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가을, 이제 갓 3개월 된 갓난쟁이 효재의 목이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  기침하고 열이 나고 콧물이 흐르기에 그저

 감기인 줄만 알았던 집
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치료를 받고 목 부분이 가라앉은 다음에는 온몸에 발진이 일어났다.

 며칠 뒤 의사는 “면역력 이상이 의심된다.”고 했고 한 달
후에는 만성 육아종 질환이라는, 너무도 귀에 설은 진단명을 내놓았다. 

 부
푼 부위에 고였던 고름을 빼낸 후에 쌔근쌔근 잠든 효재의 얼굴은 그저 평안하기만 했다. 

 
엄마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가만히, 들여다봤다
 



 

 

   3개월 갓난쟁이 목이 부풀어 오르더니...

 

“집안 어른이 후두암을 앓았던 가족력이 있어, 처음에 아무 이유 없이 목이 부풀어 오를 때에는 암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갓 돌도 안 된 아기가 암일 수는 없다고 의사가 잘라 말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안도를 했죠.

 그런데 한 달 후에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병명을 얘기하는데 그만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엄마 김은향(42세) 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명치끝이 뻐근해진다.

 당시 효재는 3개월을 갓 넘긴 갓난쟁이였다.

 큰아들 중현이에게 모유 수유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은향 씨는 둘째 효재를 임신하고 특별히 더 신경을 썼다.

 

 열 달을 기다려 처음 만난 효재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고, 모유 수유에 성공해 효재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면 ‘이런 것이 지극한 행복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효재가 만성육아종질환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효재가 앓고 있는 만성육아종질환(Chronic Granulomatous Disease, CGD)은 반복적이고 치명적인 세균과 진균의 감염, 육아종 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선천적인 유전성 면역결핍증이다.  25만 명당 한 명 정도로 발병하는 희귀질환으로 혈액 속에 순환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대식세포(먹는 세포)의 결함으로 발생하게 된다. 

 

 대식세포는 외부에서 몸 안으로 침입한 세균이나 박테리아 등을 잡아먹으며 죽이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만성육아종질환은 파괴된 대식세포로 인해 이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때문에 세균 감염에 대한 선천적인 면역기능이 없거나 매우 희박해 감염성 질환에 자주 걸리게 된다.


 육아종은 암이 아니지만, 장이나 식도를 통해 전달되는 음식물의 통로를 막거나 신장과 방광으로부터 소변의 방출을 막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치료 방법이 달리 없는 상황에서 여러 질환들이 반복된다.  

 보고에 따르면 이 질환을 앓는 환자 대부분이 잦은 감염과 후유증으로 조기에 사망한다고 한다.

 30세 이전에 환자 사망률이 50%에 달하는 무서운 질환인 것이다.

 

 태어난 지 3개월 즈음에 병원을 찾았던 효재는 10개월여 동안 병원에 있다가 돌이 훌쩍 넘을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도 감기로, 혹은 사소한 다른 질병으로 병원을 찾기 일쑤였고 한 번 입원하면 서너 달이 기본이었다.

 어느 한 해는 8개월 동안을 병원에서만 보냈다.  그런 효재가 어느새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이 됐다.

 

 

 

 

   하루 삼시 세끼 약을 달고 사는 아이

 

 만성육아종질환은 사람마다 병변이 달리 나타나는데, 효재는 유독 폐와 눈, 입, 항문 주변이 약하다.

 찬바람만 불어도 감기가 폐렴으로 번지고, 눈병이 잦은 탓에 시력이 나빠져 이미 안경이 두툼해졌다.

 항문 주변에도 커다란 농양이 버티고 있어 늘 좌욕을 해줘야 하고, 더욱이 입안이 항상 헐어 있다 보니 효재는 먹는 즐거움과 기쁨에도 영 서툴기만 하다.


 사소한 질환으로도 병원에 서너 달씩 입원하다 보니 효재는 이미 가슴 가까운 혈관에 동전만한 크기의 케모포트(중심정맥관)를 심었다. 처음엔 농도 옅은 항생제로 시작해 해를 거듭할수록 고단위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예의 그 또래가 갖고 있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활달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또래보다 다소 왜소한 효재가 그저 조금 더디 크는 아이일 뿐이다.

