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르지만 직장 상사의 폭언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만든다. 폭언은 언어적 폭력인 만큼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그렇다면 직장에서의 폭언 스트레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구급대원부터 콜센터까지


최근 한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 회장이 직원에게 거침없는 욕설을 내뱉는 등 폭언을 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 회장은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서류를 던지는 등 반복된 폭언과 폭행이 알려졌다.


앞서 국내 대표의 항공사 역시 연이은 임원 가족들의 갑질 횡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는데, 욕설을 기본이고 서류를 던지는 등의 횡포도 이어갔다. 안타까운 점은 이처럼 직장에서의 폭언 스트레스를 마땅히 풀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에 발생한 119 여성 구급대원(소방위) 폭행 사망사고만 보더라도 평소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망했던 구급대원은 폭행 직후 동료들에게 구조 과정에서의 폭행보다 여성으로서 듣기 힘든 모욕적인 욕이 더 끔찍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콜센터 상담원들도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감정노동자로 구분되는 만큼 시종일관 밝은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희롱, 폭언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 폭언은 산업재해


직장 상사의 폭언은 업무 과다와 함께 대표적인 스트레스 원인이다. 이 스트레스가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경우가 9년 사이 무려 10배나 급증했다. 이는 정신질환 재해 인정 기준이 낮아졌고 갑질을 폭로하는 분위기도 좋아진 탓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겪은 직장인 216명 중 60%가량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그만큼 폭언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스트레스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정리되는데 일명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보통 폭언 등의 사건 직후에 나타나지만 수 십 년 후 나타나기도 한다.


또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 등의 문제가 동반되면서 약물치료나 심리상담, 안정화 요법 등의 치료로 이어질 때도 있다.



결국 혼자 해결하기 힘들다면 주변의 도움을 구하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다행인 점은 감정노동자 인권보호와 정신건강 보호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 역시 오는 10월 18일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고객을 직접 대면 또는 통신 등으로 상대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가 고객의 폭언 폭행으로 건강 이상에 우려가 있을 경우 사업주는 업무를 중단시켜야 한다. 또 감정노동자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사업주에게 과태료까지 부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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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하면서 경조사는 항상 고민거리다. 마음은 다 챙기고 싶지만, 형편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선별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섭섭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게다.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의 애경사를 일일이 챙기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우리 나이로 쉰 여섯~쉰 일곱살이 대부분이다. 자식들을 여의기 시작했고, 부모님 상도 가장 많을 때다.

 

일주일에 평균 1번 이상 소식을 접한다. 나는 문과 출신. 우리 대전고 전체 졸업생은 12반 720명 가량 된다. 문과 5반, 이과 7반이다. 2학년 때 문이과가 갈렸으니 아무래도 문과 출신을 조금 더 신경쓴다. 3학년 때 한 반이었던 8반 출신의 경조사는 최대한 챙긴다. 직접 참석을 원칙으로 하되, 못 갈 경우 성의 표시는 하는 편이다. 물론 같은 8반인데도 졸업 후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가 있긴 하다.

 

애경사는 품앗이 성격이 강하다. 내가 한만큼 돌아온다는 얘기다. 따라서 사람이 적게 온다고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 먼저 나는 사람 도리를 다 했는가 되돌아봐야 한다. 그럼 답이 나온다. 돌아오는 토요일 고등학교 친구가 딸을 여읜다. 지난해 12월 내 출판기념회 때도 왔던 친구다. 당연히 참석한다. 두달 전쯤 소식을 듣고 스케줄을 비워 놓았다. 마침 휴가 마지막 날이다.

 

애경사를 비교적 잘 챙기는 편이다. 소식을 듣거나 연락을 받으면 적더라도 성의를 표시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일일이 다 챙길 수는 없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기준과 원칙은 정해 놓고 있다. 모임을 같이 하거나 친인척 등 가까운 사람은 반드시 챙긴다. 지인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할 수 있다. 고향, 학교, 직장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만난 분들도 적지 않다.

 

 

 

 

2008년 12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당시 많은 분들이 문상을 오셨다. 대전에서 상을 치렀는데 그곳까지 직접 찾아오신 분들이 많았다. 방명록도 만들어 놨다. 내 손님만 500여명쯤 됐던 것 같다. 때문에 어머니를 잘 모실 수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다보니 더러 불편한 연락도 받는다. 한두 번 만났을까 하는 사람들이 연락을 해오는 경우다. 명함만 받고 연락을 한다고 할까.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줘서는 안 된다. 내 일처럼 여길 수 있는 분들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애경사엔 가급적 참석하고 있다. 특히 상가집은 직접 찾아가는 것이 좋다. 상주들에게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가야 상대방도 온다. 나는 가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오기를 바란다면 뻔뻔한 짓이다. 그런데 자기 도리는 하지 않으면서 부담을 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차별적으로 청첩장이나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다. 

