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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삶의 명언, 어우름의 마음으로 세상을 걸어가자 물은 애쓰지 않는다. 거슬러 오르려고 무리한 몸짓을 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아래로 흘러 강에 닿고 바다에 이른다. 물은 자연의 이치를 안다. 만물은 각자의 결이 있고, 사물은 각자의 법칙이 있음을 안다. 세상은 틀림이 아닌 다름의 모둠이다. 다르다고 따돌리지 마라. 어울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걸어가라. 함께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봐라. 나의 마음으로 너를 헤아려라. 세상의 다른 결을인정해라 목수는 나무의 결을 안다. 결을 거스르지 않아야 무늬가 산다는 걸 안다. 대패는 결을 따라 움직인다. 결은 사물의 이치이자 본래의 모습이다. 타고난 고유성, 너와 다른 나만의 색깔이다. 만물은 각자의 결이 있다. 결은 일종의 DNA다.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소 잡는 백정 이야기가 ≪장자≫에 나온다. .. 더보기
정신건강이 무너진 사람들 직장 내 왕따 공자의 한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마을의 모든 사람이 어떤 사람을 선하다고 하면 그 사람을 선하다고 믿으면 됩니까?” 공자가 답했다. “좀 생각해봐야지.” 제자가 또 물었다. “그럼, 마을의 모든 사람이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하면 그는 악할 사람입니까?” 공자가 또 답했다. “그 또한 좀 생각해봐야지.” 그러면서 공자가 덧붙였다. “악한 사람들이 모두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하고 선한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람을 선하다고 하면, 그는 분명 선한 사람이다.” 성숙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성숙을 관용으로 대체해도 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좀 관용스러운 것, 이게 바로 성숙이 아닐까 싶다. 나이 30이 넘어서도 여전히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하다면 우리.. 더보기
세상은 넓고 삶은 길다. 배움에 게으르지 말자 자로(子路)는 ‘공자학당’의 맡형격이었다. 성격이 곧고 순수해 평생 스승 공자를 헌신적으로 섬겼다. 공자는 이런 자로를 아끼면서도 그의 조급함을 늘 경계했다. 하루는 공자가 자로를 불렀다. “자로야! 너는 육언(六言)과 육폐(六蔽)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 자로가 답했다.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 그럼 거기 앉거라. 내가 너에게 말해주마.” 공자는 자로를 맞은 편에 앉히고 부드럽게 말문을 열었다. “사람이 인덕(仁德)을 좋아해도 배움을 싫어하면 어리석기 쉽고, 지혜를 좋아해도 배움을 싫어하면 방탕하기 쉽고, 믿음을 좋아해도 배움을 싫어하면 남을 해치기 쉽고, 곧음을 좋아해도 배움을 싫어하면 조급하기 쉽고, 용맹을 좋아해도 배움을 싫어하면 난을 일으키기 쉽고, 강함을 좋아해도 배움을 싫어하.. 더보기
나이 오십에 이르면 인생을 25로 나누면 첫 번째 25년은 무엇인가 배우며 살아갑니다. 두 번째 25년은 무엇인가 되고자 살아갑니다. 세 번째 25년은 무엇인가 전하고자 살아갑니다. 인생의 첫 번째 25년 중간에 우리는 사춘기(思春期)를 겪습니다. 호르몬 변화로 인해 신체 내에 변화가 오는 것이지요. 나이 오십은 인생에 또 하나의 변곡점입니다. 두 번째 25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25년을 맞이하는 시기이지요. 나이 오십은 사추기(思秋期)라고도 합니다. 갱년기 질환은 이러한 사추기때 찾아옵니다. 사춘기가 성호르몬에 영향을 받았듯이 사추기도 성호르몬에 영향을 받습니다. 여성은 폐경을 겪게 되고, 남성은 점차 근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이 시기는 신체적 변화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자.. 더보기
마음을 이어주는 말…‘느낌 아니까’ TV는 유행어 제조기다. 특히 코미디 프로를 즐겨 보는 사람과 전혀 안 보는 사람은 웃음코드가 엇갈린다. 유행어를 패러디해도 원조(?)를 모르니 웃음이 터지지 않는다. 때론 옥외 광고도 독해(?)가 안된다. 유행어를 모르면 바로 구식취급이다. 나이 드는 것도 억울한데…. 새삼 ‘노년은 모든 것을 용서하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용서받지 못하고, 청년은 모든 것을 용서받지만 스스로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버나드 쇼의 말이 스쳐 간다. 마음은 마음으로 다가온다 ‘느낌 아니까~.’ 한 때 대한민국을 돌고 돈 유행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뽑은 2013년 유행어에선 당당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1위도 꿰찼다. 당차면서도 귀여운 개그우먼 김지민 씨는 개그콘서트(개콘)라는 프로에서 ‘느낌 아니까’를 연발하며 시.. 더보기
