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만났다. 새내기 대학생을 둔 부모인지라 자연스레 교육에 대한 이야기 중에 본인의 어릴적 이야기를 해주었다. 공부를 잘 하는 차분하고 모범생이었던 그에게 어느 날 생물 선생님이 질문에 답을 못했다는 이유로 자로 뺨을 때렸다는 거다. 그 뒤로 그 과목은 공부를 등한시하게 되고 해도 안 되는 것 같고 국영수에서 우수한 성적이 나는 학생임에도 생물이 평균 점수를 심각하게 떨어뜨려 담임선생님을 포함한 선생님들의 의아해했다는.


 


 

이 어린 아이는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 파급효과가 이렇게 클 거라는 생각은 생물 선생님도, 본인도, 담임선생님도 몰랐을 것이다. 이 역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닐까.

 

전쟁을 경험한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또는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전에는 전쟁의 후유증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고 한다. 동물 가죽을 벗기듯 포로를 그리했다면 구식무기를 사용한 전투는 훨씬 더 잔인했을 것이다. 마틴 판 크레펠트는 그 이유를 종전의식(終戰儀式)에 두었다.


 


 

의식을 통해 아른 기억을 모두 ‘과거’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의 고통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곱씹는다. 상처가 영혼을 한 뼘 키우는 ‘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난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절망이 되기도 하고, 더 나아지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고난을 통해 의미를 찾는 이들은 꾸준히 나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발전은커녕 삶이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상처를 성장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먼저,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구의 책임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면 인정하고 뉘우치는 과정이 필요하고 만약 내가 아닌 네 잘못이라면 혹은 시대와 상황 탓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아픔이라면 무엇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잘잘못을 분명히 가리면 번민과 마음의 짐을 덜게 될 것이다. 수업을 잘 듣고 있었음에도 질문에 답을 못해 자로 뺨을 때린 것은 선생이 잘못한 것이다. 나를 전쟁터로 내몰았다면 전장에서의 내가 한 일의 원인은 나 자신보다 국가나 사회의 책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단계이다. ‘과거’가 되어버린 것은 어찌해도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상처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할지는 내가 얼마든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인이 옳다고 믿는 게 곧 진리가 되는 경우를 흔히 발견한다. 정신의 미성숙이거나 혹은 올바르게 의식(意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아기가 성장하면서 주변인들의 말을 수없이 들으며 습득하듯, 사고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성장하는 미래의 주인공들이 수많은 다양한 상황에서 상처받더라도 스스로 치유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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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서 16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은 예년에 비해 따듯한 편이다. 엘니뇨다 이상기후다 여러 분석들이 많다. 그런데 2015년은 을미년, 을미(乙未)년의 천간(天干)은 목(木)이요, 지지(地支)는 토(土)다.즉, 한해의 반은 천간인 목이 지배를 하고, 또 한해의 반은 지지인 토가 왕성하다. 그렇다면 목극토(木克土), 즉 봄기운이 중앙의 습한 여름기운인 토(濕土)를 극하여 올해 상반기 극심하게 가물었다면, 올 하반기는 토(土)가 왕성한 바, 토극수(土克水)하여 찬 기운을 이겨내어 따듯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리학적 해석 역시,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자연현상을 설명함에 있어 특정 논리, 이론, 과학으로 모두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늘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왜냐면 자연이란 존재는 그 자체로 이미 신성하며, 모든 과학과 논리 그 이상의 신묘한 법칙에 의해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 따듯하면 춘화작용이 덜 되어 농사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러나 인류가 태어난 수 백 만년 동안, 안정된 기후를 유지했던 지구가 인간이라는 한 종족이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지구의 체력이 약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자연은 항상 사람의 걱정을 넘어선다. 한해의 기후 변화만 보면 사람에게 유익함과 그렇지 못함이 있는 듯하지만, 대자연의 흐름에 있어서 그것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규정할 수 없다.

 

 

 

 

어떤 기상학자는 2015년에는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위성사진으로 관찰한 결과 놀랍게도 2012년부터 2014년 3월까지 2년차에서 4년차 얼음이 증가하여 다시금 광범위하게 얼음면적이 확장되었다는 일례가 그러하다.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아무튼 자연은 그렇게 건강하다.

