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가을, 이제 갓 3개월 된 갓난쟁이 효재의 목이 무섭게 부풀어 올랐다.  기침하고 열이 나고 콧물이 흐르기에 그저

 감기인 줄만 알았던 집
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치료를 받고 목 부분이 가라앉은 다음에는 온몸에 발진이 일어났다.

 며칠 뒤 의사는 “면역력 이상이 의심된다.”고 했고 한 달
후에는 만성 육아종 질환이라는, 너무도 귀에 설은 진단명을 내놓았다. 

 부
푼 부위에 고였던 고름을 빼낸 후에 쌔근쌔근 잠든 효재의 얼굴은 그저 평안하기만 했다. 

 
엄마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가만히, 들여다봤다
 



 

 

   3개월 갓난쟁이 목이 부풀어 오르더니...

 

“집안 어른이 후두암을 앓았던 가족력이 있어, 처음에 아무 이유 없이 목이 부풀어 오를 때에는 암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갓 돌도 안 된 아기가 암일 수는 없다고 의사가 잘라 말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안도를 했죠.

 그런데 한 달 후에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병명을 얘기하는데 그만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엄마 김은향(42세) 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명치끝이 뻐근해진다.

 당시 효재는 3개월을 갓 넘긴 갓난쟁이였다.

 큰아들 중현이에게 모유 수유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은향 씨는 둘째 효재를 임신하고 특별히 더 신경을 썼다.

 

 열 달을 기다려 처음 만난 효재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고, 모유 수유에 성공해 효재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면 ‘이런 것이 지극한 행복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효재가 만성육아종질환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효재가 앓고 있는 만성육아종질환(Chronic Granulomatous Disease, CGD)은 반복적이고 치명적인 세균과 진균의 감염, 육아종 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선천적인 유전성 면역결핍증이다.  25만 명당 한 명 정도로 발병하는 희귀질환으로 혈액 속에 순환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대식세포(먹는 세포)의 결함으로 발생하게 된다. 

 

 대식세포는 외부에서 몸 안으로 침입한 세균이나 박테리아 등을 잡아먹으며 죽이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만성육아종질환은 파괴된 대식세포로 인해 이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때문에 세균 감염에 대한 선천적인 면역기능이 없거나 매우 희박해 감염성 질환에 자주 걸리게 된다.


 육아종은 암이 아니지만, 장이나 식도를 통해 전달되는 음식물의 통로를 막거나 신장과 방광으로부터 소변의 방출을 막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치료 방법이 달리 없는 상황에서 여러 질환들이 반복된다.  

 보고에 따르면 이 질환을 앓는 환자 대부분이 잦은 감염과 후유증으로 조기에 사망한다고 한다.

 30세 이전에 환자 사망률이 50%에 달하는 무서운 질환인 것이다.

 

 태어난 지 3개월 즈음에 병원을 찾았던 효재는 10개월여 동안 병원에 있다가 돌이 훌쩍 넘을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도 감기로, 혹은 사소한 다른 질병으로 병원을 찾기 일쑤였고 한 번 입원하면 서너 달이 기본이었다.

 어느 한 해는 8개월 동안을 병원에서만 보냈다.  그런 효재가 어느새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이 됐다.

 

 

 

 

   하루 삼시 세끼 약을 달고 사는 아이

 

 만성육아종질환은 사람마다 병변이 달리 나타나는데, 효재는 유독 폐와 눈, 입, 항문 주변이 약하다.

 찬바람만 불어도 감기가 폐렴으로 번지고, 눈병이 잦은 탓에 시력이 나빠져 이미 안경이 두툼해졌다.

 항문 주변에도 커다란 농양이 버티고 있어 늘 좌욕을 해줘야 하고, 더욱이 입안이 항상 헐어 있다 보니 효재는 먹는 즐거움과 기쁨에도 영 서툴기만 하다.


