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흑백 사진처럼 누런 옛일 속에 아련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일이 자주 있다.지
  금도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하나는 이발소집 형에 대한 기억이다. 국민학교를 갓 입학한 어느 날 학교
  를 다녀와 보니 우리 집 앞에 이상하게 생긴 판잣집 하나가 들어서 있다
.

 
그저 나무판 몇 개를 대서 허름하게 만든 그곳은 판잣집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어정쩡할 정도였다. 뭘하는 집일까 궁금했는데 그 다음날 간판이 붙었다. 국민학교 1학년인 나만큼의 글씨로“이발”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누가 사는가 궁금했는데 하루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형이  “ 너 요앞집에 사는 애지? 너의 부모님이 집 앞에 이런거 지었다고 뭐라고 안하시니? ”  형은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도리질을 했다. 그랬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공짜로 머리를 깎아 주는 게 아닌가.

 


더욱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얼기설기 나무판을 매단 선반위에 가득한 국수다발 이었다. 어렵게 번 돈으로 쌀을 살 형편이 못되는 형은 그저 난로에다 물을 끊여서는 국수 몇 가닥을 뽑아서 냄비에 넣고 반찬이라고는 김치 한 조각 없이 국수가락만을 삼키는 형을 보면서 어린 나의 마음에도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 날부터 나는 밥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 밥을 더 먹는 것처럼 했다. 그리고는 숨겨둔 밥과 반찬을 들고 형을 찾아갔다. 형은 너무나 고마워했다. 부모님도 오갈 데 없는 고아라고 형을 불쌍해 하셨다. 그리고는 그 형을 집으로 초대하셨다. 이발소 형은 미안해하면서 모처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형의 모습이 안쓰러워 내가 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어머니는 형의 저녁상도 꼭 차려 주셨다. 학교에서와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을 들고 이발소를 찾는 게 나의 행복 이였다. 밥상을 받아든 형은 목이 메어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수저를 들곤 하였다. 언젠가는 꼭 갚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때 이발비가 50원 이었는데, 형은 10원짜리 하나 들고 온 아이들의 머리도 그냥 깎아 주었다. 적은 돈을 벌면서도 사람 사는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형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이발소가 사라져 버렸다. 그 곳에는 다부서진 판자 몇 조각과 국수 몇 가락이 길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무허가 단속에 걸려 이발소가 무너진 자리를 쳐다보는 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이었다.


다음날 아침 대문 앞에 도화지를 내 붙였다.

 「 이발소형, 이거보면 우리 집에 꼭 오세요. 보고 싶어요」엉성하지만 정성을 다한 글씨였다.


 
 

비에 젖어 떨어지면 새도화지를 몇 번씩 갈 때까지도 형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믿는다. 사람을 좋아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베풀 줄 알았던 그형은 지금 어디에선가 휼륭한 이발사가 되어 잘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박명선(인천시 서구)

 

 

 지난 한 해 '건강천사'와 함께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신묘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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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비야 머리 깎자'

 팔순이 가까운 엄니께서 이발도구를 챙겨 놓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2월 달력 장을 떼어 냈다고는 하나 아직 바람이 찬 3월 첫날, 엄니는 예외 없이 양지쪽에 플라스틱 의자를 놓아두고 50세가 다 된 아들을 향해 소리치십니다.

 

 "애비야 머리 깎게 어여 나와."

 
 "더 있다 깎아도 되겠구만유."

 
 "아녀. 나이 들수록 머리카락이 길면 사람이 초라해 보인다니께."


매 달 초하루만 되면 엄니와 똑같은 대화가 반복된 지도 벌써 반년이 넘습니다.

5년 전 아버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울 엄니는 아버님의 전용 이발사셨습니다. 우리 삼형제 역시 어려서부터 엄니께서 머리를 직접 깎아 주셔서 분가해 살기 전까지는 이발소에 가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작고하신 뒤부터 이발 기계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졌습니다.
한동안 외국서 살다가 엄니 곁으로 와서 살다보니 다락에서 녹슬고 있는 이발기계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엄니를 향해 말했습니다.

 "엄니 지 머리 좀 깎아줘봐유."


이젠 손이 떨려서 안 될 거라면서 한사코 손 사래질을 치는 엄니를 붙들고 다시 말씀 드렸습니다.

 "옛날 그 솜씨가 어디 가남유. 그러지 말고 한번 깎아나 줘봐유. 정 아니다 싶으면 이발소에 가서 손질 좀 해 달라고 하면 되니께유."  마지못해 이발 기계를 가지고 나오신 울 엄니. 처음에는 무척 조심스럽게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더니 금세 옛 솜씨가 나왔습니다.

 "손 떨려서 못 할 줄 알았더니 그래도 모양새가 나온다야." 하시면서 나 보다 더 좋아하시던 울 엄니. 그날 이후 매달 초하루만 되면 엄니가 먼저 이발 기계를 내 놓고 큰 아들을 불러 댑니다. '애비야 머리 깎자' 하고 말입니다.

늙어서 더 이상 아들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셨던 울 엄니.

하지만 아직도 아들 머리를 깎아 줄 만큼 기력도 있으시고 눈도 밝으시니 사는 맛이 더 나는 가 봅니다. 덕분에 이제는 이발소에 가기는 다 틀려 버렸습니다.


눈 밝은 우리 엄니 초하루만 되면 이발 기계를 내 놓고 '애비야 머리 깎자' 하고 부르시니 그 말씀을 어이 거역하겠습니까.  아버지와 떨어져 외국서 사는 아들 녀석도 할머니 댁에 오게 되면 '머리카락을 잘라야 할 판국인데-'
벌써부터 아들 녀석의 표정이 궁금해집니다. 녀석은 장발 애호가거든요.

 "애비야 머리 깎자."

아까부터 엄니가 부르십니다. 오늘이 벌써 초하루거든요.

 김석현/ 충남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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