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던 겨울 날씨가 잠시 포근해진 날 전라북도 군산을 다녀왔습니다당일치기 여행이라 군산의 다양한 곳을 들르지 못하고 군산의 전북도 지정문화재인 옛 군산세관 건물이 군산항 개항과 세관의 역사를 담은 호남관세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군산은 시간 여행이라는 여행코스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군산은 일제 수탈의 아픔과 이에 항거했던 열정의 도시로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역사를 정리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옛 군산세관 건물을 활용한 박물관은 소개의 장역사의 장포토존 등 총 8개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약 1,450여점의 세관 관련 유물과 사료를 전시하고시민들을 위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 30분까지 무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옛 군산세관은 건물 설계도와 일제 강점기 당시 외국 쌀 수입허가서’ 등을 전시한 역사의 장과 어린이들을 위한 세관 관복체험이 가능한 홍보관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자랑했습니다.



옛군산세관

호남관세박물관


국내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


주소 :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4-7

관람시간 : 10:00~17:00

문의처: 063-730-8721


옛 군산세관은 1908년 순종대 당시 벨기에로부터 붉은 벽돌 등을 수입해 지은 건물로 옛 서울역사한국은행 본관 건물과 더불어 서양 고전주의 근대건축물로 손꼽힙니다



군산세관은 건축 당시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헐리고 본관건물만이 남아 있으며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1905년 기울어가던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시작된 제1차 군산항 축항공사기간 (1905~1910) 중인 1908(순종2) 6월에 완공되었습니다서양식 단층 건물로 약 69평입니다.


군산세관은 불란서 또는 독일 사람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건축했습니다건물의 지붕은 고딕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 낸 것은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호남관세박물관

(옛 군산세관)



사진으로 보는 군산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 되어 있고 군산의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또한 미니어처로 제작된 군산세관을 볼 수 있지요.



소개의 장에는 군산세관이 처음 세워지던 1899년의 모습도 보이고 군산세관 연혁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그 외에도 수입통관 필중 교부체험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 되어 있습니다.



군산세관에서 적발한 내용도 소개되었는데요해상투기를 이용한 중국산 녹용 등 밀수 그리고 중국산 짝퉁 골프채 밀수 등 1980년대부터 들여온 수입 제품들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호남관세박물관에는 아이들이 관세청 복장을 입어볼 수 있는 체험도 있습니다.



세관장실에서는 포토존이 있고 역대 세관장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그동안 군산세관의 역사를 지켜온 분들이지요.

 

밀수입 되고 있는

가짜 상품들과 불법의약품들 



호남관세박물관에서는 가짜상품’ 일명 짝퉁과 불법의약품을 전시하여 일반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습니다가짜상품이나 불법 의약품은 사지도 말고 거래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가짜상품은 타인의 상표를 불법으로 도용하기 때문에 지적재산권 침해가 되는 물품으로 진품에 비해 바느질이나 디자인 또는 컬러 등이 엉성하고 조합한 품질의 부자재를 사용합니다.

 

불법 의약품은 성분이 불분명하고 가짜 원료나 병원균이 오염된 물질로 만든 의약품이거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성분이 함유되어 사용 금지한 품목입니다.



관세청에서는 탐지견을 운영하고 있는데요전국 공항 안에서 밀수되는 마약류 및 불법 총기류 및 폭발물 반입을 관세국경에서 차단하여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탐지견 견종으로는 레브라도 리트리버 와 스프링거 스파니엘 등이 있습니다공항 검색대에서 직접 탐지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불법 밀수 마약 제품을 냄새로 찾아내는 능력이 대단했습니다.



군산세관 창고는 1908년 지어진 이후 압수품을 보관했던 곳입니다군산세관에서는 근대문화지구에 포함된 본 시설을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맞춰 군산대학교산학협력단과 군산문화협동조합로컬아이는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관광객들애게 기억이남는 장소로 만들기 위해 인문학창고 '정담' & '먹방이와 친구들캐릭터 카페를 오픈했습니다.