 

이름조차 생소한 사람에게서 메시지를 받는다. 주로 부음을 알린다. 문자 메시지가 편리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발송하는 것 같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생각나지 않는다. 한 두 번 만나 명함 정도 주고 받았을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부음을 알리는 것은 결례다. 웬만하면 신문 부음란을 보고 찾아가기도 한다. 주소록이나 전화번호를 정리할 때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살아가면서 잊기 쉬운 게 예의다. 그것은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키지 못할 경우 찜찜하다. 특히 애경사는 간과하기 쉽다. 얼굴을 내밀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에 상을 당하면 난처한 경우가 많다. 우선 연락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나흘이나 닷새장을 치르기도 한다. 문상객을 맞이하기 위해 장례식을 늦추는 것도 모양새가 좋진 않다.

 

얼마 전 지인의 부음 연락을 받았다. 주말을 이용해 시골에 다녀왔다. 발인은 다음날 이었다. 조의금이라도 대신 전달하기 위해 각방으로 수소문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직접 영안실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차가 밀려 밤 늦게 서울 집에 도착했다. 그래서 발인을 하기 전 새벽에 찾아갔다. 다행히 상주에게 인사도 했다. 장례식을 마친 뒤 상주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 새벽의 조문, 잊지 못합니다. 그게 오풍연이 사람 꼼짝 못하게 하는 인간미…. 고맙소.” 비록 잠은 조금 설쳤지만 마음이 홀가분했다.

 

사람 도리를 다하긴 쉽지 않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인간은 혼사 살 수 없다. 어울려 함께 살아야 한다. 애경사를 잘 챙기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글 /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오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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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가장 큰 고질병은 뭘까. 스트레스라고 한다. 실제로 그렇다. 만병의 근원은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간혹 원인을 모르는 병도 있다. 환자들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병명을 모르는 경우 의사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스트레스는 풀고, 안 받도록 노력하세요." 이 같은 대답을 들어도 찜찜하기는 마찬가지다. 개운치가 않아서다.

 

스트레스를 치료해주는 명의는 없는 것 같다. 어떤 유명한 의사도 처방전을 내리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어떤 이는 기치료, 명상을 권유하기도 한다. 취미활동을 권하는 이들도 있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한계를 절감한다. 100%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안 받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덜 받는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걱정이 없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우선 마음을 비우고자 노력한다. 백지상태에서는 걱정이 없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 다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죽기를 각오한다면 스트레스도 무섭지 않을 터.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문제이긴 하다.

 

 

 

 

 

스트레스가 없거나, 받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게다. 성격이 무던한 사람은 덜 받을 것이고, 급한 사람은 더 받을 게 틀림없다. 자기 뜻대로 조절되지도 않는다. 아무리 안 받으려고 해도 밀물처럼 밀려온다. 불가항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라. 참지 말고 바로 풀어라. 안 그러면 병이 된다." 자주 듣는 말이다. 의사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약은 아직 없다. 그와 관련해 신약을 개발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앞으로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도 가끔 거짓말을 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큰소리 친다. 따지고보면 거짓말을 한 셈이다.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기 삶에 100% 만족할 수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재벌이라고 근심 걱정이 없겠는가. 성직자라고 예외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덜 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조급증을 없애고, 여유를 갖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마음의 평정을 찾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미련한 짓은 폭음. 몸이 축나고 정신도 더 흐릿해진다. 그것을 알면서 술을 찾곤 한다. 자기만의 비법을 터득하는 것이 좋다. 그냥 품고 있으면 병이 되는 것 또한 스트레스다.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 또 빠를수록 좋다. "속이 후련하다."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것을 풀었을 때 튀어 나온다. 그러려면 누군가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 혼자 하소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장점이다. 고민해결사라고 할까. 인내심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하소연을 끝까지 듣기 위해 꼭 필요한 대목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 끊으면 안 된다. 이런 경우 되레 상처를 더해 준다.

 

직장에 출근하면서 기분 좋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몸도, 마음도 무거운 사람이 많을 게다. 스트레스가 많은 까닭이다. 과도한 업무량도 그렇고, 신명이 안난다.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경험하는 바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9명이 '무기력증을 경험했다'고 한다. 솔직한 답변인 것 같다. 직장은 신바람나는 일터여야 한다. 그래야 능률도 오르고, 보람도 갖게 된다. 무기력증을 느끼는 원인을 살펴봤다. 낮은 연봉과 열악한 복리후생(49.9%)을 가장 많이 꼽았다. 과도한 업무량(38.3%)이나 회사 내에서의 미미한 존재감(25.5%),성과에 대한 불만족(21.3%)등을 거론했다. 이런 분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성을 더욱 더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다.

 

 

 

 

무기력증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우울증 만큼이나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빨리 고칠 수록 좋다. 회사 측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어차피 개인이 극복할 수밖에 없다. 직장은 대부분 주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토, 일요일을 보람차게 보내면 새로운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다. 집에서 무기력하게 보내면 피로감이 더 쌓인다. 운동이나 여행 등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라. 이틀 중 하루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도록 하자. 무기력증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글 /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오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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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도 한 그릇 더 먹어 만 55세가 됐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직장을 정리할 나이다. 대부분의 직장이 만 55세를 전후로 퇴직한다. 올해는 나와 같은 60년생이 그 대상이다. 조금은 슬프게 느껴진다. 할 일이 더 있는데 나가라니. 그만큼 세월이 빠르다는 얘기다. 자식들도 채 여의지 못할 나이다.

