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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나눔&봉사

웃음이 사랑스러운 두살배기 현아를 만나다.


 

 

 

 

  처음에는 얼음공주인 줄 알았다.

 잘 웃지 않았고 눈이 마주치면 입을 삐죽거리다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아빠 품에 안겨서는 윗니 두 개를 드러내며 곧잘 웃었고,

 뽀로로 노래에는 금세 미소 지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알고 보니 현아는 그냥 낯가림이 심한 거 였다.

얼굴이며 손이며 온몸이 딱지와 부스럼으로 덮여 있는 것을 빼면,

현아는 더도 덜도 아닌, 딱, 두 살배기 아이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도 웃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운.

 

 

 

  무릎 아래 피부가 벗겨진 채 세상에 나오다 

 

 현아는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했다.

 윗니 아랫니도 이제 막 나기 시작했고, 모유를 먹다 얼마 전부터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다.  기저귀 떼는 연습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 이제 막 하기 시작한 일’ 이 대부분인, 아직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아기였다.

 

 “날이 추우면 감기가 걸릴까, 기어 다니다 혹은 걸어 다니다 어디 부딪히지는 않을까,

 넘어져 다치지 않을까, 아무거나 주워 먹어 탈이 나지는 않을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다 똑같은 마음일 거예요.

 귀한 내 아이가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잖아요. 건강한 아이도 그럴

진대 현아는 아프니까 더…….”

 

 엄마 박효민 씨(33세)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현아네 집에는 아기가 있는 여느 집에서 볼 수있을 법 한 기저귀나 분유통, 장난감 보다 드레싱과 소독제, 연고, 밴드, 붕대, 손수건 등이 더 많았다. 드레싱 약품이 아예 한쪽 벽면을 빼곡히 메울 정도였다.

 

 외출복보다는 잠옷이나 내의류가 더 많다는 것도 다른 풍경이었다.

 몸 이곳저곳에 물집이 잡히고 고름이 차면 하루에도 몇 번씩 소독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현아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풍경이었다. 장난감보다 소독제가 더 필요하고, 예쁜 옷보다 부드럽고 편안한 옷이 더 필요했다.

 

 “제 뱃속에 있을 때 현아는 무척 건강했어요. 발길질이 어찌나 센지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죠. 집 근처 산부인과에서 자연 분만하고, 현아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무릎 아래 피부가 벌겋게 벗겨져 있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던지, 바로 큰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믿고 찾아간 병원에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 피부가 벗겨져 수포가 생기고 고름이 차는 범위는 넓어지는데 원인을 모르니 진단을 할 수 없고 병명도 알 수 없었다.  마땅히 쓸 약도, 치료법도 딱히 없었다. 

 그저수포를 터뜨려 고름을 짜내고 드레싱해주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보름여가 지났을 때 현아는 수포성 표피박리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진단을 받은 후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땅한 약도, 치료법도 없었다. 효민 씨는 병원에서 드레싱 하는 방법을 배워 현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병명을 알았는데도 치료법이 없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죠.   병을 호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감염을 막기 위해 매순간 피부를 소독하고 드레싱 해줘야 한대요.

  우리 몸 어느 곳 하나 피부로 덮이지 않은 곳이 있나요?

  그러니까 현아는 몸 어느 한 곳 마음 놓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거예요. 어제는 얼굴에, 오늘은 손에 물집이 잡히고, 내일은 입안이 헐어요. 정한 시간도, 정한 때도 없어요.”

 

 

 

  두 살도 안 된 아이, 스스로 고통을 참아내다.


 현아가 앓고 있는 수포성 표피박리증후군은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피부 단백질을 만들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다.

 

 출생 때부터 피부가 벌어져 수포가 생기고 반흔, 점막 침범을 보이며, 손가락·발가락 융합, 식도 유착까지 생긴다.

 미국에는 5만여 명이 앓고 있고 국내에는 통계조차 따로 없는 드문 질병이라고 한다.

 수포가 생기는 위치에 따라 표피 내에 형성되는 단순성, 투명판에 형성되는 경계성, 기저판 바로 아래에 형성되는 이영양성으로 나뉘는데, 현아는 이영양성 중에서도 증상이 심한 열성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집을 터뜨려 고름을 짜내고 소독하고 습윤밴드며 붕대를 감다보니

엄마,아빠는 이제 어느 의료진 못지않게 능숙해졌다.

