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순간,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 4일 시행되었습니다.




“나의 삶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죽음이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장소는 바로 병원입니다.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의학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도 생명연장을 위한 다양한 시술과 처치를 받으며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보냅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관한 결정은 대부분 본인이 아닌 가족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누가 결정 하는게 좋으신가요 ?

내가 원하는 삶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


2018년 2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으로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남겨 놓을 수 있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고 의사가 판단한 경우에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연명의료란 무엇인가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착용, 혈액투석 및 항암제 투여 등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만을 연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종 우리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데 연명의료로 인해 삶을 마무리할 시간도 없이 고통 속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요, 이제는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으로 본인의사로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남겨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명의료중단등결정 시 환자의 의사 확인 방법

① 환자에게 의사능력이 있을 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였거나 또는 사전연명의료 의향서가 있고 담당의사가 이를 확인하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습니다.




연명의료중단등결정 시 환자의 의사 확인 방법

② 환자에게 의사능력이 없을 때


환자의 의사능력이 없을 때는 미리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의사 2인이 확인하거나 또는 가족2인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과 의사 2인의 확인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 가족은 ①배우자, ②직계 존비속, ③형제자매[①,②가 없는 경우] 다만, 환자가족이 1인뿐인 경우, 1인의 진술로도 가능합니다)



연명의료중단등결정 시 환자의 의사 확인 방법

③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고, 의사표현 할 수 없는 상태일 때


환자 가족 전원의 합의 및 의사 2인의 확인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다만, 행방불명자 등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자는 제외이며 미성년자의 경우, 친권자인 법정대리인의 결정 및 의사 2인의 확인이 있어야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무엇인가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자신의 연명의료중단등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으로 만 19세 이상이면 작성 가능합니다.




연명의료계획서란 무엇인가요?”


연명의료계획서란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중단등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하여 문서로 작성한 것을 말합니다.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소중한 의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연명의료결정제도!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서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토론방을 2월 28일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제시해주세요.


>> 토론방 바로 가기 <<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6·25전쟁 이후 우리는 대부분 ‘잘사는 것’을 고민해 왔다. 압축 성장을 거치며 한국인의 ‘헝그리 정신’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2만 달러를 넘어섰다. 의학 발달로 평균 수명도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하루 평균 750여명이 세상을 떠난다. 누구도 살아서는 경험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누구나 한 번은 그 영역에 들어서야 한다. 그때가 다가올 때 삶을 품위 있게 마무리하자는 웰다잉 개념은 어떻게 죽을 것인지 고민하고 준비하는 모든 활동을 포괄한다. 한때 웰빙 열풍이 불었지만 최근에는 다시 웰다잉이 화두로 떠오르는 추세다.





웰다잉이 관심을 끄는 건 성공을 향해 질주하던 삶에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 향상되고 성공 대신 성찰, 추월 대신 초월을 지향하게 되면서 좋은 죽음을 생각하는 이가 늘어난 셈이다. 의학의 발달로 길어진 수명은 곧 양질의 삶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예된 죽음이 말년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와중에 그 혹독한 죽음의 과정을 누구나 고민해야 하는 셈이다.





좋은 죽음이란 어떤 죽음일까. 우선 남아 있는 사람을 웃게 하는 게 좋은 죽음이다. 조의금 일부를 어려운 이웃에게 내놓거나 생의 마지막 기부를 하고 떠나는 등 남은 자를 배려하는 죽음을 뜻한다. 또 초조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죽음이 좋은 죽음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는 삶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고 할 때,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삶의 내용이다. 즉 삶과 죽음은 떨어져 있지 않고 하나인 셈이다. 좋은 삶을 살아야 좋은 죽음도 맞을 수 있듯이 말이다.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죽음이라 할 때, 각자 유서를 미리 써보는 건 어떨까. 내 삶을 돌아보고,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 / 국민일보 기자 박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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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로(季路)가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감히 죽음을 묻습니다.” 공자가 답했다. “아직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죽음에 ‘훈수’를 뒀다. “사람이 죽음을 지나치게 공포스러워하는 건 삶이 바르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누구나 마주하기 두려운 죽음은 하루하루 삶으로 다가온다. 그건 순리, 만물의 이치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난다. 순리는 마음으로 오롯이 받는 게 지혜다. 순리에 맞서는 자는 발걸음이 무겁다. 가벼워야 멀리 걷는다. 가벼워야 지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세상의 이치다.




