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일찍 다녀왔다. 7월 2일부터 4일까지 양평 중미산자연휴양림에서 보냈다. 그리곤 집에서 쉬며 지인들을 만날 계획이었다.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해 일정이 어그러졌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미리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내가 그랬다. 사고를 당한 다음도 중요하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내야 한다. 나의 치료기를 소개한다.




뜻하지 않게 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7월 6일(수) 오후 집 앞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다 자전거에 부딪쳤다. 피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충돌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사고를 냈다. 나는 바로 영등포병원으로 와 검사를 받고 입원했다. 목 부위가 심하게 아프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단다.





오른 쪽 팔과 다리에 찰과상도 입었다. 간단히 드레싱 치료를 받았다. 토요일까진 입원해야 할 것 같다. 휴가 절반은 병원에서 보내는 셈. 하지만 어찌하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치료를 받고 퇴원할 수밖에. 그 중학생은 매우 착했다. 자진 신고를 했다며 경찰서에서도 연락이 왔다. 녀석도 얼마나 놀랐을까.


학생의 엄마도 조금 전 병원을 다녀갔다. 예의가 바른 분이었다. 아빠와도 통화를 했는데 점잖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처럼 사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당장 오늘 저녁 바보당 모임부터 줄줄이 불참을 알렸다. 이번 일요일은 근무. 토요일 오전 중 퇴원하려고 한다. 별 이상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병원에 있으면서 다시 한 번 스티브 잡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스마트폰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무료함을 달랬을까. 시시각각 뉴스를 볼 수 있고, SNS도 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TV를 봤을 터. 내가 최대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나의 절친. 지난 번 폐렴으로 입원했을 땐 정말 아파서 페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목 부위 통증만 있지 다른 데는 아프지 않다. 그래서 마음대로 페북에 소식을 전한다. 문명의 이기가 이처럼 편리할 때도 있다.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그럼에도 많은 페친들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직접 병윈으로 찾아온 분들도 있다. 바보당 친구 4명은 어젯밤 다녀갔다. 오늘 오전엔 페친이기도 한 이정복 박사가 찾아왔다. 이 박사는 나와 고향이 같다. 우리는 충남 보령 출신. 이 박사는 법 없이도 살 친구. 나보다 한 살 많다. 올초 늦깎이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사회복지와 행정 전공. 조금 이따가 윤상원씨도 온단다. 그 친구는 내가 법조 출입을 할 때 처음 만났다. 한양대 법학과 출신. 그의 고향도 충남 논산이다. 페북을 보고 연락이 왔다. 페친들과 이처럼 소통을 하니 고마울 뿐이다.




병원에서 이틀째 밤을 보냈다. 6시간 이상 푹 잤다. 몸도 한결 가볍다. 내일 퇴원하는데 차질은 없을 것 같다. 목 부위를 다치지 않았어도 입원까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한 부위라 2~3일 경과를 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목 통증은 많이 가라앉았다.





이번에도 역시 가족의 중요성을 느꼈다. 아내와 아들이 가장 큰 걱정을 했다. 정말 이 정도인게 천만다행이다. 만약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부딪쳤다면 어찌 됐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자전거에 부딪치는 순간도 잘 기억이 안나니 말이다. 그래서 매사에 감사해야 한다. 아울러 순간순간 고마워해야 한다. 내가 늘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말 역시 돈이 들지 않는다.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면 착해진다. 고마워하고 감사해 하는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리 없다. 오늘도 고맙고 감사하다.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한다.


내일 퇴원한다.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휴가 중에 사고를 당해 입원이라니. 그러나 이 마저도 고맙게 생각한다. 병원에서도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들이 정성껏 치료를 해주었다. 목 부위 통증은 가라앉았으나 목소리가 잠겼다. 성대가 부었던지 놀라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며칠 지나면 나을 것으로 본다. 올들어 두 번 병원 신세를 졌다. 입원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 병도 마음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병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래야 치유도 된다. 결론은 하나. 어찌됐든 아프지 말자.




다시 오늘이다. 오늘을 기다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서너 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도 상쾌하다. 퇴원해서 그럴 터. 밖이 아무리 좋다한들 집만 하겠는가. 그동안 쾌유를 빌어주신 페친들께도 감사드린다. 휴가 중 사고를 당한 게 불행 중 다행이다. 근무하다 이같은 사고를 당했더라면 또 회사에 미안할 뻔 했다.





