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정말 중요하다. 가정의 구성원이다. 더 소중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가족 돌봄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매일 봐서 그럴 지도 모른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가족을 최우선해야 한다. 가족을 챙긴다고 팔불출로 여기지 않는다.

 

 

 

 

나도 처음부터 가족의 중요성을 느낀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땐 일에 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까. 그러나 나이들면서 그것을 깨우치게 됐다. 몇년 전부터 골프 나가는 것도 확 줄였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의미 있었다. 물론 골프는 재미 있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가족과 골프 중 택일하라면 가족을 택하겠다. 우리 가족은 모두 네 명. 장모님, 우리 부부, 아들이 전부다. 요즘은 장모님이 외출을 못 하신다. 지팡이 두 개에 의존해 겨우 걸을 정도다. 그 전에는 항상 넷이 같이 움직였다. 다리가 불편한 것 말고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아들도 외할머니, 엄마 아빠를 잘 챙긴다. 아주 자상한 녀석이다. 딸을 뺨칠 정도. 아내도 마찬가지. 넉넉하진 못해도 집안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 가족들이 곁에 있어 늘 고맙다. 직계 가족 뿐만 아니라 형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출가하면 내 식구 챙기느라 소홀하기 쉽다.

 

근 형제들과 아주 의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우리 5남매가 부부동반으로 서울에서 모임을 가진 것. 생전 처음이다. 나의 9번째 에세이집 '오풍연처럼' 출간 기념도 겸한 자리였다. 세종에서 형님, 대전에서 남동생이 올라왔다. 나와 누나, 여동생은 서울, 부천에 각각 산다. 진작 이같은 모임을 가지지 않았던 게 조금 후회스러웠다. 형제들이 그렇게 좋아했다.

 

나와 누나, 여동생이 대전에 제사지내러 종종 내려갔지만 대전 형제들의 서울나들이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형수님과 제수씨가 즐거워 했다. 12시 정각 성북동 누브티스에 모두 모였다. 승용차는 나와 여동생만 가지고 갔다. 차량 두 대로 하루 종일 같이 움직였다.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님이 멋진 점심을 내 놓으셨다. 풍'스 패밀리 메뉴까지 개발했던 것. 모두 맛있게 먹었다.

 

 

 

 

점심 식사 후 누브티스 바로 이웃에 있는 길상사에 들렀다. 서울에서 기를 받을 수 있는 3대 명당 중 한 곳 이란다. 이어 교보문고로 가서 누브티스의 '오풍연 쇼 케이스'도 구경했다. 그리고 아내와 형수님, 제수씨가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 5남매만 경복궁에 들렀다. 나도 20여년만에 다시 가봤던 것. 사람이 정말 많았다. 경회루와 근정전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저녁은 여의도 산삼골. 오리훈제와 전골을 정말 맛있게 한다. 사장님이 안 계셨지만 직원들을 시켜 복분자 술도 내왔다. 형님과 남동생은 거나하게 마시고 내려갔다. 음력 11월 17일 어머니 제사 때 대전에서 다시 모인다. 7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많이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나 역시 뿌듯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다시 한 번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첫 제사는 2010년 1월 1일이었다. 2008년 12월 14일 돌아가셨는데 윤달이 끼어 새해 첫날 모두 모였다. 엄숙한 가운데 제가 시작됐다. 맏상주였던 형님이 먼저 술을 부어 올렸다. 두 번째 잔은 차남인 내가 가득 채웠다. 이후 식구들이 돌아가며 참배를 했다.

 

한 분이 어머님을 ‘작은 거인’에 비유하며 기도를 드렸다. 베풂의 삶을 실천하셨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어머님은 그랬다. 우리 다섯 자식들에게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친․인척 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집안의 중심에 섰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가족 대소사를 모두 챙기셨다.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녀석이 내 대신 할머니 임종을 했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6일 군에 입대했다. 놈이 마침 외박을 나와 첫 제사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가슴이 뿌듯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놈이다. KTX로 상경하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작은 거인이셨다.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잠시 후. “명심하겠습니다.” 녀석이 더욱 늠름해 보인다.

 

이제 녀석도 28살. 머지않아 장가를 갈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고 한다. 나 자신부터 가족을 챙기고, 효도를 해야 하는 이유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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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발하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헝가리의 철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인 게오르그루카치(1885~1971)의 '소설의 이론'이란 책의 서문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특히 여전히 빛을 발하는 첫 문장은 여태껏 많은 문학도의 마음을 흔들었다. 온몸을 부르르 떨게 했다. 지금도 이 글의 마법에 이끌려 문학세계로 빠졌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다. 