 

인문학창고 카페는 군산대학교에서 매주 진행하는 인문학강좌가 열리게 되면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화공연이 열립니다특히 캐릭터 '먹방이' 1900년대 프랑스에서 건너온 군산세관사인 '라포트'가 데리고 온 애완견으로 코가 돼지코를 닮았다하여 '먹방이'가 되었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어 그 의미가 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먹방이와 친구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역 캐릭터입니다호남관세박물관에 '먹방이조형물이 전시 되어있으며 2018 명예군산세관장에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일본 쿠마몬스퀘어와 같은 지역캐릭터 입니다먹방이와친구들 카페는 지역 캐릭터 카페답게 철저하게 로컬중심의 콘셉을 가지고 운영합니다.

 

캐릭터가 플랫폼이 되어 저작권공유를 통해 소상공이들이 만든 다양한 상품들이 선보이게 됩니다메뉴의 경우에도 로컬푸드로 만든 식음료들이 선을 보이게 됩니다.


작년 12 27일 이후로 지난 110년 동안 닫혀 있었던 군산세관창고가 인문학과 문화 그리고 콘텐츠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를 계기로 군산세관의 위상 또한 강화 될 것이며 시민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호남관세박물관 찾아가는 길


시외버스터미널고속버스 터미널 → 근대역사박물관

버스 : 1, 2, 17, 18, 19번 버스로 근대역사박물관 정류장 혹은 내항 사거리 정류장에서 하차, 15~20분 소요

택시 : 6~10분 소요 4,000

군산역 → 근대역사박물관

버스 : 1, 2,17,18,19번 버스를 타고 내항사거리에서 하차, 35~50분 소요

택시 : 15~20분 소요 8,000

승용차 이용자 : 군산시 해망로 240, 근대역사박물관(내비게이션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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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대인들에게 속도는 미덕이었다. 매일 '빨리 빨리'를 외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일상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여유가 생기고 건강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느림'은 이제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 주변에는 오히려 과거를 쫓고 전통에 숨겨진 우리네 조상의 지혜를 따르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 그 느림의 미학을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국 전통의 놋그릇 '유기'이다.

 

 

 

 

 

 

필자는 올해 설을 맞아 장인, 장모님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 와이프와 두 자녀까지 모두 네 식구의 수저는 물론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을 담는 접시까지 풀세트로 말이다. 명절 때마다 입버릇처럼 건강을 강조하시는 장모님의 사랑을 담아 필자의 가족은 청아한 울림이 나는 유기그릇을 식탁에 올릴 수 있었다. 유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청동기 시대에 탄생을 알린다. 식기류는 물론 무기까지 널리 사용하던 유기는 8세기 경 삼국시대 유기를 전담하는 철유전이란 기관이 있을 정도로 전성기를 맞는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생활용기는 물론 불교 공예품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다.

도자식기가 보편적이었던 조선시대마저도 구리의 채굴을 장려하면서 유기를 사용해왔고 민간은 물론 관영수공업체로부터 궁중과 관청에서 사용할 유기를 납품받기도 했다. 유기는 특히 조선말기 활성화를 이루면서 안성유기가 유명해져 제작 기교가 발달하는 등 성황을 이루었다. 이후 일제침략으로 쇠퇴기를 걷던 유기제작은 해방과 함께 성행하더니 광복 후 급변한 플라스틱, 스테인레스 그릇의 보편화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춰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엌 찬장에서 다락방에서 잠자고 있던 유기는 현대사회에서 접어 다시 건강과 멋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각광을 받는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전해진 유기 제작방법은 안성의 주물유기, 납청의 방짜유기, 순천의 반방짜유기 등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살펴보면 주물유기는 녹인 쇳물을 틀에 부어 내는 방법으로 동일규격 제품을 다량 생산하는 장점을 지닌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대 22%의 비율로 합금해 거푸집에 붓거나 불에 달군 뒤 무수히 반복해 두들기는 단련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다. 두드림에 나온 자국은 수공예품으로서의 멋과 품위를 지니면서 더 가치를 높인다. 마지막으로 반방짜유기는 궁그름 옥성 기법이라고도 불리는데 오목한 형태의 식기를 만드는 기법으로 주물기법과 방짜기법을 절충한 방식을 취한다. 예부터 왕실과 사대부들이 대를 물려가며 사용할 정도로 유기는 품격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왔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생명의 그릇으로 불릴 만큼 독성에 민감한 부분 때문이다.