병원에서 사흘 밤 잤다. 다른 데 아픈 곳은 없다. 목소리만 제대로 돌아오면 된다. 목이 많이 잠겨 상대방이 내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정도다. 며칠 지나면 회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를 다치게 한 학생 부모님께 드리려고 책도 한 권 준비했다. 그 분들도 아들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내 놀랐을 것이다. 이것도 인연이다. 3박4일간의 입원을 마감한다.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린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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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2학년인 k군이 상담실을 찾았다. 부모와의 갈등이 주 문제였다. 몇 차례의 상담이 오간 후에 나
  는 k군에게 부모님께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서슴없이 '기다림'이라고 대답하였
  다.  그가 말하는 기다림의 의미가 궁금했다. 그는  "  저에게 있어 기다림이란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을 의미해요.  물론 아직은 부족해 보이고 잘못될까 염려도 되겠지요.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 선택도
  하고 시행착오도 겪어보고 싶어요. 설사 잘못 되더라도 믿고 기다려준다면 제 힘으로 일어나서 나아갈
  자신이 있어요.  "  라고 대답했다. 그의 내면에 스스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
  다.

 

 

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 쌩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중에서 -

 

 

기다림은 힘이다


기다림은 약한 것이 아니다. 씨앗이 흙을 뚫고 나올 때까지,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까지,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생명은 늘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그 기다림 속에서 생명은 힘을 만들어낸다. 나비가 되기 위해 스스로 실을 감는 애벌레를 보라. 번데기가 되어 매달린 그 시간은 멈춰진 시간이 아니다. 비상을 위해 날개를 준비하는 내적 성장의 시간인 것이다. 그렇기에 기다림은 힘이다.

일본 전국시대 3대 위인으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들 수 있다. 이 사람들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만일 세 사람에게 울지 않은 새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본다면 다혈질인 오다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죽인다’ 라고 할 것이고, 교활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르고 달래서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 라고 할 것이며,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라고 대답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즉, 전국시대를 통일한 이에야스의 기다림이야말로 가장 강한 힘임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기다림의 바탕에 믿음과 준비의 받침돌이 놓여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다림의 빈곤

기다림은 고통이 아니다. 능동적인 기다림은 환희이고 가슴떨림이다. 가치 있는 모든 것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기다림이 들어있지 않은 것은 가치 또한 지니지 못한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첫 키스, 사랑하는 아이의 탄생 등 인생 최고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순간에는 늘 손꼽아 기다리는 가슴떨림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점점 기다림을 잃어가고 있다.

 
수박을 먹기 위해 여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듯이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기다리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퇴화되어 기다릴 줄 모르게 되었다. 조금만 기다려도 짜증이 새 나온다. 왠지 모르게 기다림이란 무능력과 손해를 의미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디 그 뿐이랴. 우리는 동식물들이 제 속도로 자라나는 것 또한 기다리지 않는다. 성장호르몬, 유전자 조작, 항생제 등으로 급성장시켜 우리의 식탁 위에 서둘러 오르게한다.


기다림이 부족한 사회에서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씨앗의 속도 이상을 강요당한 성장은 거짓이다. 성장은 능동형이고 자동사이기 때문이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협력을 배우기 전에 경쟁을 배우고 인성의 발달보다 지식의 습득을 강요당하는 교육에서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설사 그 아이들이 빨리 어른의 말을 사용하고, 빨리 어른의 몸이 되고, 빨리 어른의 행동을 흉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성장이 아니다.

그것
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의 시련 앞에 맥없이 무너져 버린다. 원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성인이라 할 수 없다. 성인이란 내일의 기쁨을 위해 기꺼이 오늘의 불편함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한 기다림


그러나, 모든 기다림이 값진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을 위한 기다림 즉, 능동적인 기다림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첫째로 자신의 전(全) 존재에 대한 믿음을 지녀야 한다.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체념할 뿐, 기다릴 수 없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 있어도 새벽이 멀지 않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잠들지 않을 수 있다.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끝나지 않고 더 나은 존재로 날아갈 것이라는 애벌레의 꿈을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출혈뿐인 경쟁의 대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당신 안에는 미처 발휘되지 못한 숨은 능력이 있음을 잊지 말라.
 

 

둘째, 성장을 위한 기다림이 되기 위해서는 목적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마치 감나무 아래에 입을 벌리고 누운 사람처럼 무작정 기다린다면 그것은 성장에 해가 될 뿐이다. 여기에서 장기투자의 달인인 ‘워렌 버핏’ 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자신의 투자기법을 야구의 타격 기술에 비유한다.

“  일류 야구 선수는 아무 볼이나 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구질의 공이 들어 올 때까지 꾸준히 기다립니다. 그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타자는 좋은 공과 나쁜 공을 구별할 줄 알면서도 쳐야 된다는 유혹을 버리지 못합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

삶 역시 마찬가지이다. 타자가 포볼을 무작정 기다려서는 안 되듯이, 우리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구질과 코스로 공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 코스의 공이 들어오면 힘껏 휘둘러야 한다.