 사소한 질환으로도 병원에 서너 달씩 입원하다 보니 효재는 이미 가슴 가까운 혈관에 동전만한 크기의 케모포트(중심정맥관)를 심었다. 처음엔 농도 옅은 항생제로 시작해 해를 거듭할수록 고단위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예의 그 또래가 갖고 있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활달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또래보다 다소 왜소한 효재가 그저 조금 더디 크는 아이일 뿐이다.

 

 이처럼 개구쟁이 같은 효재의 하루는 약을 먹는 것으로 시작해 약을 먹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매끼 밥을 챙기는 것만큼이나 약을 챙기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폐렴을 치료하는 약에 곰팡이를 치료하는 약, 위장 보호약까지 챙겨 먹는다.

 적게는 서너 알에서 많게는 예닐곱 알까지 한 번에 삼켜야 할 때도 있다.

 

 매끼 30세 이상 성인이 먹는 분량의 약을 먹다 보니 조그마한 위가 남아날 리가 없을 터.

 지난 7월에는 위에 탈이 나 여름방학을 꼬박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이 다시 독이 되어 효재를 공격하는 것이다.


 엄마 은향 씨는 그런 효재를 위해 집안을 더 깨끗이 청소하고, 옷을 더 자주 깨끗하게 빨고 음식에 더 신경을 쓴다.

 다른 엄마들도 똑같이 하는 일을 그저 ‘더’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죽하면 주변 사람들이 은향 씨의 하루는 효재 아침밥 먹이는 일로 시작해 효재 저녁밥 먹이는 일로 끝난다고 했을까.

 

“효재의 일상은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다릅니다.

 숨 쉬는 공기, 손에 닿는 것들, 먹는 것, 입는 것, 심지어 늘 생활하고 있는 이 집까지, 모든 것이 효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어요.

어디에나 그 무엇에나 세균과 박테리아 등이 존재하니까요.

그런데도 씻고 닦고 먹이는 일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엄마, 난 다른 꿈을 찾고 있는 중이야"

 

 예전에 축구선수가 꿈이었다는 효재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그 꿈을 마음속에서 지웠다.  은향 씨는 효재가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체력이 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효재 병원비 때문에 집을 줄이고 살림을 줄여 자주 이사를 하는 것보다 효재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이처럼 꿈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더 두렵다고 말하는

은향 씨.

 

 더욱이 은향씨는 다만 얼마라도 살림에 보태야겠다는 생각으로 얼마 전부터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효재를 위해 선택한 길이지만 효재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생각이 벌써부터 목에 가시처럼 박혀있다.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다 보니 사실, 일자리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다.

 

 “부모가 뒷바라지해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효재가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자라면서 세상과 더 부딪힐수록 조금씩 좌절하고 자신감을 잃을까봐, 웃음을 잃을까봐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은향 씨는 오랜만에 큰아들 중현이와 둘째 아들 효재를 데리고 집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효재야, 나무는 만지지 마, 손으로 낙엽을 줍지 말고. 낙엽은 발로 차면 먼지 나니까 조심해야돼.”

 

 엄마는 효재에게 다짐 아닌 다짐까지 받았지만, 이미 가을로 꽉 찬 공원에서 아이들은 곳곳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엄마의 걱정은 뒷전인, 그저 아홉 살, 여덟 살 개구쟁이 소년들이었다.

 문득 조금 전, 축구를 포기한 것 같아 속상해했던 엄마에게 효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아직 다른 꿈을 찾지 못했지? 꿈이 없는 건 아니야. 축구 말고 다른 꿈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만성육아종질환이란?

  외부의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역할을 하는 대식세포(백혈구의 일종)의 결함으로 발생하는 유전성 면역

 결핍 질환이다. 대개 1세 이전에 발견되지만 10대 이후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림프절 종창, 피부 염증, 열성질환,

 항문 주위 염증 및 농양, 만성설사 등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난다.

  폐나 간, 뇌 손상이 동반되면 10세 이전에 사망하기도 한다.
 현재로선 감염 부위에 따른 항생제 치료가 전부지만 최근 완치가 가능한 치료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25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하며, 국내에는 100여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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