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네 글자로 압축하면 생로병사(生老病死)다. 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이 과정은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만일 내가 아직 젊고 병들지 않았고 살아있다고 자랑을 하는 순간 바로 질병이 찾아온다. 과연 누가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누구라도 앓을 수 있는 가벼운 감기질환도 소홀히 관리하다가는 비염, 축농증 등 여러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심지어 폐렴으로 확산되어 위중한 상태에 처할 수 있다. 자칫 상한 음식이라도 먹다가는 배탈이 날 수도 있고, 과식으로 인한 소화기질환도 찾아오기 쉽다. 특히 나이가 들면 늘어나는 것은 주름살과 함께 질병밖에 없을 정도다.


사정이 이와 같을진대 현재 건강하다면 이를 자랑하기 전에 먼저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른 자세가 아닐까?




대개 어떤 병이든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질환이라고 일컫는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은 물론이고 각종 관절질환 및 근육긴장 등도 3개월이 경과되면 이미 내 몸 깊숙이 침투하여 몸과 하나가 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질병들은 내 몸의 강력한 방어기능을 뚫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그것이 병이 이미 세력화를 통해 조직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예컨대 타박상을 입었을 경우라도 치료하지 않아도 절로 낫는다. 감기의 경우도 대부분 그러하다. 배탈이 나거나, 웬만한 피부질환의 경우도 모두 저절로 낫는다. 대부분의 모든 질병이 그렇게 절로 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개월 이상 질병이 지속된다면 이는 내 몸의 질병에 대한 면역기능을 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 몸의 강력한 면역체계를 뚫고 침입해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병증 홀로 불가하다. 반드시 질병이 조직력을 갖추고 세력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의 모공편(謀攻篇)에서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 번 이기면 한 번 진다. 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조차도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위태롭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 ’라고 하였다.





이러한 원칙은 내 몸에 들어온 질병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이미 3개월 이상 통증이 지속된다면, 그리고 어떤 병이 계속적으로 재발하고 있다면 이미 병세가 굳건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병은 이미 진영을 갖춘 군대처럼 조직력과 전투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만성병을 깔보다가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반드시 만성병이 가진 위력을 인정해야 그 다음 여기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등과 같은 성인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결코 한 가지 요법으로는 벅차다. 운 좋게 증상이 개선될지라도 조직화된 병의 세력에 의해 다시 재발하기 일쑤다. 악성종양(암 질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세력에는 세력으로 대응해야 마땅하다. 예컨대 양방치료, 한방치료, 대체요법, 생활관리, 마음공부, 운동요법 등이 어우러져서 조직력을 갖춘다면 만성질환을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만성적 질환의 경우 단지 수술요법이나 약물 치료에만 의존하거나, 혹은 거꾸로 수술과 약물 치료를 모두 거부하고 자가 치료만을 고집하는 등 모두 바람직한 대처법이 아니다. 이는 마치 경기장에서 공격력 하나만 갖추거나, 수비력에만 의존하는 플레이와 같기 때문이다.





농구경기는 5명, 야구경기는 9명, 축구경기는 11명이 모여야 비로소 경기를 할 수 있는 조직력이 갖춰진다. 어떤 질병이 만성화 되었다면 이미 팀플레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병에 제대로 대응해야 하는 지 분명해진다. 즉, 수비력과 공격력이 조화로워야 한다. 뛰어난 공격수 한두 명으로는 세력화된 질병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우리 몸에 질병이 생긴 것은 크게 다음 세 가지 대응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첫째는 식생활의 문제다. 불규칙적인 식사, 각종 인스턴트식품의 범람 속에 여러 가지 유해성분들로 인한 혈액이 탁해진 것이 문제다. 둘째는 바쁜 생활로 인해 운동이나 휴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과도한 스트레스다.





한의학의 경전인 황제내경에는 ‘면역기능이 있으면 병이 침입할 수 없고, 이미 병이 머무르고 있다면 면역기능이 약해진 것이다(正氣存內 邪不可干, 邪氣所奏 其氣必虛).’라고 하였다. 면역기능은 자연치유력인 바, 한의학에서 말하는 정기(正氣)이고, 원기(元氣)다. 자연치유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리적인 식생활, 운동과 휴식의 조화, 마음의 평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자연치유력은 마치 뒤를 받쳐주는 수비수와 같다. 수비가 튼튼하지 못하면 공격진이 마음껏 공격할 수 없다. 팀플레이가 살아나려면 반드시 탄탄한 수비가 받쳐질 필요가 있다.




