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주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9.06 명절이 필요한 시간
  2. 2013.11.25 사회생활의 덫, 뒷담화 (4)
  3. 2013.09.16 명절과 ‘지식의 저주’ (2)

 

 

 

 

 

다시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명절은 평소 각자의 현실에서 바쁘게 살아가던 가족 친지들이 오랜 그리움의 공간인 고향에 모여 보고 싶던 사람들을 만나고 조상에게 예를 올리는 특별한 날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리가 알던 명절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다함께 모여 조상에게 예를 다하던 기존과는 달리 명절은 그저 빨간 날이 되어 국내외로 여행을 가거나 업체를 통해 차례를 대신 지내는 날이 된 것. 달라지고 있는 명절 풍속 속에서 명절의 참 의미는 퇴색되어 가고 있다.

 

 

 

명절의 깊은 뜻

 

명절마다 만나는 형제와 친척들 사이에서, 우리는 오랜 친밀감을 다시 느낀다. 나와 네가 각기 다른 곳에서 살아가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가깝고 사랑할 수 있는 사이임을 기억하게 된다. 모두 모인 공간에서는 서로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 내 문제가 네 문제가 되고, 네 기쁨이 내 기쁨이 된다.

 

뿐만 아니라, 명절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한 사회를 이루며 함께 살고 있다는 유대감은 가족과 친척간의 공감과 친밀감에서 시작된다. 특히 명 절은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과 한 공동체 의 구성원임을 느끼게 한다. 오랜 세월 휴식과 화해의 시간이었던 명절에 이루어지는 전통 음식, 놀이, 예식 등을 누리는 것은 그 자체로 가족과 친지를 넘어 이 전통에 속 한 모든 이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일이다.

 

공자(孔子)는 명절(제사)의 의미를 단순히 죽은 조상(귀신)을 섬기는게 아니라 (未能事人 焉能事鬼), 친족들간의 유대라는 사회적 기능으로 파악했다. 명절은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사랑과 유대가 뻗어나가 사회와 국가를 이롭게 한다는 원리 (修身齊家 治國平天下)를 내포하고 있다.

 

한 사회에서 서로 연결된 마음의 힘을 현대적 용어로는 ‘사회적 자본’이라 부른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 구성원의 연대감, 상호 신뢰, 사회적 연계망, 호혜적 규범, 협력 가능성 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사회적 자본이 강할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명절은 한 개인이나 사회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화기애애한 명절을 보낼 수 있는 이들은 개인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풍속도

 

그러나 근래에 명절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하룻밤 이상을 함께 보내며, 웃음꽃을 피우고 전통 놀이와 음식을 즐기던 명절의 풍 속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명절이면 먼 길을 달려 고향에 가지만, 그저 형식적으로 얼굴만 보고 몇 시간 되지 않아 금방 떠나곤 한다. 많은 이들은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를 불편해 하기도 하고, 그냥 집에서 쉬는 걸 더 선호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 명절 기간에는 대규모 해외여행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미리부터 해외여행을 예약하고, 연휴가 시작되기 무섭게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난다. 자신이 사는 곳이나 살던 곳에 더 이상 진정한 휴식이 없다 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명절의 풍속도는 우리 사회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현상이 되고 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강한 유대감은 사라지고, 남들로부터 분리되어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를 선호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과거와 같은 집단주의적 문화를 멀리하는 대신, 개인주의 문화를 선호하며, 서로 강하게 연계된 ‘소속의 삶’ 보다는 ‘자립의 삶’을 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강한 유대’의 집단주의 문화는 장점만큼이나 부작용 역시 심각했다. 사람들은 각각 고유한 개인으로 존중 받기 보다는, 집단주의적 역할과 불합리한 위계질서에 일방적으로 복종하고, 집단이 만들어낸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또 개인들은 각자의 삶을 존중 받기 보다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의 편견에 따라 평가 받고 규정되는 일에 굴욕과 모욕을 느껴왔다. 친척이 모인 곳에서, 자신이 선택한 싱글라이프는 시집 못간 노처녀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프리랜서는 출세 못한 백수로, 남들보다 천천히 가며 행복을 중시하는 삶은 남에게 뒤처지는 인생으로 취급 받아 왔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문화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합리한 악습을 재생산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새로운 명절 문화를 위하여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구성원 상호 간의 연대감과 상호신뢰의 회복은 긴박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이 사회를 이루고 함께 살아갈 존재라고 믿기 보다는, 경쟁자나 적이라고 여겨 시기 질투하고 증오하는 현상이 이미 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웃간의 교류가 단절되고, 가족 친척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사회에서 ‘명절의 복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모든 문제 해결이 그렇듯이 단순히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명절 문화, 새로운 유대감을 만들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가족이나 친지라 할지라도, 상대방을 한 명의 개인으로 존중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나이가 많다고 혹은 가족이라고 상대에게 무조건 가르치려 하기 보다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공감의 태도 가 필요하다.