 

 이처럼 개구쟁이 같은 효재의 하루는 약을 먹는 것으로 시작해 약을 먹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매끼 밥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약을 챙기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폐렴을 치료하는 약에 곰팡이를 치료하는 약, 위장 보호약까지 챙겨 먹는다.

 적게는 서너 알에서 많게는 예닐곱 알까지 한 번에 삼켜야 할 때도 있다.

 

 매끼 30세 이상 성인이 먹는 분량의 약을 먹다 보니 조그마한 위가 남아날 리가 없을 터.

 지난 7월에는 위에 탈이 나 여름방학을 꼬박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이 다시 독이 되어 효재를 공격하는 것이다.


 엄마 은향 씨는 그런 효재를 위해 집안을 더 깨끗이 청소하고, 옷을 더 자주 깨끗하게 빨고 음식에 더 신경을 쓴다.

 다른 엄마들도 똑같이 하는 일을 그저 ‘더’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죽하면 주변 사람들이 은향 씨의 하루는 효재 아침밥 먹이는 일로 시작해 효재 저녁밥 먹이는 일로 끝난다고 했을까.

 

“효재의 일상은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다릅니다.

 숨 쉬는 공기, 손에 닿는 것들, 먹는 것, 입는 것, 심지어 늘 생활하고 있는 이 집까지, 모든 것이 효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어요.

어디에나 그 무엇에나 세균과 박테리아 등이 존재하니까요.

그런데도 씻고 닦고 먹이는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엄마, 난 다른 꿈을 찾고 있는 중이야"

 

 예전에 축구선수가 꿈이었다는 효재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그 꿈을 마음속에서 지웠다.  은향 씨는 효재가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체력이 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효재 병원비 때문에 집을 줄이고 살림을 줄여 자주 이사를 하는 것보다 효재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이처럼 꿈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더 두렵다고 말하는

은향 씨.

 

 더욱이 은향씨는 다만 얼마라도 살림에 보태야겠다는 생각으로 얼마 전부터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효재를 위해 선택한 길이지만 효재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벌써부터 목에 가시처럼 박혀있다.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다 보니 사실, 일자리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부모가 뒷바라지해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효재가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자라면서 세상과 더 부딪힐수록 조금씩 좌절하고 자신감을 잃을까봐, 웃음을 잃을까봐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은향 씨는 오랜만에 큰아들 중현이와 둘째 아들 효재를 데리고 집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효재야, 나무는 만지지 마, 손으로 낙엽을 줍지 말고. 낙엽은 발로 차면 먼지 나니까 조심해야돼.”

 

 엄마는 효재에게 다짐 아닌 다짐까지 받았지만, 이미 가을로 꽉 찬 공원에서 아이들은 곳곳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엄마의 걱정은 뒷전인, 그저 아홉 살, 여덟 살 개구쟁이 소년들이었다.

 문득 조금 전, 축구를 포기한 것 같아 속상해했던 엄마에게 효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아직 다른 꿈을 찾지 못했지? 꿈이 없는 건 아니야. 축구 말고 다른 꿈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만성육아종질환이란?

  외부의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역할을 하는 대식세포(백혈구의 일종)의 결함으로 발생하는 유전성 면역

 결핍 질환이다. 대개 1세 이전에 발견되지만 10대 이후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림프절 종창, 피부 염증, 열성질환,

 항문 주위 염증 및 농양, 만성설사 등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난다.

  폐나 간, 뇌 손상이 동반되면 10세 이전에 사망하기도 한다.
 현재로선 감염 부위에 따른 항생제 치료가 전부지만 최근 완치가 가능한 치료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25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하며, 국내에는 100여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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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얼음공주인 줄 알았다.

 잘 웃지 않았고 눈이 마주치면 입을 삐죽거리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아빠 품에 안겨서는 윗니 두 개를 드러내며 곧잘 웃었고,

 뽀로로 노래에는 금세 미소 지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알고 보니 현아는 그냥 낯가림이 심한 거 였다.

