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으로 재배되는 사과
빌헬름 텔이나 뉴턴의 사과는 요즘 사과와는 완전히 다른 품종이다. 현재 우리가 먹는 사과는 농약 없이는 재배가 불가능한 이른바 개량종이다. 개량종은 농약 사용을 전제로 육종된 품종이다. 일본의 고집스런 귀향 농민 기무라 아키노리 씨는 무농약ㆍ무비료 사과라는 ‘확률 0’의 게임에 10년 이상 매달렸다. 기무라 씨 사과와 일반 사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농약 잔류량과 부패 속도다.
“일본의 검사기관에서 내 사과의 농약 잔류량 검사를 해봤는데 당연히 농약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일반 사과는 껍질에만 농약이 일부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론 과육(果肉)에도 일부 잔류한다. 농약 등 유해성분이 뿌리를 거쳐 과육(果肉)에도 흡수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편 뒤 기무라 씨는 일본 사과 농민들의 ‘공공의 적’(敵)이 됐다. 기무라 씨의 자연농법대로 과일을 재배한다면 적어도 과일에서 잔류 농약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일반적인 과수 농가에선 농약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농약을 사용해야 생산성(수확량)을 높일 수 있어서다.
농약사용에 대한 불안과 우려
국내 소비자들은 곡물ㆍ과일ㆍ채소의 농약 잔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식품 안전을 위협하는 여러 요인들 가운데 농약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크다는 조사결과도 제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09년 전국 17세 이상 남녀 10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잔류농약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7.6%가 잔류 농약에 대해 불안과 우려를 표시했다. 나이가 많고 학력이 높을수록 식품의 농약 잔류에 더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농약 잔류가 가장 심할 것으로 꼽은 식품은 채소(46%)였다. 다음은 곡류(32%)와 축산식품(10.3%)이었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우려와 불안감과는 달리 실제 시판 중인 곡물ㆍ과일ㆍ채소 등 농산물에서 검출되는 농약의 양과 빈도는 미미한 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잔류 농약으로 인해 국내 소비자가 건강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래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09년 국내 유통되는 국산과 수입 농산물 10만여 건을 검사한 결과 이중 99.1%에서 농약 잔류량이 허용기준 이하였다. 곡물ㆍ과일ㆍ채소의 농약 잔류량이 적은 것은 살포한 농약이 비ㆍ바람ㆍ태양ㆍ미생물ㆍ공기 중 산소 등에 의해 제거되거나 자체 분해되기 때문이다. 만약 곡물ㆍ과일ㆍ채소 등 식재료에 농약 성분이 다량 잔류한다면 조리하는 손 등에 접촉성 피부염이 생길 수 있다.
잔류 농약은 사람의 면역력도 떨어뜨린다. 감기나 독감에 잘 걸리게 하고 피로를 쉬 느끼게 한다. 농약 중엔 발암물질로 의심되는 것들도 상당수다. 소량의 농약이라도 장기간(10∼30년) 섭취하면 암을 부를 수 있다. 잔류 농약으로부터 나와 가족을 보호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마트에서 친환경(유기ㆍ무농약) 농산물 마크나 유기농 가공식품 마크가 붙은 식품을 사면 농약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
단 구입한 유기 농산물이 ‘가짜’가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곡물ㆍ과일ㆍ채소를 구입할 때 외양만 중시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만약 과일 껍질에 벌레 먹은 흔적이 있다면 이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겉모습이 너무 싱싱하고 때깔이 좋으면 농약을 뿌려 키운 과일이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잔류농약 제거법
일반적으로 곡물ㆍ과일ㆍ채소는 섭취 전에 세척 과정을 거치며 이때 대부분의 농약이 제거된다. 마트에서 산 곡물ㆍ과일ㆍ채소를 잘 씻기만 해도 농약이 거의 남지 않는다. 요즘은 대부분의 농약들이 곡물ㆍ과일ㆍ채소의 내부까지 침투하지 않고 표면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곡물ㆍ과일ㆍ채소에 잔류한 농약을 제거하려면 물에 충분히 담가두었다가 다시 한 번 흐르는 물에 씻는 것이 좋다. 곡물ㆍ과일ㆍ채소를 수돗물에 한꺼번에 넣고 손으로 저으면서 씻으면 물과 접촉하는 빈도와 시간이 늘어나 잔류농약 제거에 더 효과적이다.