 

좀 더 크게 본다면 사람이 겪는 생로병사(生老病死)도 자연 세계에서는 그저 건강한 에너지의 흐름일 뿐이다. 즉, 질병 역시 건강한 흐름의 하나다. 우리는 이를 자연의 위대한 힘이라고도 말하고, 의료적인 견해로는 자연치유력이라고 칭한다. 자연치유력은 위대한 자연 그 자체요, 자연 속에 내재된 에너지라고도 하지만, 사람의 몸에도 존재한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건강함을 체감할 수 있는 게 계절의 흐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건기와 우기가 주기적으로 순환하며 모든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 그러나 자연도 가끔은 가뭄이 오래 지속되거나 때 아닌 장마가 올 때가 있다. 산불이 일어나거나 이상 기온을 보일 때도 있다. 그렇지만 결국은 제자리를 찾아들어가고야 만다. 우리가 바라보기에는 지구의 자연환경과 기후의 변화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는 우리 마음이 문제일 뿐, 자연은 건강하다. 자연과 건강은 결코 떼어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이렇게 건강한 대자연의 에너지를 얻을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자연을 보면 비가 내리고 그 비는 다시금 개울이 되어 흐르다가 강물이 되어 흐르면서 대지를 적셔준다. 우리의 몸도 대자연을 닮아서 개울이나 강물 같은 혈관을 통해 피가 순환하고 신경계가 작동하면서 생명력이 유지된다. 개울이나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치자. 자연이 건강할 수 없듯이, 우리 몸도 이와 같다. 그렇다면 자연치유력이란 흘러서 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매우 중요한 논제일 수 있다.

 

 


어떤 환우가 말했다. "선생님. 제 통증을 표현해 본다면 천 개의 바늘이 찌를 듯이 아파요. 그런데 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해 봤지만, 뚜렷한 원인이 나올질 않거든요.” 나는 말했다. “아마 천개의 바늘로 찔러도 지금처럼 아프지는 않으실 거예요.”

 

사노라면 이토록 아주 몹시 아플 때가 있다. 왜 그럴까? 꽉 막혔기 때문이다. 단지 혈액순환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곧 마음의 영역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 잡병편(雜病篇)에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이라고 했다. 기혈(氣血)이 순환되고 통해야 아프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황제내경(黃帝內經) 거통론편(擧痛論篇)에서는 ‘집착하면 기(氣)가 맺힌다(思則氣結)’라고 하였다. 여기서의 사(思)란 자연의 흐름과 어긋나는 나만의 생각, 즉 막힌 생각이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우는 갓난아이를 보자. 배고플 때도 울고, 추워도 울고, 졸려도 운다. 당연히 아파도 운다. 그러나 엄마는 갓난아이가 운다고 화내거나 야단치지 않고, 묵묵히 아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읽어서 대처한다. 몸이 아플 때는 몸이 내게 던지는 신호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지금 내몸은 통증을 통해 다음처럼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힘들어요. 주인님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하고, 사회봉사를 하더라도 내개 휴식이 필요해요!’ 라고. 그럼에도 통증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통증은 점점 더 심화된다. 그리하여 천개의 바늘이 찌를 듯이 아파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몸의 기혈순환을 잘 흐르게 할 수 있을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는 몸을 펴야 한다. 현대문명은 컴퓨터와 자동차를 만들어냈고, 지나치게 구부정한 자세로 일하거나 이동하게 한다. 그렇다고 이를 거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수시로 스트레칭을 하는 게 필요하다. 몸을 이완시키는 각종 요법들이 활개를 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집에서 기지개를 자주 켜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어떤 자세도 좋다. 단지 어깨를 펴고, 허리를 펴고, 척추를 세워보자. 그러면 기혈순환이 원활해지고 자연치유력이 회복된다.