얼굴이며 손이며 온몸이 딱지와 부스럼으로 덮여 있는 것을 빼면,

현아는 더도 덜도 아닌, 딱, 두 살배기 아이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도 웃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운.

 

 

 

  무릎 아래 피부가 벗겨진 채 세상에 나오다 

 

 현아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윗니 아랫니도 이제 막 나기 시작했고, 모유를 먹다 얼마 전부터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  기저귀 떼는 연습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 이제 막 하기 시작한 일’ 이 대부분인, 아직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아기였다.

 

 “날이 추우면 감기가 걸릴까, 기어 다니다 혹은 걸어 다니다 어디 부딪히지는 않을까,

 넘어져 다치지 않을까, 아무거나 주워 먹어 탈이 나지는 않을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다 똑같은 마음일 거예요.

 귀한 내 아이가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잖아요. 건강한 아이도 그럴

진대 현아는 아프니까 더…….”

 

 엄마 박효민 씨(33세)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현아네 집에는 아기가 있는 여느 집에서 볼 수있을 법 한 기저귀나 분유통, 장난감 보다 드레싱과 소독제, 연고, 밴드, 붕대, 손수건 등이 더 많았다. 드레싱 약품이 아예 한쪽 벽면을 빼곡히 메울 정도였다.

 

 외출복보다는 잠옷이나 내의류가 더 많다는 것도 다른 풍경이었다.

 몸 이곳저곳에 물집이 잡히고 고름이 차면 하루에도 몇 번씩 소독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현아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풍경이었다. 장난감보다 소독제가 더 필요하고, 예쁜 옷보다 부드럽고 편안한 옷이 더 필요했다.

 

 “제 뱃속에 있을 때 현아는 무척 건강했어요. 발길질이 어찌나 센지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죠. 집 근처 산부인과에서 자연 분만하고, 현아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무릎 아래 피부가 벌겋게 벗겨져 있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던지, 바로 큰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믿고 찾아간 병원에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 피부가 벗겨져 수포가 생기고 고름이 차는 범위는 넓어지는데 원인을 모르니 진단을 할 수 없고 병명도 알 수 없었다.  마땅히 쓸 약도, 치료법도 딱히 없었다. 

 그저수포를 터뜨려 고름을 짜내고 드레싱해주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보름여가 지났을 때 현아는 수포성 표피박리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진단을 받은 후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땅한 약도, 치료법도 없었다. 효민 씨는 병원에서 드레싱 하는 방법을 배워 현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명을 알았는데도 치료법이 없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죠.   병을 호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감염을 막기 위해 매순간 피부를 소독하고 드레싱 해줘야 한대요.

  우리 몸 어느 곳 하나 피부로 덮이지 않은 곳이 있나요?

  그러니까 현아는 몸 어느 한 곳 마음 놓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거예요. 어제는 얼굴에, 오늘은 손에 물집이 잡히고, 내일은 입안이 헐어요. 정한 시간도, 정한 때도 없어요.”

 

 

 

  두 살도 안 된 아이, 스스로 고통을 참아내다.


 현아가 앓고 있는 수포성 표피박리증후군은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피부 단백질을 만들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다.

 

 출생 때부터 피부가 벌어져 수포가 생기고 반흔, 점막 침범을 보이며, 손가락·발가락 융합, 식도 유착까지 생긴다.

 미국에는 5만여 명이 앓고 있고 국내에는 통계조차 따로 없는 드문 질병이라고 한다.

 수포가 생기는 위치에 따라 표피 내에 형성되는 단순성, 투명판에 형성되는 경계성, 기저판 바로 아래에 형성되는 이영양성으로 나뉘는데, 현아는 이영양성 중에서도 증상이 심한 열성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집을 터뜨려 고름을 짜내고 소독하고 습윤밴드며 붕대를 감다보니

엄마,아빠는 이제 어느 의료진 못지않게 능숙해졌다.

 

 “얼굴을 할퀴더라도 손을 싸놓지 않았어요. 통풍이 되면 더 나을까 싶어서요. 