불경은 일종의 철학이다. 단순히 왕생극락(往生極樂)의 종교적 내세관을 넘어선다. 윤회(輪廻)·색(色)·공(空)·연기(緣起)는 생(生)과 사(死), 만남과 이별의 이치를 담는다. 불교에서 시작과 끝은 대척점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커다란 고리다. 만물은 흐른다. 어느 형상, 어느 본질도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집착하는 색(色)은 결국 모두 공(空)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주는 공으로만 가득하진 않다. 공은 다시 색으로 형상을 바꾼다. 공과 색은 둘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둘이다. 인간은 부모를 보내고, 자식을 맞는다. 나는 부모의 자식, 자식의 부모다. 만물은 돌고돈다. 대지는 공평하다. 장자(莊子)는 “천도(天道)는 넘침에서 덜어내 부족한 곳을 채운다”고 했다.





불교의 사성제(四聖諦)는 윤회의 고리다. 세상은 고(苦)다.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집(集)은 고(苦)의 뿌리, 색(色)은 잠시 곁에 머무는 형상이다. 돈·명예·권력·인기는 잠깐 유(留)하는 객(客)이다. 오는 객은 반갑게 맞고, 때가 되면 아쉬워도 떠나보내는 게 예(禮)다. 집착을 떨치면 고통도 멸(滅)한다. 큰 깨달음, 즉 도(道)를 걸으면 고통은 가벼워진다. 불교는 도에 이르는 수양법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제시한다. 석가는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르게 천명을 다하고(正命), 바르게 노력하고(正精進), 바른 신념을 갖고(正念), 바르게 마음을 다스리면(正定) 도에 이른다고 했다. 도는 결국 ‘바르게 걷는 길’이다. 고(苦)의 진리→집(集)의 진리→멸(滅)의 진리→도(道)의 진리는 커다란 고리다. 시작과 끝이 맞닿은 윤회다.



 
흐르는 건 강물만이 아니다. 시간도 흐르고, 생각도 흐른다. 흐름을 ‘허무’로 받아들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순리에 마음을 실어 세상을 가볍게 걷고자 함이다. 이마의 주름을 보고 마음에 주름을 만들기보다 더 큰 덕을 베풀 경륜의 지혜를 찾고자 함이다. 인도의 승려 나가르주나는 “욕망은 괴로움의 근본이며 모든 재앙의 뿌리다. 덕이 상처를 입고 몸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모두 여기에서 생긴다”고 했다. 포용은 커지고, 아집은 작아지는 게 진짜 연륜이다. 과거에 발목 잡혀 앞길을 제대로 내딛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이 들었다고 한숨짓는 건 연륜이 세월을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만물은 변하고,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은 살아갈 날 중 가장 젊은 순간이다. 살아온 날의 후회가 살아갈 날의 꿈을 덮게 하지 말자. 지난 일을 되돌이킬 순 없어도 이 순간 새로 시작해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그 일이 얼마나 크고 높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서는 일, 넓게 보는 일, 답게 사는 일, 건강한 습관을 들이는 일, 지식을 채우는 일, 관용을 키우는 일…. 둘러보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 일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봐달라고 손짓한다. 퇴계 이황은 죽는 날 아침에도 “매화에 물을 주라”고 했다. 그는 죽음에 초연했고, 삶도 초연했다.