 

빡빡하게 살다보니 벌어놓은 여윳돈도 있을 리 없다. 집 한 채, 자동차 1대, 약간의 예금정도일 터. 국민연금도 7년 뒤에나 받는다. 그때까지 무엇을 하라는 얘기인가. 나는 그래도 나은 편. 계약직으로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 따라서 정년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대신 그만두라고 하면 언제든지 나가야 한다. 그럴 준비는 항상 되어 있다. 신문사 논설위원도, 대학 초빙교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만두는 날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두 직장에 대해 감사한 마음은 잊지 않고 있다. 나에게 일터를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일터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하루는 24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하루가 지나가면 내일이 온다. 오늘은 어제의 연장선이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가는 세월은 붙잡을 수 없는 법.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것 만큼 귀한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가면 해결된다. 시간이 약인 셈이다. 시간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행복할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새벽이 가장 좋다. 보통 2~3시에 일어난다. 모두 잠잘 시간에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일찍 자기 때문에 이같은 생활 습관이 가능하다. 어쩌다 5시쯤 일어나면 늦잠을 잤다 싶다. 지난 5년간 8권의 에세이집을 낸것도 무관치 않다. 거의 날마다 이 시간에 글을 썼다. 이제는 몸에 완전히 뱄다.

 

 

 

 

꼭두새벽 나의 일터는 우리집 거실. 안방에서는 아내, 건너방에서는 장모님, 또 다른 방에서는 아들 녀석이 잔다.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거실 밖에 없다. 매일 마주치는 거실이지만 정겹다.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마시는 커피 맛도 일품이다. 진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이 기쁨을 영원히 누리고 싶다.

 

직장에 출근하면서 기분좋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몸도, 마음도 무거운 사람이 많을 게다. 스트레스가 많은 까닭이다. 과도한 업무량도 그렇고, 신명이 안난다.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경험하는 바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9명이 '무기력증을 경험했다'고 한다. 솔직한 답변인 것 같다.

 

 

 

 

직장은 신바람나는 일터여야 한다. 그래야 능률도 오르고, 보람도 갖게 된다. 무기력증을 느끼는 원인을 살펴봤다. 낮은 연봉과 열악한 복리후생(49.9%)을 가장 많이 꼽았다. 과도한 업무량(38.3%)이나 회사 내에서의 미미한 존재감(25.5%), 성과에 대한 불만족(21.3%)등을 거론했다. 이런 분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성을 더욱 더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다.

 

무기력증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우울증만큼이나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빨리 고칠수록 좋다. 회사 측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어차피 개인이 극복할 수밖에 없다. 직장은 대부분 주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토, 일요일을 보람차게 보내면 새로운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다. 집에서 무기력하게 보내면 피로감이 더 쌓인다. 운동이나 여행 등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라. 이틀 중 하루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도록 하자. 무기력증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세상에 특별난 사람이 있을까. 없다고 본다. 한 번 태어났다가 죽는 것은 똑같다. 그럼에도 발버둥친다.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특별한 대접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의외로 '나'는 특별나니까, 차별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단다. 그런 심리가 나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와 남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몇해 전 어머님 수의를 맞추러 경북 안동에 갔을 때다. 토속음식인 헛제사밥을 먹으러 한 음식점에 들렀다. 대형 버스 2대가 도착한 뒤 70~80대 노인들이 단체로 들어왔다. 모두 점퍼 등 평상복 차림이었다. 방 안에선 "위하여" "브라보" 등 구호가 터져 나왔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자는 다짐일터. 음식점 주인이 말했다. "일행 중에 장관을 지내신 분도 2명 있대요." 

 

장관을 역임한 70대 후반의 고교 선배가 들려줬다. 매달 모이는 시골 초등학교 동기회에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모임을 갖는데 회비는 1만원. 매운탕에 소주 한 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단다. 대신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진 일을 해야 한다. 일터가 있고, 어울릴 친구가 있다면 최고 아닐까.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글 /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오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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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이 땅에서 불과 35년 만에 올림픽을 개최했으니 말이다. 세계는 '한강의 기적'에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모델이 되었다.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물론 1997년부터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지만 전 국민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4년 만에 전액 상환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엄청난 성과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밤과 낮,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또 일하는, 죽도록 일하는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OECD 국가 중에 주당 근무시간은 가장 높고, 수면시간은 가장 적은 나라라고 한다. 이 정도 했으면 좀 쉬어가만도 한데 현실은 다르다. 이제는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특히 세계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국가도 기업도 모두 위기라고 말한다. 국가는 기업을, 기업은 국민의 고삐를 계속 죄고 더욱 박차를 가한다. 지금까지도 죽을힘을 달렸지만 또 다시 달려야 하다니! 국민은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이른바 번 아웃 신드롬이다.