  그런데도 현아는 벌써 두 발과 왼손이 모두 붙어버렸어요. 그나마 오른손이 아직 괜찮고요.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현아이기에, 아빠 김재훈 씨(34세)는 남들 하는 건 다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돌잔치도 성대하게 치렀고 사진도 더 자주, 더 많이 찍어줬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얼마나 예쁘게 자라고 있는지를 매 순간 놓치지 않고 기록해 현아가 자라면 다 얘기해 줄 참이다.


 “현아가 또래보다 의젓해요. 자기가 아픈 걸 아는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조심하고 위험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손을 싸놓지 않아도 얼굴을 할퀸 적이 많지 않을 정도니까. 그런데, 그게 더 마음이 아파요. 아기들이 스스럼없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치면서 자라야하는데, 오히려 두 살 배기가 알아서 조심하니까 그게 더 안타까워요.”

 

 재훈 씨는 두 돌도 채 안된 아이가 고통을 참고 울음을 삼키는 것 같다 싶으면 그만 하릴없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더욱이 현아가 자랄수록 이 같은 순간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가 나기 시작하면 치아가 썩지 않도록, 잇몸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더 신경 쓰면서 치과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시력이 형성될수록 통증과 과도한 눈물과 분비물이 생길 수 있어 정기적으로 안과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는 자다가 무심결에 눈을 비벼 눈 안쪽이 벗겨졌는지 하루 종일 눈을 뜨지 못한 적도 있었다.

 먹을거리가 다양해지면 식도 협착도 조심해야할 것이다.

 

 현아가 자랄수록 엄마, 아빠의 걱정은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너무 평범해 정작 그 비범함을 깨닫지 못하는 모든 일상이 현아에게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도전이고 모험이 될 것이다.

 아이가 자라는 것조차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떠하랴.

 재훈 씨와 효민 씨는 제발 심장이 딱딱해지기를, 어떤 일에도 초연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의기소침하지 않고 또래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현아를 만나러 갔던 날, 엄마 효민씨는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얼마전, 현아가 갑자기 열이 올라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무리한 탓이었다.

 

 “그동안 친정 엄마에게 현아를 맡기고 저도 직장을 다니며 맞벌이를 했는데, 퇴원하는 대로 사직서를 제출할까 해요.   

  현아 때문에 수시로 일을 쉬었고 지금은 제가 아프다고 몇 주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솔직히 직장 동료들 눈치도 보이고요, 친정엄마도 몸이 편찮으신데다 저도 쉬이 몸이 회복될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맞벌이할 때도 힘들었는데 현아 아빠 혼자 벌어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효민 씨는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다.

 수포성 표피박리증후군이 산정특례 대상 질병이긴 해도, 연고며 습윤밴드, 소독제, 붕대 등 드레싱에 필요한 것들이 소소한 듯 보여도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면 금방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이고, 조금만 열이 올라도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현아 병원비를 대기에, 외벌이로는 감당키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현아가 방긋 방긋 웃어주고 품에 폭 안기면 그 순간 만큼은 아무 고민도, 아무 걱정도 없어지고 마냥 행복해요.

 아프다는 것 말고는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현아가 기죽지 않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또래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씩씩하게 자라주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재훈 씨는 저 멀리 가을 하늘을, 아주 오래도록 올려다봤다.

 선선한 가을이 이리 반가울 때가 또 있었을까.

 종일 에어컨을 틀어놔도 여지없이 물집이 생기고 곪는 여름은 현아에게 정말 고역이었다.

 재훈 씨나 효민 씨가 가을을 기다린 건 비단 높은 하늘과 단풍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박리증후군이란?
  수포성 표피박리증은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을 생 산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피부 단백질을 만들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다. 이영양성은 기저판 바로 아래에 수포가 형성되는 것인데 태어날 때부터 심한 수포가 발생하고 반흔, 점막 침범을 보인다.

 우성보다 열성형이 증상이 심해 손가락, 발가락이 붙거나 식도 협착이 나타나기도 한다. 드물지만 지속적인 상처로 인해 피부암이 생길수 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고 장애를 입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주위의 관심과 도움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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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복도에서 책 서너 권을 품에 안은 꼬마 숙녀와 마주쳤다. 똘망똘망하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웠다.