 

 

 

 

 

 

옆길로 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루카치의 말처럼, 아니 '별 헤는 밤'의 윤동주의 마음으로 가끔 머리를 들어 밤하늘에서 별을 세어보는 게 어떨까? 계절은 상관하지 말자. 아무 때나, 아무곳에서나, 시간 날 때마다 별들의 고향을 찾아가보자. 그래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노래해보자. 뭔 말인가. 딴말이 아니다. 컴퓨터와 TV, 스마트폰의 번쩍이는 스크린에 매일 혹사당하는 눈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다. 온라인에 항상 접속해 있는 현대인은 정말 자신의 눈을 너무 힘들게 하고 있다. 시력이 나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정도다. 

 

 

 

  

 

 

시각의 쇠퇴 속도를 늦추려면 시각을 단련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 있다. 가까운 곳 뿐 아니라 멀리 있는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안구 속에 있는 모양체라는 근육의 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모양체의 힘이 약해지면, 즉 탄력을 잃으면 급격한 노화로 노안이 될 수 있다. 이를 막는데 효과적인 시각 운동의 하나가 산처럼 멀리 있는 곳의 경치를 바라보는 것이다. 특히 아득히 먼 거리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보는 것은 모양체를 단련하는데 더없이 좋다. 게다가 별을 관찰하며 사색에 잠기다 보면, 마음마저 차분해지면서 정신적, 정서적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 일거양득이 따로 없다.

 

 

 

 

'시각 훈련'이란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저 감탄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별을 찾아봐야 하는 까닭이다. 별빛은 아득한 시간을 가로질러 지구에 도달한다. 이를테면 계절에 관계없이 늘 가장 북쪽에 자리해 오랜 옛날부터 여행자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 북극성은 지구에서 약 400광년 떨어져 있다. 400광년은 400년에 걸쳐 빛이 도달하는 거리를 말한다. 즉 우리가 보는 북극성의 빛은 400년 전의 빛이라는 말이다. 만약 100만 광년의 거리에 있는 별이라면 태고적 원시시대의 빛을 보는 셈이다.

 
글 / 연합뉴스기자 서한기 

<참고서적 : '불편해야 건강하다' (아오키 아키라 지음, 이민아 옮김. 바다출판사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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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헤이즐’은 운명과 죽음, 사랑에 관한 영화다. 암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마주한 10대 청춘들. 영화는 그들의 ‘운명 대처법’을 애뜻하면서도 따스하게 그려낸다. 여주인공이 헤이즐이니 ‘안녕, 헤이즐’은 이미 슬픈 이별을 예고한다. 하지만 그 가혹한 운명을 영화는 용기있고 당당하고 솔직하게, 요즘말로 ‘러블리’하게 그려낸다. 죽음에서 삶을 배우고, 절망에서 사랑을 깨닫게 하는 영화다. 그래도 설정이 ‘운명적’이니 영화 내내 마음은 아리다.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가 원작이다.

 

 

때때로 뒤엉키는 운명들

 

세상에 나옴은 순서가 있지만, 세상에서 들어감은 무작위다. 암이란 운명을 마주한 삶은 그 순서가 더 뒤죽박죽이다. 한쪽 다리가 의족인 헤이즐의 남친 어거스터스는 짧은 삶 ‘유한(有限)의 길이’가 헤이즐보다는 길어보인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추도하는 사람은 뒤에 남겨진 헤이즐이다. 운명은 때로 이처럼 순서가 뒤엉킨다.

 

“넌 나의 유한한 삶에 영원함을 줬어(You gave me a forever within the limited days).’ 헤이즐의 추도사는 삶과 죽음, 운명으로 관객의 생각을 끌어간다. 화두는 ‘유한 속의 무한’이다. 인간은 모두 ‘유한의 길’을 걷는다. 그 길이 짧을지, 길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분명한 건 누구나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유한엔 무한이 존재한다. 마치 0과 1사이에 무수한 무한의 숫자가 존재하듯. 0과 2, 0과 100으로 유한이 길어지면 그 안의 무한도 커진다. 허나 그것 역시 유한속의 무한이다. 짧음이 예언된 헤이즐의 유한을 무한으로 채워준 건 사랑이다. 애뜻한 설정의 영화가 나름 힐링이 되는 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든 감독의 센스 덕이다. 하기야 영화 얘기니, 감독이 상상력을 동원하고 배우가 연기로 받쳐주면 아름답게 승화하지 못할 가혹할 운명이 어디 있겠는가. 

