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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취미

행복한 티타임, 홍차에 관심 가져 보아요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좋을 지인이 함께할 것 같은 소박하고 편안한 이 차 마시는 자리의 티 세트는 빛의 색채를 중요시했던 19세기 인상주의 미술의 대표 화가 모네의 그림이다.


클로드 모네 / 티 세트/1872/출처: Wikimedia


현대에서도 건강에 관심이 커지고 차(茶)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건강을 위해 차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건강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한 잔의 차를 통해 얻는 휴식과 정신적 여유 때문에 행복한 마음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차는 즐거움의 목록이며, ‘현대문화의 아이콘’으로 불리기도 한다. 


차(茶)는 차나무의 어린잎을 달이거나 우려낸 물을 말한다. 우리 주변의 차는 모두 다 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엄밀히 말하면 ‘카멜리아 시넨시스’ 가 아닌 것에서 만들어진 차는 차가 아닌 대용 차이다. 차는 한 가지 식물, 중국의 동백나무인 ‘카멜리아 시넨시스’잎을 이용한 차만 차인 것이다. 


‘카멜리아 시넨시스’잎


차(茶)는 발효 정도에 따라 6대 차로 구분되는데, ‘녹차, 백차, 황차, 청차(우롱차), 홍차, 흑차(보이차)’이다. 


이 중에서 홍차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어 음용되는 차로서 차 소비량의 80%에 이른다. 홍차의 주요 산지는 중국의 기문과 인도의 다즐링, 아쌈, 닐기리 지역 그리고 스리랑카의 우바, 캔디 지역과 케냐, 탄자니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국가로 그중에서 ‘다즐링’(인도), ‘우바’(스리랑카), ‘기문’(중국)은 세계 3대 홍차에 속한다. 


세계인이 선호하는 차이지만, 이름은 동. 서양이 다르게 부른다. 동양에서는 우려낸 수색이 붉은색에 가까워 홍차(紅茶)라고 부르나, 서양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해 가는 동안 습하고 높은 온도 때문에 갈색의 찻잎이 검은색으로 변해 블랙 티(Black Tea)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래드 티(red tea)는 루이보스 차(rooibos tea)를 의미한다


캐서린 왕비/출처: Wikimedia


차의 시작은 중국이지만,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으로 홍차가 소개되었다. 세계 최대의 홍차 소비국이 된 영국이 홍차 문화를 형성하게 된 동기를 만든 사람은 1662년 영국 국왕 찰스 2세와 결혼한 캐서린 포르투갈 공주이다. 


캐서린 공주는 차와 설탕을 가져왔고, 포르투갈에서 했던 것처럼 오후에 티타임을 가지면서 영국에서 차가 급속히 전파되었다. 


 

The Cup of Tea/1879/Metropolitan Museum of Art           mary cassatt/tea/1880/ Museum of Fine Arts, Boston                    


차를 마시는 모습을 그린 메리 카사트(mary cassatt)는 미국의 인상주의 여류화가로, 초기 생애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다. 인상주의의 대가 드가를 만나 친분을 쌓았고, 인상파 화가들과 전시회를 했으며, 여인들의 일상을 즐겨 그렸다. 


그녀의 그림처럼 혼자이든 다른 사람과 있든, 언제 어느 때라도 좋은 것이 티 타임이다. 


홍차는 항산화 작용과 함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피로 해소에 좋아 어떤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 차라고 할 수 있다. 홍차는 녹차보다 향을 오래가고 녹차와 달리 생강, 우유, 레몬 등을 가미해서 마셔도 홍차의 원래 맛에 손상이 가지 않아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홍차를 배합에 따라 분류해 보면, 단일 종류의 찻잎만을 사용한 스트레이트 티(Straight tea), 두 종류 이상의 찻잎을 블렌드(배합)하여 제조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프린스 오브 웨일스 등의 블렌디드 티(Blended tea), 향신료(계피, 정향 등)나 과일(망고, 사과 등), 또는 꽃잎 같은 첨가물로 향을 낸 얼 그레이 홍차 등을 가리키는 플레이버리 티(Flavoury or flavoured tea. 향 첨가 차)로 분류할 수 있다.


미 보스턴 차 사건을 그린 석판화/나다니엘 쿠리에/1846/출처: Wikimedia


16세기 영국인들은 알코올 소비가 하루 1인당 3ℓ 기록이 나올 정도로 심했는데, 홍차를 마심으로써 알코올을 식탁에서 밀어내었다. 18세기 초 홍차의 인기가 점점 높아져 영국은 홍차의 최대 소비 국가가 되었고, 새로운 차 문화가 생겨났다. 그러나 ‘보스턴 차 사건’과 ‘아편전쟁’의 큰 사건도 겪었다.


‘보스턴 차 사건(1773)’은 영국 본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미국의 식민지 주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하여 배에 몰래 들어가서 차(茶) 342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미국 독립 전쟁을 일으켰고 영국에게서 독립하게 되었다.


‘아편전쟁’(1839~1842)은 영국 왕 조지 3세가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아편을 중국에 팔게 되었다. 많은 양의 아편 유입으로 중국의 반발이 있어 두 나라 간 전쟁이 일어났으나,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중국은 불평등 조약인 난징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으며, 서구 열강에게 침략의 발판이 되었다.


차 수입의 한계를 느낀 영국은 인도 아쌈(Assam) 지역에 대규모의 다원을 개척하였고, 영국은 홍차를 전 세계에 정착시켰다. 영국은 차뿐 아니라 도자기도 함께 발전시켜 본차이나 등 도자기로도 유명한 나라가 되었다.


차가 일상이 된 영국인들은 다양한 티 타임을 가진다.


19세기 영국에서는 하루 2회 식사가 일반적이어서 영국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마시는 breakfast tea부터 시작해서 afternoon tea, high tea 등 잠들기 전까지 티 타임을 가졌다.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아침을 먹고 공복을 참지 못한 후작부인 안나 마리아가 시녀가 들고 온 차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한 것이 시초다. 다양한 티타임은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 차 문화로 자리 잡았다.


티타임/1911/ 판지 위에 유채/ 필라델피아 미술관


이 작품은 프랑스 입체주의 화가 ‘장 메쳉제’가 그린 ‘티 타임’이다. 찻잔을 기울이며 앉아 있는 여인을 정면과 측면 등 여러 각도에서 본 후 다시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입체주의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는 작품이다. 1911년 매년 가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며 진보적인 제작을 목표로 조직된 젊은 미술가들의 전시회인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 처음 발표되었다. 


우리는 입체파 화가 하면 피카소와 브라크를 떠올리고 ‘장 메쳉제’의 이름이 낯설지만,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에는 ‘장 메챙제’의 명성이 아주 높았다고 전한다. ‘장 메쳉제는 동료 화가 ’글레이즈‘와 논문 ‘입체주의에 관하여(Du Cubisme)’를 발표한 미술이론가로도 유명하다.



영국인에게 차는 “집에서 즐기는 소풍과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홍차는 영국인의 생활에 잘 스며들었고 삶을 변화시켰다. 정겨운 티타임을 통해 다양하고 윤택한 자신만의 풍경들을 화려하게 꽃 피워 내었다.


가끔 커피보다 홍차 잎 한 스푼으로 마음의 쉼터를 만드는 티타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