 

 


둘째는 생각열기다. 하나만을 아는 사람은 생각에 통로가 없어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생각의 출구를 하나 더 가져보자. 매우 쉽다. 내뜻대로 되는 삶을 ‘해동네’로 보고, 그렇지 않는 삶을 ‘달동네’로 규정한 이후, 해동네가 올 때나 달동네가 올 때나 이에 맞게 잘 대처하는 생각이 필요하다. 아래 순자 자도편 (荀子, 子道篇)의 한 구절은 내가 달동네에 있을 때와 해동네에 있을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잘 말해주고 있다.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도 또한 근심하는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군자는 지위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그 뜻하는 바를 즐거워하고 지위를 얻고 나서는 또 그 다스려지는 것을 즐거워하나니, 이 때문에 종신토록 즐거움만 있고 단 하루도 근심함이 없다. 소인은 지위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얻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고 지위를 얻고 나서는 또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나니, 이 때문에 종신토록 근심만 있고 단 하루의 즐거움도 없느니라.”

 

 

 


 

삶의 자세를 위처럼 가진다면, 내 인생의 해동네와 달동네에 대해서 집착을 털어내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다. 몸을 펴고 생각을 열자. 그러면 건강한 대자연으로부터 자연치유력이 회복되어 기혈순환이 촉진된다. 그러면 언제라도 건강하고 신명나게 살아갈 수 있다.

  

글 / 황웅근 제천시 제3한방명의촌 자연치유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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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는 골치 아픈 일이라고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러나 내게 예외적이고 놀라운 경험이 있다. 

 

1993년 여름이었다. 느닷없이 금융실명제가 발표됐다. 증권사에 다니고 있던 나는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갖고 있던 주식이 폭락한 것이다. 이때 나도 모르게 글을 끄적였다. 내용은 이런 것이었듯 싶다. ‘당장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힘들지만 나중에는 이 상황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거야.’ 괴로운 마음도 표현했다. 주식 상품에 들라고 강권한 회사에 대고 욕도 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도 썼다. 생각나는 대로, 손가락 가는 대로 자판을 마구 두드렸다.  

 

신기했다. 불안한 마음이 가셨다. 화가 삭여졌다.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뒤로 나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글을 쓰는 버릇이 생겼다. 위암 선고를 받은 날도 그랬다. 분노와 원망을 폭풍 같이 써 갈겼다. 다음날에도 썼다. 그럼에도 내가 감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쓸 것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 셋째 날에는 저절로 회개하는 글이 나왔다. 참회의 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왜 이렇게 잘못한 게 많은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두 시간여 글을 썼을까. 암 덩어리가 모두 씻겨나간 것처럼 개운했다.

 

돌아보면, 그 이전에도 힘들 때마다 글을 썼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칠판에 시를 썼다. 친구들이 저녁 먹으러 간 시간에 시 같지도 않은 자작시를 한 편씩 써놓았다. 무슨 생뚱맞은 짓이냐고 놀리는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내게는 암울한 고3 현실에 관한 고발이고 투정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답답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군에 있을 때는 아예 일기를 썼다. 30개월 간 쓴 일기가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또 이렇게 하루를 보냈구나. 위로가 되었다. 나에 대한 힘찬 격려였다. 

 

 

 

 

애써 외면해왔던 것을 마주하게 한다.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직시하는 데 있다. 회피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글쓰기는 문제와 대면하게 한다. 마음의 상처를 직접 들여다보게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는 시작된다.

 

자신과 대화하게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은 말해야 풀린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미움, 시기, 질투, 배신, 욕망의 금기어들이 그것이다. 이들을 꽁꽁 동여매지 않고 글로 풀어헤치자. 그랬을 때 순화되고 정제된다. 내가 그로부터 해방된다. 스스로 성찰하게 된다.  

 

상처를 다독이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게 한다.

상처는 누군가의 따뜻한 말로 아물지 않는다. 그것을 보듬고 치유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괜찮아’ ‘잘했어’ ‘누가 그랬어? 혼내줄게’ ‘잘될거야’ 나는 요즘도 과거에 썼던 내 글을 보며 또 위로를 받는다.

 

걱정, 근심, 슬픔을 떠나보낸다.