  병실로 들어서는데, 꼬마 숙녀가 뒤따라 들어왔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해맑게 웃는 꼬마 숙녀가 바로 가영이였다.

  여덟 살배기 가영이는 또래보다 한참 작았다. 
 장운동이 매우 느리고 정체돼 음식물이 차곡차곡 쌓이기만 할 뿐 영양 섭취

  가 
전혀 되지 않은 탓이다.   가영이는 생후 15개월 때부터 6년 동안 줄곧 병원 생활을 해왔다.

  옷을 들어 올려 배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덩치 큰 링거 거치대를 제 몸인 양 밀고 다니지 않았다면
가영이는 그저 새침하고 

  사랑스러운 꼬마 숙녀로만 보였을 것이다.

 

 

 

[부제 :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 앓고 있는 가영(8세)이 이야기]

 

  생후 15개월, 터질 듯한 배를 안고 병원을 찾다 


지난 2006년 4월,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가영이를 데리고 엄마 김배정 씨(39세)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았다.

 

2주일이 지난후, 의사는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이라는 너무도 생소한 병명을 얘기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어처구니없는 증상들에 배정 씨는 그저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봤다.


“모유를 먹을 때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어요.

 돌이 지나고 이유식과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배가늘부풀어 있고 대변 누기를 힘들어하더라고요.

 

 소아과며 한의원이며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그저 변비라고만 했어요.

 밤늦게 혹은 새벽녘에 너무 아파해 응급실에 가도 관장을 하고 변비약을 처방받는 게 고작이었어요.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이라는 병이 있는 줄도 몰랐고 가영이가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갓난쟁이가, 터질 듯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움켜쥐고 울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엄마.

 

서울의 병원을 찾던 그날 새벽에도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며 아파하는 가영이를 위해 배정 씨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집 근처 병원에서 같은 증상이 반복되니까 어딘가 막힌것같다고 수술을 해보자 하더라고요.

그런데 겨우 15개월밖에안 된 가영이를 수술대 위에 눕힐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밀 검사를 하고 정확한 병명을 찾아보자 싶어 서울로 올라왔죠.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배정 씨는 의사 진단을 받고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3개월 동안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3개월 후면 좋아지겠거니 내심 기대도 했다.

그 3개월이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이제 6년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어느 누구도 그 끝을 얘기해 주지 못하고 있다.

 

 

  하루 밥 세 숟가락 양이 전부, 영양분은 혈관으로


가영이가 앓고 있는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은 선천적인 장운동장애로 위장에서부터 음식물이 차곡차곡 쌓이기만 할 뿐 소화는 물
론 영양 섭취도 전혀 되지 않는 병이다.

 

않아 정기적으로 관장을 해줘야 한다.

쌓인 음식물은 부패해 배는 늘 가스로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고, 정상적인 배변이 되지

 

심장 가까이에 있는 혈관에 동전만 한 크기의 케모포트(중심정맥관)를 삽입해 영양분을 섭취 하는 탓에 링거 거치대를 제 몸 인양끼고 산다. 

 

더욱이 배에 찬 가스를 빼내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가영이는 코에 튜브까지 달고 살았다.
 

“코에 튜브를 달고 있을 때에 가영이는 무척 까칠하고 예민했어요.  

제 딴에는 창피했나 봐요.  

짜증이 잦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싫어할 정도였어요.

수술을 받고 튜브를 뺀 지금은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훨씬 의젓해졌어요.”
 

현재 가영이가 하루에 먹는 음식량은 밥숟가락으로 세 숟가락 정도에 우유 150㎖가 전부.

그나마도 배정 씨가 어르고 달래야 겨우 먹는 시늉이라도 한다고. 

어릴 때부터 음식을 멀리 하다 보니 음식을 거부하는 것 같아 배정 씨는 내내 안타깝기만 하다.

 

가영이는 고향인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병원에서 기저귀를 떼고 뛰는 것을 익히고 말을 배우면서 여덟 살배기 꼬마 숙녀로 자랐다. 기운이 없어 늘 앉아서 책을 읽거나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6년 병원 생활에 9차례 수술을 견뎌내다


지난 6년 동안 가영이는 오로지 ‘성장’ 을 위해 아홉 차례나 수술대에 오르며 모진 병원생활을 견뎌냈다.