 

 

가혹한 운명을 바꾼 당당함

 

가을의 중턱을 넘어선 10월의 어느 날. 한 음악회에서 ‘소울 플레이어(Soul Player)’ 이남현 씨를 마주했다. 그는 어깨 아래로 신경이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그의 운명은 타고난 게 아니라, 중간에 비틀렸다. 대학시절 목뼈가 무러지는 사고가 운명을 틀었다. 그는 가혹하게 돌변한 운명에 무릎꿇지 않았다. 목소리는 물론 재채기조차 힘들었던 그가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순간, 무수한 생각이 교차한다. 평범한 운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비운의 운명’. 그 마음은 어떨까. 자신의 저서 <나는 지금이 좋다>고 외치기까지 얼마나 큰 슬픔이 가슴을 찔렀을까. 아니, 그 외침에 아직도 슬픔이, 비애가 매달려 있는 건 아닐까. 다행히 그의 얼굴에 퍼진 평온이 은근히 위로를 준다. 고통·비애·좌절을 모두 승화한 듯한 그 평온에서 참다운 극기가 읽혀진다. 단순히 비틀린 운명에의 순응이 아닌, 가혹한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당차게 뒤바꾼 당당함. 그 당당함이 수시로 쳐져가는 어깨에 힘을 얹혀준다.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

 

인생은 영화와 다르다. 현실 속 운명은 때로 영화보다 훨씬 가혹하다. 운명이란 장벽이 너무 높고 단단해 그 앞에서 속수무책인 삶도 많다. 운명이란 게 좀 얄밉다. 운명에 기가 꺾이면 그 장벽은 더 높고, 더 두터워 진다. 그러니 운명 대처 제 1의 법칙은 일단 당당히 어깨부터 펴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상처 입을 각오로 사랑을 하면 상처는 없고 사랑만 깊어진다’고 했다. 그의 사랑은 ‘안녕, 헤이즐’처럼 청춘의 사랑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운명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에게 새로운 길을 터준다. 그러니 운명의 개척자는 살아 있고, 살아갈 힘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삶이 짧을런지 길런지, 포장도로일지 비포장도로일지 그 길이와 형상은 예단할 수 없다. 하지만 삶이란 그 유한의 여정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각자의 몫이다. 운명은 때로 무심히 던져지지만 선택은 언제나 내가 하는 것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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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힘들 때, 힘든 마음을 달래려 가까운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어땠는가?

        당신이 원하는 말을 해주거나 마음을 전달해 주었는가, 아니면 ‘다시는 말하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이 들었는가?

        당신이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가? 혹시 그 말이 “괜찮아”는 아니었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교와 경쟁

 

현대 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경쟁적이다.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인 일반 기업이야 말할 것도 없고, 수익보다는 공공성이 중요한 곳에서도 경쟁과 비교가 만연하다. 학교에서는 시험 때마다 반평균으로, 입시 때마다 현수막에 걸만한 대학에 보내기 위해 교사들을, 학생들을 경쟁시킨다. 요즘 대학은 교수들에게 학생 유치를, 대형 병원은 의사들에게 환자 유치를 위해 경쟁시킨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결과라고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실적 중심으로 비교를 하는 사고방식이 너무나 만연해 비교를 해서는 안 될 상황에서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에서 그렇다. 부모들의 자식 비교는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친구 자식과 비교하면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서 비교 당하면서 큰 자식이 어른이 되면 상황은 역전된다. 자식들은 친구 부모와 자신의 부모를 비교한다.

 

 

 

우리 모두를 병들게 하는 비교

 

사람과 사람의 비교와 평가는 모두를 병들게 한다. 마음의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결 같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친구나 형제자매는 물론 심지어 부모나 자식과 비교당하기도 한다. 타인과 비교하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또 경쟁의식과 목표의식을 심어주어 당장에는 힘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에서 진 사람은 좌절감에 괴롭고, 이긴 사람도 다음 경쟁에서는 질 까봐 고통스럽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야 어쩔 수 없다하지만 가정에서는, 친구끼리는 비교할 필요 없지 않은가?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것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삶이 왜곡되고 고통을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조건은 바로 경쟁에서 이기는 것, 즉 “남들보다 잘 하면”이다. 부모가 자녀를, 친구가 친구, 연인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남들보다는 뛰어나야 인정해주겠다는 분위기가 우리 모두를 고통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 "괜찮아'

 

사람들은 세상이 전쟁터라고 말한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는 밀림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살벌하다 해도 우리 모두는 쉴 곳이 필요하다. 마음을 편히 놓을 곳이 필요하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비교당하면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해도 사랑하는 가족끼리는, 친구끼리는, 연인끼리는 위로의 말을 건네 보자. “괜찮아”라고.

 

칼 로저스는 ‘조건’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존중’이라고 말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말이다. 아이들이 속상해 할 때 부모가 아이를 안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면서 “괜찮아”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금세 진정이 된다. 친구에게 장난감을 빼앗겼거나, 형에게 한 대 얻어맞았더라도 부모의 “괜찮아” 한 마디면 아이들은 정말 괜찮아진다. 얼마나 놀라운 치유의 말인가! 새해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면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심리학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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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인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지 상관치 말고 내가 변덕 부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갈등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라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고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해 찾아오는 고민들은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스트레스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확실한 방책은 무엇일까? 30대 중반의 한 여인이 말했다.

 

“저는 남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무슨 일이죠?”

“저 몰래 바람을 피웠거든요.”

“남편에게 사과를 받지 않았나요?”

“사과를 했지만, 이미 믿음이 깨졌는데 사과를 받는다고 뭐가 해결되겠어요.”