치열한 글쓰기는 이런 감정들을 불태워 날려 보낸다. 진짜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하찮은 것들은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 힘을 잃는다는 것을. ‘그까짓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나를 발견하게 한다.

글쓰기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나를 받아들이고 존중하게 한다. 이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 희망을 본다. 주변도 쳐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한다.  

 

지금 당장 글을 써보라. 몸과 마음과 인생을 치유하는 경험이 거기에 있다. 필요한 것은 종이와 펜, 그리고 솔직한 영혼뿐이다. 

 

글 /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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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프랭크 워렌(Frank Warren)이 공동예술을 목적으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라'는 당부와 함께 지하철 역,

     미술관,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 엽서 3천 개를 뿌려 놓았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엽서를 쓰기 시작했고,

     더 이상 쓸 엽서가 없자 자비로 엽서를 구입하여 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프랭크 워렌이 받은 엽서는 5년간 무려

     15만장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이렇게 시작된 포스트 시크릿은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포스텍을

     비롯 국내 여러 대학들도 그 열풍에 빠져 있으며, 국내의 대학생들이 아예 코리아 포스트 시크릿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http://postsecret-korea.blogspot.kr).

 

      

    

 

 

 

포스트 시크릿이 인기를 끄는 이유

 

자신의 비밀을 익명으로 공개하는 이 단순한 프로젝트의 인기는 무엇 때문일까?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에게 있는 고백의 욕구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사람처럼 의사소통이 아닌 고백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심리적 욕구가 있다. 고백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한다.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고 혼자만 갖고 있다는 것은 고통이다. 모든 종교에서 기도(고해성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면 고백의 힘을 알 수 있다.

 

고백이 단순히 심리적 이득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생각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는 일이 의학적으로 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의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그저 사람들에게 5일 정도에 걸쳐서 매일 15~20분 정도, 예를 들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았던 경험'이나 '현재 자신을 억누르는 걱정거리'에 대해 글로 고백하도록 요청했다. 물론 비밀이 보장된다는 조건이었다. 고백의 효과는 정말 놀라웠다. 면역 기능이 높아졌고, 다음 6개월 동안 진료소 방문 횟수가 의미심장할 정도록 감소했으며, 결근 일수 감소, 심지어 간 기능까지 개선됐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면역 기능에서 가장 커다란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고백은 마음 뿐 아니라 몸의 건강 측면에서도 상당한 이득이 있다.

 

포스트 시크릿 인기의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있는 보편성 욕구 때문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 스스로가 정상(다수)임을 확인하기 원한다. 자신에게 있는 어두운 측면이 다른 사람들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알 때 사람들은 안심하고 내심 기뻐한다.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다수에 속하려는, 보편적이기를 원하는 심리적 욕구 때문에 연인이든 친구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니 직접 터놓고 얘기하고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도시의 발달로 사람들은 아주 가까이 살게 되었고,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은 언제든 어디서든 원하는 사람에게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때문에 사람들은 진짜 속마음을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되었다. 쉽게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가볍게 여긴다. 누군가의 진지한 고민도 인터넷 상에서는 가십거리가 되어 돌아다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진짜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분위기가 바로 포스트 시크릿이 인기를 끌게 된 마지막 이유다.

 

 

 

진정한 힐링은 사람의 관계속에서

 

포스트 시크릿의 인기 원인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진심이 소통되지 않는 사회에서 말하고자 하는 욕구와 알고자 하는 욕구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쉬움도 크다. 어떤 이들은 포스트 시크릿이 쓰는 사람들에게는 치유가, 읽는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된다고 하지만 이런 위로와 치유가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포스트 시크릿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면 대부분이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나 직접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대부분이다. 분명히 관계 속에서 직면하고 부딪혀야 할 내용들이다. 진짜 치유와 위로는 익명이라는 가면을 벗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출판계와 방송계를 비롯해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힐링 열풍과 비슷하다. 혼자 책을 읽는다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고 힐링이라 할 수 없다. 이창동 감독의 2007년 작품 <밀양>에는 자기 아들을 살해한 유괴범을 용서하려는 준이 엄마(전도연 분)에게 이미 신으로부터 용서받았기에 마음이 평안하다고 말하는 유괴범이 나온다. 사실 유괴범이 용서를 구할 대상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신으로부터 용서를 구했다고 해도, 사람에게 진심어린 용서를 구해야 한다.