 

 

 

 

 

아웃이란 완전히 지쳐서 소진된 상태를 말한다. 번 아웃은 단순한 신체적 피로나 피곤과는 다르다. 몸이 지친다면 푹 자거나 쉬면 회복이 된다. 핸드폰 베터리가 방전이 되었을 때 충전기만 꽂고 기다리면 되듯이 말이다. 그러나 번 아웃은 더 이상 충전이 되지 않는, 즉 베터리의 수명이 다 된 상태다. 아무리 충전기를 꽂아도 소용없다.

 

번 아웃이 되면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많이 자더라도 회복되지 않는다. 몸이 지친것이 아니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이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 일 생각이 떠나지 않아 괴롭고 불안하다. 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일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불면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은데, 눈을 붙여도 잔 것 같지가 않다. 꿈에서도 무엇에 쫓기거나 조바심을 내는 일이 많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허기가 지는 것은 배가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번 아웃은 크게 심리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심리적 증상으로는 피로감과 무기력, 우울이나 불안, 분노와 짜증이 있고, 신체적 증상으로는 불면증이나 폭식증, 대인기피나 출근(직무)거부가 있다. 번 아웃을 방치할 경우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알코올이나 게임, 쇼핑중독에 빠질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빈번하게 겪기에 가정에서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을 수도 있다. 당연히 직장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극단의 고립감과 무기력, 자기비난에 빠져서 자살시도나 자해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수면과 섭식 문제와 스트레스 때문에 온갖 신체적 질병에 취약해지기 쉽다.

 

 

 

 

 

어떻게 해야 번 아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번 아웃은 일종의 경고등이다. 자가용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왔을 때 제대로 된 수리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달린다면 폐차를 시켜야 할지 모른다. 번 아웃은 우리 삶의 방향이나 방식이 잘못 되었다고 알려주는 빨간불이다. 점검이 필요하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하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잘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일하기 위해 살게 되지는 않았는지,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지만 정작 일 때문에 가족이 고통 받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필요하다면 이직을 고려하거나 새로운 삶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만약 현재의 삶의 방식과 방향을 바꿀 수 없다면 되도록 일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직장에서 성공을 쫓아가다가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으니, 자신이 욕심을 내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는 것도 좋겠다. 어떻게 되었든 시간을 확보해 제대로 쉬는 것이 필요하다. 제대로 쉰다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의 휴식이 먼저다. 마음이 편안해 지는 방법으로는 적절한 강도의 운동이 좋다. 운동을 하면서 근육의 긴장감, 심박의 증가도 느끼고 운동 이후의 이완과 상쾌감을 느껴보자. 이와 더불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것이 좋다. 사람은 뿌리부터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현대 사회는 서로를 대상화시킨다. 필요에 의해서 만나고 헤어지며, 상대를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따라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 번 아웃에서 회복될 수 있다.

 

글 / 심리학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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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에 달고 사는 외래어는 무엇일까? 답은 ‘스트레스’다. 월요일에 회사 나가기 싫은 것도 스트레스고, 상사에게 꾸지람 듣는 것도 스트레스다. 어디 이뿐인가. 가정생활에서부터 미래에 대한 불안에 이르기까지 스트레스 아닌 게 없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스트레스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찾아봤다. 스트레스는 무언가를 잘해보기 위해 긴장하는 것이란다.

 

스트레스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남에게 지기 싫은 경쟁심, 즉 그런 스트레스가 경제성장의 배경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보면 회사라는 조직에서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개인 실적이나 일의 마감시한, 그리고 공동목표 달성에 대한 압박감이 없는 조직.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유토피아는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조직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조직을 떠나는 게 꿈을 이루는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건강에 좋지 않은 스트레스는 적을수록 좋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줄이는 첫 번째 방법은 소통을 잘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모르는 것으로 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 서 있다면 어떤가. 답답하다. 30분이 세 시간 같다. 그런데 누군가 몇 미터 전방 앞에 무슨 사고가 나서 지금 막히고 있고, 몇 분 후에 교통사고 처리가 완료되어 통행이 원활하여질 것이라고 소상하게 알려주면 어떻겠는가? 같은 시간을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조직도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잘 알려줘야 한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알려주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하지만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막고 품으라고 하면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일관성과 원칙이 있어야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두 부서의 부서장이 불 같이 화를 냈다고 하자. 그런데 한 부서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다른 부서는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스트레스 받지 않는 조직은 왜 그랬을까? 부장의 행동에 일관성이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 화를 내는지 부서원들이 잘 알고 있고, 그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리더의 행동이 일관성이 있어 이를 예측할 수 있어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일관성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명확한 원칙 세워놓고 지키는 것이다. 각 부서가 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관계를 명확히 해놓는다거나, 승진이나 문책의 기준을 확실히 해놓으면 구성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행동하기 때문에 갈등할 일이 줄어들고 스트레스 역시 감소하게 된다.