“그럼 어떻게 하실 거죠?”

“어떻게 하긴요. 헤어질 수밖에 없죠.”

“헤어지면 다 해결될까요?”

“이렇게 고통 받지는 않을 것 같아요.”

“참 힘겨운 일이겠지만, 이참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참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의리가 뭔지 깊이 헤아려 볼 수는 없을까요?”

 

우리들은 내 배우자나 내 연인이나 이외의 이성을 만나는 것을 결코 쉽게 용납지 않는다. 이런 일이 생기면 내 마음에는 질투심이 폭발한다. 질투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가까운 사람이 나 외에 다른 사람과 행복한 것을 강하게 부정하는 심리다.

 

본래 질투심은 내 생존의 기반이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투심에 잘못 휩싸이면 폭언과 폭력으로 번지고, 그로 인해 범죄가 발생하면서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생존 기반마저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질투심은 실제로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믿음과 의리, 그리고 사랑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30대 후반의 두 사람은 각각 이혼의 과정을 겪었다. 각자에게 아이들이 있었고 그러한 경험들이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연인관계로 발전해 재혼을 하였다. 그러나 재혼한 다음날부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남편이 먼저 말했다.

 

“집사람이 너무 자기 욕심을 차리는 것 같아요. 제 아이들도 같이 챙겨야 하는 건데, 차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예민해져요. 이래서야 내가 어떻게 아내와 살 수 있겠어요.”

 

그러나 아내가 말했다.

 

“남편은 결혼하는 그날부터 모든 게 변했어요.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하더니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군림하려고 해요. 그리고 항상 전처와 비교하는 거예요.”

 

한 쪽에서는 이해를 못해준다고 하며, 또 다른 쪽에서는 군림한다며 맞서고 있다.

 

 

 

내 마음의 중심잡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다름아닌 내 마음에 변덕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 사랑이 약해졌고 상대에 대한 믿음과 의리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묵묵히 내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인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지 상관치 말고 내가 변덕 부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

 

30대 중반의 한 직장 남성이 말했다.

 

“제 위 직장 상사가 저만 보면 잡아먹지 못해 난리예요. 근거 없이 비방하고 욕설까지 해대는데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럴 수도 없고 심히 괴로워요.”

 

나는 그분에게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접인장(接人章)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만일 나에게 진실로 비방받을 만한 허물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꾸짖어 마음속으로 시비를 가려 잘못을 고쳐야 한다.

 

만일 나의 허물이 매우 작은데도 그가 주워 모으고 덧붙였다면 그의 말은 비록 지나친 것이나 내게 실상 비방받을 근거가 있었으니, 역시 전의 잘못을 매섭게 끊어 털끝만큼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만일 내게 본디 허물이 없는데 헛된 말을 꾸몄다면 그는 망령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망령된 사람과 무슨 거짓과 참을 따지겠는가. 또한 그런 헛된 비방은 마치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구름이 허공을 지난 것과 같다.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렇게 처신하여 비방이 생겼을 때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써 노력할 것이니 이런 것들은 모두 나에게 유익한 일이다. 만일 그것을 듣고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시끄러움도 마다않고 기필코 자기가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려 하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지고 비방은 더욱 늘어난다.’

 

 

 

비방과 비판은 다르다

 

비방은 자기의 감정을 실어 사실 이상을 왜곡하는 것이요, 비판은 자기의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직시하여 마땅한 바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어서 시비(是非)를 논하기 위한 비판은 필요하더라도 사사로운 감정을 내세워 남을 비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살다보면 남들로부터 수많은 오해와 비방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일일이 여기에 마음을 쓰며 불필요하게 반응한단 말인가. 비록 남이 내게 건전한 비판이 아닌 비방을 할지라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위 율곡 선생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남의 말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와 같은 자세에 대해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편(繼善篇)에는 다음처럼 말했다.

 

‘내게 선하게 대하는 이에게 나는 역시 선하게 대하고, 내게 악하게 대하는 이에게도 나는 또한 선하게 대하라.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남도 내게 악하게 대할 수 없다.’


어른이 되어도 어른 구실을 못하면 어른이 아니다. 대인관계가 어려운 이유가 상대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하면 그는 어른이 아니다. 더 이상 상대의 과실을 묻지 않아야 어른이다. 상대의 잘못으로 내 인생이 망가진다면, 상대에게 내 인생의 모두를 의존한 내 잘못은 없는 것일까? 언제까지나 배우자의 일탈과 허물, 동료의 비방과 오해 따위에 영향을 받으며 내 삶을 퇴보의 고랑에 처넣을 것인가.
내 삶을 그렇게 허비하기에는 청춘이 딱하지 않은가. 내 삶을 그렇게 소모하기에는 세월이 아깝지 않은가.