 

포스트 시크릿도 마찬가지다. 간편하고 손쉽고 부담이 없지만 여기에만 머무른다면 아마 평생 혼자 독방에 앉아 엽서만 쓰고, 다른 사람들의 엽서만 구경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 이제 용기를 내어 직접 말해보자. 자신의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진짜 사람에게 말이다.


                                                                                                                                         글 /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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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 <패치 아담스>(톰 새디악 감독)는 실화를 바탕으로 의사가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이상적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근년에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끈 의학 드라마를 보면, <패치 아담스>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이미 고전이 돼 버린 명작이지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


양배추를 자주 먹는다고요? 그걸 왜 먹습니까? 먹는 정성에 비하면 몸에 그렇게 좋은 게 아니에요. 나쁠 수도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하면 굼벵이도 잡아먹으니….” 의사선생님께서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며 목청을 높였습니다. 종합병원의 과장님이자 의과대학 교수님의 권위는 표정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굳게 믿는 듯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양약은 불신하고 한약을 맹신하는데, 한약 잘못 먹고 죽은 사람 많아요.” 그는 느닷없이 한약 불신론을 늘어놓더니 컴퓨터 앞에서 약 처방 문안을 타자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비스듬한 자세로 타자를 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무슨 약인지요?”라고 묻자, 그는 “좋은 거에요.”라고 답했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생활을…?” 어렵게 꺼낸 질문이었으나 그는 쉽게 이야기를 끊어버렸습니다.

“뒤에 진료 받아야 할 환자가 많으니 한 사람과 길게 이야기 못합니다. 앞으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저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요.” 그는 눈짓으로 빨리 나가라고 재촉을 했습니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바쁜 의사선생님을 더 이상 붙들 수 없어서 물러 나와야 했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는 지침을 받았으니, 얼굴에 웃음을 띠며 공손히 나왔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그 분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진료 받았던 일만 생각하면 가슴속에서 화기가 끓어올라 애를 먹었습니다. 애써 화기를 억누르며, 다시는 그 의사 선생님을 만나지 말아야 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직업인 교사와 아픈 사람을 상대하는 의사, 그리고 사회의 다양한 사건을 균형 감각 있게 보도해야 할 기자 직군은 자격시험에서 반드시 인성 검사를 치러야 해. 그리고 그 비중을 다른 과목보다 훨씬 높게 했으면 좋겠어.” 언젠가 친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그저 웃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의 말에 대한 공감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군요.

 

 

 

"의사는 단지 의술을 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사람이 의사입니다"
                                                                                            < 영화 패치아담스 대사 中 >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의 의미


불행한 가정환경 때문에 자살을 꿈꿨던 헌터 아담스(로빈 윌리암스 분)는 정신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그는 동료환자들과의 유대를 통해 병의 치료는 인간의 정신적 상처를 위로하는 일과 병행해야 한다는 영감을 얻습니다

 