두려움은 짙은 안개다. 시야를 가리고, 길을 잃게 한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적이 된다”고 했다. 삶은 희망과 절망, 두려움과 믿음의 싸움이다. 게리 켈러, 제이 파파산의 ≪원씽≫(The One Thing)에는 두려움과 믿음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어느 저녁, 한 체로키 인디언 장로가 손자에게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다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가 말했다. “아이야, 그 싸움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 마리 늑대 사이에서 벌어진단다. 하나는 두려움이지. 놈은 불안과 걱정, 불확실성, 머뭇거림, 주저함, 그리고 무대책을 가지고 다니지. 다른 늑대는 믿음이지. 그 늑대는 차분함과 확신, 자신감, 열정, 단호함, 행동을 데리고 다닌단다.”
그 말을 듣던 손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럼 둘 중 어느 늑대가 이겨요?”
할아버지가 답했다.


“그거야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기지.”


순리는 마음으로 받아라. 지는 게 두려워 피지 않는 꽃은 없다. 두려움보다는 희망에 먹이를 줘라. 세상은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언젠가 떠나야 할 삶의 무대다. 무대는 수시로 주연이 바뀐다. 그래서 새롭고, 그래서 설렌다. 인생이 무대에 비유되는 건 아마 그런 이유에서 일 듯싶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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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입시 제도를 바꾼다’라는 말은 반향이 크다. 다른 학교들이 슬금슬금 서울대를 따라가서다. 서울대 교수가 성추행을 했다거나, 서울대 로스쿨 학생회가 사시 존치에 반발해 집단 사퇴했다는 뉴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한민국 1등 대학의 일은 소소한 신변잡기라도 얘기가 된다. 학벌에 따라 달라지는 기사의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이게 학생의 자살로 옮겨오면 울림이 좀 달라진다. 지난해 말 서울대생이 몸을 던져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대중의 반응은 아마 이 즈음일 거다. 그렇게 똑똑한 애가 무엇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제일 좋은 학교 갔는데 왜? 앞으로 미래가 창창한 인재가 도대체 왜? 남들은 그 학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데 인생의 1막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학생이 왜?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 주일 거다.


그래서 언론은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그가 남긴 유서의 한 구절에 주목했다. ‘서로 수저 색깔을 논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독야청청 금전두엽을 가진 듯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금전두엽을 가지지도 못했으며,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군요’라는 구절이다. 가져다 박기만 해도 얘기가 되는 두 가지가 만나는 순간이다. ‘흙수저’와 ‘서울대’. 기회는 이때다 싶어 흙수저 서울대생이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손길이 바빠졌다. 서울대생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누구나 부러워 할 학생인데도 가난이라는 멍에를 벗을 수 없구나, 하는 것들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수저론에 반대한 명문대생의 자살’이라는 4마디로 규정되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좀더 얘기되게 하기 위해 대통령 장학생이라는 설명도 붙여진다. 플롯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다.


그러던 중 유서에 이름이 나온 한 학생의 글을 봤다. 자살한 학생과 학보사를 같이 했다고 한다. 그는 ‘너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너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한다. 명문대생이 감사할 줄을 모른다고, 살려는 ‘노오력’을 덜 했다고 훈계를 한다. 언론에서는 이때다 싶어 네 죽음을 수저론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환원시킨다. 널리 퍼뜨리고 싶었을 너의 마지막 말이, 사람들에게는 한낱 가십거리로 소비되어 버린다’라고 적었다.





‘죽음은 전염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S가 유언을 널리 퍼뜨리려 한 것은 슬픔을 전염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S는 힘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위로가 돌아가는 세상을 바랐다. 오늘도 내일도 지겹게 살아남을 나는 그의 준엄한 마지막 말을 기억하며 살 것이다’란 그의 해석이 더 맞다고 생각했다. S라는 학생이 꿈꾸던 사회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마지막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느 한곳 기댈 데 없는 삭막한 시대에 몸의 건강 뿐 아니라 ‘정신 건강’을 회복시킬 정부 정책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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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헤이즐’은 운명과 죽음, 사랑에 관한 영화다. 암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마주한 10대 청춘들. 영화는 그들의 ‘운명 대처법’을 애뜻하면서도 따스하게 그려낸다. 여주인공이 헤이즐이니 ‘안녕, 헤이즐’은 이미 슬픈 이별을 예고한다. 하지만 그 가혹한 운명을 영화는 용기있고 당당하고 솔직하게, 요즘말로 ‘러블리’하게 그려낸다. 죽음에서 삶을 배우고, 절망에서 사랑을 깨닫게 하는 영화다. 그래도 설정이 ‘운명적’이니 영화 내내 마음은 아리다.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가 원작이다.