치료법에 있어 조직력을 갖추면 모든 병은 반드시 낫는다. 다만 병을 너무 적대시하는 것은 좋지 못한 자세다. 병은 생활의 일부요, 내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병을 대할 때는 스포츠 경기를 임하는 것처럼 가볍게 대하는 게 좋다. 죽기 살기로 전쟁을 하다가는 자칫 병으로부터 완패를 당하여 극단적인 경우에 처할 수 있다.





사노라면 흐린 날도 있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도 있고, 소낙비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질병 없이 오래 살겠다는 마음은 그저 욕심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내 인생을 모두 맑은 날씨로 채우려는 것과 같다. 질병을 바라보는 자세도 중요하다. 질병이 발생하면 ‘혹시 내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지 않았는가.’, 혹은 ‘내가 혹시 과도한 욕심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등의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은가.


성급히 병세를 꺾으려고 하다가는 수비력이 약해져서 오히려 병증이 깊어줄 수도 있다. 스포츠에서 공격일변도로 나가다가 쉽게 골을 허용하는 경우와 같다. 질병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겸허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보자. 질병을 모두 박멸하겠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이는 양방치료에만 의존한다. 또 어떤 사람은 한방치료만 고집한다. 또 어떤 사람은 대체요법만을 찾는다. 또 다른 사람은 종교적인 치유능력만을 믿는다. 이와 같다면 질병과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다.





질병 치료에 있어 모든 것을 의료인에게 맡기는 자세도 치우침이요, 의료인을 멀리하고 스스로 낫겠다는 생각도 치우치기는 마찬가지다. 반드시 의료인과 함께 손을 잡고 협력할 줄 알되, 스스로가 해야 할 책무 역시 소홀치 말아야 한다.


또한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질병을 잘 앓아야 한다. 질병도 흥망성쇠가 있는 법, 이 과정을 잘 견뎌내면 면역기능이 강화되어 오히려 더욱 건강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병들었다면 다음의 5가지 사항을 점검해 보자. 그러면 질병과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고 방어와 공격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다.



1. 나는 양방과 한방, 대체요법 등 두루 두루 모든 요법들을 수용하고 있는가.
2. 식생활, 운동요법, 마음공부에 대해 병행하고 있는가.
3. 청정한 자연환경을 활용하는가.
4. 충분한 수면, 휴식과 명상을 갖추고 있는가.
5.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가.


위의 5가지 부분을 갖추었다면 이제 질병과 멋진 승부를 펼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병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다. 질병은 당찬 세력이자 언제나 생활 속에서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다. 우리가 미리 세력을 갖춘다면, 언제라도 찾아오는 질병과 맞서 유쾌한 플레이를 전개할 수 있고, 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글 / 제천시 제3한방명의촌 자연치유센터 대표 황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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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서 16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은 예년에 비해 따듯한 편이다. 엘니뇨다 이상기후다 여러 분석들이 많다. 그런데 2015년은 을미년, 을미(乙未)년의 천간(天干)은 목(木)이요, 지지(地支)는 토(土)다.즉, 한해의 반은 천간인 목이 지배를 하고, 또 한해의 반은 지지인 토가 왕성하다. 그렇다면 목극토(木克土), 즉 봄기운이 중앙의 습한 여름기운인 토(濕土)를 극하여 올해 상반기 극심하게 가물었다면, 올 하반기는 토(土)가 왕성한 바, 토극수(土克水)하여 찬 기운을 이겨내어 따듯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리학적 해석 역시,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자연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특정 논리, 이론, 과학으로 모두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늘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왜냐면 자연이란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신성하며, 모든 과학과 논리 그 이상의 신묘한 법칙에 의해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따듯하면 춘화작용이 덜 되어 농사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러나 인류가 태어난 수 백 만년 동안, 안정된 기후를 유지했던 지구가 인간이라는 한 종족이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지구의 체력이 약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자연은 항상 사람의 걱정을 넘어선다. 한해의 기후 변화만 보면 사람에게 유익함과 그렇지 못함이 있는 듯하지만, 대자연의 흐름에 있어서 그것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규정할 수 없다.

