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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나눔&봉사

[금요특집] 한국의 슈바이처들....제26부 윤성일(팔라우)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팔라우의 슈바이처  윤성일

아름다운 팔라우에도 아픈사람은 많았다.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마이크로네시아 200여개 섬들을 일렁이게 합니다.
태평양 서쪽 끄트머리에 섬의 무리로 이루어진 나라.
바다 한가운데 흩뿌려진 섬들로 이루어진 인구 2만 명 정도의 작은 나라 팔라우(Palau).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과 가까워 1543년 이후 오랫동안 그들의 세력권에 있었고, 한때는 독일의 세력 아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각각 지배하다가 1994년 독립하였습니다.

특히 1914년부터 제 2차 세계대전 말기인 일제강점기시대에는 수많은 한국인이 징용으로 끌려와 공항, 항만 및 도로건설에 강제노동을 당하였으며, 수많은 동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팔라우에 한국의 일반외과 전문의 윤성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1952년에 태어나 1977년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일반외과를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 쌍용건설에 의해 시공된 팔라우국립병원에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의사로 인술을 펼쳤습니다.

 그 병원은 총 병상 수는 80병상으로 내과, 소아과, 외과, 정형외과 및 정신과 병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는 이 팔라우국립병원에서 정부파견의사로1996년부터 2004년까지 9년간 근무하였습니다.

 

 그는 일반외과 전문의로 외과병동에서 근무하였으며, 의사는 원주민의사를 비롯하여 미국, 마셜, 피지, 미얀마, 필리핀, 바누아투인 등으로 구성되었고, 간호사도 원주민, 피지 및 JICA(일본국제협력기구) 소속 2명이 함께 하였고, 약사는 원주민과 호주 그리고 미국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유일한 종합병원인 팔라우국립병원에는 외과전문의가 그를 포함해 2명으로 폭주하는 외과진료 및 수술환자로 인해 평일에는 쉴 틈 없이 집도가 계속되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응급환자로 인해 병원근무가 빈번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전공은 일반외과이나 전공별 외과전문의가 없어 관련 수술 책자를 연구해가며 모든 외과수술을 수행하였습니다.  

 외과 진료뿐만 아니라 팔라우 정부에서 추진하는 청소년들의 알코올 및 마약관련 문제에 관한 예방 및 치료에도 참여하였습니다.

 

 팔라우 원주민 수련의사 8명에게 1996년부터 2004년까지 기본적인 외과수술 기술을 전수하였습니다. 원주민 수련의사에게 전문외과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외국종합병원으로 환자후송에 소요되는 많은 비용을 절감하였습니다.
 1996년 3/4분기부터 2000년 3/4분기까지 그가 작성한 활동보고서에 의하면, 진료인원은 3,772명이었고 수술환자는 556명이었습니다.

 

 대형선박사고와 교량붕괴사고의 발생이 빈번하여 사망자와 중환자가 속출하였습니다.  신경외과 및 흉부외과 환자 발생 시 진료에 필요한 단층 촬영기, 혈중가스측정기, 인공호흡기 등이 절실하였지만 그는 묵묵히 능숙하게 위급한 병상을 훌륭하게 지켰습니다.

 그의 8년간 근무로 팔라우국립병원 일반외과 및 외과 중환자실의 의료 수준이 현저히 개선되었습니다.

 

 

 

  1997년 3월 26일

 

 그리스 소속 화물상선이 파푸아뉴기니 항구를 출발하여 서태평양을 횡단하여 일본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51세의 그리스인 선장이 갑자기 선혈을 토하며 의식을 잃었습니다. 응급처치를 요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부선장은 이 사실을 괌 병원으로 연락하고, 배를 괌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위장출혈증상이 악화되면서 의식소실증상이 현저하였습니다.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괌으로의 항해를 중지하고, 그가 근무하는 팔라우로 항로를 수정하였습니다.

 

 마침내 환자는 팔라우병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위출혈 지혈을 위한 내과적인 치료에 역점을 두고 또한 수혈을 동시에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과적인 치료에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고 상태가 악화되었습니다.

 환자혈액형이 AB네거티브로 혈액이 부족하여 괌 적십자사에 응급협조를 요청하는 전문을 보내고 응급수술을 시행하였습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선장은 과거병력상 위출혈로 위 부분 절제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위출혈은 과거 위장문합수술 부위의 출혈 때문이었습니다. 지혈수술로 출혈부위를 봉합하고서 혈액이 도착하여 수혈하였습니다. 환자 가슴에서 작동하는 KOICA에서 보내준 모니터장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환자는 재출혈 소견을 보이고 또한 괌에서 받은 AB네거티브의 혈액도 다 떨어졌습니다.


 괌으로부터 다시 혈액이 도착하여 수혈하였으나, 추가의 혈액이 필요 하였습니다. 그러나 괌에서는 더 이상의 혈액을 구할 수 없어 일본적십자사에 긴급 혈액 요청을 하였습니다.  마침내 이러한 신속하고도 정확한 치 료과정 중 출혈증상이 호전되었고, 중환자실에서 활동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선장의 장인은 한국전쟁 그리스 참전용사였습니다.

 

 그는 이 환자를 통하여 세계화시대에서의 국제간 의료협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인식하였습니다. 혈액을 항공편으로 보내준 일본적십자사, 괌적십자사와 괌병원 의사, 환자 수술을 도와준 필리핀과 팔라우의사, 바누아투 마취과 의사 그리고 원주민 간호사 특히 중환자실 의료장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여 준 KOICA가 없었다면 화물상선 선장의 생명은 보장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의술에는 국경이 없음을 절실히 깨닫는 미담이었고, 유능한 정부파견의사의 쾌거였습니다.

 

 

 

  의사 윤성일은 헌신적인 의료활동으로 팔라우 정부로 부터 신임을 얻었습니다.

 

의사 윤성일은 성실하고 헌신적인 의료 활동으로 팔라우정부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었으며, 주민들에게도 명성이 널리 알려져 양국간 우호협력관계 증진 및 한국의 이미지를 높였습니다. 팔라우에서는 그를 ‘Dr.Yoon’이라 불렀습니다.

공무원들은 물론 팔라우 시내에서 그를 만나는 주민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의사 윤성일은 임기를 마치면서 KOICA에 보고서를 보냅니다.

  의료수준의 전반적인 향상으로 의료파견의사의 보수교육과 파견근무중의 보수교육이 절실하며, 파견의사는 파견국 의사

  및 외국인 의사와의 선의의 경쟁으로 종래 일반적인 한국의 의료수준을 후진국에서 하향적으로 지원한다는 사고 자체를

  전환하여야 한다.

  파견 전에는KOICA의 지정병원에서 파견의 전공 이외의 출산과 분만, 외상 성 골절 치료와 두개골과 흉부외과 외상환자 등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외상치료의 집중교육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섬에서 살아가는 다정하고 순박한 팔라우 국민들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이른바 대동아전쟁시기에는 수많은 한국인이 이국땅의 고혼이 되어 우리에게는 슬픔의 역사를 묻어야 했던 섬나라 입니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팔라우에서 의사 윤성일의 성실하고도 유능한 의료지원활동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인 한국의 위상을 그들에게 오롯이 전하였고, 그가 받은 존경과 사랑은 징용으로 스러져간 한국인의 원혼을 한껏 달랠 수 있었습니다.

 

팔라우 현지 신문기사 자료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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