 

 

때때로 뒤엉키는 운명들

 

세상에 나옴은 순서가 있지만, 세상에서 들어감은 무작위다. 암이란 운명을 마주한 삶은 그 순서가 더 뒤죽박죽이다. 한쪽 다리가 의족인 헤이즐의 남친 어거스터스는 짧은 삶 ‘유한(有限)의 길이’가 헤이즐보다는 길어보인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추도하는 사람은 뒤에 남겨진 헤이즐이다. 운명은 때로 이처럼 순서가 뒤엉킨다.

 

“넌 나의 유한한 삶에 영원함을 줬어(You gave me a forever within the limited days).’ 헤이즐의 추도사는 삶과 죽음, 운명으로 관객의 생각을 끌어간다. 화두는 ‘유한 속의 무한’이다. 인간은 모두 ‘유한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이 짧을지, 길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분명한 건 누구나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유한엔 무한이 존재한다. 마치 0과 1사이에 무수한 무한의 숫자가 존재하듯. 0과 2, 0과 100으로 유한이 길어지면 그 안의 무한도 커진다. 허나 그것 역시 유한속의 무한이다. 짧음이 예언된 헤이즐의 유한을 무한으로 채워준 건 사랑이다. 애뜻한 설정의 영화가 나름 힐링이 되는 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든 감독의 센스 덕이다. 하기야 영화 얘기니, 감독이 상상력을 동원하고 배우가 연기로 받쳐주면 아름답게 승화하지 못할 가혹할 운명이 어디 있겠는가. 

 

 

가혹한 운명을 바꾼 당당함

 

가을의 중턱을 넘어선 10월의 어느 날. 한 음악회에서 ‘소울 플레이어(Soul Player)’ 이남현 씨를 마주했다. 그는 어깨 아래로 신경이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그의 운명은 타고난 게 아니라, 중간에 비틀렸다. 대학시절 목뼈가 무러지는 사고가 운명을 틀었다. 그는 가혹하게 돌변한 운명에 무릎꿇지 않았다. 목소리는 물론 재채기조차 힘들었던 그가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순간, 무수한 생각이 교차한다. 평범한 운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비운의 운명’. 그 마음은 어떨까. 자신의 저서 <나는 지금이 좋다>고 외치기까지 얼마나 큰 슬픔이 가슴을 찔렀을까. 아니, 그 외침에 아직도 슬픔이, 비애가 매달려 있는 건 아닐까. 다행히 그의 얼굴에 퍼진 평온이 은근히 위로를 준다. 고통·비애·좌절을 모두 승화한 듯한 그 평온에서 참다운 극기가 읽혀진다. 단순히 비틀린 운명에의 순응이 아닌, 가혹한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당차게 뒤바꾼 당당함. 그 당당함이 수시로 쳐져가는 어깨에 힘을 얹혀준다.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

 

인생은 영화와 다르다. 현실 속 운명은 때로 영화보다 훨씬 가혹하다. 운명이란 장벽이 너무 높고 단단해 그 앞에서 속수무책인 삶도 많다. 운명이란 게 좀 얄밉다. 운명에 기가 꺾이면 그 장벽은 더 높고, 더 두터워 진다. 그러니 운명 대처 제 1의 법칙은 일단 당당히 어깨부터 펴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상처 입을 각오로 사랑을 하면 상처는 없고 사랑만 깊어진다’고 했다. 그의 사랑은 ‘안녕, 헤이즐’처럼 청춘의 사랑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운명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에게 새로운 길을 터준다. 그러니 운명의 개척자는 살아 있고, 살아갈 힘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삶이 짧을런지 길런지, 포장도로일지 비포장도로일지 그 길이와 형상은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삶이란 그 유한의 여정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각자의 몫이다. 운명은 때로 무심히 던져지지만 선택은 언제나 내가 하는 것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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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휘재 씨는 한때이바람’이란 별명으로 불리었다. 수많은 여자를 만나며 젊음을 소비적으로 즐기는 바람둥이 이미지 탓이었다. 그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완전한 이미지 변신을 이뤄냈다.