 

문제의 본질은 남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음이요, 내가 믿음이 없음이요, 내가 의리를 지켜내지 못하는 거다. 또 이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 마음을 다스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수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 참된 믿음과 사랑, 진실한 의리는 결코 깨지지 않는다. 깨진다면 그것은 자기만의 망상이 만들어낸 허상의 믿음이요, 가짜 사랑이요, 거짓 의리일 뿐이다. 대개 의리를 따지면 실속을 잃기 쉽고, 실속을 얻으려면 의리를 잃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반드시 의리를 지켜내야 지속적으로 인간관계가 선하게 유지되면서 수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러한 기회를 발판 삼아 내 삶이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중·장기적으로 실속이 뒤따른다.

 

내가 확고하게 사랑과 믿음과 의리를 지켜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내 인생의 성공과 실속을 좌우하는 셈이다. 나를 돌아보자. 내 나이가 성인이 되었건만, 아직도 남과 환경 탓을 하면서 자기 인생의 책임을 회피하는 유아기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그러한 삶을 졸업하자. 아름답고 실속 있는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글 / 황웅근 인의예지 심성계발원 대표.흰구름한의원 원장

                                                                                                                                      출처 / 사보 '건강보험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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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 이후 부부 사이는 이후의 삶의 질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서로 마주 하고 살아야하는 시간만이 오롯이 남은

       만큼 남편과 아내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닌

       만큼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

 

    

            

 

바깥일에서 물러난 남편들이 집에서 몇 끼를 먹느냐를 가지고 만들어낸 영식(零食)님, 일식(一食)씨, 이식(二食)군, 삼식(三食)이 같은 농담도 이젠 옛말같이 들립니다. 만두를 잔뜩 빚어 냉동실에 넣어 두거나 곰국을 한 솥 가득 끓여 놓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아내들 이야기 역시 하도 많이 들어 시큰둥할 정도입니다. 물론 당사자인 남편들에게는 여전히 난감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어도 어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오늘도 묵묵히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남편과 아내의 처지가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고 해도, 중년 이후의 아내들이 쏟아내는 남편에 대한 불평불만은 오랜 세월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마누라 나이 든 건 생각하지도 않고 아직도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귀찮고 성가시고 힘들어요…. 아이들 다 크고 이제 드디어 자유구나 했더니 남편이 퇴직하고 들어앉았어요. 그동안 고생한 건 알지만 나도 좀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요…. 자기만 바깥에서 힘든가? 위로 부모님 챙기고 아래로 아이들 신경 쓰느라 나도 힘들다고요…. 아직도 바깥에만 나간다고 하면 못마땅해하고 잔소리를 해요. 내가 애도 아니고, 가만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부부가 마주보고 지내야 하는 시기

 

자녀들이 다 집을 떠나고 부부만 남게 되는 시기를 ‘빈 둥지기(empty nest period)’라고 합니다. 자식들 다 떠난 둥지에서 부부 둘이 마주 보고 지내야 하는데, 사이가 나쁘거나 서로 소 닭 보듯 한다면 인생의 후반부가 얼마나 괴로울까요. 황혼이혼을 계획하고 있다면 모를까, 배우자와 헤어지지 않고 같이 늙어가고 싶다면 미리 미리 대책을 세워야겠지요.

 

우리 속담에 ‘열두 효자 악처만 못하다’, ‘이 복 저 복 해도 처복이 제일이다’, ‘이 방 저 방 해도 서방이 제일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중년 이후의 부부관계를 잘 설계해서 ‘살아서는 함께 늙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에 묻힌다’는 ‘해로동혈(偕老同穴)’, 즉 생사를 같이 하는 부부 간의 사랑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요?

 

 

첫째, 대화는 부부관계의 첫걸음!

원래부터 말이 안 통했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할 말도 없다면서 말을 안 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입을 닫게 됩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 수도 없고 내 마음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입은 밥만 먹으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말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먼저인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둘째, 서로의 취향 존중하기!

젊었을 때는 남편이나 아내 어느 한쪽의 취향에 맞추거나 무조건 따랐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취향을 상대방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자기 취향과 생각만 무조건 내세우는 남편이나 아내가 있는데, 상대방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우선 취향과 의사부터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활동은 따로 또 같이!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예를 들어, 취미나 여가활동을 부부가 같이 할 수도 있지만 선호하는 활동이 다르면 따로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질병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필요에 따라 함께 혹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넷째, 집안일 나눠하기!

밥하기, 상차리기, 설거지, 세탁기 돌리기, 빨래 널고 개키기, 청소, 쓰레기 버리기, 장보기 등 집안일은 작아 보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일들입니다. 가정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의 책임임을 명심하면 부부 양쪽이 모두 즐거워집니다. 집안일 나눠하기는 아내가 먼저 떠날 경우 뒤에 남게 될 남편의 홀로서기를 위한 훌륭한 연습이 되기도 합니다.