 

명절을 맞아 우리는 사로잡혀 있는 편견으로 부터 벗어나고, 나와 남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사람들 이 모인 자리에서 일어나는 악습들, 즉 남과 나를 비교하고, 시기 질투하며, 상대에게 굴욕감을 주는 자기 과시 행위 등은 모두 ‘특정한 기준’이라는 편견으로부터 나온다. 돈, 사회적 명예, 출세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인 가족과 친지를 대할때 만큼은, 그런 속물적 기준에서 벗어나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야 한다. 그렇게 인간적인 소통과 관계가 가족과 친척에서 부터 자라난다면, 다시 우리에게 화목한 명절이 돌아오고,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더 아름답게 변해갈 것이다.


글 / 정지우(인문학 칼럼니스트)

출처 / 사보 '건강보험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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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불안이나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 중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요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관계가 중요하니 웬만하면 참고 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이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렇지 않 아도 어려운 사회생활에서 마음을,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덫이 있으니 바로 뒷담화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치고 뒷담화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싶다.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그 대상이 되기도

       하는 뒷담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또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뒷담화를 하는 이유

 

사람들이 뒷담화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정서적 지지 때문이다. 누군가 때문에 힘들거나 억울할 때 뒷담화를 통해 위로와 지지를 받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신은 옳고(정상이고) 그 사람은 틀렸다(이상하다)는 식의 논리가 뒷담화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상대방과 친해지기 위해서다. 서먹한 사람과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면 친해지게 된다. 공통의 관심사란 드라마나 스포츠, 연예인일 수도 있지만 직장이라면 직장 내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통제에 대한 욕구도 뒷담화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많은 경우 뒷담화는 “그 사람 어떤 사람이야?”라는 말로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과 상황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아주 강하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게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뒷담화를 통해 정보를 구하는 것이다.

 

 

 

뒷담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수집과 판단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심리학과의 브루어(W. Brewer)와 동료들은 실험을 위해 피험자들을 모집한 후, 교수연구실에서 대기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잠시 후 실험실로 인도받은 그들에게 종이 한 장이 주면서 방금 전 대기하던 곳에서 보았던 물건을 기록하라고 말했다. 대부분은 교수연구실에 있을 법한 물건(책과 노트 등)을 적었지만, 이것들은 연구자가 미리 치워놓았다. 반면 연구자들이 가져다 놓았던 농구공이나 벽돌을 적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이 아닌 보았다고 ‘생각’한 것을 적은 셈이다.

 

뒷담화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이 들은 ‘그대로’ 옮긴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이 들었다고 ‘생각’한 것을 옮기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결국 없는 정보도 생기게 되고 있는 정보도 없어지게 되며, 작은 정보가 커지기도 하고 큰 정보는 작아지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잘못된 정보들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집단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주변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하면서 동의를 구하기에 금세 동조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뒷담화에 열성을 올리는 사람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착한(친사회적) 사람이라고 한다. 문제가 되는 구성원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전파하는 것이다.

 

 

 

뒷담화에서 조금은 자유롭기

 

뒷담화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그 폐해를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뒷담화의 확산을 직접 막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다수의 압력에 소수가 동조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함을 증명하였다.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개인(소수)이 자신의 주장을 확신 있게 하고, 지속적으로 하며, 일관되게 하다 보면 다수가 개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 부당한 뒷담화를 한다면 다른 의견을 제시해 보자. 확신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주장하면 침묵을 지키던 누군가는 당신의 의견에 찬성하게 된다. 이것을 시작으로 바뀔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바뀌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사실은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언젠가는 뒷담화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수의 힘이 작용할 여지는 더 많다.

 

두 번째는 자신이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을 경우다. 뒷담화란 뒤에서 나누는 이야기라서 해명할 기회도 없고, 해명을 들어줄 사람도 없다. 이럴 경우엔 뒤집어서 생각을 해보자. 뒷담화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어쨌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증거나 아니던가! 연예인들도 한참 잘 나갈 때 악플(악성 댓글)이 달리지, 인기가 식으면 악플도 없는 법이다. 만약 자신에게 잘못이나 부족함이 있다면 고쳐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뒷담화의 대상이 된다면 아마 시기와 질투, 혹은 오해 때문일 수 있다. 어느 집단이든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언제나 반대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뒷담화만 하면서 어중이떠중이로 살기보다는, 그 대상이 되는 리더로 살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글 / 심리학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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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가 코앞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아가거나 가족과 친지를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명절에 혼자 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혼자 지내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다. 

