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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명절이 필요한 시간

 

 

 

 

 

다시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명절은 평소 각자의 현실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가족 친지들이 오랜 그리움의 공간인 고향에 모여 보고 싶던 사람들을 만나고 조상에게 예를 올리는 특별한 날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리가 알던 명절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다함께 모여 조상에게 예를 다하던 기존과는 달리 명절은 그저 빨간 날이 되어 국내외로 여행을 가거나 업체를 통해 차례를 대신 지내는 날이 된 것. 달라지고 있는 명절 풍속 속에서 명절의 참 의미는 퇴색되어 가고 있다.

 

 

 

명절의 깊은 뜻

 

명절마다 만나는 형제와 친척들 사이에서, 우리는 오랜 친밀감을 다시 느낀다. 나와 네가 각기 다른 곳에서 살아가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가깝고 사랑할 수 있는 사이임을 기억하게 된다. 모두 모인 공간에서는 서로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 내 문제가 네 문제가 되고, 네 기쁨이 내 기쁨이 된다.

 

뿐만 아니라, 명절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한 사회를 이루며 함께 살고 있다는 유대감은 가족과 친척간의 공감과 친밀감에서 시작된다. 특히 명 절은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한 공동체 의 구성원임을 느끼게 한다. 오랜 세월 휴식과 화해의 시간이었던 명절에 이루어지는 전통 음식, 놀이, 예식 등을 누리는 것은 그 자체로 가족과 친지를 넘어 이 전통에 속 한 모든 이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일이다.

 

공자(孔子)는 명절(제사)의 의미를 단순히 죽은 조상(귀신)을 섬기는게 아니라 (未能事人 焉能事鬼), 친족들간의 유대라는 사회적 기능으로 파악했다. 명절은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사랑과 유대가 뻗어나가 사회와 국가를 이롭게 한다는 원리 (修身齊家 治國平天下)를 내포하고 있다.

 

한 사회에서 서로 연결된 마음의 힘을 현대적 용어로는 ‘사회적 자본’이라 부른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 구성원의 연대감, 상호 신뢰, 사회적 연계망, 호혜적 규범, 협력 가능성 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사회적 자본이 강할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명절은 한 개인이나 사회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화기애애한 명절을 보낼 수 있는 이들은 개인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풍속도

 

그러나 근래에 명절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하룻밤 이상을 함께 보내며, 웃음꽃을 피우고 전통 놀이와 음식을 즐기던 명절의 풍 속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명절이면 먼 길을 달려 고향에 가지만, 그저 형식적으로 얼굴만 보고 몇 시간 되지 않아 금방 떠나곤 한다. 많은 이들은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를 불편해 하기도 하고, 그냥 집에서 쉬는 걸 더 선호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 명절 기간에는 대규모 해외여행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미리부터 해외여행을 예약하고, 연휴가 시작되기 무섭게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난다. 자신이 사는 곳이나 살던 곳에 더 이상 진정한 휴식이 없다 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명절의 풍속도는 우리 사회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현상이 되고 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강한 유대감은 사라지고, 남들로부터 분리되어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를 선호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과거와 같은 집단주의적 문화를 멀리하는 대신, 개인주의 문화를 선호하며, 서로 강하게 연계된 ‘소속의 삶’ 보다는 ‘자립의 삶’을 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강한 유대’의 집단주의 문화는 장점만큼이나 부작용 역시 심각했다. 사람들은 각각 고유한 개인으로 존중 받기 보다는, 집단주의적 역할과 불합리한 위계질서에 일방적으로 복종하고, 집단이 만들어낸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또 개인들은 각자의 삶을 존중 받기 보다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의 편견에 따라 평가 받고 규정되는 일에 굴욕과 모욕을 느껴왔다. 친척이 모인 곳에서, 자신이 선택한 싱글라이프는 시집 못간 노처녀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프리랜서는 출세 못한 백수로, 남들보다 천천히 가며 행복을 중시하는 삶은 남에게 뒤처지는 인생으로 취급 받아 왔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문화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합리한 악습을 재생산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새로운 명절 문화를 위하여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구성원 상호 간의 연대감과 상호신뢰의 회복은 긴박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이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갈 존재라고 믿기 보다는, 경쟁자나 적이라고 여겨 시기 질투하고 증오하는 현상이 이미 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웃간의 교류가 단절되고, 가족 친척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사회에서 ‘명절의 복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모든 문제 해결이 그렇듯이 단순히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명절 문화, 새로운 유대감을 만들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가족이나 친지라 할지라도, 상대방을 한 명의 개인으로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나이가 많다고 혹은 가족이라고 상대에게 무조건 가르치려 하기 보다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공감의 태도 가 필요하다.

 

명절을 맞아 우리는 사로잡혀 있는 편견으로 부터 벗어나고, 나와 남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사람들 이 모인 자리에서 일어나는 악습들, 즉 남과 나를 비교하고, 시기 질투하며, 상대에게 굴욕감을 주는 자기 과시 행위 등은 모두 ‘특정한 기준’이라는 편견으로부터 나온다. 돈, 사회적 명예, 출세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인 가족과 친지를 대할때 만큼은, 그런 속물적 기준에서 벗어나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야 한다. 그렇게 인간적인 소통과 관계가 가족과 친척에서 부터 자라난다면, 다시 우리에게 화목한 명절이 돌아오고,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더 아름답게 변해갈 것이다.


글 / 정지우(인문학 칼럼니스트)

출처 / 사보 '건강보험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