 

쌍둥이인 두 아들을 섬세하게 돌보는 자상한 아빠! 새벽에 기상해 아내와 함께 쌍둥이의 수유를 하고 직접 목욕도 시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과거 이미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는 한 토크 쇼에서 쌍둥이의 육아에 집중하게 된 한 이유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들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살갑게 안아준 적 없는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겠다는 각오로 주말마다 다니던 야구 동호회 등도 모두 끊고 아이들의 육아에 신경 썼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엄하게만 대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한동안 품고 있었으나 결혼을 한 이후에 아버지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고 했다. 스스로 아버지가 되고 보니 자신의 아버지가 스스로 감정 표현을 절제하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롱런하는 대표적인 연예인 중의 한 사람이지만 몇 차례 슬럼프를 겪었다고 했다. 그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보다 인기가 없었던 동료와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데 자신은 정체하고 있다고 느낄 때였을 것이다. 

 

그는 “혼자 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혼자 취해 필름까지 끊기는 날이 많아지면서 무기력해지고 결국 우울증까지 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의학 토크 쇼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돼 ‘형’이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낸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했고, 그 이후 우울증을 이겨냈다. 이 씨는 “나는 내가 오펜스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소극적인 디펜스형 인간이었다”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상담을 한 정신과 전문의 형은 힘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 형 메신저 타이틀이 ‘이 또한 지나가리’였다. ‘이 형도 힘들구나. 다 힘들구나‘ 했다”고 밝혔다.

 

이휘재 씨가 우울증 초기에 의사를 상담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다.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증은 빨리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는 것이 최상의 대처법이다.

 

       심각하게 의욕이 떨어지고 기분이 우울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감정, 생각, 신체 상태, 행동에 모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 우울증이다. 일시적 증세로 끝날 수도 있지만, 지속되면 스스로를 위해할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다.

 

 

우울하고 화나는 감정반응이 상당히 심할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거나, 식욕이나 체중에 변화가 있을 때, 모든 생각이 부정적이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등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게 좋다.

 

우울증은 상담 치료와 약물 치료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항우울제 투약만으로도 상당 부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우울 증상, 감정 조절에 선택적인 효과가 있는 약물들이 개발된 상태다.

 

한의학에서도 우울증 치료법이 발달돼 있는데 칠정(七情), 즉 일곱 가지 감정 상태를 다스리는 처방이다. 가장 대표적인 치료법은 울체된 기운을 풀고 순환시키는 방법이다. 기운이 울체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소화가 안 되며 식욕이 떨어지게 된다. 몸 여기저기에 통증이 생기기도 하는데, 침 치료와 더불어 기혈을 순환시키는 한약을 병행하면 효과가 좋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슴이 먹먹하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난다. 매사에 의욕이 없다.”는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주변에 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단 우울증세를 앓고 있다는 매스컴의 진단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병원의 항우울제 처방이 늘었다고 한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가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집단 우울증세를 겪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계절적으로도 우울증이 크게 늘어나는 시기라고 한다. 겨울에 익숙해졌던 신체가 날씨의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면, 일주기, 호르몬 등의 변화를 겪는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계절성 우울증에는 햇볕이 명약이라고 한다. 햇볕을 많이 쬐어주면 인체 리듬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증상이 완화된다. 맑은 날 가볍게 산책하면서 햇볕을 쬐는 것이 좋다. 30분 햇볕을 쬐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분비량이 늘어나 체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뇌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은 우울증 예방과 치료에 큰 효과가 있다. 운동량을 늘려서 계절 변화에 못 미치는 신체리듬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으로도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우울증 환자 150명 중 일부에게 1주일에 5일 이상 30∼45분씩 걷기운동을 실시하게 한 결과 운동을 하지 않은 환자에 비해 증상이 26%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휘재 씨의 경우에서 보듯 스트레스를 술로 해결하려고 하면 우울증을 해결할 수 없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슴에 쌓아두지 말고 주변 사람과 대화 등으로 푸는 것이 좋다.