      맞다. 혼자 지내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혼자 지내는 이유를 살펴보면 문제가 다르다. 함께 모이면 즐겁고

      편하기는커녕 지나친 관심과 잔소리, 비난이나 가족 간 불화로 고통스럽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명절, 어떻게

      해야 함께 즐거울 수 있을까?

 

 

 

 

 

 

집단주의 문화와 명절

 

‘나’보다는 ‘우리’를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인 한국에서 가족은 일종의 운명공동체다. 가족 중 누가 잘 되면 집안의 경사라며 모두가 잘 된 것처럼 기뻐하고 흥분해 한다. 심지어 한 지역에 오래 거주했다면 온 동네가 함께 기뻐한다. 고시에 붙었다거나 좋은 학교에 진학해도 동네 한 가운데에 현수막을 걸고 잔치를 벌인다.

 

그렇다면 반대의 상황, 즉 누군가가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했거나 계속 실패한다면 어떨까? 이 때에도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이 나타난다. 모두가 걱정하고 염려한다. 남 일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패를 경험한 당사자도 고통스럽겠지만,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동네 창피해서’, ‘면목이 없어서’ 당사자를 비롯해 온 가족이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런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이 아주 극명하게 나타나는 때가 명절이다. 경제와 시대 상황이 좋다면 명절에 웃음꽃이 떠나지 않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웃음꽃은커녕 서로에 대한 걱정과 잔소리, 푸념과 비난이 떠나지 않는다. 차라리 모두가 잘 안되면 서로 위로라도 하겠지만, 잘 나가는 사람 하나 있으면 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까지 더해진다. 이런 명절이라면 누가 좋아할까?

 

 

 

고통의 진짜 이유, 소통의 부재

 

가족들이 비난과 걱정,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를 싫어하기 때문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적절한 거리를 두지 않는, 지나치게 가까운 사이라면 갈등이 쌓이고 쌓여서 서로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갈등과 불화의 시작점에는 ‘소통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다.

 

삼촌은 조카가 공부를 잘하기를 원해 관심을 갖고, 형은 동생이 좋은 곳에 취업하기를 바라기에 유용한 정보를 알려준다. 부모는 자녀가 좋은 짝을 만났으면 하기에 마음에 걱정을 한다. 그러나 전달되는 것은 이들의 마음이 아니다. 삼촌의 잔소리와 형의 비난, 부모의 푸념뿐이다.

 

반대 입장도 마찬가지다. 조카는 삼촌의 잔소리가 듣기 힘들어 ‘알았다’고, 동생은 형의 비난에 화가 나서 ‘내 할 일은 내가 잘 하겠다’고, 자녀는 부모의 푸념에 자신이 너무 못나 보여서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친다. 그러나 전달되는 것은 이들의 힘든 마음이 아니다. 조카의 버릇없음과 동생의 허세, 자녀의 짜증뿐이다. 한 마디로 서로가 서로에게 제대로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가, 결국 명절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지식의 저주를 극복하라

 

엘리자베스 뉴턴이라는 미국의 심리학자는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다. 두 명의 참가자를 짝지은 후 한 사람에게는 ‘누구나 알 만한 노래’의 리듬을 떠 올리면서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게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 리듬을 듣고 어떤 노래인지 맞춰보라고 했다. 심리학자는 탁자를 두드리게 한 다음 물었다.

 

“당신이 방금 두드린 노래를 상대가 얼마나 맞힐까요?”

 

사람들의 대답은 평균 50%였다. 자신이 두드리는 리듬을 듣고 반 정도는 맞힐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상대가 맞힌 노래는 2.5% 밖에 안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역할을 맡은 사람은 속으로 가사와 멜로디를 생각하면서 두드렸기에 상대방도 쉽게 맞힐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탁탁탁탁’ 소리만 들릴 뿐 도통 무슨 노래인지 맞히지 못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알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라고 한다. 교사는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조금만 알려줘도 다 알 것이라고 착각하고, 직장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대충 말해 놓고 다 전달했다고 착각한다.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통터져 하는 것은 지식이 가져다 준 저주일 뿐이다.

 

 

 

마음을 자세히 전하라

 

명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사랑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잔소리와 비난, 푸념만 해도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계속되는 실패 때문에 좌절스럽고 면목이 없다 생각하기 때문에, 겉으로 버릇없이 대하고 허세를 부리고 짜증을 내도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 틀렸다. 지식의 저주에 걸려들었을 뿐이다. 자세히 전달해야 한다. 상대방이 알아들을 때까지 마음을 직접 말해줘야 한다. 이래라 저래라 하기 전에 얼마나 걱정하고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중심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좌절스러운지 직접, 상대가 알아들을 때까지 힘주어 전해야 한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금기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으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채야  한다. 물론 이런 방식도 때에 따라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불통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관계를 단절하고 마음을 닫지 말고 직접 말하고 전달할 필요도 있다.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글 / 심리학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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