 

 

 

 

세 번째 방법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으로부터 찾고, 그 해결책도 자기 안에서 먼저 찾는 것이다.

 

남 핑계, 환경 탓, 여건 탓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도 더 쌓인다. 모든 게 자기 잘못이 아니고 남의 탓인데, 그리고 그 남의 탓은 자기가 어찌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며, 거기로부터 비롯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문제가 생기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를 초래한 자신을 돌아보자.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 속에 있고, 세상의 변수는 내가 컨트롤하기 어렵다. 환경과 여건은 늘 상수로 생각해야 하고, 나쁜 환경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스트레스를 받을 대상이 아니다.

 

모든 것은 나 하기에 달렸다.

글 /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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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던 주부들이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니 세상과의 단절이 너무 깊어졌다. 세상으로 다시 나가자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어린 자녀의 재롱과 엉뚱함으로 버텼지만, 사춘기가 된 자녀들은 더 이상 자신과 소통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며 고군분투하는 워킹맘들은 좀 나을까? 그렇지도 않다. 직장에서는 남자들과 경쟁하느라, 집에서는 엄마노릇 제대로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여기에 더해 갱년기까지 겹치면 몸과 마음은 더 쳐진다. 

 

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할 만큼 흔한 마음의 병이지만, 감기처럼 그냥 방치하다가는 더 큰 병이 될 수 있기에 가벼이 넘길 일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상황별로 알아보자.

 

 

Case 1. 반복되는 육아와 일상에서 오는 무기력

 

사람은 본래 자극을 추구하는 존재다.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많은 자극을 받기에 자극이 곧 스트레스고, 자극이 없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은퇴한 노인들 중 적지 않은 연금을 받는 분들도 굳이 일을 하려고 한다. 돈이 아닌 무료함 때문이다. “심심해 죽겠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어느 심리학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만 제공하고 다른 모든 자극은 차단했다. 참가자들은 정한 시간에 제공되는 밥은 먹을 수 있었으나 그 외의 시간은 누워있어야 했다.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은 수면뿐. 처음에는 마음껏 잘 수 있다며 좋아했지만 3일 째 되는 날 모든 참가자들은 적지 않은 일당을 포기하면서 실험에서 이탈했다. 다름 아닌 무료함이었다. 무료함이 오래되면 무기력으로 발전한다. 무료함과 무기력은 둘 다 몸과 마음에 힘이 없는 상태다. 불만스럽긴 한데 딱히 무엇 때문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다. 게다가 남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당장 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부러워할 만한 조건과 환경일 수 있다. 아이들 건강하고 공부 잘 하고, 남편도 잘 대해준다. 남들 만이랴? 자기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아 마음은 더 힘들다. 심해지면 우울증으로 발전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료함의 가장 큰 원인은 새로운 자극이 없을 때 나타난다. 반복의 연속인 일상에서 피할 수 없는 적(敵)이라 할 수 있다. 무료함으로 시작된 무기력과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극을 추구해야 한다. 결혼 이후로 자신의 울타리를 가정으로만 국한시킨 사람이라면, 이제는 그 울타리를 벗어날 용기가 필요하다. 일례로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해 시간이 날 때마다 동호회 사람들과 라이딩을 다니는 분들도 있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뒤늦게 사회복지나 심리상담을 공부하시는 분들도 있다. 지역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며 자원봉사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도 있다. 어떤 활동이든 상관없다. 어느 정도 재미있고 조금이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시작해 보자.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괴로워하는 자신을 한심해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 안에서 우울해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직, 간접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일상을 벗어나서 활력을 되찾자. 그러면 다시 일상에 돌아갔을 때, 그 일상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Case 2. 직장에서 남자들과 경쟁하며 고군분투하는 워킹맘의 피로감

 

일하는 여성들은 과거에 비해 월등히 많아졌고,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제도도 만들어졌다. 직장에서도 실력을 갖춘 여성의 진급도 전보다 빨라졌다. 얼마 전 국내 20대기업에서 여성과 남성의 연봉을 비교한 결과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남성과 여성의 연봉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워킹맘의 행복도는 높아질 줄 모르고, 피로감은 낮아질 줄 모른다. 그 이유는 워킹맘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우선 직장에서는 워킹맘이라 하지 않고 여직원이라 한다. 그 사람이 엄마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월급 이상의 성과를 내라고 요구한다. 또 워킹맘은 “여자니까...”, “애 엄마니까...”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웬만한 남자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집에서는 어떨까? 남편에게는 워킹맘이 아닌 그냥 아내다. 집안일부터 온갖 경조사, 육아까지 해주기를 바란다. 한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의 87.9%에서 아내가 주로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에게도 워킹맘이 아니라 그냥 맘(엄마)이다. 전업주부인 친구네 엄마처럼 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아이들은 금세 포기하지만, 포기한 만큼 불만을 갖는다. 이 같은 워킹맘의 피로감을 줄이려면 먼저 워킹맘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환경이 바뀌길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환경을 바꿔보자.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어떻게 변할까? 소위 슈퍼우먼 콤플렉스는 없는지 살펴보자. 직장에서도 성공하는 직원, 가정에서도 멋진 아내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주어진 시간 동안 일에 최선을 다하자. 그래야 집안일 때문에 양해를 구할 때 체면이 선다.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집안 핑계를 대면서 일에 소홀하면 누가 좋아할까. 동료에게 시시때때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필요하나 이것도 너무 잦으면 안 된다. 직장은 일하려고 모인 곳이니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가정은 다르다. 일이 있지만, 일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다. 많은 남편들은 집안일을 ‘도와준다’라고 표현하는데, 집안일이 아내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때, 남편을 적극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정 안되면 집안일도 업무분장을 하자. 남편이나 아이들이 주어진 업무(집안일)에 게으르거나 못한다면 기다려야 한다. 할 때까지.