 

물론 우울증 초기에 병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보통 사람은 그러기 쉽지 않다. 편하게 상담할 수 있는 ‘의사 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상에 바쁘니 병원을 찾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증세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를 찾기가 여의치 않다면 부모나 친구, 직장 동료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앙인이라면 성직자에게 의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 / 문화일보 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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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바라보는 느낌은 동양과 서양이 약간 다르다. 동양은 속세와 묘지의 분리 개념이 강하고 서양은 속세와 묘가 좀더 친화적이다. 동양은 묘가 산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서양은 묘가 삶에 가까이 붙어있다. 공동묘지는 아이들이 뛰노는 동네 공원이다. 하기야 요즘엔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우리나라도 공동묘지가 생활 속으로 많아 들어와 있다. 이름도 공동묘지가 아닌 (추모)공원이다.

 

 

 

죽음을 보는 엇갈리는 느낌들

 

 

 

공동묘지에 서면 여러 생각이 묘하게 중첩된다. 죽음, 허무, 세월, 이별이란 아련함이 가슴에 스미지만  한편에선 평화, 고요, 해탈처럼 왠지 모를 포근한 느낌이 아린 가슴을 달랜다. 공동묘지는 삶과 죽음이 마주하는 곳이다. 세상으로 등을 돌리면 분주한 삶이 보이고, 무덤으로 등을 돌리는 순간 적막한 죽음이 들어온다.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파노라마처럼 스쳐보기엔 공동묘지만한 장소도 없다. 어쩌면 그 곳은 삶의 철학이 촘촘히 응집된 ‘인생의 가르침 터’ 인지도 모른다.

 

칠십 평생 세상의 이치를 설파한 공자는 죽음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공자의 훈계로 입문해 헌신적으로 공자를 섬긴 ‘공자학당’의 맏형 자로(子路)가 죽음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느날 그가 공자에게 ‘죽음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삶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 평소 배움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한 자로에게 죽음보다는 먼저 삶의 이치를 깨달으라는 따끔한 질책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공자 스스로 죽음을 모른 것은 아닐까.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럴듯한 포장으로 죽음을 설파했지만 과연 그 안에 정답은 있을까.

 

 

 

그래도 여전히 슬픈 이별

 

 

 

종교는 이후의 세계가 미지인 죽음에 위로를 준다. 기독교는 천국으로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고, 지옥으로 현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훈계한다. 불교는 과거-현재-미래가 하나의 커다란 둥근고리라고 말한다. 윤회라는 고리로 죽음이 종지부가 아님을, 오늘이 과거의 환생임을, 내세가 현생의 탈바꿈임을 강조한다. 그래도 죽음은, 이별은 여전히 슬프다. 천국으로, 삶의 윤회로 위로를 한다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생각이 얼마나 바뀔까.

 

공포, 두려움, 고통, 이별, 망각은 죽음이 연상시키는 단어들이다. 누군가에게 죽음은 이별의 아픔이고, 누군가에겐 고통의 두려움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는 서글픔이다. 이 모든 것이 죽음이 두려운 이유다. 하지만 ‘죽음이란 무엇일까’라는 태고적부터의 질문에 어느 누구도 정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죽음이 철학의 씨앗이 되고, 사유의 토대가 되는 이유다. 죽음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시각이 엇갈리는 교차점이기도 하다.

 

 

 

명약은 '현세의 바른 삶'

 

 

 

