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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나의 삶을 산다는 것

 

      

 

 

 

인생은 아쉬움의 연속이다. 삶은 항상 뭔가 부족하다. 누구는 돈에 결핍을 느끼고, 누구는 명예에, 누구는 권력에, 누구는 지식에 허기를 느낀다. 떡은 남의 것이 커보이고, 고기는 놓친 놈이 커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삶은 채움의 충만감보다 부족의 결핍감이 더 큰 공간을 차지한다. 물론 생각을 좀 돌려보면 그 ‘아쉬움’이란 갈증이 물질과 정신을 키운 촉매인지도 모른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

 

비교하지 않고 산다는 건 말만큼 쉽지 않다. 삶은 수시로 저울질을 한다. 그 저울은 때로는 머리이고, 때로는 마음이다. 1억은 분명 1000만원의 열배다. 하지만 마음이란 저울은 그 열배를 백배 천배로 부풀리고, 때로는 팽팽한 무게로도 맞춘다. 결국 마음이란 저울의 사용법이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흔히 ‘부러우면 진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스스로를 패자(敗者)라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남의 것을 지나치게 부러워한다는 반증이다. 부러움보다는 당당함이 삶에 에너지를 주고, 비관보다는 낙관이 성공으로 끄는 힘이 강하다. 그러니 세상은 당당한 자가 이끌고, 낙관적인 사람이 세상을 주도한다.       

 

≪한서≫ 동중서전에는 ‘이빨을 준 자에게는 뿔을 주지 않는다(豫之齒者, 去其角)’는 말이 나온다. 날개를 단 새는 두 발만 있듯 하늘은 두 가지를 다 주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날개와 네 다리를 포기한 대신 머리를 얻은 셈이다. 누구에게나 값진 달란트는 있다. 하지만 남의 것이 너무 커보이면 자신의 달란트가 보이지 않는다. 남의 삶이 부럽고, 나의 삶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부러운 삶은 지는 삶이다.

 

 

누구도 완벽하진 못하다

 

얼굴이 다르듯 재능도, 생각도 다르다. 남과 비교만 한다면 평생 나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살다 가는 셈이다. 원숭이를 헤엄치는 실력으로 평가하고, 물고기를 나무타는 재능으로 저울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을 아는 것은 겸손에의 굴종이 아니라 스스로의

귀중함을 아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자존을 세우는 일이다. 세상에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사는 삶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고개를 숙이면 땅밖에 보이지 않지만 고개를 들면 창대한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곳에 꿈이 있고, 그 곳에 도전이 있다. 삶은 꿈꾸는 것이고, 도전하는 것이다. 꿈꾸고 도전하는 삶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건강하다.

 

공자는 ‘한 사람에게서 완전하기를 구하지 말라(無求備於一人)’고 했다. 공자 말씀이 아니더라도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삶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뻥뚫린 공간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게 삶이고, 인생이다. 에디슨, 베토벤, 셰익스피어, 알렉산더대왕, 존 밀턴, 헤밍웨이, 헬렌 켈러…. 대다수 역사 속 인물들도 뚫린 구멍이 컸다. 누구는 세상을 보지 못했고, 누구는 세상을 듣지 못했고, 누구는 지독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 들리는 않는 세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콤플렉스에 무릎꿇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세상에 승부를 걸었다. 세상의 박수는 그 당당함에 보내는 찬사다.

 

 

당당한 삶이 아름답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하늘이 내게 재능을 주었으니 반드시 쓰일 곳이 있으리라’고 노래했고, 스티브 잡스는 ‘당신이 한 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당당히 받아들이라’고 외쳤다. 옳은 얘기다. 명심보감의 말처럼 스스로를 믿는 사람은 남 또한 믿어주는 법이다. 강에서 물고기를 탐하는 것보다 집에서 그물을 짜는 것이 현명하고, 들에서 이웃의 곡식을 탐하는 것보다 집에서 씨앗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롭다. 탓하기보다는 자신을 키우고, 부러워하기보다는 스스로 당당히 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가 꺾이면 세상도 나를 우습게 본다. 회피하는 삶은 언제나 도망만 친다. 세상에는 타고난 천재가 있고, 타고난 갑부도 있다. 몇 안되는 그런 사람들은 대범하게 세상의 예외쯤으로 받아주자. 그리고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당당히 고개를 들고 세상을 살아가자.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한숨 짓고, 넋두리만 늘어놓기에는 살아갈 날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다. 누가 뭐래도 당당한 삶이 아름답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