 

아이에게도 워킹맘의 한계에 대해 양해를 구하자. 그리고 가능할 때만이라도 아이와 진짜 소통을 해보자. 당장에는 물론 엄마를 이해하기 어렵고 친구네 엄마를 부러워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도 알게 된다. 자신의 엄마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늘 잔소리하는 친구네 엄마보다는 자신의 엄마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치지 않도록 마음 건강을 꼼꼼히 챙기자. 요즘은 회사 내에 심리상담센터가 있는 곳이 많다. 없다면 외부에 있는 상담센터도 좋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삶의 고민이 있을 때 심리학자를 찾아가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와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다.

 

 

Case 3.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 단절로 인한 상실감

 

사람은 지구상의 어떤 동물보다 어미로부터 독립하는 시기가 늦은 편이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난지 오래지 않아 혼자 서고 걷고 뛰면서 사냥을 하는 등 스스로 먹이를 구한다. 그리고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미를 떠나 자신만의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양육자(주로 엄마)에게 의존해야 한다. 신체적 발달이 늦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심리적 독립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엄마 못지않게 아빠도 양육에 많이 참여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출산과 함께 양육을 담당하는 쪽은 주로 엄마이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 어느 집의 귀한 딸이었다. 손에 물 한 방물 묻히지 않고 애지중지 키웠던 딸. 어린 시절에는 꿈도 있었고, 또 성인이 되어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엄마가 되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올인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 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 좋다. 베이비시터, 조부모,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의 종일반이 아닌 엄마의 손길을 온전히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당장에는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의 전부가 아이로 채워지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

 

아이는 성장할수록 엄마의 손길을 벗어나려고 한다. 특히 사춘기에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품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몸부림이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여전히 어리게만 보인다. 또한 자신의 삶의 전부였던 아이가 자신의 품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양쪽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이 갈등은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아이의 의지가 엄마에게 충분히 수용되지 못하면, 아이는 마음을 닫는 전략을 취한다. 이 때 엄마의 상실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도둑맞은 기분이다.

 

그러나 엄마는 기억해야 한다. 사춘기 아이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몸부림을 하는 것이지, 엄마를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이런 면에서 심리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비록 아이가 아직 어려보이고 부족해 보이며 수많은 시행착오가 걱정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한다. 아이가 시행착오를 하겠다고 요구할 때, 엄마는 아이를 보내주어야 한다. 아이와 엄마 모두 심리적 독립, 즉 홀로서기가 필요하다. 엄마는 이제 아이보다는 남편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남은 삶을 준비하고 도전할 필요가 있다. 심리적 독립을 놓쳤을 경우, 아이들이 결혼으로 모두 출가해 버린 후 찾아오는 빈 둥지 증후군으로 더 큰 우울과 좌절을 느끼게 될 수 있다. 심리적 독립을 준비하자.

 

  

Case 4. 산후 처진 살과 탈모, 갱년기 등으로 인한 자신감 하락

 

여성에게 외모는 권력이다. 나이와 무관하다. 거울에 비취는 것이 온통 주름뿐이라도 해도 “아름다우십니다”라는 말, 그 말이 농담일지언정 잠깐이라도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외모로 인한 자신감은 출산을 기점으로 하락곡선을 그린다. 임신 때문에 뱃살은 터지고 갈라지며, 뱃가죽이 쳐진다. 피부에 많이 망가져서 거울을 보기가 무섭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대한 걱정은 진작 포기했다. 중년이 되니 예상치 못하게 탈모가 진행되고, 갱년기가 찾아오면 더 이상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고 느낀다. 당연히 자신감은 바닥을 친다.

 

간혹 인터넷 기사를 보면 시사회장에 나타나서 인터뷰를 하는 중년의 여배우를 볼 수 있다. 기자들은 여배우에게 처녀 시절 못지않은 피부와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꼭 묻는다. 여배우들은 늘 운동과 음식, 즐거운 마음 자세를 이야기하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관리’ 때문임을.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한 ‘관리’라는 것을. 이런 기사를 접하는 중년 여성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만약 누군가가 연예인급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쏟아 붓고, 명품으로 치장을 하며, 최고급 화장품에 투자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제 아무리 좋은 방법이 있다 해도 시간 앞에서는 허사다.

