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교편을 잡은 부모님을 두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 유난히 그랬다. 부모님과 함께 백화점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저기 혹시 박모 선생님이세요?” 뒤를 돌아보니 옷을 팔고 있는 한 청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5년 전 선생님께 배웠다며 활짝 웃는다. 15살짜리 중학생은 어느덧 스무살의 청년이 됐다. 학창시절 깊은 교감도 없었고, 담임 선생님도 아니었다. 교내 먼 발치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이다. 그래도 선생님을 만난 게 그저 반가운 거다. 그의 이름 맞추기에 실패한 아버지는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열심히 일하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매장 사장이 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괜히 으쓱해진다. 교권이 무너진다고 그렇게 난리여도 선생님이란 직업이 주는 울림이 아직 이 정도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교사 경력 30년에 부모님의 첫 제자들도 어느새 나이가 꽤 들었다. 중학생이었던 소년 소녀가 어느새 불혹을 넘긴 중년이 됐다. 그들은 가끔 한 손엔 먹을 거리를, 다른 손엔 자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온다. 웃으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또 때로는 얼마나 자상했는지 이런저런 일화를 털어놓는다. 몇십년전 과거를 들춰내며 한 아저씨 아줌마가 그보다 더 나이를 먹은 부모님과 함께 한바탕 웃는 장면은 퍽 정겨운 것이었다. 퇴직한 교사에게 훈장처럼 남는 것은 제자의 주기적인 방문이다. 교사 생활을 어떻게 보냈냐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제 국영수가 아니라 함께 늙어가는 이 인생을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가르칠 터였다.





아버지는 교육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15~20년 전 교복이 없고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들에게 교내에서라도 체계적인 지원을 하자고 주장했다. 아직도 천안 집에는 헌 교복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아버지의 사진이 많다. 학생들과 어깨동무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어머니는 소위 1진 애들 잡는 아줌마 교사였다. 젊은 선생님에겐 그렇게 버릇없던 학생들도 어머니가 한번 째려보면 고개를 숙였다. 쌍둥이 키워낸 경력이 어디가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충남 예산에서 서산, 당진 등을 거쳐 천안으로 터를 잡았을 때 시골의 순박한 학생들은 두 교사에게 이별의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부모님은 그 편지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요즘 애들 영악하다고 때려야 한다고 하면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라고 두 교사는 여전히 애들 편을 든다. 그때마다 나는 그래도 우리 부모님은 촌지를 받거나 애들에게 비인격적인 욕을 하거나 무작정 때리는 교사는 아니었겠구나, 하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그래도 선생님이 되기는 싫었다. 재미가 없어보였고, 학부모의 극성에 그저 고개를 숙여야하는 것도 싫었다. 가끔 집으로 찾아오는 문제아들의 부모들은 항상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아들은 죄가 없다”고 소리쳤다. 당신네 아들이 친구를 때려서 이 사달이 났는데도 무조건 학교의 책임이라고 했다. 오해라고 삿대질을 했다. 부모님의 시름섞인 표정을 보며 내 성질에 저렇게 가만히 있기는 고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인권 운운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믿지 않는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그네들의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





말이 장황해진 건 얼마 전 여자 선생님을 폭행하고, 이를 영상으로 찍으며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학생들의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그 선생 내가 묵사발 만들었어! 라며 끼리끼리 즐거워할 그의 인생은 어찌 그리 불쌍할까. 안타까울 뿐이다. 선생님의 권위가 어디까지 떨어질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희망과 함께 삶의 길을 가르쳐줄 인생의 스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글 / 박세환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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