곡물ㆍ과일ㆍ채소를 씻을 때 식초ㆍ소금ㆍ숯ㆍ베이킹파우더 등을 넣어주면 농약이 더 많이 제거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수돗물로만 세척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식약처 연구결과). 곡물ㆍ과일ㆍ채소를 흐르는 물ㆍ고인 물ㆍ숯ㆍ식초ㆍ베이킹파우더ㆍ소금물로 세척한 결과 잔류농약 제거율이 모두 80% 이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물 대신 식초나 소금물로 씻으면 곡물ㆍ과일ㆍ채소에 든 영양소가 파괴될 수 있어 오히려 손해다.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연구결과도 대동소이하다. 농진청 연구진이 상추와 배추 등 잎채소를 고인 물에서 2∼3회(물을 교체) 씻었더니 농약 잔류량이 80% 이상 감소했다. 물에 담가 씻는 것이 흐르는 물에 한번 씻었을 때에 비해 많게는 두 배까지 농약 제거 효과가 높았다. 물 세척만으론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면 곡물ㆍ과일ㆍ채소를 세제를 조금 넣은 물로 초음파 세척할 것을 권하고 싶다. 농진청 연구에선 또 채소를 데치기만 해도 농약 잔류량이 65% 이상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채소를 볶거나 국에 넣어 끓이는 과정에서도 잔류 농약이 파괴되거나 증발돼 날아간다. 채소 등을 가열ㆍ조리할 때 조리용기의 뚜껑을 열어 두라고 권하는 것은 이래서다. 농약의 잔류량은 과일이나 채소의 발효과정에서도 대폭 감소한다. 발효 미생물에 의해 농약이 분해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갈이배추와 열무를 재료로 하여 김치를 담가봤다. 얼갈이배추와 열무에 묻은 농약은 소금에 절이고 세척하는 과정에서 55% 이상, 발효과정에서 70∼91% 제거됐다. 과일 표면에 남은 농약을 섭취하지 않으려면 과일 껍질을 벗기고 먹는 것이 좋다. 그러나 과일 껍질엔 안토시아닌 등 웰빙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껍질을 벗기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손해일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과일별 잔류농약 제거법 |
과일별로 잔류농약 제거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과는 물로 씻거나 헝겊 등으로 잘 닦아서 비타민 C가 많은 껍질과 함께 먹는 것이 최선이다. 꼭지 근처 움푹 들어간 부분은 농약 잔류 가능성이 있으므로 꼭지 부위는 제외하고 먹는 것이 더 안전하다. 사과와 토마토처럼 껍질을 벗겨 먹는 과일은 식초나 레몬 즙을 이용해 씻는 것도 권할 만하다. 식초와 레몬에 함유된 산(酸)은 얼룩과 오염물질 제거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식초와 물을 1 대 10의 비율로 섞은 뒤 과일을 20분 담가뒀다가 흐르는 물에 씻는다.
포도는 한 알씩 씻기 어려울 뿐 아니라 껍질째 먹기도 하므로 철저한 세척이 요구된다. 포도를 송이채 물에 1분 동안 담갔다가 흐르는 물에 헹구는 것이 일반적인 포도 세척법이다. 흡착력이 강한 숯을 활용해 씻는 방법도 있다. 포도를 씻는 물에 2분가량 숯을 담가두면 포도껍질에 묻은 농약을 숯이 제거해준다. 밀가루나 베이킹소다를 활용하기도 한다. 밀가루나 베이킹소다를 포도에 뿌리고 흐르는 물로 씻어내는 것이다. 역시 흡착력에 의존하는 세척법이다.
딸기를 먹을 때는 잔류 농약을 더욱 신경 써야 한다. 껍질째 먹는 과일이기 때문이다. 딸기는 또 쉽게 무르는데다 잿빛 곰팡이를 없애기 위해 곰팡이 방지제를 뿌리는 경우가 많다.
먹기 전에 물에 1분가량 담근 뒤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씻는 것이 효과적이다. 농약 등 유해물질이 딸기의 오돌토돌한 표면에 잔류할 수 있어서다. 흐르는 물로 딸기를 두세 번 이상 씻으면 잔류 농약이 90% 이상 제거된다. 이때 꼭지를 떼지 말고 씻어야 비타민 C와 단맛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물에 너무 오래 담가 놓으면 딸기의 웰빙 성분인 비타민 C가 소실될 수 있다. 딸기에서 농약 잔류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위는 꼭지 주변이다. 꼭지 부위는 철저히 씻어 먹거나 남기는 것이 좋다. 대형 딸기 가운데는 종종 속이 비어 있는 것이 있다. 농약의 일종인 성장촉진제 때문일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속이 빈 것은 ‘육보’란 딸기 품종의 특성이다.
귤처럼 손으로 직접 벗겨 먹는 과일은 껍질을 벗기는 도중 농약이 묻을 수 있다. 껍질을 벗기기 전에 미리 흐르는 물에 귤을 잘 씻을 것을 권하고 싶다. 오렌지의 표면에 묻은 하얀 가루를 농약으로 오인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하얀 가루의 정체는 미국 등 오렌지의 원산지에서 한국까지 운송되는 기간 동안 표피의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코팅한 식용 왁스(wax)다. 이 식용 왁스는 과일의 부패도 막아 준다. 자몽ㆍ레몬ㆍ바나나 등 수입 과일들을 대부분 식용 왁스로 코팅하는 것은 그래서다. 만약 오렌지 표면에 반짝거리는 왁스가 발라져 있다면 소주를 묻혀 닦아낸 뒤 흐르는 물에 껍질을 씻는다.
바나나는 유통 중 살균제ㆍ보존제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확 후기에 줄기 부분을 보존료에 담그는 경우도 많은데, 줄기 쪽부터 1㎝ 지점까지 깨끗이 잘라 버리고 먹으면 안심할 수 있다.
글 /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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