 

융(Carl Jung)이라는 심리학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는 인생에서 중년의 시기는 육체적 인간이 정신적 인간으로 변모할 기회라면서, 에너지와 관심을 외적 아름다움을 두기보다는 내적 아름다움에 두라고 말한다. 사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젊은 사람들은 에너지를 돈과 권력, 외모 같은 것에 쏟아 붓는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관심을 끄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외적인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다보면 당연히 내적인 것은 방치되게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버나드 쇼도 “미인은 처음 볼 때는 매우 좋다. 그러나 사흘만 계속 집안에서 상대해보면 더 보고 싶지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모든 미인이 이렇지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주변에서 곱게 나이 들어가는 중년 여성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들이 곱다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연예인급의 S라인이나 동안 피부 때문은 아니다. 얼굴에 온갖 시술을 하고, 화장을 진하게 하며, 화려한 옷을 입고 자신의 외모를 뽐내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성품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씨가 그런 칭송을 하게 만든다. 이제는 내면을 채우면서 자신감을 올려야 할 때다. 그래야 인생의 후반부를 아름답게 살게 된다.

 

내적 아름다움을 기르기 위해 가장 손쉬우면서 당장 실천 가능한 방법은 독서다. 굳이 어렵고 딱딱한 책이 아니어도 좋다. 소설책도 좋고, 에세이도 좋다. 또 요즘은 읽기 쉽게 쓴 인문학 서적도 즐비하다.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면 도서관이나 구청, 문화센터에서 하는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 동안 남편과 자녀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자녀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남편에게도 할 만큼 봉사했으니 자신을 위해 살아보자. 외적 아름다움에 쏟았던 관심을 내적 아름다움으로 돌리면서 말이다. 

 글 / 강현식 심리학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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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말 역동적이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농경 사회였다. 반세기 전부터는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도시가 세워지고 공장이 돌아갔다. 직접 땀 흘려 밭을 갈던 농부의 아들들이 공장과 직장에 ‘취직’이라는 것을 하면서 부모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 한국은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이 무려 2, 300년 걸렸던 변화가 한국에서는 100년 만에 일어났다. 당연히 세대 간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지금의 중장년은 산업화와 정보화 사회의 과도기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컴퓨터는 대학이나 직장에서 처음 접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세련된 타자기에 불과했다. 워드 프로그램이 곧 컴퓨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하루가 다르게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컴퓨터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해졌다. 예전에는 사람이 하던 일을 컴퓨터가 처리하게 되면서 승진 경쟁도 전과 다르게 치열해 졌고, 퇴직 시기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면서 연금을 붓고, 60대에 퇴직하면 연금을 받으며 노후를 편히 보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금 수령액은 나날이 줄어들고, 퇴직은 빨라지는데 수명은 점점 더 길어지는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불안감에 밤잠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호랑이가 등장하는 두 개의 속담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은퇴 불안감에 시달릴 때일수록 기억하고 따라야 할 속담이 있다.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호랑이에게 잡혀 먹을까봐 불안해하기만 하면 탈출할 방법을 생각하기 어렵다. 승진과 퇴직이 걱정될수록 구체적인 계획과 준비를 세워야 한다. 이 때 입소문에만 의지하지 말고, 인터넷에서 정확한 정보를 찾거나 관련 전문가에게 조언이나 자문을 구해보자. 뜬구름 잡지 말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서 호랑이로부터 도망갈 방법을 찾으면 된다.

 

기억은 하되 따르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속담이 있다. “이왕 물릴 바에야 큰 호랑이에게 물리라.” 이 말은 실패를 하더라도 다수를 따라가서 실패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인데, 은퇴 이후의 준비는 결코 다수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 요즘 신문을 보면 베이부머들이 은퇴를 하면서 너도나도 빵집이나 카페, 치킨집 같은 자영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다. 경제에서 돈을 버는 쪽은 다수가 아닌 소수인 경우가 많다. 다수가 몰리는 곳에서는 수익이 적고, 경쟁은 심하다. 성공하기가 어렵다. 반면 다수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소수의 경우 수익이 많고, 경쟁도 치열하지 않아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큰 호랑이에게 물리면 즉사하지만, 지금은 작지만 앞으로 크게 될 호랑이를 찾아가보자.

 

글 / 심리학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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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힘들 때, 힘든 마음을 달래려 가까운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어땠는가?

        당신이 원하는 말을 해주거나 마음을 전달해 주었는가, 아니면 ‘다시는 말하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이 들었는가?