 

 

 

 

어떤 기상학자는 2015년에는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위성사진으로 관찰한 결과 놀랍게도 2012년부터 2014년 3월까지 2년차에서 4년차 얼음이 증가하여 다시금 광범위하게 얼음면적이 확장되었다는 일례가 그러하다.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아무튼 자연은 그렇게 건강하다.

 

좀 더 크게 본다면 사람이 겪는 생로병사(生老病死)도 자연 세계에서는 그저 건강한 에너지의 흐름일 뿐이다. 즉, 질병 역시 건강한 흐름의 하나다. 우리는 이를 자연의 위대한 힘이라고도 말하고, 의료적인 견해로는 자연치유력이라고 칭한다. 자연치유력은 위대한 자연 그 자체요, 자연 속에 내재된 에너지라고도 하지만, 사람의 몸에도 존재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건강함을 체감할 수 있는 게 계절의 흐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건기와 우기가 주기적으로 순환하며 모든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 그러나 자연도 가끔은 가뭄이 오래 지속되거나 때 아닌 장마가 올 때가 있다. 산불이 일어나거나 이상 기온을 보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은 제자리를 찾아들어가고야 만다. 우리가 바라보기에는 지구의 자연환경과 기후의 변화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는 우리 마음이 문제일 뿐, 자연은 건강하다. 자연과 건강은 결코 떼어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이렇게 건강한 대자연의 에너지를 얻을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자연을 보면 비가 내리고 그 비는 다시금 개울이 되어 흐르다가 강물이 되어 흐르면서 대지를 적셔준다. 우리의 몸도 대자연을 닮아서 개울이나 강물 같은 혈관을 통해 피가 순환하고 신경계가 작동하면서 생명력이 유지된다. 개울이나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치자. 자연이 건강할 수 없듯이, 우리 몸도 이와 같다. 그렇다면 자연치유력이란 흘러서 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매우 중요한 논제일 수 있다.

 

 


어떤 환우가 말했다. "선생님. 제 통증을 표현해 본다면 천 개의 바늘이 찌를 듯이 아파요. 그런데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해 봤지만, 뚜렷한 원인이 나올질 않거든요.” 나는 말했다. “아마 천개의 바늘로 찔러도 지금처럼 아프지는 않으실 거예요.”

 

사노라면 이토록 아주 몹시 아플 때가 있다. 왜 그럴까? 꽉 막혔기 때문이다. 단지 혈액순환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곧 마음의 영역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 잡병편(雜病篇)에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이라고 했다. 기혈(氣血)이 순환되고 통해야 아프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황제내경(黃帝內經) 거통론편(擧痛論篇)에서는 ‘집착하면 기(氣)가 맺힌다(思則氣結)’라고 하였다. 여기서의 사(思)란 자연의 흐름과 어긋나는 나만의 생각, 즉 막힌 생각이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우는 갓난아이를 보자. 배고플 때도 울고, 추워도 울고, 졸려도 운다. 당연히 아파도 운다. 그러나 엄마는 갓난아이가 운다고 화내거나 야단치지 않고, 묵묵히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읽어서 대처한다. 몸이 아플 때는 몸이 내게 던지는 신호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지금 내몸은 통증을 통해 다음처럼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힘들어요. 주인님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사회봉사를 하더라도 내개 휴식이 필요해요!’ 라고. 그럼에도 통증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통증은 점점 더 심화된다. 그리하여 천개의 바늘이 찌를 듯이 아파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몸의 기혈순환을 잘 흐르게 할 수 있을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는 몸을 펴야 한다. 현대문명은 컴퓨터와 자동차를 만들어냈고, 지나치게 구부정한 자세로 일하거나 이동하게 한다. 그렇다고 이를 거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는 게 필요하다. 몸을 이완시키는 각종 요법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집에서 기지개를 자주 켜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어떤 자세도 좋다. 단지 어깨를 펴고, 허리를 펴고, 척추를 세워보자. 그러면 기혈순환이 원활해지고 자연치유력이 회복된다.