 

 

다섯째,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부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쩜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인생길을 같이 걸어온 동지를 향한 감사와 애틋한 마음은 서로를 위한 따뜻한 울타리이며 힘입니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가엾게 여기며 애틋한 마음으로 품어준다면 나이 들어 겪게 되는 허무함과 외로움에도 명약이 됩니다.

 

 

여섯째, 부부 사랑에도 공짜는 없다!

좋지 않았던 부부 사이가 나이 들었다고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는 법은 없습니다. 먹고 사느라고, 아이들 기르느라고 소진된 사랑의 에너지를 보충해야 합니다. 공짜로는 어림도 없고 다시 한 번 관심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한 노력, 즉 감정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글 /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사회복지사

                                                                                                                                    출처 / 사보 '건강보험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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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도 저는 바쁜 직장업무를 끝내고 늦은 귀가를 했습니다.

 제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 시작한 객지생활도 벌써 여러 해를 거쳐서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이력이 날만도 했었지만, 혼자 대문을 따고 들어오는 마음은 언제나 썰렁함 그 자체였습니다.  조용히 라디오를 켜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아! 네... 전화가 잘못 걸려 왔네요.”

 피곤한 저는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고 씻을 준비를 하는데 다시금 전화벨이 울리는 것입니다.

  

 “여보세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금 전에 잘못 수신되었던 그 사람이었고 저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 사람은 “저-저- 잠깐만요!” 하고 전화 끊기를 만류하였습니다.

 

“아니 왜 그러세요?”

“저 사실은 그쪽에서 괜찮으시다면 잠시 통화를 좀 하고 싶은데요~.”

 

 조금은 의아하고 이상한 생각도 들어서 지금은 안된다고 거절했지만 나직하게 끌어들이는 그 사람의 음성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 것 같은 야릇한 느낌이 드는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 모를 사람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통화했던지 수화기마저 열이 올라서 볼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까지 옛날 추억이야기며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표 등을 함께 공유하였습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도 누가 먼저 전화를 끊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가 결국에는 제가 먼저 3시까지를 단정하고 겨우 통화를 끝내고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모릅니다.

 

 사랑!  어쩌면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바로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었을까요?  지금까지는 힘들고 지루했던 업무들이 일사천리로 빠르게 흘러갔으며 하루하루가 너무 짧아서 24시간을 두 배로 나누고 싶을 정도로 제 삶이 변화해갔습니다.

 

 인연!  지금까지 저는 제가 사랑한 첫사랑은 있었지만, 저를 이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은 처음으로 알았기에 너무나 행복함을 느끼는 나날이 연속되었습니다. 

 매일 만나고 또 만나서 대화해도 시간이 부족하고 아쉬움이 따라다니기를, 1년여 세월을 서로 애틋해하며 늘 함께 했지만, 매 순간 이별을 감행하는 순간만은 너무 힘들어서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 해 어느 가을날을 선택하여 저희는 조용한 산사를 찾아서 두 사람만의 굳은 ‘언약식’으로 결혼식을 대신하였으며, 맨 처음 그날처럼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우린 “무”에서 주윗분들의 아무런 도움 하나 없이 시작하여, 진심으로 앞만 바라보며 부지런히 열정적으로 살아왔습니다.

 

 항상 바라만 보아도 멋있는 남편의 모습은 아직 단 한 번도 초심을 잃은 적이 없기에 더욱 신뢰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그날의 그 소중한 인연을 되새겨보며 저는 이렇게 글월로서 답례하고 싶습니다.

 

 "자기야! 사랑해! 그리고 매사에 늘 고맙고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당신이 제 곁에 든든한 버팀목으로 존재해주어서 우리 가정이 더욱 따뜻하고,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 저는요, 늘 당신께 감사하며 당신을 위해 당신의 아내로 살겠습니다. 진심으로 당신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해요!"

 

 

월간 건강보험 독자에세이 중

글  / 권금옥 서울시 중구 중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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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장애 예방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을 키워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의식인 이성(理性)을 확보하고 좋지 않은 감정은
굳센 믿음으로 대체 하면 된다.


  믿음이란 어떤 삶이 찾아오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이다.
삶에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불안은 줄어든다.

 한의학적 견해로 본다면 생각의 폭을 넓히고 믿음을 키우는 것이 불안에 대한 좋은 치유책이며, 예방법이 된다.

 

 

 

 

 

 1. 가족과 친구,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들라

 

 믿음이 모자라고 자기만의 생각에 빠질 때 그 생각을 따라서 불안장애가 발현된다.  그래서 특히 가족이나 친구 간의 유대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어디에 가든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 어디에 있든지 나를 지켜주는 공간이 있다는 믿음이 불안장애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2. 믿었던 사람을 잃었다면 다른사람을 찾아보자

 

 어떤 불안장애를 가진 환우는 급작스럽게 자식을 먼저 떠난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자식은 곧 자기 자신의 분신과 같다.  자식을 잃은 공간이 그 누군가로 채워지지 않았을 때 불안감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끝내 불안장애로 증폭되었던 것이다.