그는 퇴원 후 의과대학생이 되는데, 3학년이 돼야 환자들을 만날 수 있는 규정을 무시한 채 환자들을 몰래 만나서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의 ‘패치(Patch)’를 자신의 이름으로 택한 그는 환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어릿광대 공연도 서슴지 않습니다. 학교 당국은 이런 그에게 몇 번이나 경고를 하지만, 오히려 그는 동료 의학도들을 설득해서 산 위의 허름한 집을 개조한 후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임시 무료 진료소를 세웁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동급생 캐린(모니카 포터 분)과 사랑을 나누는 대목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하게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캐린은 당초 ‘환자들에게 권위를 인정받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기 때문에 ‘환자들과 더불어 지내는 의사’를 지향하는 패치를 멀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캐린은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까지도 보듬는 패치의 사랑에 마침내 마음을 열고, 패치와 함께 무료 진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그러나 인술을 실천하려는 패치에게 신은 어찌 그리 가혹할 수 있는 것인지, 캐린은 자신이 돌보려던 정신 이상 환자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인간에게 환멸을 느낀 패치는 자신의 활동을 모두 접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동료 의학도들이 그를 가로막고, 패치는 캐린과 함께 무료진료소를 꿈꿨던 언덕에 올라 다시 힘을 얻어서 환자들 곁으로 돌아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의사들이 패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환자들을 돌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영화로 만들어졌을 만큼 이상향을 지향하는 특별한 의사의 이야기니까요. 그의 진료 방법이 의학적으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의 시각에서 그가 무엇을 소망하는 지 알아내고, 그들의 심리적인 상처까지 치료해 주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만큼은 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영화는 패치가 정신병원에서 환자 체험을 하는 것에 시간을 많이 할애합니다. 실제 현실에서 패치 아담스와 그의 동료들은 1971년 이후 48년간 진료소 게순트하이트(Gesundheit)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게순트 하이트’는 재채기를 한 사람을 위해 건강을 기원하는 말입니다. 이름에서부터 패치의 유머가 느껴지는 게순트하이트의 활동에는 현재 5개 대륙의 65개 국가에서 15만 명이 동참하고 있다고 합니다.

패치의 활동에 공감하는 의사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의료 환경의 여건만 좋다면 대부분의 의사들이 패치처럼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저 꿈에 불과할까요?

 

 게순트하이트 홈페이지를 보면 영화 <패치 아담스>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막을 통해 게순트하이트가 무료 진료소를 이미 다 지었다고 잘못 소개하는 바람에 이후에 기금을 모으는 데 애를 먹었다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의사 패치 아담스는 로빈 윌리암스라는 배우가 자신을 연기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로빈 윌리암스가 눈에 물기가 가득하면서도 얼굴 전체에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선함을 한껏 축복하고 싶어지니까요.

                        <실제 패치 아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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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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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타는 실내화 2010.03.17 1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영화 잘 보지 않는데, 패치 아담스는 정말 감명깊게 봤어요.

    -_-; 저도 한국에서 병원 다닐 때, 참으로 보기 싫은 의사, 간호사들 많았어요.
    예약을 해도 2~3시간 기다리고, 10분 얼굴 보는데도 얼굴에 짜증이 역력하더군요. 저라고 그 분 보고 싶어서 보나요?;;

    1~2년 전에 동생이 눈이 찢어져서 응급실에 간 적이 있어요.
    많이 기다렸지만 의사분께서 참 친절하셨거든요. 의사뿐만 아니라 병원 관계자 모두요. 한국이랑 정말 다르더라고요.
    딴지 거는 분들은 미국 의료비가 비싸서 그렇다고들 하시는데,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은 친절해야 하는 것 같아요.
    건강천사님 친구분께서 말씀하신 인성검사 완전 공감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의료 환경 좋은 편 아닌가요?
    물론 한 의사당 환자를 많이 보고, 일도 많이 시키지만 좋다고 알고 있거든요.

    • 국민건강보험공단 2010.03.17 16: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의사분 참 많습니다. 의료기술도 세계에서 인정 받고 있다고 알고있어요.
      어려운 분들을 위해 앞장서서 봉사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이 뵜습니다.
      불쾌했던 진료시간이 상처가 된 일도 우리에게 가끔 일어나기도 하고요.
      건강하고 밝은 대한민국을 바랍니다 :)

  2. 티런 2010.03.17 1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인물이야기군요.
    언제 한번 봐야겠습니다.
    건강천사님 편안한오후시간되세요~

  3. 인생이란 즐거운 롤러코스터 2010.03.17 14: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인물이라는것은 저도 첨 알았습니다.
    의술이 단순히 몸만 고치는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감명 옵니다. 오옷..

    • 국민건강보험공단 2010.03.17 16: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 패치아담스 홈페이지 방문하고 막 웃었네요.
      여기저기 빨간코 가진 분이 많더라고요.
      세상이 그래서 아직 아름답다. 많이 쓰는 문구죠? 참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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