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주변으로 이사 온지 5년. 산행을 좋아하지만 정작 아차산에 오를 생각은 못했었다. 아니 산이
  너무 낮아‘저것도 산이냐’하는 오만함 때문이었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러다 석 달 전 처음 산을 찾
  았다.  그런데 용마산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등산로가 운동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올레길이 따로 없
  었다.

 


오른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면서 찬찬히 걷는 그 시간이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능선을 따라 삼국시대에 설치된 보루에 올라 한강을 내려다보면 1400여 년 전 옛 병사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좋은 길을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까워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데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집에 있으면 아무래도 누나와 다투거나 컴퓨터 오락을 많이 할 것 같아 이왕이면 자연을 접하게 하고 싶어서다. 처음에는 힘들다고 투덜거려 과자와 음료수를 사주며 살살 달래기도 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 꿀 맛 같은 점심을 먹고, 아빠가 세심하게 관심을 가져주니 이제는 싫지 않은 눈치다.

 

 

아들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지 벌써 열 번 째. 아무 말 없이 매주 산행을 당연히 여기는 것을 보니 아이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먼저 아빠와의 관계가 친숙해졌다. 천천히 산행을 하면, 서 너 시간은 걸리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 오르면서 자기가 궁금해 하는 것을 물어보게 되어 자연스레 부자간 대화가 이어진다.


인사성도 밝아졌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아이에겐 벅차기 마련이다. 아무 말 없이 아빠를 따라 씩씩하게 오르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기특하게 생각하고 칭찬해 준다. 그럴 때마다 자기도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한다. 멋쩍은 나머지 엉뚱한 곳을 보고 인사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또 인내심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느끼는 것 같다. 힘이 들어도 아빠가 옆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외치니 참고 오를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들도 한발 한발 묵묵히 오르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힘을 낸다. 무엇보다 용마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아이 표정이 압권이다. 중간에 포기했으면 이런 시원한 경치도 못 보았겠구나하는 표정에서 인내 뒤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목표의 의미를 터득하는 것 같다. 아빠와 10번을 오르면 원하는 것 하나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 뜻을 이뤘으니 얼마나 기쁠까 싶다.

 

 

  도스도예프스키는 그의 저서「까마라조프의 형제들」에서 “  좋은 추억, 특히 어린 시절 가족 간의 아
  름다운 추억만큼 귀하고 강력하며 아이의 앞날에 유익한 것은 없다.  ” 라고 했다. 사람들이 교육에 대
  해 많은 것을 말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아름답고 좋은 추억만한 교육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그런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  ” 이라고 했다.  가족이란 ‘ 함께 살아가는 동안 추억이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가는 관계 ’ 가 아닐까 싶다.


장주현/ 서울시 광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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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늦은 시간 전화벨이 울렸다.

궁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받자 "너 이놈! 네가 저절로 큰 줄 아니?" 하는 호통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작은아버지였다. "아버지도 자주 찾아뵙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몸도 안 좋은 노인 양반이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손자도 보고 싶을 테고, 자주 찾아가 뵈어라" 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아버지를 찾아 뵌 지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휴일을 맞아 딸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좋아서 할아버지 품에 안기는 딸아이와, 오랜만에 보는 손자가 예뻐서 번쩍 안아 드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않은 것이 못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손자와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으신 아버지와는 일상적인 이야기만 간간이 나누는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점심 후 잠깐 누운 것이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보니 시간도 좀 흘렀고 또 한 주일을 시작하려면 준비할 것도 있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주방 가스레인지 앞에 분주히 움직이는 아버지가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아버지 뭐 하세요?" 라고 묻자

  대뜸 "식사하고 가라" 하시는 것이다.

  "내가 된장찌개 끓였다. 멸치도 갈아 넣고 생땅콩 가루도 넣어 구수할게다.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찌개 잘 끓인다. 한번
   맛 좀 볼래?" 
하시는 것이 아닌가.


잠시 안 보여 운동 삼아 자전거 타러 가신 줄 알았는데 된장찌개를 끓이고 계셨던 것이다. 정말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평상시 부엌일을 거의 안 하시던 분이 아들이 뭐가 예쁘다고 이것저것 갖은 재료를 넣은 된장찌개를 손수 끓이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하며 두부와 함께 국물을 한 수저 떠서 맛을 보니 구수하고 담백했다.

