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늦은 시간 전화벨이 울렸다.

궁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받자 "너 이놈! 네가 저절로 큰 줄 아니?" 하는 호통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작은아버지였다. "아버지도 자주 찾아뵙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몸도 안 좋은 노인 양반이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손자도 보고 싶을 테고, 자주 찾아가 뵈어라" 하시는 것이었다. 순간 아버지를 찾아 뵌 지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휴일을 맞아 딸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댁을 찾았다.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좋아서 할아버지 품에 안기는 딸아이와, 오랜만에 보는 손자가 예뻐서 번쩍 안아 드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않은 것이 못내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손자와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으신 아버지와는 일상적인 이야기만 간간이 나누는게 고작이었다. 그러다 점심 후 잠깐 누운 것이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보니 시간도 좀 흘렀고 또 한 주일을 시작하려면 준비할 것도 있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주방 가스레인지 앞에 분주히 움직이는 아버지가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아버지 뭐 하세요?" 라고 묻자

  대뜸 "식사하고 가라" 하시는 것이다.

  "내가 된장찌개 끓였다. 멸치도 갈아 넣고 생땅콩 가루도 넣어 구수할게다. 안 해서 그렇지 나도 찌개 잘 끓인다. 한번
   맛 좀 볼래?" 
하시는 것이 아닌가.


잠시 안 보여 운동 삼아 자전거 타러 가신 줄 알았는데 된장찌개를 끓이고 계셨던 것이다. 정말 가스레인지 위에서는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평상시 부엌일을 거의 안 하시던 분이 아들이 뭐가 예쁘다고 이것저것 갖은 재료를 넣은 된장찌개를 손수 끓이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하며 두부와 함께 국물을 한 수저 떠서 맛을 보니 구수하고 담백했다.

그렇지만, 가슴 저 밑에서 올라오는 뭉클하는 마음에 맛있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놓여있는 '마음의 벽'을 허물 생각을 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먼저 그 벽을
  허물려고 하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자식들의 양말이며 겨울 스웨터를 손수 뜨개질하여 만들어 주시는 자상한 분이었다. 하지만, 남의 의견은 잘 들으려 하지 않는 성품 때문인지 벌인 사업마다 계속 실패를 했고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싫었고 시간이 갈수록 반항심이 커졌다.

그런 나의 불만을 아셨는지 언젠가 술을 많이 드신 날 '내가, 나 혼자 잘살려고 그런 줄 아니. 나쁜 놈! 애비 너무 미워하지 마라' 하시며 서운한 속내를 비치셨다.

 

이제는 나도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살다 보니 아버지의 그 말씀을 조금은 이해하면서도 아버지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날 아버지의 애틋한 정이 담긴 된장찌개 맛은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할 것이다.

 

장주현/ 서울시 광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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