셋째, 타인의 성장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다른 사람의 성장을 도우면 자신의 성장은 더욱 배가가 된다. 여기에서 돕는다는 말의 뜻이 중요하다. 그것은 그 사람 역시 나와 같은 성장본능이 있음을 믿는 것과 그 사람만의 성장방식과 속도가 있음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아가 세 살짜리 어린 아이의 숟가락질처럼 어설프다 하더라도 스스로 뻗어나가도록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을 말 한다.

문요한/ 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 ·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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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네 삶이 아
  름다운 것은 격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막처럼 삭막한 삶에서 맑고 시원한 우물물이 되
  어주는 격려의 힘. 커다란 용기와 의욕이 솟아나도록 북돋워주는 격려는 실상 거창한 것이 아니다. 때로
  따뜻한 마음 한 조각, 위안의 말 한 마디, 아름다운 음악 한 소절이 지친 마음에 꽃을 피우고 쓰러진 영혼
  에 별을 밝히기도 한다.


긍정의 마음, 예찬하는 능력을 갖자


“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앞에서 완전히 손들어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 미셀투르니에저<예찬> 중에서

   

흔히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를 말할 때 등장하는 것이 반잔의 물이다. 물이 ‘반이나’ 남은 것을 기뻐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반밖에’ 남지 않았다며 낙담하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대상에게서 누구는 희망을, 누구는 절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격려를 하거나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긍정적인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다.

 

 

나아가 대상을 예찬할 줄 아는 능력을 간직한 사람이다. 그들의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능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때문에’ 의 수동적 논리보다 ‘불구하고’ 의 능동적 논리로 힘을 준다. 검은 먹구름 뒤에 반짝이는 은빛 햇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만이 격려의 씨앗을 틔우는 토양을 일굴수 있다.

 

 


절망에 빠져도 자기연민의 늪에 빠지지 말자

 

월남전에서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고 단지 두 손만으로 마라톤에 도전했던 보브 위랜드. 남들은 두세 시간 걸리는 42.195km의 마라톤 코스를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기어서 완주한 그는 인생이라는 마라톤의 진정한 승자였다. 그는 1982년 4,454km의 북미대륙을 단지 두 팔에 의존에 3년 8개월 6일만에 완주하기도 했다.


필자가 연초에 만난 목공예기능인 김민재 씨는 보브 위랜드의 후예였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과 함께 견실한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스무 살 무렵 꿈에 부풀어 첫직장으로 출근하던 날, 출근버스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되었다. 그를 격려한 것은 자기연민의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산재환자들이었다.

 

“ 산재치료를 받기 위해 산재환자를 위한 전문병원에 갔던 날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장애를 간직한 사람들답지 않게 휠체어를 끌면서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 특히 머리카락을 화려하게 염색하고 개성을 표현하면서 멋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그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났어요. ”

 

고통스런 산재의 후유증이 엄습해도 민재 씨는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할 시간에 그는 희망을 찾았다. 새롭게 목공예기술을 익힌 민재 씨는 국제기능인대회에 참가하는 등 숨겨진 재능을 개발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저 함께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 철학에 따르면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자 있는 것은 행복을 얻는 방법 중에서 으뜸가는 것에 속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로를 바라보아도 되고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힘들 때 그저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친구에게서 위안을 받은 적이 있는가. 내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묵묵히 마음으로 안아주고 이해해주는 친구의 존재는 그 자체가 위안이요 격려이다.

 

 


격려가 필요한 그를 위해 마음을 담은 편지, 시집 한 권, 또는 우동 한 그릇을 준비하자


전화는 편리하지만 편지는 여운의 아름다움, 행간의 미학이 있다. 전화는 허공으로 산산히 흩어지지만 편지는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며 힘을 얻을 수 있다. 주위에 격려가 필요한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내자. 이때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이 미처 모르고 있던 그 사람의 장점과 잠재력을 알려주는 것이며 따뜻한 충고도 곁들이면 좋겠다.

 

영혼을 치유하는 시집 한 권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시집 첫장에 푸슈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를 적어 격려의 마음을 전해보자.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


당신의 시집을 선물 받은 그는 천천히 시를 읽어가는 동안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알고 힘을 낼 것이다. 가난한 모자를 위해 수년동안 넉넉한 우동을 준비했던 우동가게 주인이 되어보자. 뜨끈한 국물에 따뜻한 국수를 말아 함께 나누면서 훈훈한 대화를 나누다보면 얼어붙었던 마음자락도 펴지고 시렸던 가슴도 따끈한 아랫목처럼 데워질 터이다.