그렇지만, 가슴 저 밑에서 올라오는 뭉클하는 마음에 맛있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놓여있는 '마음의 벽'을 허물 생각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먼저 그 벽을
  허물려고 하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자식들의 양말이며 겨울 스웨터를 손수 뜨개질하여 만들어 주시는 자상한 분이었다. 하지만, 남의 의견은 잘 들으려 하지 않는 성품 때문인지 벌인 사업마다 계속 실패를 했고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고 시간이 갈수록 반항심이 커졌다.

그런 나의 불만을 아셨는지 언젠가 술을 많이 드신 날 '내가, 나 혼자 잘살려고 그런 줄 아니. 나쁜 놈! 애비 너무 미워하지 마라' 하시며 서운한 속내를 비치셨다.

 

이제는 나도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살다 보니 아버지의 그 말씀을 조금은 이해하면서도 아버지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날 아버지의 애틋한 정이 담긴 된장찌개 맛은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할 것이다.

 

장주현/ 서울시 광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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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아파요" 하며 현관에 들어서는 아들을 보니 이마가 찢겨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디서 그랬냐며 놀라서 물으니 "앉아 있다 일어나다가 길다란 쇠에 부딪혔어요" 한다.

"그러길래,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지! 빨리 들어와서 소독하고 약 발라" 하며 야단을 쳤다.

그런데, 이 녀석이 며칠 뒤에는 거실에서 굴러가는 구슬을 잡겠다고 뛰다가 푹 엎어졌다. 일어나는데, 얼굴을 보니 코피가 엄청 흐르는 것이다. 코피 덩어리가 뚝뚝 떨어져 코 뼈가 부러진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엄마가 항상 조심하라고 했잖아. 너는 왜 항상 얼굴만 다치냐?  맨날 코만 다쳐서 코피가 자주 나잖아. 이것 봐, 이렇게 많이 흐르잖아"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코피를 닦아주니 나중에는 머리가 어지럽단다.

그러고나서 이틀이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유치원에서 책상 모서리에 눈밑을 부딪혔다면서 왔는데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누가 때린 것도 아니고 제 혼자서 그랬다니 더 속이 상해 이번에는 크게 화를 냈다.

 "진짜, 엄마가 너 때문에 속상해 죽겠다. 이마 찢겨, 코피터져, 멍들어, 아주 골고루 얼굴만 다치는
 구나.
대체 왜 그러니, 왜?"


이마에 흉터가 조금 남고, 시퍼런 멍 자국이 노란색으로 변할 즈음, 이번에는 화장실에서 '악!'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보니 아랫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저도 미안한지,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궁금해서 한번 해보다가 그랬어요. 용서해 주세요" 하며 아픈 것보다 엄마한테 혼날 것이 더 두려운지 싹싹 빈다. 아빠 면도기에 베인 것이다.

"휴, 대체 너는 뭐가 그렇게 궁금하니? 응? 그것도 왜 하필이면 얼굴만 다치냐구? 팔, 다리 같은 데 다치면 흉이져도 덜 보기 싫잖아." 아니, 다쳐도 어떻게 하루가 멀다하고 한꺼번에 다칠 수 있을까 싶어 화도 나고 속이 상해 애한테 소리를 치자 녀석이 또 궁금한지 한마디한다.

"그런데 엄마, 내가 다쳐서 슬퍼야지 왜 맨날 화만 내요?"

"???"


네 말이 옳다마는 엄마가 화내는 게 또 슬픔의 표현이란다. 제 자식이 맨날 다쳐서 피를 철철 흘리는데 어떤 부모가 가슴 아프지 않겠니? 너무 속상하면 화가 나는 법이다. 얼마나 아플지 아니까 더 화가 나는 거야. 네가 엄마 마음을 아니?

그 날 밤, 상처투성이인 얼굴에 약을 발라 주면서 혼자서 꺼이꺼이 울었는데, 그 며칠 뒤 녀석은 또 다시 수두를 앓기 시작해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벌써 이마 한가운데 수두 딱정이 하나를 손으로 떼어 흉터가 남게 생겼으니, 아들아, 네 몸에 난 흉터는 곧바로 엄마 마음에 흉터로 박힌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김은숙/서울시 송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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