명절이 필요한 시간 다시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명절은 평소 각자의 현실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가족 친지들이 오랜 그리움의 공간인 고향에 모여 보고 싶던 사람들을 만나고 조상에게 예를 올리는 특별한 날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리가 알던 명절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다함께 모여 조상에게 예를 다하던 기존과는 달리 명절은 그저 빨간 날이 되어 국내외로 여행을 가거나 업체를 통해 차례를 대신 지내는 날이 된 것. 달라지고 있는 명절 풍속 속에서 명절의 참 의미는 퇴색되어 가고 있다. 명절의 깊은 뜻 명절마다 만나는 형제와 친척들 사이에서, 우리는 오랜 친밀감을 다시 느낀다. 나와 네가 각기 다른 곳에서 살아가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가깝고 사랑할 수 있는 사이임을 기억하게 된다. 모두 모인 공간에서는 서로의 삶이 분리.. 더보기
차지만 넘치지는 마라 ‘겸손은 야심가의 위선이거나 노예근성의 비굴함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 그의 눈에 비친 겸손은 다소 비아냥적이다. 하기야 겸손이 인간의 본능은 아닌 듯도 하다. 맹자는 인간의 심성이 본래 선하다는, 이른바 성선설(性善說)의 근거로 사양지심(辭讓之心)을 꼽는다. 인간은 남에게 양보하고, 겸손하고자 하는 성품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겸손은 일종의 ‘가면’이다. 겸손은 뭔가를 얻으려는 속셈으로 스스로를 일부러 낮추는 행위다. 맹자가 옳은지, 스피노자가 옳은지 정답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마찰이 사유의 공간을 넓힌다. 그게 철학이 인류에게 선사한 귀중한 선물이다. 과욕은 불행을 잉태한 씨앗 사실 세상은.. 더보기
나의 삶을 산다는 것 인생은 아쉬움의 연속이다. 삶은 항상 뭔가 부족하다. 누구는 돈에 결핍을 느끼고, 누구는 명예에, 누구는 권력에, 누구는 지식에 허기를 느낀다. 떡은 남의 것이 커보이고, 고기는 놓친 놈이 커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삶은 채움의 충만감보다 부족의 결핍감이 더 큰 공간을 차지한다. 물론 생각을 좀 돌려보면 그 ‘아쉬움’이란 갈증이 물질과 정신을 키운 촉매인지도 모른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비교하지 않고 산다는 건 말만큼 쉽지 않다. 삶은 수시로 저울질을 한다. 그 저울은 때로는 머리이고, 때로는 마음이다. 1억은 분명 1000만원의 열배다. 하지만 마음이란 저울은 그 열배를 백배 천배로 부풀리고, 때로는 팽팽한 무게로도 맞춘다. 결국 마음이란 저울의 사용법이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흔히 ‘부러우면 진다’.. 더보기
당신은 어떤 거울인가요? 삶은 가끔 되돌아 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현재의 스스로가 잘 보이고, 미래도 더 밝아진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함이다. 과거는 살아 갈 미래의 지혜를 넌즈시 던져준다. 그러니 역사는 현재학이자 미래학이다. 하지만 과거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누구는 과거에 담긴 참 뜻을 읽지만, 누구는 그 의미를 자신의 입맛대로 각색한다. 과거를,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이 제각각인 이유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에 힘을 좀 빼야한다. 그게 바로 성숙이다. 고집의 유연화는 비굴함, 연약함이 아니라 배려의 공간을 그만큼 넓히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있다. 고집에도 일종의 관성이 생기는 탓이다. 경험이란 것이 때로 아이러니하다. 경험은 세상을 넓혀 주.. 더보기
죽음의 공포…그 공포를 떨치는 명약 무덤을 바라보는 느낌은 동양과 서양이 약간 다르다. 동양은 속세와 묘지의 분리 개념이 강하고 서양은 속세와 묘가 좀더 친화적이다. 동양은 묘가 산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서양은 묘가 삶에 가까이 붙어있다. 공동묘지는 아이들이 뛰노는 동네 공원이다. 하기야 요즘엔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우리나라도 공동묘지가 생활 속으로 많아 들어와 있다. 이름도 공동묘지가 아닌 (추모)공원이다. 죽음을 보는 엇갈리는 느낌들 공동묘지에 서면 여러 생각이 묘하게 중첩된다. 죽음, 허무, 세월, 이별이란 아련함이 가슴에 스미지만 한편에선 평화, 고요, 해탈처럼 왠지 모를 포근한 느낌이 아린 가슴을 달랜다. 공동묘지는 삶과 죽음이 마주하는 곳이다. 세상으로 등을 돌리면 분주한 삶이 보이고, 무덤으로 등을 돌리는 순간 적막한 죽음이 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