 이분은 심성계발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히고 믿음을 키우면서, 떨어진 다른 가족과 합치면서 불안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3. 모든 것을 의심하고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말자

 

  의심이 늘고 생각이 많아지면서 불안장애가 발생한다.

 또한  타인에게 일을 맡길 줄 모르고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불안장애는 쉽게 찾아온다. 

 직감적으로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할 수 없음을 알게 되면서 불안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4. 누군가를 사랑하자

 

 불안장애를 예방하려면 삶에 대한 믿음과 사람과 사람 간의 따스한 사랑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크게 어렵지 않다.  

 우리 마음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리하면 된다. 그러면 이해받고 인정받고 사랑받는다.

 본래 정상적인 불안이 나타나면 사랑이필요하다. 그러나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하지 못하면 불안장애로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불안장애 환자를 치료할 때는 약물요법도 필요하지만, 전문가의 도움으로 정상적인 심리적 욕구를 해결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글 / 황웅근 인의예지 심성계발원 대표 ·흰구름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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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중학생 딸 아이가 기침을 줄이지 못해 병원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병원 정문 바로 옆에서 웬 아줌마가 우는 듯 보였고, 나이가 6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는 무심코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너무나 힘겨워 보이기에 걸음을 멈추고 “아줌마, 어디 아파요? 왜 거기서?”라며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지방에서 딸을 데리고 병원에 왔다가 병원에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해 아이 진료 접수조차 못한 채 집으로 그냥 돌아가려고 나오다가 자기의 신세가 너무 한심해서 그냥 쭈그려 앉아 있는 거라 말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우리 아이의 진료비 영수증을 꺼내보았다.  초진 진료비 12,000원, 엑스레이 9,100원 모두 다해봐야 2만 원 정도였다. 그리고 내 교통비 빼고 나면? 총 3만 원이면 다 해결될듯했다. 그러고 보니 남는 돈이 3만 원 정도 됐다.

 

“아줌마, 이거면 아이 진료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뭘 이런 걸, 아이고 아닙니다. 아녀요”
“괜찮아요. 얘가 빨리 병이 나아야죠”

 

 나는 받지 않는다는 아줌마에게 3만 원을 쥐여 드리고 그분의 요청으로 내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드렸다.  그런데 그 후 3일, 1주일, 보름이 지나도록 아줌마로부터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돈 3만 원을 되돌려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연락이라도 오면 아이의 치료를 잘했는지,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지 안부라도 묻고 싶어서였다.

 

 결국, 그로부터 한 달이 되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해줬다.  그러자 남편은 “마누라, 생각보다 순진하네!”라며 뻔한 속임수에 당했다며 웃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줌마의 그 간절한 표정과 천진난만한 딸 아이의 얼굴이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돈 3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아줌마가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사람을 속인 게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다시 1주일이 흘렀을까.  

 금요일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거실 탁자에 예쁜 꽃 편지 봉투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뭘까? 하며 봉투를 뜯어 본 순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편지는 그날 병원에 함께 갔던 중학생 딸 아이가 써 놓고 간 것이었다.

 

“엄마, 그 일로 너무 맘 아파하지 마세요.

 아마도 그 아줌마 딸이 너무 아파서 아줌마가 그 일을 까먹었을 거예요.  아니면 정말 정말, 엄마에게 돈을 부쳐주고 싶었는데 사정이 너무나 어려우셔서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사랑은 원래 속아 주는 거라잖아요. 울 엄마 짱!!”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딸내미를 제대로 키웠구나 하는 마음, 그리고 아줌마를 그냥 이해하면 되는 것을. 정말 내가 속은 거라 해도 우리 딸처럼 생각하면 나는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지금도 우리 딸의 말이 맞고, 정말 그 아주머니 딸의 건강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글 / 김점숙 대구 광역시 동구 방촌동

일러스트 / 전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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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을,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간다의 슈바이처  유덕종

받은사랑이 더 많기에, 사랑할 수 있었다

 

 

 

 

 

 

 

대학 입학 땐 허무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인생을 어떻게 살더 라도 의미가 없어 보였죠.

어차피 의사가 될 거라면 슈바이처처럼 아프리카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졸업하기 전에 결심을 했죠.

아프리카로 가야겠다고, 가서 나보다 힘든 사람을 도와야겠다고요.

 

2010년 잠시 귀국한 유덕종이 모교인 경북대학교 웹진에 전한 서면 인터뷰 내용입니다.
유덕종은 1959년 출생하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의사로 아프리카 우간다(Uganda)에 도착하였습니다.

어린 두 딸과 임신한 아내가 눈에 밟혔지만, 그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캄팔라 물라고(Mulago) 국립병원에서 16년간의 정부파견의사 임무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곳에서 머물며 캄팔라 마케레레(Makerere)대학에서 의학을 강의하며 진료도 계속하였습니다.