 

 


둘째는 생각열기다. 하나만을 아는 사람은 생각에 통로가 없어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생각의 출구를 하나 더 가져보자. 매우 쉽다. 내뜻대로 되는 삶을 ‘해동네’로 보고, 그렇지 않는 삶을 ‘달동네’로 규정한 이후, 해동네가 올 때나 달동네가 올 때나 이에 맞게 잘 대처하는 생각이 필요하다. 아래 순자 자도편 (荀子, 子道篇)의 한 구절은 내가 달동네에 있을 때와 해동네에 있을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잘 말해주고 있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도 또한 근심하는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군자는 지위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그 뜻하는 바를 즐거워하고 지위를 얻고 나서는 또 그 다스려지는 것을 즐거워하나니, 이 때문에 종신토록 즐거움만 있고 단 하루도 근심함이 없다. 소인은 지위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얻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지위를 얻고 나서는 또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나니, 이 때문에 종신토록 근심만 있고 단 하루의 즐거움도 없느니라.”

 

 

 


 

삶의 자세를 위처럼 가진다면, 내 인생의 해동네와 달동네에 대해서 집착을 털어내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다. 몸을 펴고 생각을 열자. 그러면 건강한 대자연으로부터 자연치유력이 회복되어 기혈순환이 촉진된다. 그러면 언제라도 건강하고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다.

  

글 / 황웅근 제천시 제3한방명의촌 자연치유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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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한의학에서는 단 한번 시술로서 병세가 소멸된 경우를 일도쾌차(一到快差)라고 일컫습니다. 말합니다. 아마도 환자나 의료인 모두가 일도쾌차를 꿈 꿀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임상에서 일도쾌차를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발목 염좌(捻挫)의 경우 단지 침 1회 시술로 현저히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혈(瀉血)침법이 그러한데요, 혈맥을 트여서 어혈(瘀血)을 배출시키면 침을 맞자마자 바로 개운함을 느끼고 절면서 왔다가, 멀쩡하게 걸어서 가서 바로 회복됩니다.


사명대사라고 하기도 하며, 혹은 사명대사의 수제자라고도 하는 침술의 대가 중에 사암도인이 있었습니다. 오행의 원리를 활용하여 보사(補瀉)를 구사하는 사암침법의 창시자인데 그 분이 쓴 ‘사암도인 침구요결(舍巖道人 鍼灸要訣)’이란 책을 보면 수년간 고생했던 질환들이 단 한 번의 침술로 쾌차하는 경우가 흔하게 등장합니다. 사암도인이 아니더라도 임상 경력이 쌓인 의료인들은 임상에서 일도쾌차의 경험을 자주하게 됩니다. 병소(病所)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막힌 기혈을 트여 주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통증이 소멸되고 편하게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의사뿐만이 아니라 탈구가 되었을 때, 이를 교정만 해줘도 바로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이 역시 일도쾌차라고 볼 수 있으며, 몸에 이물질이 유입되어 생기는 질병에 대해서 단 일회의  수술 치료법으로써 완치를 시켰다면 이 역시 일도쾌차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일정한 치료 시간이 필요한 감염성질환이라든지, 병이 이미 고황(膏肓)속을 들어간 질환의 경우에는 화타와 편작이 달라붙어도 일도쾌차를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환자가 일도쾌차하고 싶은 마음이나 의료인이 일도쾌차를 이루겠다는 마음이 욕심일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환자든, 의료인이든 지나치게 일도쾌차(一到快差)에만 집착한다면 오히려 조급한 마음에 치료가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일도쾌차에는 다소 함정이 있습니다. 만일 증상만을 소멸시킨다면 질병의 치료와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비교적 가벼운 발목 염좌 질환일지라도 오늘 다쳤다면, 오늘 단 한 번에 쾌차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하루 정도는 지난 후에 어혈(瘀血)이 발생하기를 기다린 후에 사혈침법을 써야 효과가 있으며, 병소가 광범위해서 정도가 심하면 1~2회의 침시술이 필요합니다.