유기는 보통 음식에서 조금의 독성이라도 나오면 그릇이 검게 변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미 과학적으로 유기가 농약 성분을 감지하거나 식중독균을 없앤다는 사실도 증명되고 있다. 유기의 이 같은 강점에는 소화를 돕고 혈압을 안정시키는 질병예방 효과까지 확대되고 있다. 채소를 유기에 담으면 신선도가 오래가고 멋스러움까지 더하면서 한정식집에서 사용을 늘려 오던 유기의 인기는 이제 비빔밥 전문점, 냉면 전문점을 비롯해 팥빙수를 판매하는 디저트 전문샵으로까지 그 인기를 늘려나가고 있다. 유기그릇과 관련한 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 실험을 보면 강력한 식중독균이 유기그릇에서 24시간 후 부연 침전물로 나타났고 그릇 표면색이 변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 농약사용 채소를 그릇에 담은 결과 역시 유기그릇이 검게 탈색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생화를 유기그릇에 넣고 11일을 지나 관찰한 결과에서도 모두 메말라 버린 일반 그릇의 생화와 달리 유기그릇의 생화는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나에게 맞는 유기그릇을 고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유기그릇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기는 반 영구적으로 한 번 장만하면 웬만해선 깨지기 어려워 대물림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전자렌지 사용이 불가능하고 무게감이 있는 것은 물론 열전도율이 높아 뜨거운 음식을 담을 경우 잡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때문에 나에게 꼭 필요한 식기류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보관이나 세척 역시 일반 식기류에 비해 조금 더 번거로울 수 있기 때문에 평소 설거지를 싫어해 미뤄두는 분들이라면 구매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필자가 명품이라고 인정하는 기준은 하나다. 오랜 시간 쓰면 쓸수록 깊이를 더하고 빛을 내는 그 자연스러움이 있느냐 없느냐다. 그런 점에서 유기는 쓰면 쓸수록 윤기와 빛깔을 내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분명 명품 그릇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오래 방치하면 변색이나 얼룩이 오기도 한다. 관리방법은 간단하다. 과거의 방법을 빌리자면 가루 낸 기와조각이나 타고 남은 재를 연마재 삼아 짚으로 문지르면 빛깔이 되살아난다. 현대의 방식으로는 식사 후 바로 설거지를 하는 것이 좋고 아니면 물속에 완전히 담가둬 설거지를 하고 유기그릇 전용 수세미를 마련해 한쪽 방향으로 닦아내면 원래의 유기 모양을 되살릴 수 있다.

 
글 / 김지환 자유기고가 (전 청년의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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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일어난 지 63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하기까지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군이 감행한 전면기습 공격이 시작되며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13만 명의 북한 공산군 280여 대의 소련제 전차와 포를 앞세워 남침을 강행했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남한은 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리고 점점 남쪽으로 내려와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왔고, 수많은 피난민과 전쟁의 잔해만이 국토를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국토가 피폐화되고 열심히 쌓아온 경제와 국가 기반이 다 무너져버리는 진통을 겪었습니다.