        당신이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가? 혹시 그 말이 “괜찮아”는 아니었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교와 경쟁

 

현대 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경쟁적이다.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인 일반 기업이야 말할 것도 없고, 수익보다는 공공성이 중요한 곳에서도 경쟁과 비교가 만연하다. 학교에서는 시험 때마다 반평균으로, 입시 때마다 현수막에 걸만한 대학에 보내기 위해 교사들을, 학생들을 경쟁시킨다. 요즘 대학은 교수들에게 학생 유치를, 대형 병원은 의사들에게 환자 유치를 위해 경쟁시킨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결과라고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실적 중심으로 비교를 하는 사고방식이 너무나 만연해 비교를 해서는 안 될 상황에서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에서 그렇다. 부모들의 자식 비교는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친구 자식과 비교하면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비교 당하면서 큰 자식이 어른이 되면 상황은 역전된다. 자식들은 친구 부모와 자신의 부모를 비교한다.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하는 비교

 

사람과 사람의 비교와 평가는 모두를 병들게 한다. 마음의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결 같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친구나 형제자매는 물론 심지어 부모나 자식과 비교당하기도 한다. 타인과 비교하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또 경쟁의식과 목표의식을 심어주어 당장에는 힘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에서 진 사람은 좌절감에 괴롭고, 이긴 사람도 다음 경쟁에서는 질 까봐 고통스럽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야 어쩔 수 없다하지만 가정에서는, 친구끼리는 비교할 필요 없지 않은가?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것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삶이 왜곡되고 고통을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조건은 바로 경쟁에서 이기는 것, 즉 “남들보다 잘 하면”이다. 부모가 자녀를, 친구가 친구, 연인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남들보다는 뛰어나야 인정해주겠다는 분위기가 우리 모두를 고통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 "괜찮아'

 

사람들은 세상이 전쟁터라고 말한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는 밀림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살벌하다 해도 우리 모두는 쉴 곳이 필요하다. 마음을 편히 놓을 곳이 필요하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비교당하면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해도 사랑하는 가족끼리는, 친구끼리는, 연인끼리는 위로의 말을 건네 보자. “괜찮아”라고.

 

칼 로저스는 ‘조건’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존중’이라고 말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말이다. 아이들이 속상해 할 때 부모가 아이를 안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면서 “괜찮아”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금세 진정이 된다. 친구에게 장난감을 빼앗겼거나, 형에게 한 대 얻어맞았더라도 부모의 “괜찮아” 한 마디면 아이들은 정말 괜찮아진다. 얼마나 놀라운 치유의 말인가! 새해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면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심리학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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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은 양날의 칼과 같다. 자신이 정한 기준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지나, 계속 실패를

      거듭할 경우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실패의 이유를 노력의 부족에서 찾지만, 무조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꼭 성취와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사람들에게 높은 자존감은 그림의 떡과 같다. 방법이 없을까?

 

 

                     

  

 

 

 

자존감, 한계를 만나다

 

어린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이나 사랑과 애정을 표현해 주면 된다. 성인의 경우는 이것으로 부족하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존중받을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걸맞는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해낼 필요가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반복적으로 실패를 하는 사람은 자존감을 높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실패의 경험으로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경우가 많다. 사람의 마음은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번 실패의 악순환에 빠진 사람들은 실패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자신은 실패자라는 생각 때문에 무엇을 해도 자신 있게 하지 못하고, 주어진 과제에 집중해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수록 자존감은 곤두박질친다.

 

 

 

자존감을 뛰어 넘는 자기수용

 

자존감의 이런면 때문에 자기수용을 더 중요하게 보는 심리학자들이 있다. 사실 자존감(self-esteem)의 ‘존중(esteem)’은 사물이나 사람에게 평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추정하다(estimate)’라는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다시 말해 자존감이라는 개념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수반된다.

 

회사에서 승진을 했기 때문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 높아진 자존감은 회사의 합병과정에서 직장을 잃는 순간 낮아진다. 결국 자존감은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조건은 개인마다 시간마다 문화마다 다르다. 여기서는 충족되는 조건도 다른 곳에서는 충족되지 않을 수 있다. 조건은 이렇게 불안정하고 일관되지 못하다. 자존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기수용(self-acceptance)은 다르다. 어떤 조건이나 기준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 외적인 성공이나 성취를 전제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평가를 매길 수 없는 인간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조건에 있든지 자기수용은 일관되고 안정감이 있다.

 

 

 

행복의 지름길

 

현대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평가를 받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으로부터,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평가를 받았다. 단순한 평가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신들이 제시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거부당하고 배척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질책한다. 과거에 받았던 상처, 평가와 비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본래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같지 않다. 각자의 개성이나 특성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비교와 평가가 있을지언정, 적어도 존재 자체가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 때 사람들은 극도의 우울과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심리학자 엘리스(Albert Ellis)는 진정한 행복이 무조건적인 자기수용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목표가 있어야겠고, 나름의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이를 빌미로 자신을 평가하고 질책하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옳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잘못됐고 틀렸다. 사람이 먼저지 목표가 먼저가 아니지 않는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기수용은 꼭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게을러지고 나태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신바람 나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도 있고 이를 위해 더욱 노력할 수 있게 된다. 자 어떤가? 행복의 지름길로 가겠는가?

 

                                                                                                                                    글 / 강현식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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