 

 

 

증상만이 소멸된 것을 일컬어 일도쾌차라고 한다면 이는 질병치료의 본질과 벗어납니다. 예컨대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진 사람이 최면치료를 받고나면 당장 물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도 있다면, 이 역시 일도쾌차(一到快差)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최면이 풀리면 그러한 증상이 재발하기 일쑤입니다. 치통, 관절통증, 생리통, 두통 등에 쓰는 진통제의 경우도 일도쾌차와 같은 기분을 느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재발합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의 불면증 치료약, 피부 가려움증에 쓰는 스테로이드 연고, 기타 호르몬 성분의 합성약품들도 단지 증상만을 소멸시켰을 뿐, 병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도쾌차에만 얽매어 증상만 다스리다가는 정작 병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를 넘어서 병의 근본을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허준 선생은 다음의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옛적에 신성神聖한 의사들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서 병이 나지 않게 하였다. 지금 의사들은 단지 사람의 병만 치료할 줄 알고 마음을 다스릴 줄은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좇는 것이며 원인을 찾지 않고 나타난 증상만을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古之神聖之醫 能療人之心 預使不致於有疾.今之醫者 惟知療人之疾 而不知療人之心.是猶捨本逐末 不窮其源 而攻其流 欲求疾愈不亦愚乎)」
  
그렇습니다. 일도쾌차에 집착하여 증상만을 치료하다보면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좇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경우는 증상만 개선될 뿐, 병이 제대로 나을 수 없습니다. 물론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증상치료에만 만족하다가는 오히려 제대로 병을 고칠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병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음을 동의보감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서양의학에서도 스트레스가 질병발생에 있어 절대적인 요소가 됨을 여러 의학논문들을 통해 발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기에 명상이나 인문학 공부 등을 통해서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는 치료법이 점점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마음을 평온하게 가져야 원인치료가 되는 걸까요?
스트레스가 쌓이고 마음이 불안정하면 그것이 곧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병증이 지속하여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마음이 평온해지면 자율신경계가 안정되고, 면역기능, 즉 자연치유력이 향상됩니다. 그러므로 병을 완치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학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무릇 참된 침 시술을 하려면 반드시 먼저 정신을 다스려야 한다. 그리하여 오장을 안정시키고 몸 각부의 혈맥의 징후가 편안해진 다음에 침을 놓는다. (凡刺之眞 必先治神 五藏已定 九候已備 後乃存鍼)」모든 치료를 시작함에 있어서 시술하는 의료인과 시술받는 환자 모두 마음의 평화가 선행되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는 병의 증상을 일으키는 보다 근본적인 요소에 접근하여 원인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흐려진 흙탕물에서 흙을 걸러내는 것이 아니라, 흙탕물을 흐리게 하는 미꾸라지를 잡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25년간의 한방심리학을 연구한 임상경력을 통해 다음처럼 세 가지 실천 사항을 제안해 봅니다.

첫째, 내게 진정 유익하고 행복한 길이 무엇인지 늘 깨어 헤아린다.
둘째, 내 건강을 해치는 나쁜 생활습관을 정확히 인식한다. 
셋째, 맑고 따듯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런 장소를 자주 찾는다.  

 

 

 

 

홀로 스스로 깨쳐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기운이 흐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를 찾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즉, 마음이 절로 평화로워집니다. 이렇듯 참된 치유의 방법은 그 방법이 행해지는 실천이 뒤따라야 비로소 치유가 일어납니다.


먼저 마음의 평화를 찾지 않고 일도쾌차(一到快差)에만 집착하여 증상만을 완화시키려다보면 오히려 질병이 더 심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안정시켜 면역능력과 자연치유력을 향상시켜서 근본적인 치유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비록 오래된 질병이라고 할지라도 빠른 치료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일도쾌차(一到快差)입니다.


증상완화치료와 원인해소 그 둘 다 필요하지만 원인해소치료가 먼저 할 바입니다. 병의 원인이 되는 마음을 다스리면서 그 다음으로 증상을 완화시켜나가는 치유법에 관심을 둔다면 그가 의료인이든, 환자든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의 치료는 지혜로운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일도쾌차가 가능합니다. 바른 치유법을 통해 질병을 잘 극복하여 건강하게 살아보기를 기원합니다.

 

 글 / 황웅근 제천시 제3한방명의촌 자연치유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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