 

6·25 전쟁이란 말은 이제 익숙한 말이지만, 사실 6·25 전쟁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잘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라고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속으로나마 꾸준히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지나가기 전 6·25 전쟁의 배경과 휴전 협정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역사적인 부분에 대해 간단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아두는 것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을 뜻을 기리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의 발발과 서울 함락, 그리고 UN의 참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남침을 강행한 북한은 불과 4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북한의 기습공격을 받은 38선 일대의 국군들은 즉시 전투태세에 돌입했지만, 주말을 맞이해 많은 병력이 외출 외박을 나가 부대에 남아있는 병력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국군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전차, 자주포 공격으로 많은 장병이 전의를 상실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북한은 3개월 만에 남한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국제연합군 참가가 결의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전쟁은 더 이상 북한과 남한의 전쟁이 아닌 UN이 참전하는 국제전쟁이 되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개시, 그리고 예상치 못한 중공군의 개입

 

 

 

 

남한과 UN군은 전쟁의 전환을 위해 인천으로의 상륙작전을 시도했고, 1950년 9월 15일 결국 다시 서울을 탈환하게 됩니다. 국군과 UN군은 인천상륙과 서울진격작전 동안 약 4천여 명의 병력 손실을 입었고, 이에 비해 북한군 손실은 사살 1만 4천여 명, 포로 7천여 명, 전차 소실 500여 대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작전 이후 북한군은 공격능력이 소멸되고, 저항능력마저 거의 상실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국군은 이 기세를 몰아 국군은 38선을 넘어 평양을 탈환하고 압록강 근처까지 진격했습니다.

 

국군이 압록강 근처까지 진격하면서 한반도의 통일은 현실로 다가온 듯했습니다. 하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세가 다시 역전됩니다. 통일의 꿈은 다시 한 번 좌절을 겪게 되었습니다. 38선을 중심으로 밀고 당기는 접전이 계속된 시기이지요.

 

 

 

3년 1개월 2일 지속된 전쟁의 정전, 휴전회담과 휴전협정

 

 

 

 

휴전회담은 전쟁 중에도 계속 진행되었으며, 군사경계선 설정과 휴전 감시기관 구성, 포로 교환 등의 문제로 고전하다가 결국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로써, 3년 1개월 2일 즉 1,129일 동안 지속된 6·25 전쟁은 정전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6·25전쟁의 정전회담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회담이었습니다. 하지만 협정의 성격은 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평화 조약이 아닌, 적대행위를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성격에 불과했습니다. 3년 1개월간 계속된 전쟁은 일단 멎었으나, 평화도 승리도 없는 미해결의 장으로 변했을 뿐이고 그 휴전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지요.

 

(사진출처: 정전 유엔군참전60주년 6·25전쟁 60주년 사업위원회 홈페이지 http://www.koreanwar60.go.k)

 

 

 

숫자로 보는 6·25 전쟁의 아픈 역사

 

 

 

 

 

189만 840명 사상.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의 슬픈 역사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이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6·25 전쟁의 아픔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이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요. 특히, 6·25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6·25는 이제 역사책에서나 볼법한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63년 전을 뒤돌아본다면 지금이 바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고 있는 날일 것입니다.

 

많은 사상자, 피난민,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들. 비록 6.25가 며칠 지나긴 했지만,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지나가기 전 6·25전쟁에 희생된 순국선열의 뜻을 한 번 더 기리고,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감사의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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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의 문화유적에 대해 설명해 드립니다!”

 
  오랫동안 직장, 학교, 가정에서 일해 온 고창석, 최화자, 구자성 어르신은 송파구에서 문화해설사로 활동
  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노후 시간을 어느 누구보다 보람차게 보내는 어르신들을 만나
  보다.

 

학생, 일반인들에게 우리의 문화 유적 설명


푸릇푸릇 올라온 잔디가 있는 송파, 석촌고분 정문에 어르신 세 분이 문화해설을 위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10분이 지났을까. 어르신들께 문화유설을 듣고 싶다고 요청한 방이초등학교 학생들이 석촌고분에 도착했다.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한 어르신들은 고분으로 향했다.