 

강의를 마친후 의과 대학생들과 함께

 

캄팔라 외곽에 의사가 처방한 약이 환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기초가 제대로 서 있는 병원을 세우려고 동분서주하는 의사 유덕종을 경북대학교 동문들은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찬사를 보냈습니다.

 

서른 셋, 의사로서의 앞날이 창창한 그가 처음 우간다 땅을 밟았다.

리고 그의 나이 쉰하나. 젊음도, 열정도, 꿈도 모두 그 땅에 바쳤다.

18년 동안 그를 붙든 것은 배고픔과 병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그곳 사람들이었다.

 

 우간다의 열악한 의료상황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려고 병원건립을 준비한 것만도 9년째.

받은 사랑이 더 많기에,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이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는 폐결핵과 위암을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인생은 뭔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하는 생각을 자주하였고, 의대에 들어가 크리스천이 되면서 아프리카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아내와의 연애 시절부터 아프리카에서 사는 문제를 상의했고, 동의를 받아 결혼했습니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 그에겐 보람이고 존재 이유였습니다.

 

그들이 아플 때,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위로가 된다면 족하였다.

 

1992년 정부파견의사로 우간다에 도착한 그가 KOICA에 보낸 편지 일부분입니다.

 

저는 이곳에 도착하여 수도 캄팔라에 있는 물라고병원(Mulago Hospital)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인 물라고 병원의 시설이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곳의 재정상태가 엉망이라 기구와 약품이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입니다.

비싼 약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약도 없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환자를 지켜봐야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며칠 전 20세 밖에 되지 않은 환자가 당뇨혼수로 죽는 것을 보고 화가 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환자가 한국에 있었으면 틀림없이 걸어서 퇴원을 할 환자인데

속수무책으로 죽는 것을 보고 한동안 무력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구의 60%가 의사 한 번 만나 본 적이 없이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바짝 마른 결핵환자가 그를 보고 “Doctor, I am hungry.(선생님, 배고파요.)”라고 할 정도로, 환자들이 굶주려 죽어나가는 그곳의 병원은 차라리 난민촌이 었습니다.

 모기장만 있어도 말라리아 발병률을 60%가량 줄일 수 있지만, 모기장 구입도 큰 부담인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덕종은 한국의 앞선 의료기술과 의료기자재의 활용방법 등을 익혀 그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봉사에 나서리라 다짐하였습니다.


 1993년 7월.
 의사 유덕종은 어느 환자의 조직검사를 하다가 주사 바늘에 손이 찔렸습니다.

 끼고 있던 장갑에 피가 흥건히 고일 정도로 깊이 찔렸습니다.

 문제는 그가 AIDS환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치료약이 없는 천형…….

 

“순간 손가락을 잘라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그 상황에서

AIDS에 걸릴 확률이 3백분의 1이기 때문에 거기에 희망을 걸기로 했죠.”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기다린 5개월간 그는 정상인이 아니었습니다.

 부부관계도 멀리하는 등 매사에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것을 깨달은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한 달 간은 정말 우울했습니다.

 

그러나 감염됐다 해도 5~6년은 더 살 수 있으니 그동안 더 가깝게 AIDS환자를 치료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1994년 봄.
 이번에는 폐결핵이었습니다. AIDS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아프리카였기에 결코 간단한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큰딸 주은이가 뇌염에 걸렸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거의 뇌염이 없지만, 일단 걸리면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명색이 의사라는 애비가 한다는 게 링거주사를 놓는 것뿐이었어요.
AIDS 때도, 폐결핵 때도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는데, 막상 딸이 뇌염에 걸리자

‘왜 이곳에 왔나’하는 후회뿐이었습니다. 집 사람은 그저 울고 만 있었지요.”

1997년 8월 24일자 어느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AIDS에 감염됐다 해도 몇 년은 더 살 수 있으니, 그동안 더 가깝게 AIDS환자를 치료할 수 있겠구나 하던 유덕종이였습니다.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던 환자가 완치된 후 퇴원하면서 진정으로 고마워하는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입원환자의 80%가 AIDS 환자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AIDS 환자가 줄고 있는 나라가 우간다라며, 그동안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 아프리카를 떠날 수 없다는 것이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국에서 자리 잡은 대학 동기생과 비교해 본적이 없느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는 부동산도 집도 없다. 하지만 그런 게 다가 아니다.

사람의 가치관은 저마다 다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경제가 발전하면서 삶은 윤택해졌는지 모르지만 삶의 질은 퇴보한다는 인상이다.

 

내 눈길에 와 닿는 아프리카의 하늘은 아름답고, 힘과 용기를준다.

당신은 한국의 하늘을 가끔씩이라도 올려 보는가?

행복지수로 보자면 한국보다 아프리카 나라들이 더 높을지 모른다. 나는 행복하다.

 

받은 사랑이 더 많기에,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행복한 의사 유덕종입니다.

 

우간다 캄팔라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진료하는 유덕종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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