하지만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 그 수명을 다한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이 시작되었 듯,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 삶이 마무리된다. 그건 우주의 필연이다. 필연은 순응해야 한다. 그 게 바로 성숙이다. 노년의 인생이 죽음에 지나친 공포를 느낀다면 정신적 성숙이 나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그처럼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생전의 생활이 사악했다는 증거’라고 설파했다. 올바른 삶이 죽음의 공포를 덜어준다는 얘기를 역으로 표현한 셈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삶은 죽음에서 생긴다. 보리가 싹트기 위해선 씨앗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맞는 말이다. 씨앗이 썩어야 새싹이 움을 트는 법이다. 이 이치는 사람이나 식물이나, 살아있는 모든 것에 적용되는 순리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오래 살고 싶으면 잘 살으라’고 강조했다. 어리석음과 사악함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이다. 바른 삶, 순리에 맞는 삶을 살다보면 더 오래 살고 죽음의 두려움도 덜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장수한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받는 느낌은 안정감과 평온함이다. 그만큼 인생을 바르게 살아온 결과다.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는 공자의 말씀 역시 죽음을 궁금해하기보다 삶에 더 충실하라는 따끔한 충고다. 지금 사는 삶에도 더 배워야 할 것, 더 깨우쳐야 할 것, 더 실천해야 할 것, 더 꿈꿔야 할 것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아침에 도(道)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이승에서 더 깨우칠수록 죽음이 그만큼 덜 두려워진다는 삶의 이치를 함의한다. 현세를 바르게 사는 것, 그 게 바로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는 명약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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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삶과 죽음을 반대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동전의 양면처럼 둘이 언제나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난다.

  삶을 보다 행복하고 풍성하게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너무 당연한 명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같다

 

 평생을 자동차 정비사로 살아온 카터(모건 프리먼 분)과 엄청난 재산을 가진 재벌 에드워드(잭 니콜슨 분)은 모두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악성 뇌종양 때문이었다.

 

 이 둘은 사실 악성 뇌종양과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 그리고 우연히 같은 병실을 쓰게 되었다는 것만 빼놓고는 모든 것이 달랐다. 흑인과 백인, 부자와 가난한 사람으로, 행복한 가정이 있는 사람과 혼자인 사람.

 

 이 두 사람은 그 동안 서로 만날 일이 없었을 정도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 둘은 인생의 마지막에서 만났다.

 바로 죽음의 목전에서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양으로 살아간다. 서로를 평가하고 비교하면서 상대를 부러워하거나 무시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다. 모두들 태어날 때로 빈 손으로 왔고, 갈 때도 빈 손으로 간다. 인간은 실존적으로 모두 동일하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

  

 카터는 침상에서 몇 가지를 적는다.

 그것은 바로 버킷리스트(Bucket List)다.  ‘죽다’는 의미를 가진 영어의 속어 ‘Kick the Bucket’에서 유래한 말로, 죽기 전에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을 적어놓은 목록을 의미한다.

 

 이를 알게 된 에드워드는 가진 것이 돈 밖에 없는지라, 그것을 모두 해보자고 제안한다. 병원 침대에서 죽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죽든 어차피 죽을 거라면 후자가 낫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세렝게티 초원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다이빙하기,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장관(壯觀) 보기 등 하나씩 하나씩 버킷 리스트를 지워나간다.

 

 

 많은 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혹은 과거의 실수를 회복하기 위해서 현재를 희생한다.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과거처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여기’에서 느끼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면서 고군분투한다.  

 

  여기에는 한 가지 암묵적 가정이 있다. 자신은 지금 당장 죽지 않을 것이라는. 하지만 정말 이 가정이 맞을까?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죽을 시점을 알 수 없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다는 말처럼. 차라리 병을 얻어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며칠이나 몇 주, 몇 개월이나 몇 년의 인생이 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몸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정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실존주의 철학자들이나 실존주의 심리치료자들은 한 결 같이 말한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죽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빛을 지각하는 이유는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행복이 중요한 이유는 불행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불사(불노)와 영생을 꿈꿔왔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큰 숙제다.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준다.

 그러나 죽음이 주는 이득도 만만치 않다.

 

 죽음이 없다면 그 누가 오늘을 열심히 살까? 죽음이 없다면 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면에서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일지 모른다. 

 마치 죽음 앞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을 얻었던 영화의 두 주인공처럼 말이다.

 

 오늘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시간은 오늘, 아니 오늘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오늘을 잡아라(현재를 즐겨라)는 의미의 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자.

 

 

누다심 / 심리학 칼럼니스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검색 "버킷리스트 - 죽기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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