“풍납토성은 백제의 도성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석촌고분에는 8개의 무덤이 있는데, 그 중 적석총은 제 13대 왕인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근초고왕은 왕권강화와 정복 사업을 통해 고대국가의 기반을 확립한 왕으로, 적석총은 다른 무덤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큽니다. 돌로만 쌓은 것이 특징이죠.”


학생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고창석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집중하여 듣는다. 미리 준비해 온 수첩에 열심히 적는 학생도 보인다고 어르신은 설명 중에 가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학생들 역
시 궁금한 사항을 여쭤본다.


방이초등학교 이명지 교사는“근처에 석촌고분이 있어도 잘 오지 않았어요.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다녀도 현장에 대해 공부하거나 설명을 들은 적이 없는데, 문화유적 해설 어르신을 통해 전문적인 설명을 듣게 되어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문화재에 대해 오늘 많이 알게 될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정년퇴직 후 찾은 보람된 나의 직업

고창석, 최화자, 구자성 어르신은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기 전 회사원, 주부, 교사로 지내왔다. 고창석 어르신은


“35년 동안 회사를 다니다 퇴직한 후 일 년 정도 여행하고 쉬니 무척 답답하고 지루했어요. 나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을까 찾았는데 단순한 일자리밖에 없더라고요. 마침 인터넷에 문화해설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는데 호기심도 생기고 자신도 있었어요. ”라며 시작하게 된 동기를 이야기했다.


구자성 어르신 역시 38년 동안 교직생활을 정년퇴임한 후 역사에 관심이 많고, 남을 가르치는 봉사를 찾다 시작하게 되었고, 최화자 어르신은 남편이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도전하였다.


“남편이 문화해설사로 저보다 1년 먼저 활동했어요. 집에서 열심히 역사를 공부하고, 문화 답사를 다니는 모습이 굉장히 좋아보이더라고요. 저도 아이들에게 역사 인식을 키워주고 싶어 문화유적 해설을 시작하게 되었죠.”


어르신들은 송파구의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 국사편찬위원회 등 교수진에게 30시간 이론 교육을 받았다. 공주며 부여, 익산 등 문화유산이 많은 지역과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답사하며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갔다.


처음에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공부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역사와 유적에 관해 찾아보고,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역사 관련 책도 많이 봤다고. 어르신들끼리 서로 역사에 관한 좋은 자료가 있으면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문화유적 해설사로 활동 예정

문화유적 해설을 하다보면 집중하지 않는 학생도 있지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하여 집중적으로 듣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하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함께 호흡하며 문화유적에 대해 설명하면 다시 젊어지는 기분이 들고, 즐거워요. 요즘 어린이나 학생들에게 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역사에 대한 가치관이 잘 이뤄지면 나라를 위한 마음도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


어르신들은 요즘 학생들이 영어와 수학 같은 과목만 공부하지 국사는 등한시하는 것 같다며 학생들에 대한 역사 교육이 강화해야 된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고창석 어르신은 “역사를 공부하다보니 무척 매력 있는 학문이에요. 저 역시 예전에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었어요. 국가의 정통성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역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 근처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는데 처음에는 고분인 줄도 몰랐어요. 그때 알아서 사진을 찍었으면 ‘요즘 유용하게 쓰였을 텐데…’ 라는생각이 들어요.”라며 웃는다.


어르신들은 문화유적해설사로 활동하면서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이 좋아졌다고 한다. 일부러 집에서 석촌고분이나 유적지까지 걸어가고, 해설을 하면서 몇 시간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건강해졌다고.

최화자, 구자성 어르신은 역사와 문화에 대해 더 공부해서 유적에 대해 알고 싶은 시민, 외국인들에게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설을 하고 싶다고 밝혔고, 고창석 어르신은 “역사 관련 학과로 학사편입을 하여 공부를 더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며 다시 문화유적 해설을 위해 정문으로 향했다.

 

글 김지영/ 사진 도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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