 

 “얼굴을 할퀴더라도 손을 싸놓지 않았어요. 통풍이 되면 더 나을까 싶어서요. 

  그런데도 현아는 벌써 두 발과 왼손이 모두 붙어버렸어요. 그나마 오른손이 아직 괜찮고요.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합니다.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현아이기에, 아빠 김재훈 씨(34세)는 남들 하는 건 다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돌잔치도 성대하게 치렀고 사진도 더 자주, 더 많이 찍어줬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얼마나 예쁘게 자라고 있는지를 매 순간 놓치지 않고 기록해 현아가 자라면 다 얘기해 줄 참이다.


 “현아가 또래보다 의젓해요. 자기가 아픈 걸 아는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조심하고 위험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손을 싸놓지 않아도 얼굴을 할퀸 적이 많지 않을 정도니까. 그런데, 그게 더 마음이 아파요. 아기들이 스스럼없이 넘어지고 부딪히고 다치면서 자라야하는데, 오히려 두 살 배기가 알아서 조심하니까 그게 더 안타까워요.”

 

 재훈 씨는 두 돌도 채 안된 아이가 고통을 참고 울음을 삼키는 것 같다 싶으면 그만 하릴없이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더욱이 현아가 자랄수록 이 같은 순간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가 나기 시작하면 치아가 썩지 않도록, 잇몸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더 신경 쓰면서 치과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시력이 형성될수록 통증과 과도한 눈물과 분비물이 생길 수 있어 정기적으로 안과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는 자다가 무심결에 눈을 비벼 눈 안쪽이 벗겨졌는지 하루 종일 눈을 뜨지 못한 적도 있었다.

 먹을거리가 다양해지면 식도 협착도 조심해야할 것이다.

 

 현아가 자랄수록 엄마, 아빠의 걱정은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너무 평범해 정작 그 비범함을 깨닫지 못하는 모든 일상이 현아에게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도전이고 모험이 될 것이다.

 아이가 자라는 것조차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떠하랴.

 재훈 씨와 효민 씨는 제발 심장이 딱딱해지기를, 어떤 일에도 초연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의기소침하지 않고 또래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현아를 만나러 갔던 날, 엄마 효민씨는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얼마전, 현아가 갑자기 열이 올라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무리한 탓이었다.

 

 “그동안 친정 엄마에게 현아를 맡기고 저도 직장을 다니며 맞벌이를 했는데, 퇴원하는 대로 사직서를 제출할까 해요.   

  현아 때문에 수시로 일을 쉬었고 지금은 제가 아프다고 몇 주 동안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솔직히 직장 동료들 눈치도 보이고요, 친정엄마도 몸이 편찮으신데다 저도 쉬이 몸이 회복될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맞벌이할 때도 힘들었는데 현아 아빠 혼자 벌어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효민 씨는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다.

 수포성 표피박리증후군이 산정특례 대상 질병이긴 해도, 연고며 습윤밴드, 소독제, 붕대 등 드레싱에 필요한 것들이 소소한 듯 보여도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면 금방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이고, 조금만 열이 올라도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현아 병원비를 대기에, 외벌이로는 감당키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현아가 방긋 방긋 웃어주고 품에 폭 안기면 그 순간 만큼은 아무 고민도, 아무 걱정도 없어지고 마냥 행복해요.

 아프다는 것 말고는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현아가 기죽지 않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또래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씩씩하게 자라주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재훈 씨는 저 멀리 가을 하늘을, 아주 오래도록 올려다봤다.

 선선한 가을이 이리 반가울 때가 또 있었을까.

 종일 에어컨을 틀어놔도 여지없이 물집이 생기고 곪는 여름은 현아에게 정말 고역이었다.

 재훈 씨나 효민 씨가 가을을 기다린 건 비단 높은 하늘과 단풍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박리증후군이란?
  수포성 표피박리증은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을 생 산하는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피부 단백질을 만들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다. 이영양성은 기저판 바로 아래에 수포가 형성되는 것인데 태어날 때부터 심한 수포가 발생하고 반흔, 점막 침범을 보인다.

 우성보다 열성형이 증상이 심해 손가락, 발가락이 붙거나 식도 협착이 나타나기도 한다. 드물지만 지속적인 상처로 인해 피부암이 생길수 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고 장애를 입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주위의 관심과 도움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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