고농도영양제를 혈관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케모포트 삽입 수술을 받았고, 이 부분이 감염되면서 수차례 가슴을 여닫아야했다.

 

그리고 지난 4월, 가영이는 음식물이 쌓이면서 늘어난 위장의 반을 잘라내고 배 옆쪽으로 인공 장로(臟路)를 내는 수술을 견뎌냈다.

 

수술에서 회복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는데, 얼마 후 복압 때문에 내장들이 장로로 쏟아져 나오는 통에 또 한 차례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홉 번째 수술이었다.

 

배정 씨는 갓난쟁이 가영이가 그 혹독한 시련들을 참고 견디며 이만큼 예쁘게 자라준 것이 그저 고맙고 기특하다. 더욱이 지금은 검사도 혼자 받으러 다니고 자기 몸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의젓해졌다. 

 

그럼에도 배정 씨는 가영이가 자라는 것을 마냥 기뻐 할 수 만도 없다고 말한다.

 

“ 지금까지는 자기의 몸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좀 더 크고 생각이 많아지면 다른 아이와 비교하게 될까 봐 겁이 나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나만 이런 혹독한 짐을 지고 살아야하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집에 가기를, 학교 다니기를 바라는 꼬마


가영이 걱정하기도 바쁜 배정 씨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바로 하루가 다르게 부는 병원비다.

대부분을 병원에서 지내면서 영양제를 달고 살아야하는데,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은 희귀난치성 질환 코드에 포함되지 않아 산정특례를 받을 수 없다.

 

더욱이 지난해 11월, 가영이가 만 6세를 넘으면서 병원비 부담이 더 늘었다. 그나마 가영이가 맞는 영양제 TPN이 보험 적용이 되는 것이라 다행이었다.
 

“그동안 병원 후원회나 여러 단체가 도움을 많이 줬어요. 힘들 때마다 지칠 때마다 그분들 의사랑과 따뜻한 마음들이 큰 힘이 됐어요. 고맙고 또 고맙죠. 가영이가 이만큼 자란 것도 어찌 보면 그분들 덕분이에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난해 초부터 보름이나 길게는 한 달 남짓 집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됐다.

가영이에게는 즐거운 변화였고 배정 씨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집에 가는 게 좋아요. 집에 가면 텔레비전도 많이 보고 오빠랑 놀 수 있어서 무척 좋아요.”

 

엄마 배정 씨는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어도 오빠 재영이를 누구보다도 잘 따르는 가영이나, 동생을 무척 아끼는 오빠 재영이가고맙고 대견하다.

 

“아마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부모들이 같은 마음일 거예요.

 완치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고 더디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기만을 바라죠.

 우선은 조금 더 건강해져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입학을 한 해 미뤄 뒀는데, 2년 후에는 갈 수 있었으면 해요. 

 교실에 한두 시간 앉아  있다가 오더라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도 사귀고….”

 

 배정 씨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런데, 걱정하는 배정 씨와는 달리, 가영이의 꿈은 이미 저 멀리로 내달리고 있었다.

 

“내 꿈은 치과의사가 되는 거예요.

 예전에 아빠가 소아과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했는데, 나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어요.  오빠랑 같이 치과의사가 되어서 오빠는 위층에서, 나는 아래층에서 치료하면 좋겠어요. 오빠가 상한 이를 뽑으면 나는 치료를 할 거예요.

그런데요, 사실은 이를 뽑는 게 조금 무서워요.”

 

멋쩍은 듯이 웃었지만, 꿈을 얘기하는 가영이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이란?

  장운동 장애로 해부학적 폐쇄 부위 없이 반복되는 장폐쇄 증상과 징후를 나타내는 드문 질환이다.

  이 질환의 반 이상이 출생 후 수개월 내에 증상을 보인다. 음식물이 위장에서 부터 소화도 되지 않고 쌓여 내려가지 않아

  배는  가스로 늘 불룩해 있고, 영양 섭취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드문 질환이라 아직 환우회도 조직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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