덩어리가 되어서 돌아오게 하는 사람도 적잖다.

 

 별거 아닌 말인데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도 참 용(?)하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올 때 새집이었다.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를 하던 날, 

 집에 찾아온 여러 명 중에 한 명이 “집이 좀 어둡네. 평수에 비해 작아 보이고….”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실제로 어두울 수 있고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친구는 솔직한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다 해서 당장 집이 밝아지는 것도 아니고, 평수가 확 늘어날 리도 만무다.

 아무 생각 없이 했던 그 친구의 말에 한동안 상처받는 내가 소심한 걸까?

 

 

 말을 잘하면 얻게되는 이점들이 많다.


 언젠가 모 방송 프로에서 놀라운 실험 결과를 보여주었다.

 말의 긍정적인 힘과 부정의 힘을 실험한 내용인데, 두 개의 유리컵에 각각 ‘고맙습니다’,  ‘짜증 나’ 라는 말을 붙여 놓고 아침저녁으로 계속 같은 말을 해줬다.

 

 4주 후에 살펴보니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붙여 그 말을 해준 컵에는 하얗고 뽀얀 곰팡이가 피어났고,  ‘짜증 나’ 라는 말을 계속 들은 컵에서는 거무스름한 곰팡이가 피어 퀘퀘한 냄새가 나는 모습을 보았다.


 세상 이치에는 ‘우주의 원리’ 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자기가 내뱉은 말들이 우주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주며 내뱉은 말들이 결국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간혹 말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찾아와 한탄하거나 속상해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그런 친구들에게 나는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은 속상하겠지만 상처받은 사람보다 말한 사람에게는 더 큰 덩어리가 되어 돌아갈 것이다.”
 

 

 일전에 본 드라마 중 '살맛 납니다.'라는 주말극이 있었다.


 그 안에서 여주인공 고두심 씨가 가족들 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자리에서 ‘고사리’ 라는 말로 화이팅하는 장면을 보았다.

 

“고는 고마워요, 사는 사랑해요, 리는 이(리)해해요”라며 웃었다. 

 듣기 참 좋다.  우리 가족과 이웃 친구들에게 항상 고사리 같은 마음과 말을 주고 받았으면 좋겠다.

 

 

글 / 이영애 서울시 광진구 군자동

 

 

 

 

 

 

 

 

 로그인 없이가능한 손가락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hair_artist 2011.12.03 1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또좋은글 그리고 건강에 대한내용 많이보겠습니다.

  2. 바닐라로맨스 2011.12.03 13: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모두 고사리 정신을!+_+
    ㅎㅎ

 

제법 날씨가 추워졌지만 여전히 한강변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에 가만히 있거나 차를 타면
편안할 텐데 왜 이 추위를 감수하고 나왔을까요?  대답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이 추위나 육체적
불편을 뛰어 넘는 만족감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위에 보면 일회용품이나 합성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재생
용품을 사용하거나 자연세제를 만들어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불편한 일임에도 이를 감수하는 이유는 환경을
보호하는 작은 실천이 가치 있고 만족감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날 안정된 삶을 정리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확실해서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
다. 불안하고 불확실하지만 원하는 삶을 위해 이러한 불편과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만족은 불편을 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만족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핵심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기 싫은 것을 안 하는 것, 힘들거나 귀찮으면 안 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족과 행복은 결코 공짜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불편을 대가로 원합니다.

물론 예외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어렵지 않게 만족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중독입니다.  쇼핑이나 게임에 빠지고, 술이나 약물에 탐닉하는 것은 별다른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불편함이 없는 순수한 즐거움만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단 음식은 쉽게 물리듯이 순수한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는 법입니다.  불편을 내포하지 않는 즐거움은 쾌락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점점 더 큰 쾌락으로 삶을 몰고 갑니다.  결국 중독은 쾌락의 나락으로 우리를 끌고 가서 인생을 소리 없이 파괴시켜 버립니다.




중요한 것은 기꺼이 받아들임에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불편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별로 낯설게 여겨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해 온 일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삶의 만족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면 그것은 왜일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받아들인다는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받아들이기는 그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 와 ‘기꺼이 받아들이기’ 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 는 다른 선택이 없고 불편함을 더 이상 느끼기 싫어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억지 받아들임은 우리 마음을 더욱 비좁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한 직장인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업무를 하는 것 같아 괴로운데도 ‘다른 업무를 해봐야 별 수 있겠어!’ 라며 고민을 덮어버리고 인내한다면 이는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이러한 받아들임은 미봉책일 뿐 삶의 불만족을 키울 뿐입니다.

그에 비해 ‘기꺼이 받아들이기’ 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위의 직장인이라면 그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여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좀 더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만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업무 전환이라면 회사 내에서 이를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거나 혹은 회사를 옮길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기’ 는 일방적 인내에 가까운 ‘수동적 체념’ 이지만, ‘ 기꺼이 받아들이기’ 는 수용과 개선의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는 ‘능동적 행동’입니다.  결국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체념이 아닌 변화와 성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려면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아무 대가 없이 반년 동안 매일 5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말도 안 돼! 내가 왜 그런 불편을 감수 해야 돼?” 라고 반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도전하고 싶은 자격증 시험이 6개월 뒤에 있고 이를 준비할 시간이 새벽밖에 없다면 당신은 어떻겠습니까?  그런 상황이라면 훨씬 긍정적 반응이 많아질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기계발’ 이라는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그냥 ‘피할 수 없으니까 즐겨라!’ 라는 마음과는 다릅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경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면 감수해야 할 불편함도 줄어들게 됩니다.  부모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서 잠을 참고 시험공부를 하면 괴로운 일일 뿐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 잠을 참고 공부를 하면 그 괴로움은 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한 가치라면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먼저 무언가를 함께 하자고 제안해 보십시오.  물론 거절의 두려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꺼이 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여유로운 삶이 중요하다면 먼 미래로 미룰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수입의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가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십시오.

자, 지금 여러분에게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한번 써보세요.  그리고 이를 위해 감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적어 보세요.  예를 들어 ‘그것은 귀찮아’, ‘ 잘 안 될지도 몰라’, ‘ 손해 보는 것이 아닐까?’ 라고 적었다면 이를 감수할 수 있을지 질문해 보세요.

만일 감수할 수 없다는 답이 나오더라도 ‘정말 감수할 수 없을까?’ 라고 한번 다시 물어보십시오.




‘기꺼이 받아들이기’ 버튼을 눌러라

삶의 경험 앞에 우리는 두 가지 버튼을 쥐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지못해 받아들이기’ 버튼이고, 두 번째는 ‘기꺼이 받아들이기’ 버튼입니다. ‘마지못해 받아들이기’ 버튼을 많이 누르면 누를수록 우리의 삶은 쭈그러집니다.  삶은 결국 회피로 이어지고 우리의 삶은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나 ‘기꺼이 받아들이기’ 버튼을 누르면 누를수록 우리의 삶은 펼쳐집니다.  삶은 변화와 성장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버튼을 누를까요?  그것은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_글..문요한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 · 정신과 전문의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전버튼 1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건강천사'는 국민건강보험이 운영하는 건강한 이야기 블로그 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공지사항

Yesterday1,046
Today1,147
Total2,064,648

달력

 « |  » 2019.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