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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나눔&봉사

[금요특집] 한국의 슈바이처들....제27부 최영진(사모아)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사모아의 슈바이처  최영진

  남태평양 푸른바다처럼 행복했노라

 

 

 

 

 

 

 

 

 

 

 

 

 

 

 군대가 없는 나라.
 태고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섬나라.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작은 섬.

 

 사모아(Samoa)는 오세아니아 남태평양 서사모아 섬들로 구성된 입헌군주제 국가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령에서 뉴질랜드 통치령으로 바뀐 뒤 1962년 폴리네시아 민족국가 최초로 독립하였고, 1997년 서사모아에서 사모아로 나라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 곳에 소아과 의사 최영진이 정부파견의사로 20년간 봉사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최영진은 1948년에 태어나 1978년 가톨릭대학교 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대구에서 소아과를 개원하여 안정된 삶을 누리던 그는 45살 나이에 KOICA(한국국제협력단) 의료봉사단에 지원했습니다.

 슈바이처를 존경하며 인도주의 의사를 꿈꾸던, 어릴 적 그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병원과 집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려 할 때 반대도 있었지만, 그는 가족과 함께 1993년 서사모아로 떠났습니다.

 

 서사모아의 수도 아피아 사모아 국립병원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아과 의사로 인술을 펼쳤습니다.

 서사모아의 평균 가족 수는 8~13명입니다. 그 만큼 자녀수가 많고, 자연히 그를 찾는 어린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국립병원임에도 의료기기들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1kg 이하의 미숙아들이 많은 이곳에서 인큐베이터의 부족으로 모두를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인공호흡기가 없어 위급한 신생아가 사망한 적도 많았습니다.

 

 이런 환경이지만, 그는 사모아의 어린이들이 언제나 건강하게 웃을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았습니다.

 파견 초기에는 폐렴, 심장질환, 류머티즘 환자를 매일 30~40명 정도 진료하였습니다. 특히 기생충 감염과 영양실조로 인한 빈혈 등을 치료하였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의료시설로, 섬 곳곳에는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 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인과 함께 봉사단을 조직하여 무의촌 진료를 시작하여 매달 한 번 사바이 섬으로 가, 마을을 돌며 시력이 약한 노인에게 안경을 제공하고 각종 필요한 의약품을 주면서 많은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서사모아 무의촌 순회진료 모습

 

 

 

 의사 최영진은 꼼꼼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분기마다 활동내용을 KOICA에 보고하였는데, 주재국의 일반정세와 특별사항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KOICA 남태평양 직원 신의철에게 <서사모아 사람들>이라는 내용으로 쓴 편지도 흥미롭습니다.

 

   처음 신생아실에서 아기들을 검진하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아기의 엉덩이에서 몽고반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만나는 서사모아 사람들에게 사모아인과 한국인은 같은 종족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서사모아 사람들은 먼 옛날에 페루의 원주민들이 조류를 이용해 뗏목을 타고 이곳까지 이동해 왔으리라고 설명합니다.

 

   이들은 혈액만 한국인과 비슷한 것이 아니고 삶의 형태와 그들의 성질, 현대사까지도 비슷합니다.

   남의 앞을 지나갈 때는 꼭 몸을 숙이고 ‘토로우(죄송합니다)’하면서 지나가고, 밥을 먹을 땐 꼭 어른들이 먹은 후에야

   아이들이 먹습니다.

   어른들에겐 존경어가 따로 있고, 앉을 때도 양반자세로 앉고 꽃을 좋아해서 백일홍, 맨드라미, 봉숭아꽃들을 집 주변에

   항상 심고 머리에 꽃들을 꽂기도 합니다. 술도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도 좋아하고 춤을 추는 것도 남녀 모두 즐깁니다.

 

   이들의 전통의상은 라바라바라고 하는 치마 같은 옷인데, 우리 아들 다니는 학교도 교복이 청색 라바라바입니다.

   처음엔 그 옷 때문에 안가겠다고 우겼습니다.

   다행히 교장선생님이 청색반바지를 입어도 된다고 해서 몇 개월 입고 다니더니, 요새는 라바라바를 입으면서 자기가

   제일 세련되게 입는다고 웃습니다.
   저도 가끔 초대를 받으면 라바라바를 입고 갑니다. 제 집사람도 이 곳 전통의상을 물론 입지요.

 

  1, 2년이 다르게 발전하는 한국의 소식을 정부에서 보내주시는 신문을 통해서 읽으면서 어떤 때는 한국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이만 편지를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라바라바 한 장 두른 그의 환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길고 자세한 편지 여서, 전문을 다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의사 최영진의 자상하면서도 다정한 성품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사모아 어린이들 엉덩이의 몽고반점을 보고 한국과 사모아와 몽고 그리고 페루까지 열거하며 세계는 하나라는 사랑의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닥터 초이’하면서 사모아인들은 그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보냅니다.
 사모아의 국왕이 인정하는 사모아 사람사모안’으로, 코리언의 사랑과 평화를 남태평양 푸른 바다에 펼쳤습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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