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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나눔&봉사

[금요특집] 한국의 슈바이처들....제25부 이정열(카자흐스탄)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카자흐스탄의 허준  이정열

  시인 한의사

 

 

 

 

 

 

 

 

 

 

 

 

 

 

여태 뭐 했어!
귓전을 때리는 소리에 놀란다.
아내의 지청구에 나는 무너진다.
어디 무너지는 게 공든 탑뿐이겠는가.
추억은 세월의 사리가 되어 쏟아진다.

‘너에게 내가 전부였으면’
오래 전 나에게 온 쪽지 한 장
책갈피에서 떨어진다.
아프지만 단호한 손길로
그 전부를 구겨서 버린다.

이제 겨우
한걸음 나갔을 뿐이다.


 시인이며 한의사인 이정열이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 한의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Kazakhstan)으로 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면서 쓴 시의 일부분입니다.

 환자에게 봉사하는, 환자를 사랑하는 의료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제껏 쌓아 온 공든 탑은 단호한 손길로 구겨 버립니다.
 그는 의료봉사의 발걸음을 재촉하기 위해 아프지만 과감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인 한의사 이정열...

 

 이정열은 1960년에 태어나, 1986년 원광대학교 한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한의대를 다니면서 원광대문학회에서 시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상지대학교에서 임상학 강의도 하였고, 서울에서 한의사로 일하던 그는 부도 쌓았고 명성도 이루었습니다. 한의사이면서 시인이었던 그는 환자를 돈으로만 보아온 지금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봉사를 자원했습니다.


 인술의 근본을 새롭게 배우고 싶었고, 진정으로 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온 정성을 쏟고 싶었습니다.

 그는 파견되기 전에 카자흐스탄 관련 자료를 수집하던 중 알마티에 거주하는 고려인 시인 이 스타니슬라브의 우슈토베에 관한 시를 읽고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중앙아시아 작가회의에 참가하여 《고려문화》에 여러 차례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고려인들은 정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슈베토, 눈물의 유배지로 강제이주 당하였습니다.

 그는 흩어진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원형 격인 그곳을 찾아 잡초처럼 다시 일어난 고려인들과 의료혜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경제성장 본거지로 급속히 떠오른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 10만여 명과 1990년대 초부터 기회를 찾아 몰려든 한인동포 3,000여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정부파견한의사로 카자흐스탄에 파견되다...

 

 드디어 2006년 KOICA의 정부파견한의사로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에 부임하여 3년간 재임하였습니다.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은 2000년 KOICA의 지원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개원 당시 알마티의 여러 시립병원에 흩어져서 진료하고 있던 한방과, 외과, 내과의 한국 해외파견 의사를 중심으로 개원하였습니다.

 

 2002년 알마티시청으로 병원 운영권이 이관된 후에도 의사가 꾸준히 늘어나 치과,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신경과, 척추교정과 등에서 15명의 현지 의사들과 함께 진료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운영권이 시청으로 넘어간 후에는 늘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에게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민족과 국적을 떠나 똑같은 환자였습니다.

 KOICA의 특성상 현지인 위주의 병원이 될 수밖에 없지만, 먼 이역만리에서 기쁨의 씨줄과 슬픔의 날줄을 엮어가고 있는 교민들도 진료하였습니다.

 

 그는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원주민 환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러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고려인들을 위한 정기순회 진료를 정례화 하였습니다.

 

 

 

  우슈토베에서의 무료진료 그리고 고려인...


 고려인들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최초로 정착한 우슈토베.

 알마티에서 420km 떨어진 길을 자동차로 7시간이나 직접 운전하면서 우슈토베로 달렸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가도 가도 황량한 벌판. 길은 멀었고 너무나 거칠었습니다. 어떤 때는 튀는 돌에 자동차의 연료통이 구멍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우슈토베가 마치 푸른 섬처럼 그에게 다가왔으며, 그곳에서 고려인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신고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의 옛 모습을 오롯이 지켰습니다.

 

 조국의 풍속과 습관에 따라 집을 지었고, 논밭을 일구었고, 추석과 설을 보냈습니다. 먼 길을 달려그곳에 도착하면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은 그를 반겼습니다. 긴 여정의 피곤함이 싹 사라졌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국의 과거로 달려간 듯 평온한 느낌에 행복하였습니다.

 

 그곳의 고려인들은 물론 체첸족과 쿠르드족 등 현지인 2,900명에게 침과 부항 그리고 뜸을 사용해서 한방진료를 무료로 실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부파견한의사로서 정해진 일만 하지 괜히 일을 벌이지 말라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마음고생도 하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사회주의 잔재가 남아 있어 의사의 근무시간을 하루 3시간으로 제한하였습니다.
 그런 의료 현실에서 한의학의 인기는 당연히 높았습니다. 그가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 전체 수입의 70%를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비를 들여 우슈토베의 무료진료를 꾸준히 수행하였고, 마침내 한국대사관도 지원에 나섬으로써 정식 프로그램으로 정착시켰습니다. 마침 부산대학교 의대를 나와 해외 협력의사로 합류한 젊은 내과의사 황상현이 흔쾌히 힘을 보태면서 그의 무료 진료는 가장 성공적인 봉사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한방진료에 대한 우슈토베 현지인 반응도 매우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소련시절 노력영웅이었다는 신 리사는, 그의 일행이 무료진료를 시작한 이후 한방의 뛰어난 효과를 체감한 현지인들이 지역병원 찾기를 꺼리게 되는 현상이 생겨났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런 봉사활동을 하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어 고려인이란 것이 자랑스럽다고 하였습니다.

 

 

 

  3년간의 파견활동을 회상하다....


 그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보은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제가 많이 배웁니다.
 우슈토베에는 고려인과 사나운 체첸인 그리고 기구한 처지의 독일 민족까지 수많은 민족이 말이 잘 안 통해도 몇 시간을 공감하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평화롭습니다.

 

 가난하지만 갈등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죠. 탈레반과 9·11테러 같은 건 여기선 싹 틀 수 없어요.

 우슈베토의 고려인 사회는 내게 다시 시인의 꿈을 안겨준 오래된 미래였습니다.

 

 2011년.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였던 카자흐스탄.

 그는 정부파견한의사로서 카자흐스탄에서의 3년간의 세월을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특히 아픔의 과거를 간직한 채 척박한 황무지, 고립된 우슈베토에서의 내 나라 내 겨레 고려인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리고 그는 강조합니다.

 

 따스한 정에서 우러난 인술을 펼치는 것보다 더 높고 숭고한 외교활동은 없습니다.

 

 


카자흐스탄 일간지 베체르니이 알마타에 실린 의료장비 기증식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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