 


대자연으로 떠나라


소란스런 관광이 아닌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자. 여행지는 자연의 순리를 배울 수 있는 대자연이 좋겠다. 높은 산을 오르다보면 나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 하심(下心)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맑은 강과 푸른 바다는 고여 있지 않고 쉼 없이 움직이는 삶의 지혜를 알려줄 것이다.

 

만물을 품는 자연을 만남으로써 절망을 안겨주는 지금의 고통은 삶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하나의 빗방울에 불과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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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동안 비싼 값을 치르면서 나는 수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높은 산과 대양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내 집 문 앞 잔디에 맺혀 있는 반짝이는 이슬방울이었다.

- 인도의 시인 R. 타고르 -

 

J씨는 미혼의 직장남성입니다. 그는 무엇이든 쉽게 흥미를 잃어 꾸준히 무언가를 하지 못합니다. 취미생활도 쉽게 싫증이 나서 이것저것 바꾸고, 직장도별다른 문제가 없는데 재미가 없다며 그만두기 일쑤입니다. 인간관계는 어떨까요? 역시 쉽게 싫증을 내고 진지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호기심이 많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의 삶은 깊은 맛이 없고, 피상적일 따름입니다.

 

 

삶은 반복과 일탈의 연속

 

일상은 늘 익숙함과 반복으로 가득합니다. 그 익숙함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는 대신 무료함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탈을 꿈꾸고 새로운 자극을 추구합니다. 여행을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신제품을 사고,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익숙함에 빠뜨리지 않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익숙함과 설렘 그리고 반복과 일탈은 낮과 밤처럼 우리 삶에 반복되는 리듬으로 내재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반복기피증 VS 일탈기피증

 

그러나 반복과 일탈의 양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쪽은 일체의 일탈 없이 늘 반복적인 일상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농경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을 할 뿐,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일탈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일체의 익숙함과 무료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일탈을 시도합니다. 누군가는 아침에 눈뜬 곳에서 다시 잠들고 싶지 않다고 표현할 만큼 강박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한마디로 반복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더 깊이’ 를 추구해야 할 때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집단이 약화되며, 자극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자극이나 강한 자극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반복을 기피하고 일상을 무시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무료함의 해결을 새로움의 추구라는 한 방향으로 해소하려 든다면 우리는 결국 자극과 쾌락의 노예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무료함을 견뎌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그 해법은 바로‘더 깊이’입니다. 경험을 더 깊이 체험함으로써 일상과 반복에서 새로움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친숙한 대상을 눈을 좀 더 크게 떠서 새롭게 바라보고, 몸의 감각을 일깨워 더 깊이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감각이 열리고, 더 깊이 체험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진부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을 음미하라

 

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 행복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고통을 담보로 기약 없는 미래의 행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 행복 하려면 우리는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일상을 즐기고 그 작은 즐거움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극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일상을 음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미국 로욜라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브라이언트(F. Bryant)는 긍정적 경험을 충분히 음미하는 노력을 ‘향유하기savoring’ 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향유경험을 우선 네 가지로 구분해서 제시합니다.

먼저 ‘감사하기’ 입니다.  

자신에게긍정적 경험을 제공해 준 대상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경탄하기’ 입니다.

예를 들면 석양을 보며 이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새롭고 놀라운 것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자축하기’ 입니다.

긍정적 경험을 느끼는 자신에게 따뜻한 축하와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심취하기’ 입니다.

긍정적 경험에 수반되는 감각적 변화와 정서적 움직임을 다각적으로 체험하고 만끽함으로써 그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음미하기 훈련을 위해

 

그럼, 삶을 향유하고 긍정적 경험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삶을 음미하려면 지금-여기 현재의 순간에 머물러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느낌에만 치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감각을 열고 천천히 그리고 더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걷고 있다면 걷는 행위에, 음악을 듣고 있다면 음악에, 음식을 먹고 있다면 음식에,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상대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음미하는 시간만큼은 멈춰서거나 느려져야 합니다.

 

둘째, 긍정적 경험을 기록하고, 기록물을 음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긍정적 경험을 글로 쓰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두고, 음성으로 녹음하여 저장합니다. 그리고 한 번씩 이를 재생시켜 소가 여물을 되씹는 것처럼 그 경험들을 다시금 음미해보는 것입니다.

 

셋째, 긍정적 경험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음미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인정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경험에 충분히 집중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더 깊이 음미하려면 비슷한 취향을 가진 누군가에게 자신의 음미경험을 들려주고, 그 사람의 음미경험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음미경험이 덧붙여지면 경험은 더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_글..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정신경영 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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