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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삶의 다양한 경험과 성장, 스스로 치유하는 힘


 

 


 

지인을 만났다. 새내기 대학생을 둔 부모인지라 자연스레 교육에 대한 이야기 중에 본인의 어릴적 이야기를 해주었다. 공부를 잘 하는 차분하고 모범생이었던 그에게 어느 날 생물 선생님이 질문에 답을 못했다는 이유로 자로 뺨을 때렸다는 거다. 그 뒤로 그 과목은 공부를 등한시하게 되고 해도 안 되는 것 같고 국영수에서 우수한 성적이 나는 학생임에도 생물이 평균 점수를 심각하게 떨어뜨려 담임선생님을 포함한 선생님들의 의아해했다는.


 


 

이 어린 아이는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 파급효과가 이렇게 클 거라는 생각은 생물 선생님도, 본인도, 담임선생님도 몰랐을 것이다. 이 역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닐까.

 

전쟁을 경험한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또는 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전에는 전쟁의 후유증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고 한다. 동물 가죽을 벗기듯 포로를 그리했다면 구식무기를 사용한 전투는 훨씬 더 잔인했을 것이다. 마틴 판 크레펠트는 그 이유를 종전의식(終戰儀式)에 두었다.


 


 

의식을 통해 아른 기억을 모두 ‘과거’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의 고통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 곱씹는다. 상처가 영혼을 한 뼘 키우는 ‘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난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절망이 되기도 하고, 더 나아지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고난을 통해 의미를 찾는 이들은 꾸준히 나아갈 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발전은커녕 삶이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상처를 성장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먼저,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구의 책임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면 인정하고 뉘우치는 과정이 필요하고 만약 내가 아닌 네 잘못이라면 혹은 시대와 상황 탓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아픔이라면 무엇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잘잘못을 분명히 가리면 번민과 마음의 짐을 덜게 될 것이다. 수업을 잘 듣고 있었음에도 질문에 답을 못해 자로 뺨을 때린 것은 선생이 잘못한 것이다. 나를 전쟁터로 내몰았다면 전장에서의 내가 한 일의 원인은 나 자신보다 국가나 사회의 책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단계이다. ‘과거’가 되어버린 것은 어찌해도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상처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할지는 내가 얼마든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인이 옳다고 믿는 게 곧 진리가 되는 경우를 흔히 발견한다. 정신의 미성숙이거나 혹은 올바르게 의식(意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아기가 성장하면서 주변인들의 말을 수없이 들으며 습득하듯, 사고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성장하는 미래의 주인공들이 수많은 다양한 상황에서 상처받더라도 스스로 치유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 같다.